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John Edward Williams)
1922년 8월 29일, 텍사스 주 클락스빌에서 태어난 윌리엄스는 미주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54년 석사학위를 받았던 덴버 대학교로 돌아와 30년 동안 문학과 문예 창작을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연기와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고 사우스웨스트의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공군 소속으로 중국, 버마, 인도에서 복무했다.
소설 <오직 밤뿐인>,<도살자의 건널목> 그리고 세 번째 소설이 미주리 대학교 영문학 교수의 삶을 다룬 <스토너>다, 이후<아우구스투스>로 전미도서 상을 수상하고 두 편의 시집을 남겼다. 윌리엄스는 1985년 덴버 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1994년 아칸소 페이예트빌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집필 중이던 소설은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스토너> 첫 페이지
<스토너>는 윌리엄 스토너라는 한 인물의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스토너는 1891년 미주리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도왔고 가난한 형편이지만 부모는 스토너가 열아홉 살이 되던 해 그가 농사법을 배울 수 있도록 미주리 농과대학에 입학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2학기 때부터 농과대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고 철학과 고대 역사, 영문학 강의를 들었다.
그는 대학 도서관의 서가들 속에서 수천 권의 책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가죽, 천, 종이로 된 책들의 퀴퀴한 냄새를 들이마시기도 했다. 마치 이국적인 향냄새를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책을 한 권 꺼내서 커다란 손에 잠시 들고 있었다. 아직 낯선 책등과 표지의 느낌, 그의 손길에 전혀 반항하지 않는 종이의 느낌에 손이 찌릿찌릿했다. 그러고는 책을 뒤적이며 여기저기에 한 문단씩 읽어보았다.
25
스토너는 1년 만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혔고 수면 부족과 과로로 눈이 충혈되고 따끔거릴 때가 많을 정도로 학문에 깊이 빠져서 4학년이 되었을 땐 강의를 하며 박사과정 공부를 할 수 있는 우수한 학생이 되어 있었다. 스토너는 문학사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강사로 강의를 하며 박사 공부를 계속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많은 학생들이 전쟁에 참전했다. 박사과정 중에 어울리던 두 친구가 있었다. 스토너는 징병유예를 신청했고 친구 매스터스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또 한 친구 고든 핀치는 훈련소에서 배치되어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다.
스토너는 지금 자신의 길로 이끌어준 강의에 귀를 기울이던 그 강의실에서 예전에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며 영문학개론 강의를 하고 있다. 어느날 전쟁터에서 돌아온 교수들과 직원들을 위한 리셉션 자리가 학장의 저택에서 있었다. 스토너는 그곳에서 학장의 조카뻘인 이디스 엘레인 보스트윅을 만나게 된다.스무살인 그녀는 세인트루이스 은행장의 딸로 사립대 2년을 마친 상태였다. 이디스가 그에게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나 스토너의 구애로 둘은 결혼한다. 그러나 신혼여행부터 그들의 불행은 시작된다. 이디스는 스토너가 손을 대는 것을 노골적으로 피했으며 억지로 허락할 때 조차 스토너가 그녀를 범하는 기분을 느끼도록 했다. 스토너 눈에 그녀는 불행해 보였다. 결혼 3년 후 딸 그레이스가 태어났으나 아이를 돌보는 일부터 집안일까지 모두 스토너가 도맡아서 해야했다.
아이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의 돌봄으로 아버지의 사랑만을 느끼며 자랐다. 이디스가 부친상으로 집을 비웠을 때 딸과 스토너는 몇 년 만에 최고로 행복한 기분을 누렸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오래 누리지 못했다. 아내는 이제 부녀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딸에게 엄격한 교육을 강요했으며 딸은 엄마가 원하는대로 따랐다. 집안에서 스토너의 유일한 공간이었던 서재조차 아내는 자신의 마음대로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스토너는 더 많은 시간을 대학에서 보내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에 답답한 마음이 있었다. 왜 이디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이유 없이 경멸을 당하면서도 그걸 다 묵묵히 참아낼까.
학교에서 워터 군 문제로 로맥스 교수와의 갈등을 지켜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생 조차도 그에게 조소를 하는데도 그 부당함을 당하고 있는 스토너를 보면 무력감을 느꼈다.
스토너는 평생 교수로 강단에 섰지만 자신의 시간표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힘도 빽도 없는 노장 교수일 뿐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며 사람들은 적당히 타협하고 수긍하고 맞추며 살아가지만 스토너에겐 그런 기술조차 없었으며 그런 길을 추구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어떤 부당한 대우가 뒤따르더라도 교육자의 자질이 없는 학생에게 절대로 학위를 허락할 수 없다는 원칙은 고수하고자 했다.그가 큰 소리를 낼 때는 그때뿐이었다. 그는 진정한 교육자였다. 동료들도 이따금씩 그를 ‘헌신적인 교육자’로 부르긴 했지만 그 안에는 그가 지나친 헌신으로 강의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눈이 멀었다는 경멸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스토너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와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스토너는 외부에서 보는것과 달리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의식하고 있었다.
마흔세 살이 되던 해 스토너는 학생 캐서린 드리스콜이 자신의 논문을 봐 달라는 요청에 응하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연애를 했다.
