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bird, 영화 "완벽한 가족" 이야기
블랙버드"는 2014년 덴마크 영화 "고요한 마음"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크리스찬 토프의 각본, 로저미첼 감독의 미국 영화다
영화는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바닷가 아름다운 저택에서 아내 릴리와 남편 폴이 보통의 집처럼 아침을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폴은 자신의 뜰에서 먹을 과일들을 따고 아내 릴리는 혼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겹게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온다.
남편은 아내 곁에 있지만 아내의 성격상 남편의 도움은 원하지 않는 것을 아는 눈치다. 아침을 준비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릴리는 한쪽 팔을 든 채 춤을 춘다. 남편도 함께 춤을 춘다. 그때 가족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몸이 불편한 릴리(엄마)는 자신이 얼마 후면 몸이 더 불편해지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선고받았다.
그래서 스스로 안락사를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서 가족모임을 소집한다. 평범한 가정의 3대가 모이면 볼 수 있는 풍경이 일어난다. 두 딸 중에 첫째 딸 제니퍼는 불만 가득한 10대 아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 둘째 딸 애나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애나는 이런 자리에 가족들이 알지도 못하는 여자친구 크리스도 데리고 왔다. 그들의 모임에는 대학 때부터 릴리의 오랜 친구로 가족의 대소사마다 함께했던 리즈도 왔다. 릴리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아직 릴리와의 이별이 준비되지 않았다.
그래도 가족 모임은 그렇다.
함께 모여서 음식을 나누다 보면 옛이야기도 나오고 그렇게 음식과 추억들이 공유되면서 가족애가 살아난다.
크리스마스트리, 캐럴, 엄마의 마지막 선물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이어지지만 모두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엄마가 선택한 결정(존엄사)을 존중하자는 큰 딸 제니퍼와 그럴 수 없다는 둘째 딸 애나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풀리지 않고 있던 감정의 실타래들은 가족의 위기시에 등장하기 마련이다.
애나가 엄마와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삶이 힘들었다는 고백을 한다.
엄마는 딸들에게 늘 강해지라고 말했지만 애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약물에 자살시도까지 했던 상태인데 엄마의 안락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딸에게 너무 잔혹하다.
엄마와 딸이 서로를 안고 화해를 하는 시간 속에서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엄마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죽음과 함께 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다.
감독은 어떤 마지막 만찬 같은 무겁고 슬픈 느낌 대신에 의도적으로 가벼운 농담을 넣으며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가족으로 마무리하도록 인도한다. 릴리와 손자가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릴리도 이것이 마지막 크리스마스이자 마지막 장식임을 알고 있다. 사실 이때 난 릴리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동안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갑자기 엄마의 베프와 아빠가 키스를 하는 장면을 제니퍼가 보면서 불륜 관계를 넣어서 혼란을 주는데 엄마가 그들의 관계를 모르고 억울하게 죽음을 선택하게 할 수 없다는 딸의 마음과는 달리 이미 지나간 일들이 그녀의 결정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고 단호하게 죽음의 순간을 결정하도록 돕는다.
카메라는 종종 눈물을 흘리는 남편을 클로즈업 한다.
폴의 말대로 릴리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너무 강한 의지 때문에 스스로의 존엄사를 결정했고 그런 아내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결정을 존중하고 준비한다.
두 딸과 함께 엄마는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고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폴이 조용한 빈 집을 나서며 영화는 끝이 난다.
blackbird의 의미가 뭘까? 찾아보았다. “great mystery” 라는데 인생이 미스터리한 요소로 가득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 말을 찾아보니’ 찌르레기’ 라고 해석들을 많이 했는데 새에 있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이 부분은너무 억지로 해석하지 않는 게 좋겠다. 우리나라는 영화의 제목을 ‘완벽한 가족’으로 역설적으로 정했다. 가끔씩 영화의 원제와 한국 영화 제목들을 보면서 재밌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마도 알고 보면 완벽한 가족은 없다는 의미을 담은듯 하다.
엄마의 존재는 아빠와는 다르다. 딸들에게 엄마는 평생 친구기도 하고 가장 의지하고픈 존재다. 나에게도 여전히 엄마란 그런 존재인데.. 만약 이런 일이 있다면 나는 그 죽음을, 그 결정을 따를 수 있을까?
마음이 가벼운 영화는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우리에게 마지막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안락사'를 결정하는 순간들이 온다.
때로는 가족들이, 또 때로는 의료진들이.
그때마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무엇이 맞는 결정인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사람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영화의 홍보 문구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글귀를 마주했다.
영화를 다 본 뒤에 아름다운 죽음이 뭘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죽음까지도 통제하고 결정하려는 것을 나는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에서 릴리가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혼자서 갈아 입고 가족들 앞에 나타나서 함께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이 있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서도 화장을 하고 추해지고 싶지 않다는데 그런 마음을 이해 못하지 않는다.그러나 릴리가 결정한 삶을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해 버리면 릴리와 같이 점점 몸이 약해져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는 삶을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은 아름답지 않은 삶이 되어버리는 것같다라고 한다면 너무 비약인가?
약을 마시기 전 잠시 두려움을 느끼는 릴리를 본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리고 그녀의 유언대로 입을 벌리지 않고 가도록 딸들은 도왔다.
그녀의 마지막의 말 조차도 '나의 마지막 외모에 대한 염려'였다.
아름다운 죽음. 나에게는 그 마지막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아름다운 죽음이 우리의 육체(외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죽음은 내 생이 다하는 그날, 아무도 모르지만 예고 없이 가는 그날에 순응하는 죽음이다.
그것은 마지막의 죽는 모습 보다 남겨질 의미에 대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때로는 지루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것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을 함께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결정 앞에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간구하는 딸도, 남편도, 친구도, 그리고 아름다운 집도 유산도 모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는 병원에서 간단한 수술로 할머니가 생을 유지하신 뒤 요양원에서 보낸 5년의 시간의 의미를 종종 생각해 보았었다. 병원에서 그 수술을 결정하는 것에 가족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은 수술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의 시간을 고려하도록 배려한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가족은 망설임없이 할머니의 삶을 연장시켰고 이후 5년을 함께 했다.
할머니 개인을 생각하면 그 시간이 어떤 큰 의미가 있었을까? 불편함 몸으로 그것도 가족들과 떨어져서 요양시설에서 보내실 수 밖에 없는 상태였는데 말이다.
종종 할머니는 "왜 나를 안 데려가실까?" 하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으니 할머니의 진짜 마음까진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이 우리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모두 앉아서 그녀가 없는 자리를 생각하며 웃고 가끔은 눈물을 흘리며 추억을 이야기했다. 할머니의 몸은 릴리보다 불편했으나 가시는 날까지 웃으셨고 나는 그 마지막을 우리 아이들이 기억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안락사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개인의 존엄성이냐 아니면 죽음을 유도하는 남용이냐 사이에서 각 개인은 이것에 대한 자신만의 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안락사 전체에 대한 생각보다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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