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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공지영 에세이: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by 북앤라떼 2020. 11. 21.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저자공지영출판해냄출판사발매2016.11.30.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오, 나의 연인이여, 빗방울처럼

슬퍼하지 마

내일 네가 여행에서 돌아온다면

내일 내 가슴에 있는 돌이 꽃을 피운다면

내일 나는 너를 위해 달을 오전의 별을

꽃 정원을 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혼자다

오, 빗방울처럼 흔들리는 나의 연인이여

<비엔나에서 온 까씨다들 중에서> 압둘 와합 알바야티

오랜만에 읽는 공지영 작가의 책이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으로 사생활 문제로 자주 공격을 받는 작가다. 작가의 책들은 오토픽션(자전소설)이거나 그런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즐거운 나의 집’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 는 딸 위녕에게 쓰고 있고 다른 책들도 오토픽션 느낌이 많이 난다. 어느 작가든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매력이 있다. 하지만 종종 독자로서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오토픽션에 등장한다면 그래서 내가 숨기고 싶은 일들이 드러난다면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전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했더랬다. 딱 봐도 누구인지 알텐데 그 사람 정말 괜찮나? 그래서 실제로 재판으로 가는 일도 있다. 그녀의 책 <즐거운 나의 집>도 배포 되기 전부터 이미 재판이 있었다. 이혼 할 당시 혼인 중 있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썼는데 그것을 공작가가 위반했다고 소설 배포 금지를 신청했지만 기각되어서 서점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표현의 자유 와 사생활 침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외로운 이들, 외로워서 책장을 넘기는 이들에게 헌정하는 책

J라는 익명의 존재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의 산문집. 힘겨운 시간을 보내며 아픈 시간을 통과하며 글을 쓰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평소 독서를 즐기는 작가는 이번 책에도 다수의 작품을 싣고있고 그 작품들을 제목으로 삼아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도 좋다. 만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 독서라고 책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다독가의 서재, 공지영의 취향을 느낄 수 있다.

D.H 로렌스 <겨울 이야기>, 파블로 네루다 <나는 생각한다>,김남주의 <철창에 기대어>,기형도의<빈 집>, 자크 프레베르의 <이 사랑>, 라이너 마리아 릴케<자장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현금 타는 사람의 노래>, 문태준의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등의 문학 작품들을 매개로 이야기를 한다.

#사랑은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잡아보라고

손목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손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오

옥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별의별 수작을 다 해도

입술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입으로 속삭였다오 면회장에 와서

기다리겠어요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15년 징역살이 를 다 하고 나면

내 나이 마흔아홉 살

이런 사람 기다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일까

<철창에 기대어> 김남주

민주화 운동을 하며 잠깐 연애했던 여자가 먼저 출옥하고 김남주 시인을 기다리겠다는 편지에 김남주 시인은 말린 우유갑에 그녀를 위한 시를 썼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감옥 속의 겨울 속의 나를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가슴 가득히

뜨건 피 돌게 한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김남주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사랑

J, 어제는 몹시 술이 마시고 싶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무슨 싹인가가 돋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설레는 싹 같은 것을 느껴버린 것입니다. 빠진 이가 돋는 것처럼 나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거부하고 싶었지요.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라고 해도 내게 사랑은 무모하지 않았다면 순진했었고, 빠져들어 가지 말아야 할 늪처럼 생각되어졌음을 고백합니다. 그래도 당신은 내게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군요. 그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고,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키스도 침대도 빵을 나누는 것도, 보내주는 것도 사랑이라고. 다만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사랑이라고. 제게는 어려운 그 말들을 하시고야 마는군요. 그래요,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사랑을 말입니다. 27쪽

#두 살배기의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대개 “왜 하필 나야?”라는 물음으로 우리의 고통은 그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냐구요, 말 좀 해보세요” 하고 저도 하늘을 향해 여러 번 외쳤습니다. 우주 전체, 이 천지간 고아가 된 듯한 괴로움은 제 고통이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책이 되고, 타인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가장 위로받고 싶었던 그때, 어린 나비 날개처럼 마음이 여렸던 때 겪어야만 하는 손가락질은 이미 그 각오만으로도 긴긴 불면을 가져다줍니다. 삶이 내게 왜 이리 인색한지 모르겠고, 착하게 살고자 노력했으나 그것이 바보 같은 시도라는 것을 증명해줄 본보기로 내가 뽑힌 것 같은 그런 억울함, 분노 같은 것들이 밤새 샌드페이퍼처럼 제 마음을 갉아대곤 했습니다.

