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
김미경의 리부트
2020년 1월 22일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강연장에 선 마지막 강의였다.
28년간 어떤 천재지변에도 강의를 쉬어 본 적이 없다는 그녀가 속수무책으로 손발이 묶일 줄은 몰랐다. 그냥 앉아서 끝나기만을 기다릴 순 없었다. 그래서 경제, 경영, 트렌드, 기술, 인문, 역사, 팬데믹 주제로 서적과 정보를 읽어 나가며 관련된 전문가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강연은 멈췄지만 강연을 다닐 때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매일 단서를 찾으려는 몸부림은 한 달여 만에 노트를 반 이상 채워갔고 가닥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분명 위기지만 그냥 위기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확신이 섰다. 코로나라는 혼돈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며 다른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찾으면서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예정에 없는 책을 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리부트 reboot'다.
리부트(Reboot) 하면 컴퓨터에 재부팅이 생각난다. 컴퓨터를 끄고 다시 시작하는 것. 틀은 바꾸지 않고 수정하는 리메이크 remake 작업이 아니라 리부팅이다. 갈아엎고 다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녀가 말하는 리부트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그녀의 책이 살아본 경험으로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한 책이었다면 이 책은 그녀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통찰하고 연구하며 찾아낸 솔루션을 담은 책이다. 코로나로 많은 것을 잃은 우리, 그리고 일상에서 멈춤의 느낌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는 중에도 분명 누군가는 이미 리부트를 시작해서 열심히 살아아고 있다.
part 1 대전환을 두려워하지 말라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를 물을 때는 지났다. 크게 심호흡하고 ‘다가올 미래를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를 묻고 또 물어야 할 시간이다. 매일 조금씩 변화의 단서를 찾아야 내 한다. 먹고, 살고, 배우고, 나누는 일상을 누리기 위해 다른 삶의 방식을 훈련해야 한다. 삶에 대한 성실한 자세와 뜨거운 애착으로 각자의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16
코로나 이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지 ‘정확히’아는 것을 고급 정보라 한다. 공부한 만큼 보이는 게 위기라고. 여기서 ‘고급 정보’라는 단어가 목에 걸려서 멈추었다. 이제 시대를 코로나 전. 후로 나누어서 다시 코로나 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것은 보통 다들 하는 말이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안다. 그러나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를 ‘노력’이라는 잣대로만 나눌 수 있을 것인가를 나는 묻고 싶다. 빈익빈 부익부는 바뀌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판이 짜지면 부의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나도 동의하는 것은 더 이상 앉아서 ‘못 한다’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못 한다’에서 ‘안 한다’의 발상 전환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part 2 내 인생을 바꾸는 4가지 리부트 공식
1) 0n- tact 온라인 대면과 온라인 소통
2) 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 변신
3) Independent worker 독립형 미래형 인재
4) safety 안전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BTS의 온라인 공연은 이 리부트 공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방에서 보여주었다. 바로 방방콘(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 24시간 조회 수 5059만 건, 접속자 수 224만, 접속자들은 위버스에 접속하고 응원봉인 ‘아미밤’을 블루투스로 연결해 실시간으로 응원봉이 달라지도록 했다. 전 세계 162개 지역에서 약 50만 개의 아미밤이 연동됐다고 한다. 역시 BTS다.
김미경 강사도 코로나로 취소된 <MKYU>대학의 입학식과 오프라인 강연 행사들을 온라인으로 도전했고 지금도 여러 방면으로 위기를 뚫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김미경 강사니까 가능하지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이 과연 그게 될까? 정말 몰라서일까? 생존 욕구가 부족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part 3 ‘나를 살리는 리부트 시나리오’를 써라
기존의 능력에서 한두 가지를 더하는 ‘플러스’ 기법이 아니라 이미 쓸모 없어진 내 능력을 버리고 빈자리를 만들어 채우는 ‘마이너스’ 기법이 필요하다. 쓸모를 다한 내 능력을 버려야만 새로운 능력을 채울 수 있다.
