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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by 북앤라떼 2020. 7. 28.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위화

 

부모님의 두 성을 합친 이름 위화.

한국에서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허삼관 매혈기>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작가 위화.

글쓰기를 검색할 때 이 책을 알게 되었다.

1960년생인 위화는 문화대혁명의 시간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1967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977년까지의 시간이 문화대혁명을 관통하는 시기다. 책이 없는 시대였다. 문화대혁명 이전에 출판된 작품은 루쉰의 작품만 남고 전부 유통금지를 당하고 불태워졌다. 책을 읽고 싶던 시절에 마음대로 책을 읽지 못했던 그는 그런 국가의 억압 속에서 읽고 쓰기에 대한 열망이 더 불타올랐다. 1973년 여름, 문화대혁명 후기쯤에 린뱌오 사건(린뱌오는 군사가이자 정치인이다.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공산당 제 2인자로서 마오쩌둥을 보좌했으나 나중에 쿠데타 음모가 발각되어 몽고로 도주하다가 헬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이 터지고 2년쯤 후부터 문을 닫았던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고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도서관 대출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는 문학 서적은 30권이 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그렇게라도 책을 읽던 위화는 대출했던 책의 잉크 자국으로 인한 사서와의 싸움으로 대출증마저 빼앗기게 된다. 읽을 책이 없어진 상황은 마약을 흡입하다가 마약이 떨어진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둘 다 의사였던 위화는 부모님 서재에 꽂혀있던 의학 서적을 제외한 <마오쩌둥 선집>을 읽게 된다. 그래도 읽을거리가 필요했던 그는 뭐든 읽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읽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문혁 중에 금서였던 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다 없어져야 했던 책들을 몰래 감추어 놓은 사람들의 덕택이었다. 은밀하게 유통된 책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때로는 앞뒤로 유실된 상태로 그의 손에 들어올 때도 많았다. 그런 책들은 오히려 위화의 작가 수업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없어진 부분들을 상상하며 스스로 결말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할 수 있다"라는 마오쩌둥의 말이 그의 삶에도 나타났다. 그것이 그의 최초의 읽기였다. 1978년부터 개혁개방이 되면서 금서들이 다시 출판되기 시작했다.

책은 1부는 ‘읽고 쓰기’, 2부는 ‘사람으로 살기’로 구성으로 나누었는데 전체는 20번의 강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저자위화출판푸른숲발매2018.11.15.

1982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국이 문화 대혁명이라는 재앙에서 벗어난 지 몇 년 되지 않은 때였다. 그때는 문학잡지의 황금기로서 문학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목표였다. 치과의사였던 그는 낮에는 이를 뽑고 밤에는 글을 써서 잡지사에 보냈다. 1987년까지 원고 투고와 반송이 이어졌고 이후 청탁을 받고 원고를 쓰는 단계로 발전했다.

접할 수 있는 책이 루쉰과 마오쩌둥이었던 시대에 성장했고 책을 읽기 전에 소설을 쓰고 있었다. 맨 처음 글 쓰기에 영향을 준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첫 번째 글쓰기의 스승이다. 처음 글을 쓸 때 내가 그를 종종 흉내 내는 함정에 빠져있었기에 소설은 갈수록 형편없어지고 있었다. 그때 만난 작가 카프카가 두 번째 스승이 되었다. 그는 기교를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글쓰기라는 것이 아주 자유로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글이란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자유롭게 쓰기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스무 살에 글쓰기를 시작해서 서른한 살에 <가랑비 속의 외침>을 쓰고 서른두 살에 <인생>을, 서른다섯 살에 <허삼관 매혈기>를 쓰고 마흔여섯에 <형제>를 썼다.

“진리에 대한 추구를 영원히 포기하지 않겠다”

그에게 진리는 찾아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등대였고 비행기 항로를 안내하는 관제탑이었다. 진리는 찾기만 하면 우리를 이끌어줄 존재라고 말한다.

“좋은 작가가 되고 싶으면 먼저 훌륭한 독자가 되세요”

“평범한 작품 말고 위대한 작품을 많이 읽으세요”

그의 어린 시절 첫 꿈은 의사인 아버지를 보며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가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치과의사가 되었지만 그 첫 꿈을 이루지 못했고 후에 작가가 되었다.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가난한 글쓰기를 택했냐는 질문에 그는 그 시절의 중국에서는 모든 도시 근로자가 같은 월급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치과의사나 작가나 같은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면 하루 종일 힘든 치과의사의 일 보다 문화관에서 글을 쓰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성이 억압되고 말살되던 그 시대에 수많은 불행을 목격했고 친구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갑자기 타도되는 상황을 수시로 경험했다. 누군가는 그의 책 <형제>를 읽으며 지나친 혐오감을 준다고 비평한다. 그러나 그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전혀 거칠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당시 텔레비전에는 마오쩌둥이 연설을 하고 덩샤오핑이 등장했지만 화면 하단의 광고는 모두 성병치료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중국은 무수한 사물이 뒤섞여 있는 나라라며 호텔방에 놓인 재떨이에 ‘흡연 금지’라는 팻말을 세워놓는 나라라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중국을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작품을 읽을 때 그가 살아온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많은 오류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학은 작가의 손에서 시작하여 편집자의 손, 평론가의 손, 번역가의 손을 거쳐서 독자의 손에서 완성된다는 위화의 말을 곱씹어 본다.