그는 캐서린 드리스콜에게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을 서서히 깨달았다. 어떤 책이나 논문 제목이 떠오르면 그것을 적어두고는 일부러 제시 홀 복도에서 그녀를 만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그래야 오후에 그녀의 집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며 그 제목을 알려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함께 보내는 오후에 캐서린 드리스콜은 예의 바르고, 상냥하고, 말수가 적었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 시간과 관심을 할애해 주는 것에 그녀는 조용히 감사를 표했으며 ... 그녀는 그를 존경했다.
266쪽
이디스와는 너무 다른 관계였다.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두 사람은 모두 수줍어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물러나기도 했다.
(...)
스토너는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난 오후에 그녀의 집으로 왔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또 사랑을 나눴다. 아무리 놀아도 지치지 않는 아이들 같았다. 그렇게 봄날이 흘러갔고, 두 사람은 여름을 고대했다.
273쪽
그해 여름 두 사람의 시간이 온통 정사와 이야기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고도 함께 있는 법을 터득했으며, 편안히 쉬는 데에 익숙해졌다. 스토너는 캐서린의 집에 책들을 가져다 놓았다. 나중에는 책꽂이를 새로 들여놓아야 할 정도였다. 그녀와 함께 나날을 보내면서 스토너는 거의 팽개치다시피 했던 공부를 자신도 모르게 다시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캐서린도 자신의 논문이 될 책을 계속 썼다. ... 두 사람의 사랑과 공부가 마치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았다.
279쪽
스토너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해도 교수와 학생의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순 없었다. 둘 중 한명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둘은 서로 느끼고 있었고 캐서린이 떠났다. 이후 스토너는 단 한 번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대학 출판부 광고 전단에서 캐서린의 책 출판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미혼으로 교편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최대한 빨리 그 책을 구해 보았다. 그 책을 손에 쥐었을 때 손가락들이 생명을 얻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너무 떨려서 책을 펼치기도 힘들었다. 맨 앞의 헌사가 보였다. “W.S.에게”
아~이 부분에 전율이 느껴졌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둘은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의 사랑과 공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성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에서는 손가락질할 관계이자 불륜이었지만 서로의 인생을 망가트리는 사랑이 아니었다. 처음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스토너의 인생에 단 한번 찾아온 사랑이었다. 그마저 없다면 인생이 너무 가엾지 않을까.
엄마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없던 딸 그레이스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의 임신을 빌미로 결혼을 통해 그 집을 벗어나게 된다. 그레이스의 목적은 자신을 가둔 감옥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레이스를 책임져준 남자는 스스로 전쟁에 자원입대해서 전사한다. 그레이스는 엄마로부터 도망쳤고 남자는 자신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해 스스로를 전쟁터로 몰았다. 이디스 한 사람의 불행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았다. 딸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조차 아내의 간섭 때문에 표현할 수 없던 스토너에게 딸의 인생이 얼마나 안타깝게 여겨졌을까. 스토너는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대서 최고의 행복을 얻었다. 언젠가 가르칠 수 없는 날이 올 것을 아는 그는 녹초가 되도록 온몸을 바쳐 교수직을 감당했다.
윌리엄스토너는 학교에서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다. 명예퇴임을 권고받지만 경멸과 비굴함 따위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마지막까지 종신교수직을 마치겠다고 고집한다. 그러다 결국 그는 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수술과 입원 전 퇴직 절차를 밟으며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남은 논문을 봐 주는 일에 집중한다.
병실에서 읽을 수는 없지만 책 몇 권을 옆에 두고 남은 시간을 돌아보는 스토너
그는 기억조차 뚜렷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종종 전사한 친구 매스터스를 생각한다.
전쟁터 대신 학교에 남았으니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에게 대한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았을 수 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는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에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장
400장 가까이 되는 이 책을 숨죽여 단숨에 읽었다.
한두해 전에 스토너 열풍이 있었다.
블로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 리뷰를 했다.
그때 이 책을 사 두었으므로 타인의 리뷰 읽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책장에 꽂아두고
나는 스토너를 잊어버렸다.
새해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스토너와 마주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이 책을 책장에 가두었던 것이 후회될 정도로
이 작품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지금이 이 책과의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을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스토너는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기준에 어느것 하나 ‘성공’에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눈에 띄지않을 뿐이다. 스토너는 평생 누구의 원망이나 지탄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인정을 받거나 존중받지 못했다.
평생 공부를 하며 죽을 때까지 교육자의 길을 걸어갔지만 출세하지 못했고 명예롭게 퇴직하지도 못했다. 처음 사랑이라 느낀 사람과 결혼했으나 결혼하자마자 그 결혼이 행복하지 못할 것을 느꼈다. 성실한 가장이었지만 아내가 원하는 남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토너의 인생은 큰 감동을 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비록 잠시 캐서린을 사랑했지만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묵묵히 가정과 아내를 지켰다.
스토너를 보면서 공부가 무엇인지 대학이 어떤 곳인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고독하게 보냈고 친구도 별로 없었지만 나에게 스토너는 누구보다 따뜻한 교육자로 느껴진다.
아 ~2021년 이 책을 만나서 나는 행복하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책과 함께 호흡했던 스토너의 책 사랑의 숨결이 내게도 불어오기를 바란다.
'북 카페 > 한 권의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0) | 2021.09.01 |
---|---|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0) | 2021.08.31 |
인간 실격, (2) | 2021.08.21 |
"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0) | 2021.08.21 |
Gréoire Delacourt "행복만을 보았다" (0) | 2021.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