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1.2
베르나르 베르베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를 안다고 할 정도로 사랑받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이라는 추리소설. 이미 오디오 북과 서점에서 1위를 석권했던 책이다.
7살부터 책을 집필했던 타고난 작가의 연륜이 담긴 책. 요즘 ‘죽음’과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책들이 많다. 죽음 이후의 삶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영역을 그의 방대한 분야의 지적 호기심과 지식으로 풀어낸 이야기.
망자들이 우리 곁에서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는 가정을 하며 죽은 사람과의 소통을 담아냈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죽음. 재미있는 추리소설로 읽기에도 손색이 없지만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나의 죽음'까지도 고찰하게 하는 소설이다. 독자로 가브리엘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1,2권 숨 가쁘게 책을 읽었다. 그러나 다 읽은 후에 느낌은 이 책이 추리소설보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던져주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죽음보다는 삶이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각 챕터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이야기를 접목시킨다. 책 속의 책이다. 두 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다. 이 책 또한 매우 흥미로워서 이야기마다 검색 창에 검색어를 넣어 사실을 확인하고 사건의 자세한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백과사전은 그가 평소에 죽음과 영혼에 대해 방대한 조사를 해 왔고 그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빨리 넘어가야 하는 추리소설에서 숨을 고르게도 해 주고 흥미를 더한다.
<누가 날 죽였지?>
프랑스의 추리 작가 가브리엘 웰즈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죽음에 관한 소설 출간을 앞둔 그는 꿈에서도 소설의 한 문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평소대로 작업실로 향하지만 갑자기 꽃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꽃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냄새를 맡을 수 없지만 후각을 상실한 것이겠지. 후각 문제로 병원부터 찾아서 순서를 기다리면서 여전히 소설의 문장을 고민한다. 그러다 좋아하는 배우 헤디 라마( Hedy Lamarr :헤트비히 에바 마리아 키슬러 ,미국 배우이자 발명가였고 그녀는 2차 세계 대전에 무선 조종 어뢰를 개발, 오늘날의 <라마 기술>은 휴대폰 통신과 GPS, 와이파이, 군 통신 등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를 연상시키는 뤼시 필리피니를 보게 된다. 그녀는 그가 가브리엘 웰즈라는 말에 관심을 갖는다. 그녀가 영매가 된 것은 그의 소설 <죽은자들> 때문이었다. 뤼시는 그가 죽었다는 말을 해 준다. 믿기지 않으면 7층에서 뛰어내려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에 정말 허공으로 몸을 날려본다. ‘내가 정말 죽었구나’ 그러나 평소 심장문제가 있긴 했어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 살해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나를 죽였을까?
그는 몇 초 만에 죽음의 일곱 단계를 겪는다. 충격, 부정, 분노, 타협, 슬픔, 체념, 수용. 각각의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욕이 후렴구처럼 따라붙는다
1권 26쪽
주위 사람을 용의선상에 떠올린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영매 뤼시를 만나게 되고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과 소통을 하게 된다. 뤼시는 환생을 권하지만 내 죽음의 원인을 모르고 환생할 수는 없다. 자신의 죽음을 조사해 달라고 제안을 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녀가 찾아야 할 남자를 찾아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모두가 용의자가 될 수 있다.
일단 헤어진 여자친구 사브리나. 그녀는 매혹적인 배우이자 뮤즈다. 재결합을 원하는 그녀를 거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살해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쌍둥이 형 토마
과학자인 토마가 나를 부러워하긴 했다. 서로 너무 잘 통했는데 최근에는 연락을 안 하고 살았지만 우린 늘 상호보완적인 관계였다. 설마 토마가 과학 실험을 위해서 나를 죽였을까? 죽은 자와의 대화를 하기 위해서?
그러면 출판사 알렉상드르인가? 내가 다른 곳에서 출판 제안을 받은 것을 두고 나를 살해했을까?
