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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빌 게이츠 추천도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by 북앤라떼 2020. 11. 12.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오랑주 뒤 리브르상, 웰컴 북 문학상 등 전 세계 11개 문학상 수상작

*2017년 빌 게이츠 추천 <이번 여름에 꼭 읽어야 하는 책>

여러 곳에서 뽑은 최고의 소설로 극찬 받은 책을 열었다.

체호프의 희곡 <플라토노프>에서 빌려 온 제목의 프랑스 소설로 한 사람의 죽음으로 온 ‘장기이식’을 둘러싼 생과 죽음, 급박하게 돌아가는 24시간의 치열한 기록이다.

그러니까 그날 밤, 소형 트럭 한 대가 인적 없는 주차장에 멈춰 선다. 비스듬히 서서 꼼짝 않는다. 앞 좌석 문들이 열렸다 꽝 닫히는 동안, 측면 문이 미끄러지듯 열린다. 세 개의 실루엣이 솟아오른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저자마일리스 드 케랑갈출판열린책들발매2017.06.30.

 

 

소설은 시몽 랭브르라는 19살 청년이 두 친구와 새벽 서핑을 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1년에 두세 번 만날까 말까 한 중간 조수( 규칙적으로 높은 파도가 밀려오고 바람은 잔잔하고 서핑 포인트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는)의 서핑을 위해 저마다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때가 됐다. 무정형이 형체를 드러내는 동터 오는 시간, ‘레츠 고!’ 단호하게 허공을 향해 내뻗는 팔이 서핑의 시작을 알린다. (....) 그는 소리를 지르며 첫 번째 라이딩을 하면서 잠깐 동안 행복을 절정(그건 수평적 어지러움이다. 그는 세계와 맞닿고 마치 그로부터 생겨난 듯 그 흐름에 섞어 든다)에 닿는다. 공간이 그를 덮치고, 그를 풀어 주는 만큼 그를 짓누르고 그의 근육질 섬유와 기관지를 포화 상태로 만들고 그의 피에 산소를 공급한다 21쪽

 

얼음처럼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서핑을 마친 뒤 미니 트럭에 탄 그들은 히터를 틀고 몸을 녹이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몸이 노곤해지려는 상태에서 과속으로 도로가 구부러지는 부분에서 사고가 발생하였다. 트럭은 오래된 것으로 에어백이 장착되어 있지 않았고 좌석 중앙에서 안전벨트를 맬 수 없었던 시몽은 사고 충돌로 앞으로 튕겨 나가며 머리를 전면 유리창에 부딪혔다. 찌그러진 차체 속에서 구조하는데 20분이 소요되었다. 의료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로 결국 뇌사 판정을 받는다.

병원에서 소생 의학과는 갈림길에 선 생명, 절망적인 코마, 예고된 죽음들을 맞아들이며 그처럼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에 걸려있는 육신들을 수용하는 별도의 공간이다. 피에르 레볼은 소생 의학과에서 일한다. 시몽이 실려온다는 연락을 받고 기다린 레볼은 다가오는 죽음을 본다. 그럴수록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만큼이나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도 급박한 상태다. 온몸이 깨끗하고 뇌사가 되는 경우는 장기 이식 센터에서 본다면 최고의 상태다. 시몽의 어머니가 병원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어떻게 장기 기증을 설득할지 구상한다. 시나리오를 짜 놔야 한다.

시몽이 입은 손상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사고를 믿을 수 없는 부모에게 장기 기증은 쉬운 것이 아니다. 심장이 뛰고 있는데 이렇게 아들이 눈만 다시 뜨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온몸을 다 내어주지? 그는 급하게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토마 레미주에게 연락을 한다.

소생 의학과의 환자 한 명이 뇌사 상태입니다

작가의 손길은 세심하게 죽음을 둘러싼 부모의 감정을 다루면서도 그곳에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감정의 묘사를 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적정 거리를 유지해 둔다.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와 수술 의사, 장기를 받게 될 수혜자들, 시몽의 여자친구 쥘리에트, 시몽이 사랑하는 동생 루 그리고 장기를 운송하는 담당자들까지 예리한 눈으로 담아낸다. 때로는 대담하고 거칠게 그리고 의학적인 묘사는 매우 섬세하게 다룬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고와 죽음을 맞이할 때 느끼는 감정은 놀람, 슬픔 그리고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 시몽을 바다로 놓아주는 마리안을 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엄마 마리안은 마지막 결정을 하기 전 소생 의학과에 누워있는 시몽을 본다. 아직도 숨을 쉬고 심장이 뛴다. 그 소리가 들린다.

