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 카페/한 권의 책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by 북앤라떼 2020. 9. 7.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사회 내의 어느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모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준 5권의 책을 소개하며 성경과 함께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추천하였다. 1950-60년대 미국 정책을 이끌었던 브레인들은 니버를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라인홀드 니버의 저서는 정치학의 성서다” _지미 카터(전 미국 대통령)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_버락 오바마(전 미국 대통령)

“미국의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 _한스 모겐소(시카고대학교 교수)

“이 책은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낙관주의나 비관주의 없이 아주 용감하게 직면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고 있다” _코넬 웨스트(유니언 신학대학교수)

“기독교 정치사상의 고전” _랭든 B. 길키(시카고대학교 교수)

저자: 칼 폴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 1892~1971)

개신교 신학자이며 기독교 윤리학자. 에덴 신학교와 예일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디트로이트에서 13년 동안 목회활동을 했다 기독교 신앙을 현실적인 현대 정치와 외교에 접목시킨 기독교 현실주의이자로 유명하다.

1932년에 출간된 책이라 책에서 설명하는 자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여전히 현재에도 생각해야 하는 것들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읽으며 반박할 수도 있고 동의할 수도 있는데 그러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철학적 고찰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거의 한 세기 이전에 쓴 책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사회적 특징이 여전히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와 사회의 도덕적인 문제는 한 사람으로 피할 수 없는 이해관계이며 한 개인이 사회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타이틀이 매우 흥미롭다. 도덕적 인간들이 모이면 사회도 도덕적이 되어야 하지 않나? 이상하게도 도덕적인 인간들이 모여도 집단을 구성하면 이기주의가 되기 싶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가장 단순하게 표현해 본다면 이상하게도 우리는 혼자보다 여럿이 있으면 더 무식하고 용감해진다.

오늘날의 교육가들은 삶에 있어서 이성의 기능을 지나치게 신뢰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에게 완전한 교육과 순수한 종교가 완성되면 집단의 이기주의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집단적 행동에 있어서 비합리적 이기주의의 끈질김을 비추어 볼 때 사회적 갈등이 인간의 역사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1. 인간과 사회: 함께 살아가는 법

재화는 결코 모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존의 필요성을 넘어 욕구를 확대시키는 상상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인간 생활의 보존과 실현을 보장해 주는 자연적 혹은 문화적 산물들을 공정하게 분배해야 하는 문제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다.

함께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소유의 문제다. 그러나 인간이 누리는 것이 많아질수록 정의의 문제는 해결되기보다는 더 어렵게 되고 정치력, 군사력보다 경제력은 가장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자비심과 사화적 선의지는 결코 순수하거나 강력하지 않다.

2. 사회생활을 위한 개인의 합리적 원천들

종교적 이상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자애심을 증대시키고 인간의 이기주의를 억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의 지성이 성장하면 사회 불의가 제거될 것이라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불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동물은 배가 고프면 먹이를 잡아먹음으로써 잔인성을 멈추지만 인간의 탐욕은 결코 만족을 모른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정신과 충동의 결합물인 상상력에 의해 지배되는 존재다. 집단이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은 스스로를 이기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집단은 더욱 효율적이고 강력해지며 어떠한 사회적 제대로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의 지성의 발달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3. 사회생활을 위한 개인의 종교적 원천들

이성적 윤리가 정의를 목표로 하는 데 반해 종교적 윤리는 사랑을 그 이상으로 한다. 이성적 윤리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자신의 요구와 동등하게 보는데 반해 종교적 윤리 특히 기독교 윤리는 재거나 비교하지 않고 사랑으로 이웃의 요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국가적 민족적 계급적 차별을 초월한다. 종교적 선의지를 지닌 개인들로 이루어진 국가도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 종교적 이상주의도 합리적 이상주의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이고 야만적이며 반사회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그 때의 교회는 경제적 힘을 가진 세력들이 노예제도를 방해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현재 기독교도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격렬하게 맞서지 않는다. 이런 주의는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에서 나온 것이다.

종교인들은 때때로 더 비도덕적이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4. 여러 민족의 도덕성

중세 시대에는 교회가 국가의 권위를 능가했던 데 비해 오늘날에는 경제적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자본계급이 국가의 권위에 도전한다. 민족이란 영토에 바탕을 둔 결사체이므로 그 응집력의 원천은 민족 감정과 국가 권위다. 지금까지 어떤 국가도 자기의 이익과 무관한 이유로 조약을 맺은 적이 없다. 사회에 대한 비판이 결여되면 개인의 의지보다 사회의 의지는 훨씬 더 독선적이고 자기 민족적이고 이기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기 쉽다. 국가 공동체의 통일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폭력의 사용이 불가피하다. 국가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개인들이 헌신적으로 바치는 애국심을 사용한다. 순진한 애국자의 입장에서 국가는 하나밖에 없는 사회다. 애국적 이타주의에는 자기 관심이 투사되어 있고 경제적 이해관계 혹은 허영심의 산물이 되기도 한다. 세련되고 관대한 정신을 소유한 민족과 국가에서 나타나는 문화 제국주의는 기독교의 선교 사업도 대표적으로 해당된다. 이타적 정신과 이기심의 결합은 국가 이기주의에 힘을 주고 종교적 이상주의건 합리적 이상주의건 국가 이기주의를 견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특징은 위선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스파냐 전쟁이다.