42쪽

#생명의 찬가

나이를 먹어도 좋은 일이 많습니다. 조금 무뎌졌고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그렇습니다. 이젠, 사람이 그럴수도 있지, 하고 말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설사 조금 오래 걸려도, 그것이 지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대가 일어날 수 있고, 비겁한 위인과 순결한 배반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49쪽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빈 집> 기형도

#고통의 핵심

처음에는 저 자신을 많이 질책했습니다. 엄살이 심한 것이 아닐까 하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추위에 강한 나무가 있고 더위에 강한 나무가 있듯이, 물이 많아야 하는 나무가 있고 물이 적어야 하는 나무가 있듯이, 우리는 모두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고 나자 저는 저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54쪽

아무리 상식적이고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생의 어느 봄날한 번쯤 오뉴월의 훈풍에 아파서 울 때가 있는 것이니까요. 마치 혼자서만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것같이 외로울 때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럴 때 너만 그러는 것은 아니야, 하고 다가가는 그런 존재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이 자본주의와 세계화와의 효율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여전히 삶을 택하게 하고 인간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오스카 와일드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한 번쯤은 예수와 함께 엠마오로 걸어가야 하는데, 그럴 때 바로 오래도록 아픈 숙명을 유전자에 지니고 사는 예술가들이 그와 함께 그 길을 걸어준다는 것을. 55쪽

근심으로 가득 차

멈춰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이랴

....

한낮에도 밤하늘처럼 별들로 가득 찬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미인의 눈길에 돌아서서 그 아름다운

발걸음을 지켜볼 시간이 없다면

눈에서 시작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가련한 인생이 아니라 근심으로 가득 차

멈춰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멈춰 서서 바라볼 수 없다면>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언젠가 내가 너를 잃어버릴 때

너는 잠들 수 있을까? 보리수 화한처럼

내가 네게 속삭여주지 않는다 해도?

내 여기서 깨어 앉아

눈꺼풀처럼, 네 가슴에

네 손발에, 네 입에

이야기를 얹어주지 않는다 해도,

네 눈을 감겨주고 나서

한 무더기의 멜리사 풀과 별 모양의 아니스 풀이

가득한 정원처럼

너를 너의 것만으로 놓아두지 않는다 해도

<자장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진정한 외로움은 최선을 다한 후에 찾아왔습니다.

모든 인연을 끊고 나 자신과의 인연마저도 끊고 싶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간들, 내 인생 하나 감당하지 못하면서 소설이랍시고 남의 인생 이야기를 이리저리 지어내야 하는 자신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었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써 내려갔습니다. 그때 나를 살린 것이 그 약속된 글쓰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가끔은 듭니다. 몇 번이나 연재를 중단하고 사막 가장자리로 도망가 사라지고 싶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글을 끝냈습니다. 97쪽

저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만, 그리하여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책을 덮고, 살아온 모든 생애의 힘을 다해서 오래도록 움켜쥐고 있었던 손을 폈습니다. 115쪽

#공평하지 않다

내가 남들보다 예민하고 내가 남들보다 감정의 폭이 격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남들이 잘 안 쓰는 피아노 건반의 가장 낮은 옥타브까지 모두 두드리며 사는 부류들이 있는데, 제가 그 부류에 속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글도 쓰고 그래서 남들 표현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줄 알면서도 가끔은 그것이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생애 동안 우리는 대개 낮은 건반을 두드리는 일이 높고 경쾌한 건반을 두드리는 일보다 많이 때문입니다. 132쪽