아니면 문학 평론가 장 무아지인가? 이 사람은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긴 하다. 내 작품을 쓰레기 취급하고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이니까.
그들을 모두 용의 선상에 두고 본 결과 용의자는 너무나 황당한 곳에서 나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범인이라니.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다. 소설 속 뤼시도 영매로 비물질 세계와 접속하며 살지만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또한 죽음이라는 말을 한다. 소설은 웰즈를 죽인 범인을 찾는 이야기와 뤼시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어 더 흥미를 더한다.
죽음이라는 주제였지만 오히려 ‘삶’을 바라보게 해 주는 베르베르의 철학적 고찰로
추리소설에 밑줄을 긋게 만드는 작가의 메시지는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억울해 하지 말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불현듯 이런 질문이 뇌리를 스친다.
<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지?>
마흔둘, 생의 마지막 챕터에 도달한 그는 인생 대차 대조표를 작성한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 여행을 더 많이 하지 못한 게 아쉽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늘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죽음이 닥치고 나니 알겠다. 중요한 일들을 계속 미루기만 하면서 살았다. 부모님께 더 잘하지 못한 게 아쉽다
1권 47페이지
소설 ‘죽음’은 우리의 ‘죽음’과 닮았다. 언젠가 그 끝이 있다. 한 페이지가 하루의 삶이고 페이지가 숨 가쁘게 넘어가듯 우리 삶이 그렇게 넘어간다.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베르베르는 소설 속에 소설가에 대한 철학을 담았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쓴 소설 때문에 죽게 된다. 그냥 재미로 쓴 가상의 소설이지만 그 소설을 읽고 누군가 그것을 재현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한 작가의 팬인 노파는 독살로 작가의 신작이 나오는 것을 막는다. 그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가브리엘의 전작 <바로 내가 살인자>다.
그 원고의 존재를 알려주길래 출간 전에 내가 미리 읽어봤지. 그런데 그 책에 자네가 아무 생각 없이 담은 아이디어들이 지나치게….. 전위적이더군. 그 소설은 연구소를 설립해서 세 동물의 유전자를 활용해 생명 연장에 성공하는 과학자의 이야기 아닌가 242쪽
그게 다 제 소설 탓이라고요?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가는 자네 생각 때문이지.. 243쪽
결론적으로, 저 때문에 인류의 평균 수명이 위험한 수준으로 연장될까 봐 죽이셨다는 거죠? 246쪽
1권 242~246쪽
요즘은 모두가 작가인 시대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모두 글을 쓴다. SNS를 통해 짧은 글을 쓰는 것에서 시작하여 예전과 달리 작품의 공모 없이도 쉽게 작가가 되는 시대다. 블로그를 하고 있고 검색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임자 없는 나의 글을 읽는다. 쉽게 쓴 글이 쉽게 읽힌다.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는 자유지만 책 속에 영매 뤼시가 묻는 ‘사회의 정의’에 대한 부분을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쉽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오직 이 공간에서만큼은 사건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창조해 낸다.
AI가 우리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는 미래의 한 시점에서 과연 인공지능 로봇이 책을 쓸 수 있을까 화두를 던진다. 지금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면 작가라는 직업도 사라지게 될 것인가? 이것은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기계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기계가 대체되지 못하는 영역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한다. 베르베르라면 AI보다 훨씬 더 상상력이 풍부하고 다양한 영역으로 축적된 지식으로 이 소설과 같은 글을 쓸 수 있겠지만 말이다.
죽음 그 이후의 삶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궁무진한 상상의 영역이다.