사건의 진행은 인간 행위를 지배한다. 우리의 원래 의도는 아니지만 우리는 위대한 국가답게 전쟁이 가져다준 새로운 책임과 의무를 도외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발전과 번영은 애초부터 하느님께서 정해 놓았다

-루즈벨트 대통령

유럽 국가들이 제국의 노획물을 나누어 가진 조약의 대부분은 위선 교과서와 다름없다.

5. 특권계급의 윤리적 태도

특권계급이 비특권계급에 비해 더 위선적인 이유는 자신의 특권을 평등한 정의라는 합리적 이상에 의해 옹호하기 위해 특권이 전체의 선에 뭔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수한 역할에 대한 사회의 정당한 보답으로 특권을 누린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억압받는 계급들이 개발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차단해놓고 뻔뻔스럽게도 그들의 결함과 무능을 비난한다. 미국 남부의 백인들이 흑인들의 평등한 참정권을 반대했던 주된 이유는 그들의 문맹 때문이다. 하지만 남부의 어느 주에서도 흑인에게 백인과 동등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준 일이 없다. 특권계급은 피지배계급이 날 때부터 선천적인 결함이 있다는 위선을 부리며 자신을 방어하고 정당화한다. 지배계급은 권력을 장악하고 분배하거나 향유하며 뭔가 베풀면서 도덕적 만족감과 우월감을 유지한다.

노예 교육에 찬성하는 서인도 제도의 한 선교사는 그들이 교육을 받음으로써 인간의 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도 지배계급의 특권으로 이용된다.

영어 generous (관대한)는 라틴어 어근 generosus에서 온 것으로 이는 관용이 특유의 덕으로 간주되었음을 나타낸다. 부자인 귀족만이 가난한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예술과 문학은 수메르와 이집트의 한가한 사제 계층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특권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정치란 다수를 점하는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려는 투쟁이다. 헌법은 판사들에 의해 해석된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 기능은 본질상 정치적이므로, 수 세기 동안 그렇게 제거하려고 노력했던 그런 성질의 압력이 판사들에게 가해진다. ... 대법원은 언제나 공공연하게 당파성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애덤스 p200

인도에 있는 영국 정부는 그 의도에 있어서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순수한 것이며, 그 실천에 있어서는 가장 자애롭다

-존 스튜어트 밀

지배 국가의 교만과 오만이 내린 판단이다.

6.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윤리적 태도

제국주의는 모든 나라에 상품이 과잉되는 국제적인 공황을 초래한다. 분배의 불균형은 상품의 과잉되는 공황을 초래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이런 공황이 발생하면 실업자 계층에 속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소유 계급의 불평등, 경제적 궁핍, 입법의 독점 상태에서 혁명적 정서가 발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유란 그리스 공화국에서 노예 소유주들이 누렸던 자유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레닌

1차 세계대전 동안 레닌의 비타협적인 반애국주의는 러시아 무신계급의 가슴속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르크스의 정치적 희망은 이성적인 검증 범위를 넘어서 마치 종교적 영역과 더 가깝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갖는다. 얼마나 이상적인가! 독일 사회민주당 창립자인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현대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아들이자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의 딸이라고 했다. 자본주의 없이는 사회주의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방법이 과학적 진리의 범주보다는 종교적 과신의 범주에 있다는 것이 문제다.

7. 혁명을 통한 정의

대공황은 프롤레타리아 이외의 계급들도 위기의식을 느끼도록 했다. 중간층은 혁명을 수행하는 방법 즉 폭력 때문에 기피하고 자유를 신뢰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폭력을 통해 평등을 수립하면 그 평등은 확실히 유지되는가?

프롤레타리아는 개인적 도덕적 행위보다는 집단의 규범을 강하게 따르는 특징이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잔인성, 위선, 냉소주의, 감상주의는 결국 환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프롤레타리아 내부에는 분열을 초래하는 서열이 존재한다는 것은 더욱 복잡한 사항이다. 그리고 그들이 혁명에 의해 권력을 차지하기 전까지는 도덕적 이상주의가 윤리적 제재 역할을 하지만 혁명이 이뤄지면 권력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안전핀은 없어진다. 공산 관료들이 저지른 권력의 남용은 심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적대세력이 제거될 때까지 독재는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들은 오랫동안 독재권력을 유지해간다. 권력의 유혹에 굴복하는 야심은 사회주의자들의 아킬레스건이다.

