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이번 주에 지인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고 없이도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약간의 충격이었다. 우리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시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60대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낯설지만 어느 순간에 그런 시간이 준비 없이 닥칠지 모를 일이다.
죽음의 시간은 자기 선택이 아닐지라도 최대한 자신이 그 모습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동의가 된다. 그것도 어찌 보면 삶의 열정의 한 단면일 수 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그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니 신기하다.
이 책 역시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 지만 내용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더 가깝다. 그는 죽기 전의 삶을 생각하고 마지막 죽음을 맞이할 때를 계획한다. 병상에 누워서 작별하거나 영안실의 네모 틀에 갇혀 절을 받고 싶지 않다. 삶의 열정이 있는 만큼 죽음 또한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 흥겨운 파티 면 더 좋겠다. 애통함보다는 유쾌한 기억으로 남고 싶다. 연암 박지원은 술상을 차려 친구들의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죽음을 맞이했다는데 나도 그런 파티를 열어야지. 인생의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뜻을 함께하고 사랑과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 시련과 고통을 함께 견뎌냈던 사람들을 초대하련다. 시신은 기증하고 화장하고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지막까지 생각해 두었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은 준비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긍정은 죽음까지도 긍정할 수 있다.
타고난 먹물 유시민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그에게 역사 교사였던 아버지는 영문과를 권하셨다. 그 이유가 서양 사람들은 오만해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지 않는다고 그에게 동서양 철학을 통합하는 학자의 길을 권하셨다. 하지만 그는 법학과가 포함되어 있는 사회계열을 택했다. 그 이후 마흔까지 ‘닥치는 대로’ 살았다고 한다. 목표도 방향도 없었지만 눈앞에 닥쳐온 일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다. 금서로 지정된 책을 읽고 구로동 야학 교사를 하고 반정부 시위를 하다가 징역을 살았다. 그 청춘의 때에 설렘과 환희 같은 건 없었다.
5분짜리 교내 시위를 주동하면 3년이 기본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판검사와 법정은 정의를 내리는 곳이 아니었기에 그는 법학과 대신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닥치는 대로 살았으니 후회도 없고 그 인생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이라고 이야기한다. 세상이 그랬다고 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은 곧 죽음이다. 인간은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한 걸음씩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삶이 허무한 것이 아니라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가 있으려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황홀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p37
유시민 작가는 많은 강연을 요청받는다. 때때로 청년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강연을 요청받는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자기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위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p45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는 묻는다. 그것은 그냥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물음이다. 물론 그도 죽고 싶었던 때는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인생의 혹한기는 1980년 스물두 살 군대에서 맞은 겨울이었다. 해발 1000미터 산꼭대기 막사에서 지낼 때 그는 낭떠러지를 지나다닐 때 종종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1981년 새해 첫날은 서울 서빙고동에 있던 국군 보안사 대공분실에서 맞았다. 낮에 철책선 초소에서 대공 근무를 서다가 영문도 모른 채 그곳으로 끌려가서 지하실에서 맞고 밟히면서 죽어버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때 내 손등은 눈밭 얼차려에 받다가 난 상처가 동상으로 번져 진물이 흘렀다. 발도 동상과 무좀으로 엉망이었고 몸에는 옴이 잔뜩 올라 있었다. p66
학살을 저지른 자들의 훈계를 들으면서 구차하게 살고 있는 자신에게 왜 사냐고 자문했다. 그때 그를 붙잡았던 것은 희망이나 용기가 아니라 억울함과 분노, 복수심이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삶의 의미만큼이나 죽음의 의미도 중요하다 생각했다.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하던 마흔 살 어느 아침 그는 삶과 죽음을 생각했다. 마흔까지는 닥치는 대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울로 가는 편도 탑승권을 끊고 그렇게 독일을 떠나왔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확실히 ‘먹물’이다.
예전에 합수부 조사실에선 읽을 것 자체를 안 주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범죄자 교화를 위해 준 것이 성경이었다. 그는 그것을 몇 번이나 읽었다. 무신론자인 그가 성경을 몇 번이나 읽는 것을 보면 그에겐 정말 읽을 것이 없는 것이 가장 큰 고문이다.
생업으로서의 글쓰기를 하지만 그는 글쓰기 자체가 즐겁다고 한다.
재능도 있지만 글을 잘 쓰기 위해 그가 했던 노력들을 보면 재능 보다 근성에 감탄한다. 어휘를 늘리기 위해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다섯 번 넘게 읽고 태백산맥과 장길산도 그렇게 읽었다. 문학 작품을 반복해서 읽고 베껴 쓰기를 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통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폐 끼치지 말고 살자’는 그의 좌우명에서 그의 삶의 자세가 보인다.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기본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노력이다.
마틴셀리그만은 삶의 위대한 영역을 사랑, 일, 놀이라고 했는데 유작가는 거기에 연대를 포함한다.
그가 가장 즐기는 놀이는 낚시와 당구다. 그런데 그런 놀이를 하는 중에 불편한 마음이 있다.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것은 자격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내가 놀 자격이 있는가? 또 하나는 도덕적 부담감이다. 사회를 둘러보면 밤낮없이 일만 해도 사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나도 종종 그런 생각을 했기에 그 불편한 마음을 공감하게 된다. 난 너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생각.
사랑을 이야기하며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아이를 잘 키우면 두 가지를 기억하라. 따지고 드는 아이를 존중하라.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발달하는 아이일수록 지적 재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는 제대로 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나는 다 마음에 걸린다. 끊임없이 '왜'라고 묻고 따지고 드는 아이는 부모라는 권위로 억압하려고 했고 제대로 된 언어보다는 간단한 아이식 언어를 쓰려고 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자녀를 사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이들 스스로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설계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선택하든 믿고 격려하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 도와주는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최대한 표현함으로써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을 느끼게 된다. p185
노년기의 롤 모델은 2010년 작고하신 리영희 선생,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다. 리영희 선생의 인격적 품격 있는 노년을 닮고 싶고 버나드 쇼처럼 노년에도 글을 쓰고 싶다. 정치적으로도 품위 있게 늙고 싶다고. 젊을 때의 롤 모델을 많이 생각하지만 노년기의 롤 모델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 살벌한 것은 신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옳다고 믿는 삶의 원칙이 있다. 신념은 일, 사랑, 놀이, 연대를 만든다.
지난 '청춘의 독서' 리뷰에서 아버지가 그의 독서 멘토였고 역사 스승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
칸트
훌륭한 인생, 행복한 삶은 죽음 너머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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