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고재욱
강원도 원주의 한 요양원에서 치매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글 쓰는 요양사
마흔 살에 금융위기로 심각한 재난을 겪고 마포대교로 향했지만 뛰어내리지 못하고 결국 걸음을 옮긴 곳이 영등포 노숙인 쉼터였다. 그곳에서 1년 반 시간을 보내며 한 교회에서 노숙자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닫혔던 마음도 열리고 삶의 의미도 다시 다잡기 시작한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가장 외로운 죽음들을 목격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의지가 생긴 것이다. 그 후 일거리를 찾는 중에 요양원에 청소와 빨래를 봉사를 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요양원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다. 요양원에서 지금까지 100여 명의 노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죽음 앞에서 하찮은 삶은 없었다.
그의 첫 발목을 잡았던 사연이 있다.그가 요양원 봉사를 할 때 할머니 한 분이 목욕을 하시고 싶다고 하셨다. 정해진 날짜에 목욕을 하는데 그날은 목욕하는 날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쁜 직원들 대신에 그가 목욕을 시켜 드렸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86세의 할머니였다. 목욕이 끝나고 할머니는 손을 꼭 잡으시며 고맙다는 말을 하셨는데 그 다음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었고 그가 그 마지막으로 가시는 길에 깨끗하게 씻고 가시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드린 것이었다. 그 일 이 있은 후로 그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어르신들은 입버릇처럼 ’왜 안 죽어’,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말씀하시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 아픈 노인들이 삶의 마침표를 찍는 그 여정이 적게는 몇 달부터 많기는 수년간의 시간이 되고 때로는 환자와 가족들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된다. 그가 본 것은 그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다. 죽음 자체의 공포가 아니라 죽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공포.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인류 중 누구도 그 길을 피한 경우가 없으니 말이다. 결국 삶이라는 이야기는 죽음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니 죽음으로 가는 이야기를 애써 외면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많이 생각해둘수록 좋지 않을까
치매라는 말은 한자로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치매라는 단어 대신 ‘인지증’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일본은 요양원 수를 늘리기보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지증에 대한 기본 교육을 한다. 이미 2017년 ‘인지증 서포터스’가 천만 명을 넘었다. 지역사회가 인지증 환자를 피하지 않는 모습이다. 얼마 전 읽은 책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생각이 난다. 치매환자도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인식에 대한 변화가 있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려면 ‘치매’단어부터 변경해야 하지 않을까.
고재욱 요양사는 어르신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즐겨 했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자주 해 주시던 이야기들이 오버랩되었다. 할머니는 뇌졸중이 오고 병원에서 가족들에게 준비하라는 말을 하였지만 요양원에서 꽤 오랜 시간을 사시다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쓰러지신 뒤 이야기꾼이 되셨다. 할머니의 기억이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나는 저자의 입으로 듣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다 우리 할머니 이야기 같았다. 치매는 가까운 기억이 사라지고 먼 기억이 선명해지는 원시 시력과 비슷하다.
어떤 할아버지의 달력은 항상 6월로 멈춰있다. 6월 26일. 10월에도 12월에도 할아버지에겐 언제나 6월 26일이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좌우를 살피고 낮은 목소리로 전쟁 없이 지나갔냐고 물으신다. 6.25 당시 10대에 학도병으로 전쟁에 동원됐던 할아버지는 전쟁에서 청력과 두 무릎을 잃었다. 할아버지 허리에는 쇳조각을 제거한 흔적이 여러 군데 있었다. 반백년이 흘렀지만 할아버지의 전쟁 트라우마는 매일같이 현재진행형이었다. 전쟁이 끝났고 6월 26일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웅크린 몸을 풀고 침대 밖으로 내려오시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왜 그렇게 우리 할머니의 시계가 일제시대와 6.25 피난에 멈추어져 있었는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띄엄띄엄 전쟁을 증언하는 어르신은 한 권의 책이었다. 한 사람이 살아온 길을 되짚어 걸어볼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롭다. 딱히 바쁠 일 없는 치매 환자들의 이야기는 무척 느렸는데 나는 그분들의 사연을 듣기 위해 기다림부터 배워야 했다. 일부러 꾸밀 필요가 없는 그분들은 자신이 본 대로 들은 대로 살아온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어르신들을 보며 사람이 책이 되어 읽히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 이보다 생생하게 삶을 그려내는 책이 또 어디에 있을까
119쪽
많은 말씀을 해 주시지만 때로는 표정,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할 수도 있다. 마음의 소리는 들으려고 하면 들린다고 말한다.