8. 정치적 힘에 의한 정의

영국과 독일의 중간층만큼 지적으로 잘 훈련되고 높은 사회의식을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그런데 이 두 나라의 중간층은 사회 전체가 위기에 직면하게 되자 급진주의를 버리고 보수주의로 돌아섰다. 영국의 노동당이 쓰라린 참패를 맛본 1931년 총선이 그러했고, 독일에서는 파시즘적 정책을 통해서 중간층이 자신들을 표현했을 때 그러했다. 이 사례들은 중간층이 취하게 될 정치적 태도를 예측해 보게 한다.

농민들이 흔히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로 기울어지는 데는 중세적 전통과 지주에 대한 충성심의 잔재기도 하다. 그들은 정치적 보수주의로 기울던지 정치적 보수주의에 이용당한다.

합리적 사회주의나 진화론적 사회주의나 순수하게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은 불가능하다.

9. 정치에서 도덕적 가치의 보존

폭력이 설사 그 목적이 정의롭다고 해도 부정과 불의를 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국가 간의 전쟁은 사회적 불의가 심화된 나라들의 현실적 가상적 불만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사코-반제티사건(192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살인범 재판 사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이탈리아계 이민자를 체포하여 병역기피 경력이 있는 무정부주의 자라는 이유를 들어 사형을 집행한 뒤 실제 범인이 나타나 큰 오점으로 기록된 사건)

비폭력이라면 어떠한가?

비폭력은 비협력이다. 납세의 거부, 불매 운동, 파업 등 일상적인 사회 과정에 대한 참여 거부로 표출한다. 비폭력은 매우 수종적이고 소극적인 형태의 저항이지만 가져다주는 결과는 적극적이기도 하다. 영국 면화에 대한 간디의 불매운동은 랭커셔 방직공들의 생활을 궁핍화시켰다.

교육은 어떠한가?

우리는 교육이 강제적 요소를 담고 있으며 선전이나 선동의 수준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정직한 교육자라 할지라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제자들에게 어떤 특별한 입장을 심어주려 한다. 이런 강제적 요소들은 도덕적일 수 없다.

간디는 폭력의 경우에도 그것이 개인적인 도덕이나 선의지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악한 사회제도와 이를 유지하고 있는 개인의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을 완전히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0. 개인의 도덕과 사회의 도덕 사이의 갈등

사회의 요구와 양심의 요청 사이에는 여간해서 화합되기 힘든 지속적인 모순과 갈등이 발견된다. 개인의 내면적 생활과 사회생활의 요구에서의 갈등이다. 사회를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다. 그리고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다.

이 두 도덕적 입장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양자 사이의 모순도 절대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쉽게 조화되지도 않는다. 사회는 이타심보다는 정의를 최고의 도덕적 이상으로 삼는다. 사회의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는 것이다. 사회적 관점은 개인보다는 집단적 인간의 행동을 중요시하고 정치적 도덕은 종교적 도덕과 가장 대립된다. 합리적 도덕성은 이 중간쯤에 위치한다. 도덕의 문제는 개인적 차원보다 집단에서 득세한다. 인간 집단은 도덕적으로 무디기 때문에 순수한 무욕의 도덕을 집단에서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야기를 이렇게 맺는다.

우리는 지금 인격적. 도덕적 이상주의가 위선이라는 혐의를 받고, 때로는 비난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는 정직성이 냉소주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그런 시대이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불의를 대가로 지불하고서 개인 생활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의 집단생활이 완전히 정의롭게 될 수 있다는 환상. (...)이런 광기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한 정의란 결코 달성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이성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

사회는 왜 개인보다 이기적인가? 를 생각할 때 이 책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책을 폈다. 철학적인 고찰의 책이라 읽으면서도 여러번 곱씹으며 의미를 해석해야했다.

이 책은 당시에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사회 내의 어느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모한다.

나는 요즘 기독교인으로서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아마 이 책을 집필한 니버 목사도 그런 생각을 했을것이다. 왜 교회라는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하는가. 그것은 성경적인 것과 다르다. 철저하게 인간적인 모습이다. 한 사람은 도덕적일 수 있으나 여러 가지 사회적인 집단생활 속에서 변질된다. 한 세기가 흘렀음에도 이 책은 여전히 의미가 있고 유효하다. 우리는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냉전, 분쟁을 거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인종차별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직면해서 살아간다. 사회와 과학의 발달은 10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을테지만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얼마나 도덕적인 사회인지 얼마나 더 평등한 세상으로 발달했을지 지금 나비가 살아있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결론은 비폭력 저항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간디, 자유주의 철학자 스튜어트 밀을 비롯한 존경받는 사람들조차도 완벽하게 도덕적이지 않았다는데 있다. 결국 완벽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철저하게 통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런지.

이런 이해는 우리가 리더에게 무엇을 기대하여야 하며 훌륭하다 할 지라도 어떤 제도적 장치로 항상 견제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