코마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나? 심장이 뛰는데.. 그 아이를 정말 내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을까?를 묻게 된다. 마리안도 똑같이 마지막 절규하듯 매달린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 은 시몽은 의식, 감각, 운동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호흡과 혈액 순환조차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 듣는 사람은 힘들겠지만 레볼은 담담히 시몽이 죽었다고 말한다.

 

시몽의 살이 아직도 분홍빛이고 말랑거리는데 아이의 목덜미는 싱싱한 푸른 물냉이 사이에 잠겨 있고 길게 누워 있는 아이의 두 발은 글라디올러스 꽃들에 파묻혀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그 시몽의 죽음을 생각인들 해볼 수 있겠는가? 레볼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시체의 모습을 긁어모아 본다 97쪽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뇌사 상태의 육체는 급격히 나빠지기 때문에 한 시가 급하다.

두 분을 위해서 두 분이 무엇을 할까를 생각해 보는 게 아니라 아드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를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죠 117쪽

 

마리안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아들에게 진작에 서핑을 말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한다. 그러나 그 인과론의 밧줄 끝에는 남편 숀이 있다. 시몽은 파도가 친다는 예고만 있으면 모든 것을 팽개치고 어디든 찾아 나섰다. 그런 아들을 만류하지 못했다. 숀을 사랑해서 숀과 아들의 그런 강렬한 삶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들의 장기 기증에 사인하고 마리안은 부탁한다. 심장을 정지시킬 때 말해달라고. 우리가 함께 한다고. 우리가 모두 그 애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MP3 플레이어를 내밀며 7번 트랙을 이어폰으로 들려주라고 부탁한다. 시몽이 가장 좋아하는 바다의 파도 소리.

집에 돌아온 마리안은 지금이라면 열쇠를 달그락 거리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야 할 시몽을 그리워한다. 시몽이 커버를 씌워 부스럭거리는 서프보드를 겨드랑이에 끼고 젖은 머리로 녹초가 돼서 돌아와야 하는데..

마리안이 발코니에 서 있다. 추위에 언 손가락이 철제 난간에 붙어버린 것 같다. 이 높은 지점에서 그녀가 도시와 강 하구와 바다를 내려다본다. 오렌지색 전구에 불을 밝힌 둥근 모양의 가로등들이 대각선 도로와 항구, 연안 지대를 표시해 주고 있다. 하늘에 청회색을 띤 뿌연 빛 무리들을 만들어 내는 차가운 불빛, 커다란 방파제 끝에서는 등불이 항구의 입구를 알려주고 있는데 해안선 너머 저 먼 곳은 이날 저녁엔 온통 검다. 정박 중인 배 한 척 없고 불빛의 반짝임도 없이 그저 완만하게 철썩이는 덩어리, 암흑, 시몽의 심장이 모르는 사람의 육체 안에서 뛰기 시작하면 쥘리에트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심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 모든 것들, 이 세상에서 첫날을 맞은 뒤로 서서히 켜를 지었을 감정들, 혹은 흥분이 솟구치거나 분노가 폭발하여 여기저기로 튀었을 감정들, 우정, 그리고 미움과 원한, 격정, 진중하고 다감한 성향은 어떻게 되는 걸까? 파도가 다가올 때면 그의 심장을 세차게 파고들던 그 짜릿함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충만한, 가득한 터질듯한 심장은 그 풀 하트는 어떻게 되는 걸까? 191쪽

‘장기 이식’이라는 것을 둘러싼 모두의 다른 상황과 생각들을 다각도로 접해보는 것은 이번 소설이 처음이다. 수혜자가 있다면 기부자가 있는 것이고 죽음 후의 이식만을 생각해 보았는데 시몽과 같은 상태의 기부는 나에게도 공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 공포는 이식받는 사람에게도 있을 것이다. 수술과 거부 반응이 올 수도 있고 누군가의 몸의 일부가 내 몸에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공포도 있을 수 있다. 유일한 희망은 의미 있는 죽음에 대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고 갈 수 있다면.. 그래도 아까운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시몽의 모든 것은 기증할지라도 눈만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마리안을 보면서 정말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라고 했는데 자녀의 몸에 매스를 대는 것은 부모로서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우리의 육체는 결국 흙으로 가는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장기 기증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시몽의 심장을 받은 중년의 클레르가 그 심장을 감당할 수 있을지.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제목을 다시 곱씹어본다.

비록 시몽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시몽은 수선에 필요한 장기들을 공급해 주었다. 수선이 필요한 사람들이 기증자와 코디네이터를 통해 의사의 장인 솜씨로 수선되는 기적같은 이야기. 장기기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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