위화는 문혁이라는 기간에 성장하면서 결핍 가운데 더 큰 열망이 생긴 작가다. 그 시절을 비슷하게 지나온 모옌과 같은 작가들도 그렇다.

나쁜 일이지만 그 일을 좋은 결과로 바꿀 수 있었다. 책은 독자에 의해서 완성된다는데 이 책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을 읽은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완성할까. 내가 갇힌 감옥은 무엇일까...

아 지금은 코로나의 감옥 살이 중인데..이 감옥도 언젠가 나쁜 것이 좋은 것이 되었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문학의 힘을 삶으로 증명한 위화의 문학과 삶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도 문학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수한 문학작품은 개방적인 것으로서 완성되기가 불가능합니다. 한 명 또 한 명의 독자가 자신의 문학적 배경과 생활 속의 경험, 개인적 느낌을 바탕으로 독서라는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을 점차적으로 완성해나가는 것이지요. 간단히 말해, 독자와 작가 사이의 차별성이 이러한 완성을 촉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의 가치와 의의도 이러한 차이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지요.

136쪽

1986년 겨울, 저는 한차례의 비경험 독서를 하고 글쓰기의 감옥에서 자유 증서를 한 장 얻었습니다. 이 자유 증서는 바로 <시골의사>였습니다. 감옥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저는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천천히 거닐고 싶으면 거닐었습니다. 얼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지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저를 글쓰기의 문으로 이끌어주었다면 카프카는 제 글쓰기에 자유를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79쪽

* 위화의 스승: 가와바타 야스나리, 카프카, 윌리엄 포크너, 이언 매큐언,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오르한파묵,

*소설가의 장애물

첫 번째 장애물:한자리에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쓰기

두 번째 장애물: 문제 소설에서 대화문을 어떻게 잘 처리하느냐

글쓰기에는 끊임없이 앞을 막는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글쓰기는 물줄기가 모여 도랑을 이루는 과정이지요. 장애물이 눈앞에 있을 때는 아주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이를 피하거나 넘어서고 나면 갑자기 그리 거대하지 않게 느껴지고 그저 종이호랑이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63쪽

세 번째 장애물: 심리묘사

위화는 심리묘사의 거작이라고 생각하는 <적과 흑>,<죄와 벌>,<와시>들을 읽으면서 심리묘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소설가에게 겁을 주기 위해 지어낸 허구의 개념이다.

자신을 지금 있게 한 데는 한 사람과 한 잡지의 커다란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위화는 <베이지 문학>의 자유 투고로 발굴한 작가다. 그의 출세작 <십팔 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가 1987년 베이징문학 1호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한 잡지는 <베이징문학>이 아니라 <수확>이고 한 사람은 리퉈다. 베이징문학에 보낸 중편 소설이 탈락한 뒤 <수확>에 보냈고 그 후 소설의 70퍼센트 이상을 이 잡지를 통해 발표했다.

“이 소설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면 당장 게재 동의 사인을 해서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다음 호에 실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위화 당신이 쓴 작품이기 때문에 가서 고쳐 오라는 거예요.”

그는 그 비평에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감동을 받는다.

한 이탈리아 잡지의 기자가 베이징에 와서 중국 젊은이들의 관심사를 알아보는 인터뷰를 했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미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손바닥을 보듯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서 위화는 문학의 세계화를 걱정한다. 그것은 다양함이 모여 숲을 이룸과 같이 동일성이 아닌 각 나라와 민족의 차별성이 인정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소설이 발표되고 몇 년이 지났지만 저는 가끔씩 왜 그때 3인칭 작가 시점을 1인칭으로 바꿨어야 했는지 생각해보곤 합니다. 아마 어떤 길을 가다가 막혀서 다른 길로 다른 길로 바꾼 셈이었을 겁니다. 저는 한때 이것이 그저 글쓰기 기교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7쪽

중국 작가가 보는 트럼프

그에 대한 우리 중국인들의 평가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트럼프가 제도라는 새장에 갇혀버렸다는 것이지요. 트럼프는 겉으로는 위풍당당하지만 항상 고민과 초조함에 싸여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람의 인생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견해가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느끼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99쪽

미국 항소법원도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제동하여 효력이 잠정 중단된 상황을 평가하는 말.

허삼관 매혈기는 단편소설로 시작했지만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장편소설이 되었다.

글쓰기 인생에 문학작품뿐 아니라 사회적 텍스트도 남기고 싶었다. 도시마다 지표가 되는 건축물이 있고 사람들이 어떤 장소를 찾을 때 랜드마크가 되는 건물을 이용해 방향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작품에도 이런 지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3쪽

문학은 가장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서기원이지요.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 사람들이 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알고 싶어 할 때는 서기원의 기록이 가장 중요할 겁니다. 따라서 문학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것들은 뉴스가 해야 할 일들이지요. 구양수의 시구와 루쉰의 글은 나중에 드러난 가치입니다.

121

가장 훌륭한 독서는 마음을 비운 독서, 꾸밈없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 독서입니다. 아무런 선입견도 갖지 않는 독서는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넓혀주지요. 선입견을 가지고 하는 독서는 음식을 골라 먹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좁게 만들 수 있습니다. p144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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