part 4 ‘뉴 러너 new learner가 되어야 일자리를 구한다
변화와 나란히 걷는 ‘즉시 교육’의 시대! 인생의 변곡점에서 하강 곡선이 아닌 상승 곡선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즉시 교육이다. 책과 정보 그리고 주변에서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도 좋다. 특히 나와 다른 분야의 새로운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 좋다. 앞으로의 세상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협업, 팀워크를 잘 하는 것이 필수다. 그녀는 이런 세상을 감지하는 ‘촉’을 몸으로 익히기 위해서 나에게 맞춰서 배달되는 인터넷 신문이 아니라 아날로그 신문을 펴고 매일 꼼꼼하게 읽어나간다.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엮어서 스토리를 만든다. 이런 습관을 이어가다 보면 ‘촉’이 생긴다. 촉은 정신 언어가 아니다 육체 언어다. 성실한 노동으로 갈고닦아온 사람들에게 생기는 것이다. 몸으로 부딪치고 깨져서 고생한 만큼 촉이 좋아진다.
part 5 공존의 철학자 ‘뉴 휴먼 new human’이 미래를 구한다
제러미 리프킨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후 변화가 팬데믹의 원인이라고 단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코로나의 근본 원인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팬데믹 속에서 2020년만 해도 캘리포니아는 산불로 몸살을 앓았고(매년 산불로 몸살을 앓는다) 호주에서도 산불로 남한 면적보다 넓은 땅이 검게 변했다. 폭염에 시달리고 가뭄과 홍수로 지구상에 다양한 재난 사태가 일어났다. 홍수 난 지역의 비를 캘리포니아로 가져올 수만 있다면.. 산불을 금세 끌 텐데, 200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극심한 가뭄을 겪은 인도 첸나이 지방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이제 지구촌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피부로 와닿은 사실이다. 나와 너의 문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공존하는 시대다.
지구의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지만 과연 어떻게 이 지구의 위기를 조금이라도 구할 수 있을까? 그녀가 만난 기후 전문가, 환경 전문가, 인문학자, 철학자들의 조언으로 얻은 세 가지 팁을 이야기한다.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다.
* 첫째, 좀 남기자
미래 재앙을 늦추기 위해서는 아껴 쓰는 것이다. 정말 사야 할까 고민하고 사야 한다면 친환경 제품으로 사는 것을 추천한다.’생태적 일상’ 습관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소비를 최소화하는 습관으로 시작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나라도 변화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 둘째, 돈을 더 쓰자
환경문제는 곧 경제문제다. 코로나의 문제가 백신이나 마스크가 아니라면 더 비싸더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를 위해 돈을 더 써야 한다.
* 셋째, 좀 불편하자
‘불편 비용’추가. 1인 1톤 탄소 줄이기 운동. 아름다운 불편
나이 50을 넘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서 재료 탓을 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재료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행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불행이다.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걸 행운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건 불행일 것이다. 단지 그때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행운이 되기도, 또 불행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231쪽
맞다 불행을 탓하면서 얻어지는 것은 없다. 코로나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때 나는 코로나를 어떻게 건너갔다고 이야기하게 될까.
늘 에너지가 넘치고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김미경 강사.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어떤 뾰족한 해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정보가 없어서 못 갖겠는가. 전문가는 차고 넘친다.
어제 평소 같으면 종종 봤을 친분이 있는 동생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어떻게 사니? 우리 언제 다시 만나서 밥 먹을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고 싶도록 첫 자극을 주었던 사람은 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었다. ‘역시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쉬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은 모두 거저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얼마나 또 열심히 살았을까 눈에 그려진다.
나는 종종 대화 가운데 ‘고통 감각점’을 자주 이야기한다. 처음 미국에 와서 병원에 갔을 때 나의 고통을 수치로 말하는 것이 (1부터 10까지 중에서 고르기)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나는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내 고통이 몇이지?' 출산이 임박한 상황에서 나는 그 고통을 ‘아마도 7인가’로 대답해서 간호사가 오히려 ‘너 지금 7 이상일 텐데’하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나는 더 센 고통이 올 것을 염두에 두어 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출산이 그랬다. 주변 사람들이 진통이 왔다고 느껴서 병원을 가면 다시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정말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는 말을 해 주었다. 나는 그래서 참았다. 병원에서 "어떻게 이만큼 참았냐"라고 할 만큼. 그렇게 가면서도 나는 "진통이 없어 보이는데"하는 말을 들었으니. 내 고통의 수치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 한계를 가늠하는 것도 이렇게나 서툰 사람이 하물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수치로 가늠한다는 것, 짐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서툴 것인가.
