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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페스트

by 북앤라떼 2020. 8. 25.

페스트

알베르 카뮈

이 작품은 1947년에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장편 소설로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방인’을 만나고 그의 작품을 더 만나보고 싶었는데 ‘코로나19’에 다시금 재조명을 받는 이 시기의 나 역시 이 작품을 읽으며 마치 요즘에 발표된 책이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의 살을 썩어 검게 만든다는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페스트는 원래 야생 설치류들 사이에 퍼지는 돌림병이었으나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들에 기생하는 벼룩을 통해 인간에게 전염되었다. 1347년에서 1352년 사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 출몰한 페스트는 당시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고 그 사회를 다시 회복하기까지 2백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카뮈의 첫 소설 이방인이 부조리한 상황의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10여 년의 집필 끝에 탄생한 책 페스트는 페스트라는 덫에 걸려 신음하는 도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뮈는 오랑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하에 탄압을 받았던 프랑스를 상징하며 보건대는 항독 운동을 의미하며 페스트 환자 격리 수용소는 유대인 수용소를, 페스트라는 적은 나치의 전체주의를 상징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나 역시 요즘 실제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회 안에 바이러스 같은 존재가 있음을 생각하는데 페스트 역시 소설 안팎으로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책의 줄거리는 워낙 유명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묘사는 정말이지 의사 리유의 입을 빌려서 과장도 축소도 없이 정직한 기록으로 그러면서도 예리한 메스로 해부당하는 그런 느낌이 든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고발하는 카뮈의 외침. 영웅주의가 아니라 성실함으로 인간에 대한 정으로 보건대를 결성했던 리유와 타루처럼 카뮈 역시 인간이라면 마땅히 함께 싸워야 한다고 그려낸다. 인간이기에 지켜야 하는 부정에 맞서는 긍정과 반항! 카뮈가 ‘페스트’를 고심했던 그 암울하고 부조리했던 시기를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의 무게는 실로 무겁다. 작품 속에서 그는 말한다.

인간의 악이라는 것은 대부분 무지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덜 무지하거나 더 무지하다.... 가장 절망적인 악덕이란 전부 다 알고 있다고 믿고 그런 이유로 감히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무지라는 악덕이다.

p140

 

194X 년 4월 오랑, 의사 리유는 자신이 사는 건물 층계창에서 죽은 쥐 한 마리를 발견하고 수위 마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수위는 누군가 장난으로 죽은 쥐를 갖다놨을거라며 우리 건물에 쥐가 있을 리 없다고 일축했지만 리유는 다음날에도 동네 왕진을 가는 길에 더 많은 죽은 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정오에 아내를 이웃 도시로 요양 보내는 길에 판사 오통씨와 우연한 만남에도 죽은 쥐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확인되면서 리유는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한편 파리의 유명한 기자라는 랑베르가 아랍인들의 생활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서 리유를 찾아오지만 리유는 거절하고 왕진을 나가는 길에 오랑에 머무는 장 타루와 또 쥐들의 출몰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된다. 25일 하루 동안 죽은 쥐가 수거되고 또 그 다음날에도 더 많은 죽은 쥐들이 수거되면서 이제 도시는 깨끗해진 듯 안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처음 쥐를 발견했던 수위 미셸이 사망하면서 그 시기에 비슷하게 사망자들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상함을 알게 된 리유는 정부 사람들을 모아서 회의를 하고 페스트 진단을 선포한다. 오랑 도시는 폐쇄되고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고통은 어쩌면 질병의 것보다 힘들수도 있다...

도시 폐쇄로 오랑에 갇히게 된 기자 랑베르는 리유를 찾아와 자신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게 증명서 한 장을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리유는 선을 긋는다. 재밌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이상한 말들이 퍼지는 것이다. 알코올로 소독하면 균이 없어진다고 술을 엄청 마시기 시작하고 레인코트를 입기도 한다. (이런 근거 없는 썰들이 코로나 사태에도 계속 sns에 돌았던 생각이 나서 웃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은 언제나 종교 지도자. ’페스트는 신이 내린 벌이다’ 오랑시 파늘루 신부는 외치기 시작한다. 오랑시의 또 한 명의 이방인 타루는 페스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민간 보건대’를 결성하자고 건의하고 마음을 움직인 동네의 몇몇 사람들이 모여 연대를 이루게 된다. 탈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기자 랑베르도 갈 때까지는 자원 봉사대를 돕는다. 그러나 그는 후에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리유와 타루 옆에 끝까지 남는데 그런 장면은 언제나 마음에 찐한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카뮈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멘트라고 생각한다.

