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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조정래의 사진 여행 : 길

by 북앤라떼 2020. 8. 17.

조정래 사진여행 : 길

한민국의 시대와 역사를 가로지르는 20세기 한국 현대사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쓰신 조정래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사진 여행길. 책 한 권을 통해서 조정래 작가 ‘문학 인생 50년’ 그 걸어오신 길을 함께 걸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특별히 오랜 사진이 주는 역사의 생생함이 작가의 글과 함께 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사진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역사의 기록성과 증언력, 삶의 추억과 냄새까지 되살려내는 재생력,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게 재창조하는 예술성이 그것이다.

작가의 말속에서

 

길 저자조정래출판해냄출판사발매2015.08.05.

 

 

1943년 전라남도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나 광주 벌교 북 국민학교, 광주 서 중학교, 서울 보성 고등학교, 동국대 국문과까지 사진과 함께 하는 성장 스토리.

대학교 재학 시절 당시 동문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던 연인 김초혜를 소개하며 지금의 아내라고 말하지 않고 김초혜라고 부르는 말이 참 듣기 좋았다. 연인에게 선물할 돈이 없던 시절 김초혜를 위해 링컨 펜화를 그려 선물하며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고 둘은 문학인생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하며 1967년 1월 29일 눈이 내리던 그날 조선호텔에서 서정주 시인의 주례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원고지 위의 인생

어느 토요일 저녁 7시쯤부터 책상에 앉았다. 마음먹은 대로 다 쓰고 나서 고개를 드니 창밖이 훤했다. 시간이 어떻게 된 것인지 영문을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리고서야 밤을 꼬박 새운 것을 알았다. 잠 한숨 안 자고 130매를 써댄 것이었다. 그것은 내 작가 생애에 최초이며 최후의 기록이 되었다.

문학을 할 때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문학 그것 해 봤자 아버지처럼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었다. 평생 가난에 쪼들려 삶 자체가 지긋지긋해진 모정의 당연한 반대라 생각했다. 나는 문학은 하되 세끼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는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여 맞벌이 부부로 나선 것이 부부가 함께 동구여상에서 부부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친 일이었다. 1970년 그들은 학교에서도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해’라고 고백한다. 그 이후 잡지사 출판사까지 차려 사장 노릇을 하며 고달픈 삶을 자청했다. 밥 걱정 안 해도 될 때까지 병행하며 80년대부터는 허기진 배를 채우듯 글쓰기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아들 도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태백산맥을 시작했고 아리랑은 연달아 쓰기 시작하면서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집필에만 몰두하셔서 친구들 한번 데려와서 놀지 못했던 아들의 희생. 작품이 잉태된다는 말이 맞다 생각하게 된다.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온 가족이 함께 잉태와 해산의 고통을 겪는다.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느끼게 된다. 하나는 타고난 작가셨고 쓰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글쟁이셨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고통 가운데 쓰셔야 하는가?’

그 질문에 그는 작품으로 대답했고 우리는 작품 속에서 그의 답을 들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여행을 참 많이 다니셨다는 것. 프랑스, 이탈리아, 요르단, 인도를 비롯하여 작품의 배경이 되는 중국, 베트남, 미국 곳곳을 여행하시며 작품의 장소들을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하고 재생하고 창조했다.

그 여행길에서 만난 문인 선배들..

사회성과 예술성을 가장 모범적으로 조화시켰다고 꼽는 빅토르 위고의 동상 앞에서 그리고 세계적인 풍문을 뿌리고 작품으로 값을 치른 시몬 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묘지 앞에서. 인도의 비폭력 저항의 창시했던 간디의 묘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돌아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했다.

태백산맥과 한강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책 중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어떻게 이 책을 만났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책을 찾아보니 태백산맥 1권 첫 장에 ‘빌려읽었는데 이 책은 꼭 사야 한다는 생각을 말하니 윤희 언니가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며 사 주었다’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책을 누구에게 빌려 읽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그 이후 윤희 언니가 나의 책을 빌려 읽었는데 5권을 가져갔는데 영영 돌려주지 않아서 1부터 10까지 중 유일하게 5가 맥을 끊고 있다는 점이다. 그때 나는 그 책을 그저 재미로 읽었다. 그땐 무조건 한 권 보다 연작이 재밌었고 재미를 찾아서 책을 읽을 때였다. 지금은 그런 책을 한 권으로 만든다고 하던데 그땐 상. 하 이상으로 된 장편이 참 많았다.

#태백산맥

당시 민주화 투쟁의 열기 속에서 집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신부님과 수녀님 덕분에 태백산맥은 안양의 성 라자로 마을에서 씌었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인 벌교 전경 그리고 무당 소화의 집, 소화다리, 소설에서 염상진과 부하 하대치가 쌀가마를 쌓았던 홍교, 깡패 염상구가 다이빙을 했던 벌교 포구, 하대치와 안창민이 부하들을 이끌고 군 수송 열차를 습격하는 진트재 터널, 비밀 훈련장 율어, 소설 속 김범우의 집..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이 책을 옆에 끼고 그 벌교의 장소들을 둘러보며 다시 책을 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 투쟁지의 취재를 위해 백아산 지구와 무등산을 박현채 선생님의 안내로 직접 올랐다. 그분은 태백산맥의 ‘조원제’의 실제 모델로 직접 겪은 일을 들려주셔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되었다.