그래서 영혼의 무게를 잰다는 덩컨 맥두걸 박사 같은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을 다 동원해도 알 수 없는 그 세계. 그 또한 모두가 가는 길로 갔으니 그가 죽은 뒤 그의 영혼의 무게를 재보려고 시도한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도
가브리엘은 죽었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가장 슬픈 것이 ‘내가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구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바라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오늘 하면서 살라는 것. 그렇게 많은 책을 쓰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르베르도 죽었을 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슬퍼할까? 죽음을 생각했을 때 그것이 가장 서운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역시 타고난 작가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기사를 보고 경악한다. <얼치기 작가의 사망, 별 볼일 없는 작가의 죽음, 웰즈- 그저 그런 작가가 세상에 작별을 고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죽음 뒤의 문제까지도 관심을 갖는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을 것인가? 자신의 장례식에 온 수많은 용의자 선상에 있는 사람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웰즈를 보면서도 죽은 자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다. 정말 나를 위해 누가 울어줄 것인가.
*책 중에서
* 우리는 통증이 오거나 쾌감을 느끼는 순간에만 자신의 육체를 의식하게 된다.
1권의 31쪽
* 멈추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1권 172쪽
* 내 경험상 죽음에는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1권 174쪽
* 내 작품은 내 죽음을 초월해 살아남아야 한다. 형이 내 마지막 소설의 원고를 폐기한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누가 날 죽였는지 밝혀내야 한다.
1권 216쪽
*제가 인정하는 비평가는 단 하나뿐이에요. 바로 시간이죠. 작품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건 시간이에요. 고만고만한 작가들을 사라지게 하고 혁신적인 작가들만 영원히 살아남게 만드는 건 시간이라는 비평가가 지닌 힘이죠.
2권 31쪽
* 최근의 한 여론 조사를 보니 지구상에 사는 80억 명 중 60억 명이 죽은 자와 이야기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다더라. 50억 명이 테이블 터닝이나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어
2권 40쪽
*살아있는 몸으로 존재한다는 게, 손에 만져지는 물질로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지 그는 이제야 자각한다.
2권 112쪽
*결국 인간을 위한 정의는 지상에도 저승에도 존재하지 않는 거야.
2권 142쪽
*난 동의하지 않아 인간들의 정의가 실현되기 힘들다면 <저승의 법정>이라도 세워 떠돌이 영혼 판사들이 구천에서 심판을 내리게 해야지.
2권 143쪽
*살아 있다는 게 행운임을 깨닫는 건….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지.
2권 151쪽
*우리는 다 같은 존재들일세, 이야기꾼들이지. 나쁜 문학과 좋은 문학이란 구분은 애당초 없네. 그저 상상력의 문학에는 문체와 심리 묘사가, 문체를 중시하는 문학에는 상상력과 환상이 필요한 것뿐일세. 내용과 형식은 상반되는 게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이니까.(....) 문학을 권력의 도구로 여기는 건 잘못된 생각일세. 문학은 교육과 성찰과 오락의 도구지. 작가인 자네들이 할 일은 의식의 고양이야…(.....) 나는 모든 문학이 예외 없이 존중받고 수호돼야 한다고 믿게 됐네. 다양성이 곧 우리의 힘이야. 특정 문학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짓일세. 나쁜 장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책장을 넘기고 싶지 않게 만드는 나쁜 작가가 있을 뿐이지.
2권 217쪽
* 이해는 각자의 몫이라는 게 제 철학이에요. p252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내가 방금 생각해 낸 건데, 이런 첫머리는 어떻겠나. 주인공이 말하는 거야. 지난 삶으로부터 나는 무엇을 배웠나? p254
*당신은 뭘 배웠는데요?
가브리엘이 회상에 잠겨 읊조리듯 말한다.
첫째, 인간의 삶은 짧기 때문에 매 순간을 자신에게 이롭게 쓸 필요가 있다.
둘째,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남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며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가 지는 것이다.
셋째,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도리어 우리를 완성시킨다. 실패할 때마다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넷째,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대신 사랑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다섯째, 만물은 변화하고 움직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억지로 잡아 두거나 움직임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여섯째,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하다. 비교하지 말고 오직 이 삶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2권 263쪽
*<나는 왜 죽었지?>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이고 신비로운 질문이 그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왜 태어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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