저는 언제나 이곳에서 제가 늘 이방인이고 여러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겪을 만큼 겪고 보니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가 여기 사람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책 페스트 221

 

보건대의 사람들은 지쳐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게 된다. 오통 판사의 아들이 카스텔이 만든 혈청에 시험대상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하게 되어 세상을 떠나는데.. 아이의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고통스러워한다.

어린아이 하나가 마치 창자를 물려뜯기라도 하는 듯 가냘픈 신음 소리를 내면서 다시 한 번 자기 몸을 구부렸다. 그렇게 한참을 웅크리고 있다가 자신의 홀쭉한 몸뚱아리가 휘몰아치는 페스트의 광풍에 접히고 뜨거운 숨을 계속 내쉴 때마다 찢어지기라도 한다는 듯 오한과 경련으로 몸을 떨었다. 돌풍이 지나고 나자 몸이 잠시 축 늘어졌고 신열이 물러가는 듯 축축하고 독을 품은 모래사장 위에 거친 숨을 내쉬는 아이는 내처졌는데 그곳에서의 휴식이란 이미 죽음을 닮아있었다.

p226

페스트가 죄지은 인간에게 내린 형벌이라면 왜 죄가 없는 아이가 죽어야 하냐고 절규하는 의사 리유. 그 옆에서 울던 신부도 그 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실 타루는 어린 시절 예심판사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중죄 재판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그날 아버지의 사형선고를 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요구하는 사회, 그리고 사형선고를 내리는 아버지에게 환멸감을 느끼며 그 후 자신도 사람들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괴로워하게 된다. 자신이 페스트를 앓아왔던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정의니, 사형 선고니, 사형 집행이니 하는 것에 무서우리만치 관심을 가졌고 아버지가 살해 현장에 이미 수차례 참석했으며 그런 날들은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가 일찍 일어나시던 아침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사형 선고를 기반으로 세워져 있기에 그 사회와 투쟁함으로써 살인 행위와 투쟁하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p263~264

리유와 타루가 지친 하루를 보내고 바다에서 잠시 수영을 하며 느끼는 짧지만 살아있다는.. 아직은 살아있다는 생명을 느끼는 장면이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페스트로 짙게 어둠이 깔린 도시에서 바다는 어디론가 계속 흘러가는데 사람들은 폐쇄된 오랑시에 갇혀서 죽어가고 있는 그날 밤.

이렇게 모두가 고통받는 시기에 오히려 평소보다 더 행복한 한 남자가 있으니 코타르라는 인물이다.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시도했던 인물인데 페스트로 고통받는 그 시기에 오히려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며 즐겼는데 이유인즉 혼자만 고통스럽다 생각했는데 이제 도시 전체가 고통스러워 진 상태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페스트가 사라질 때 다시 페스트 전의 세상으로 회귀하는것을 두려워하여 거리에서 총기난사를 하다 체포된다. 언제나 이런 코타르같은 인물도 있기 마련인 세상.

페스트가 사라진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 몸이 이상해짐을 느끼는 타루.(아 이 느낌~아는데) 타루는 그렇게 마지막 희생양이 되어 그들 곁을 떠나고 사람들은 페스트가 사라진 오랑시에서 다시 일상을 재개한다. 정말 페스트는 사라졌을까.. ?

함께 페스트(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타루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또 도시의 많은 이웃을 잃은 뒤 맞이하는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리유는 생각한다.

페스트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 기쁨은 언제든 다시 위협받을 수 있다. 그렇게 책은 끝이 난다.