빨치산 토벌로 타 죽은 나무의 시체들을 찾아 몇 년간 지리산을 등반했던 사진들을 보면서 소설의 장면들이 겹쳐진다. 태백산맥은 6년의 세월이 걸려 마침내 완결되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끝없이 뻗어나간 산줄기들을 굽어보며 지리산은 장대하고 우람하고 숙연한 산이다. 그리고 지리산은 역사의 무덤이다. 인간의 삶은 갈등을 잉태하고 그 갈등은 역사를 탄생시키며 그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로 삼아 성장한다. 이 땅의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지리산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품어 보듬었고 끝내는 그들의 무덤 노릇까지 해 주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지리산의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지리산은 아흔아홉 골짜기를 열어 8만이 넘는 빨치산들을 받아들였고 끝내는 그들을 영원히 품에 잠들게 했다. 세계의 현대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죽음의 의미를 캐려고 나는 열 번이 넘게 그 고산준령을 오르내렸다. 나는 지리산의 적막 속에서 빨치산들의 열혈 투쟁을 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느끼고는 했었다. 세상을 향해 끝없이 몸부림치는 인간의 숭고함. 그 몸부림은 시대를 초월한 인류 역사의 불변의 과제였꼬 현실적으로 어리석은 소수 인간들의 희생 위에서 인류의 역사는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그 숭고한 정신은 인간 긍정의 모태고 소설의 영원한 테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대치와 그의 동료들이 어둠 저편으로 찾아가는 것도 사회주의를 넘어선 바로 그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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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두 번째 대하소설 아리랑을 쓰기 위해 그는 중국 만주 땅에 가야 했었는데 태백산맥으로 요주인물로 찍혀있던 그는 중국(공산국가)에 갈 수 없는 출국 금지령이 내려져 있었다. 이어령 장관이 보증을 하고서야 안기부의 특별 교육을 받고 중국을 밟을 수 있었으니 그 안기부 서슬 푸르던 시절의 권력을 다시 확인하는 대목이다.

명동촌, 청산리 골짜기 옆의 어랑촌 골짜기를 거닐며 어랑촌 전투를 지휘한 홍범도 장군의 이름이 교과서에 지워졌음을 한탄한다. 그가 아리랑에서 복원하려고 노력했던 이유기도 하다. 매일 중국 독주에 끓는 속을 해장하며 만주 몇 천리를 헤매고 다녔다.

 

<아리랑>에서 수국이가 쑥을 뜯으며 명동촌을 오갔던 버들 방천길을, 독립투사들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용정의 일본 영사관을 그는 외로이 거닐었다.

일본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춘은 그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해 주었고 하얼빈의 송화 강가.. 얼어붙은 이 강을 건너 러시아 땅으로 오갔던 독립투사 들을 역사 속에서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 일본, 말레이시아, 대만, 싱가포르, 태국.. 취재는 계속되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호남평야의 중심인 김제 만경평야. 일제는 1903년부터 이곳에서 침탈을 시작했고 이곳에서의 착취는 해방될 때까지 가장 극심했다. 그래서 소설 <아리랑>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다시 세 번째 대하소설 <한강>을 집필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베트남, 독일, 보스턴, 뉴욕, 파리,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어지는 취재 탐방이 계속되었다.

 

작년에 다녀온 전주의 꽃심, 최명희 문학관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어떤 타고난 재주로 글을 쓴다는 생각을 했던 나였는데 조정래 작가를 보면서 그 대하소설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게 되면 그 모든 것이 취재에서 온 성실함이었음을 알게 된다. 경험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취재를 통해 보고 듣고 곳곳의 풍물을 다 스케치하고 사진으로 찍으면서 그의 글을 통해 재현되었다. 잠을 포기하고 일상에서 누리는 것들을 다 포기하고 하루에 3-4잔의 커피를 마시며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아서 다리가 퉁퉁 부어있음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고 쓰는 힘의 원천은 역사에 대한 기록자의 의무였다고 생각한다. 그 역사 속에서 담고 싶은 것은 이념이 아닌 인간애였다.

조정래 문학관

 

민족 분단에서 한국전쟁으로 내몰린 혼란의 시대를 <태백산맥>으로

식민지 시대에서 민족 해방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를 <아리랑>으로

한국 사회의 산업화 과정과 민중의 성장의 시대를 <한강>이라는 대하소설로 재구성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편하게 글을 쓰고 작가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어찌 보면 기법을 배우고 싶었던 마음을 부끄럽게 해 주는 대작가를 만나서 글쓰기가 무엇이고 작가는 누구인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미루고 있는 그 대하소설을 다시 만나서 리뷰를 써야 할 텐데..

그 역사의 무대를 둘러보며 그 마음의 소원이 더 불을 지피는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작가의 연보만 봐도 참 부지런히 성실히 살았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 성실함, 열정을 감히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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