외떨어져 살아도 좋을 일

마루에 앉아 신록이 막 비 듣는 것 보네

신록에 빗방울 비치네

내 눈에 녹두 같은 비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나는 오글오글 떼 지어 놀다 돌아온

아이의 손톱을 깎네

모시조개가 모래를 뱉어놓은 것과 같은 손톱을 깎네

감물 들 듯 번져온 것을 보아도 좋을 일

햇솜 같았던 아이가 예처럼 손이 굵어지는 동안

마치 큰 징이 한 번 그러나 오래 울렸다고나 할까

내가 만질 수 없었던 것들

앞으로도 내가 만질 수 없을 것들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이 사이 이 사이를 오로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의 혀끝에서

뭉긋이 느껴지는 슬프도록 이상한 이 맛을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문태준

#나의 벗 책을 위하여

나는 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 직업은 책을 쓰는 것이고 남은 시간에 책을 읽는다고 농담을 하곤 하지요. 지난번 어떤 방송에서 책을 정의해 달라기에 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더니 그 방송 진행자가 그 뒤로도 내내 제게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더랬습니다. 취재를 하는 것보다 책을 읽는 편이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164쪽

#속수무책인 슬픔 앞에서

J, 실은 오래도록 나를 찔러댔던 내 과거들의 비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찌를까 겁이 납니다. 내 어둠이 당신의 영혼에 물들까 겁이 납니다. 내 어둠이 당신의 영혼에 물들까 겁이 납니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다 고갈된 것만 같은 두려움과 날마다 싸우고 있습니다. 더 깊어지고 싶은데, 더 깊어져서 자갈과 물고기의 주검들을 지나 더 깊은 곳에 두레박을 내리고 싶은데, 저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239쪽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내 삶은 한 신에서 다음 신으로 이어졌고 한 주제에서 다음 주제로 넘어갔습니다. 내 삶은 살아 있는 삶이 아니라 꾸며진 각본이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허상, 내 삶의 헛된 동력인 그 허상을 놓아버리고 나니, 끊는 게 아니고 그냥 놓아버리고 나니 무대가 사라졌습니다. 무대가 사라지니 의상도 역할도 필요가 없어져버렸지요. 나는 무대를 걸어 나와서 거리로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숲과 나무들과 하늘을 보고 각본에도 없는 난데없는 바람을 그저 느끼고 싶어졌습니다. 두서없는 말을 하고 음정 틀린 노래를 부르며 이도 닦지 않고 세수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않고 싶어진 것입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친구를 만나 향기로운 음식과 술을 마시고 즐기며 볕 좋은 날에는 낮잠을 자고 깨달을 게 있으면 깨달아 노트에 적어놓고 풀리지 않는 문제는 내 마음의 선반에 얹어놓으며 그냥 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살겠다고 다시는 결심하고 싶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J, 저는 달력의 일정을 하나씩 지울 수 있을 때까지 지웠습니다. 210쪽

 

 

 

낮아도 너무 낮은 음으로 연주되는 곡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좋아하는 시를 공유하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우울하지만은 않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와 고통을 공유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외로움에서 벗어나겠다는 몸부림.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고 시작했지만 많은 독자들이 함께 읽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 고통을 공유하고 있으니 혼자이나 그러나 혼자가 아니다. 그녀가 말했듯이 창문은 외로움의 표현이면서도 누군가가 너무 가깝게 들어오는 것도 또 내가 너무 가깝게 다가가는 것도 제한하는 오픈이다. 그런 의미로 유리창에서 기대서 바라보는 빗방울은 모여서 강으로 흘러가듯 이 이야기들도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오늘 또

언제까지나 그렇듯 삶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푼다!

두 손 가득히 선물을 한다.

황혼과 별

나무의 텁텁한 내음

강을 흐르는 푸르른 물살

빛나는 눈빛

외로움과 소음!

이 모든 것이 존재하다니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

이 얼마나 풍성한 선물인가

매 시각 매 순간마다 이렇게 넘치다니!

이것은 선물, 불가사의한 선물이다.

나는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산도르 마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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