그것이 과연 승리인지 아닌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저 사람들은 전염병이 왔을 때 그러했듯이 또 그렇게 떠나가는 것 같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염병에 대한 대응 전략은 변하지 않았는데 과거에는 효과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외관상으로나마 운이 따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저 전염병이 제풀에 힘을 잃었거나 어쩌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다음 후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뿐이다. 어쨌거나 전염병의 역할은 이미 끝난 것과 같았다.

286쪽

소설을 읽으며 페스트 그리고 코로나19를 지나가고 있는 역사의 현장들이 많은 부분 오버랩되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또 페스트가 끝날 때 쥐들이 다시 나온 것을 반가워했던 오랑시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다시 그렇게 기뻐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도 된다.

하지만.. 카뮈는 그렇게 끝을 희망차게 끝맺지 않는다. 페스트가 없어진 것 같은 도시를 바라보며 사람들의 기쁨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했고 우리는 실제 때때로 예언이 실제로 실현되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인간의 애정’ 바로 인간다움이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성실로 만들어진 인간들의 연대의식. 그것이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가장 큰 힘이 아니던가.

저물어 가는 석양의 노을을 받으며 서로 마주 보고 기댈 수 있는 도시의 평화가

그냥 주어지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던가.

페스트가 남긴 교훈을 마음에 새기듯 언젠가 코로나가 주고 갈 교훈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자연이 살아나야 인간도 살아난다. 마치 내가 주인인 듯 살지만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병균 하나로도 전 세계가 멈출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가 아닌가. 인간은 정말 속수무책 당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존재다. 우리가 그것을 잃어버리고 방종할 때 언제라도 나와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트가 너무 많아서 사진으로 다 가져오기 힘들다..

마음에 와닿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줄을 긋고 또 그었는데 짧게 몇 부분만 남긴다. 더 자세한 것은..직접 책으로 만나면 좋을듯~

페스트라는 단어가 이제 막 처음으로 입 밖에 나왔다.(...) 재앙이란 사실 공동의 문제이지만 일단 닥치면 사람들은 쉽사리 믿으려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페스트가 있어 왔다. 그렇지만 전쟁이든 페스트든 사람들은 늘 속수무책이다. 의사 리유 역시 우리 시민들이 그랬듯 속수무책인 상태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어찌할 바 몰라 했던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무언지 모를 불안과 그래도 잘 되리라는 믿음 사이에서 그가 어찌할 바 몰라 했던 것 역시 이해해야 한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가지 않을 거야. 너무 바보 같잖아.>

p43

한 명의 사상자란 그가 죽은 걸 우리가 보았을 때야 비로소 중요성을 가지며, 인류의 역사에 걸쳐 뿌려진 1억의 시체들은 그저 상상 속의 한 줄기 연기에 불과하다.

p44 그렇다.. 숫자로 만 보이는 사망자의 수치는 내가 직접 보지 않는 한 수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런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은 어느 누구도 이웃의 도움을 바랄 수 없었고 저마다 홀로 외로이 자신의 근심에 싸여 있었다.

p81 질병 그리고 그보다도 무서운 외로움과의 싸움

사실 봄에는 이제나저제나 열병이 곧 끝나기를 기다리면서도 어느 누구도 전염병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기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감에 따라 이 불행이 정말로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전염병 종식이 앞날에 대한 모든 희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점성가들이나 성당의 성인들에게서 유래한 각종 예언들이 사람들 손에서 손으로 퍼져나갔다.

p234 사람들이 예언을 남발하는 부분도 마음에 많이 남는다.

그러나 사람들이란 너무 기다리다 보면 결국엔 더 이상 기대도 하지 않는 법이라 그렇게 미래 없이 살아가게 된다.

타루가 페스트로 사경을 헤맬 때

그 밤은 투쟁의 밤이 아니라 침묵의 그것이었다.

패배가 만든 침묵, 그 침묵은 너무나도 견고하고 페스트로부터 해방된 도시와 거리들의 침묵과 너무나도 같았기에 …

일백 년 전에 페르시아 한 도시에서 전염병 페스트가 온 주민을 죽였지만 시체를 목욕시키던 사람만은 살아남았답니다. 그 일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는데 말이죠...

타루씨 도대체 뭐 때문에 이 일에 나서는 겁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제가 따르고 싶은 도리 때문이겠죠.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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