고통을 느끼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다 다른데 이 팬데믹 상황의 고통은 어떠하랴. 누가 타인의 '고통점'을 잴 수 있을까? 누가 더 열심히 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연륜? 추측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감히 단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언한다고 해도 그것이 타인의 고통을 줄일 수도 늘릴 수도 없다. 그런 것은 무익하고 타인에겐 해롭다. 가끔은 멀리서 가늠할 수 없는 그 고통의 무게로 스스로의 삶을 중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용기로 살라'라고 말하지만 나의 한계점과 타인의 한계점은 분명 다른 법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날로그로 살고 싶은 마음
영화나 책은 최신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지만 나는 발 빠르게 유행을 선도하고 싶은 선도파는 아니다. 시대가 바뀐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최대한 나는 가장 늦게 그 배를 타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들에게도 할 수만 있다면 가장 늦게 전자기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비록 이런 바람을 가졌다 해도 코로나 팬데믹은 나를 떠밀어 zoom이라는 배에 탑승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며 수업을 하고 덕분에 공간의 한계, 시간의 제약을 넘어서니 오히려 장점을 많이 누린다. 생각해보면 다시 대면 수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더 편해졌다. 벌써 몇 개월째 자택근무를 하는 남편도 극심한 교통체증의 고통을 벗어나서 더 많은 시간을 일에만 집중하는데도 오히려 자신의 시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이는 오고 가는 거리까지 포함하여 2-3시간 소요되는 악기 레슨도 집에서 받을 수 있다. 이미 다 적응되어버린 지금 그런데도 다시 돌아가야 할까? 그래 내가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치와 본질들 바로 그것을 놓치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더불어 사는 재미' , '정' 이런 개념이 사라지고 철저하게 나와 내 식구에게만 집중되어감을 느낀다. 덜 똑똑하게 살아도 사람끼리 부대끼며 살고 싶다. 요즘 신조어라고 너도 나도 언택트(untact) 온 텍트(ontact) 하지만 콘택트(contact)가 좋다. 그러나 가는 세월도 잡을 수 없고 바뀌는 시대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버팅겨보고 싶은 마음일 뿐이지.
'코로나 시대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인가?'를 논한 적이 있었다. 서로 내가 가장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국에 아는 커플은 하와이에서 결혼하기 위해서 코로나 때문에 2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결혼식을 못하면서 미뤄진 것을 예약 잡는 것이 그만큼 어렵단다. 주변에 아이를 낳은 지인도 있다. 남편과 같이 분만하는 것이 일상인데 혼자 들어가서 아이를 낳았고 우리는 영상으로만 축하를 해 주었다. 백일, 돌잔치를 맞이하는 아이도 그렇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도 넓은 놀이터조차 마음대로 걸어 다니게 하기도 불안하다. 유치원에 보내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부모들, 안 보낼 수도 없고 그 어린아이들이 마스크를 잘 쓰고 있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서글퍼진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도 그렇다. 졸업생들도 생애 한 번뿐이 졸업식도 하지 못했다. 대학교 입학하는 옆집 아이도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는다. 나의 조카는 졸업장만 우편으로 받았는데 취직이 되지 않아서 얼마 전에 알바만 구했다고 한다. 엄마들 아빠들도 나름 고충이 많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다 최대 피해자다. 코로나로 문을 닫는 미국 상점들 중 60% 이상은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500만 개의 일자리는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일하기에 좋은 나라였는데 그나마 그것도 옛이야기가 될 전망들을 내어놓는다. 이 모든 상황에서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을 과연 할 수 있을까. IMF 때도 돈 때문에 목숨을 끊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자가 되는 기회가 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위기가 그야말로 위기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고 돌파구를 찾으라는 말이라는 것이다.
아침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요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조르바처럼' 말하고 싶은 욕구가 내 속에 꿈틀거림을 느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요?" 책에서 배우는 소위 가방끈 좀 길다는 먹물들에게 조르바는 전혀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너희들이 자유를 알아?" 물을 텐데. 조르바라면 잔뜩 움츠려든 어깨를 펴라고 한 소리 해 주지 않을까.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본능으로 살라고 말이다.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지만 가끔씩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열심히 배우라는 속도 부추김에 나타나는 울렁증 증상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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