가끔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어르신이 있다. 어떤 날은 맑은 기억으로 먼저 내게 알은체를 해서 나를 놀래키기도 했고, 어떤 날은 반갑게 인사를 드리면 “누구냐, 넌?”하고 되물어 나를 당황하게 한다. 그분께 가끔 농담을 건넬 때가 있다. 어르신을 놀리거나 장난을 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따금씩 작은 자극을 주어 어르신의 기억력을 조금이라도 유지시켜보려는 나름의 방법이다.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어르신에게 다가간다. 두 손바닥을 마주치며 호들갑스럽게 말한다.
“아이고 어르신! 이게 얼마 만이에요? 한 석 달 만인가요?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할머니는 고개를 들고 눈을 다섯 번쯤 끔뻑거린다. 그러고는 아래위로 나를 훑어보신다.
“어제 봤잖아, 이놈아! 누굴 바보로 아나”
나보다 두 배 더 세상을 살았다는 것은 두 배 넘는 경험치가 작은 몸 어딘가에 쌓여 있다는 것이다.
44쪽
이런 이야기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유쾌한 사람으로 노인들의 말상대가 되어주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답이 없는 질문도 자주 한다. 노인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고자 함이다. 말하지 않으면 말하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고 자꾸만 노인들에게 말을 시킨다.
그러나 그는 자주 “왜 하필 그런 일을 하냐?"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지인들을 비롯하여 심지어 면회 왔던 한 어머니는 딸에게 “너 공부 안 하면 저런 일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본인의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편히 계시는데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태도가 이러니 여전히 힘든 일에 비해서 사회적 인식과 처우가 낮을 수밖에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의미 있는 죽음으로 노인들의 인권을 생각해야 하는 그들의 일인 만큼 요양보호사들의 인권이 존중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러나 그는 치매 노인 대소변이나 치우는 ‘저런 일’ 속에서 오늘도 삶의 의미를 느낀다.
그렇다고 그 일이 늘 즐겁기만 할까. 어려움이 얼마나 많을까.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은 할퀴고 물고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다반사다. 요양보호사가 폭행을 당해도 치료비조차 자비로 내야 하는 현실이다.
이따금 모두가 자는 밤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할머니는 가족들이 왔다 간 날이면 그런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결국 모두를 깨우지 않는 방편으로 할머니에게 콩 고르기 일을 맡기면 신기하게도 한 알의 콩도 섞이지 않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신다고 한다. 일이 끝날 때까지. 할머니는 콩 고르기 선수가 된다.
110세가 되시는 할머니도 계시다. 그러나 120세를 생각할 정도로 정정하시다. 할머니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셔서 아침저녁에 꿀 한 숟가락씩을 드시고 마른 수건으로 온몸을 닦는다. 할머니의 일과다. 그런 할머니에게도 문제는 있다. 할머니의 최애 음식이 새우깡이라 보는 사람마다 "새우깡 좀 줘" 하신다. 단식 투쟁도 벌이신다. 그런데 문제는 새우깡을 드시면 밤새 설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한 번은 잘 모르는 신참 직원이 새우깡을 달라는 말에 몇 봉지를 가져다드렸다가 큰일이 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매번 새우깡을 찾으신다.
그나마 화장실을 가실 수 있어서 기저귀를 차지 않는 어르신들은 비교적 양호한 치매다. 그러나 치매가 급속도로 진행되면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사용한다. 어르신들이 그 기저귀를 가만히 차고 계실리 없다. 언제나 빼놓고 여기 저기에 색칠을 하신다.
어렵던 시절 감자밭에서 어린 아들을 잃은 할머니는 감자 음식을 드시지 못한다. 약초에 전문가인 할아버지는 직원들에게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약초를 캐다 주신다고 호언장담하신다. 중년이 다 된 손녀를 아이처럼 쓰다듬는 할머니. 할머니는 바쁜 엄마 대신 손녀에게 닭죽과 사골국을 먹였다고 한다. “내 새끼 아프지 마라” 그 한 마디와 죽 한 그릇이면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데.. 이제는 드시지 못하지만 손녀는 할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들을 가지고 요양원을 찾는다. 할머니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좋아하셨단다. 할머니 제사상에는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올라가지 않을까.
치매 환자를 돌보면서 신기한 것은 주로 면회를 오는 것도 딸이고 옆에서 살갑게 챙기는 것도 딸인데 할머니들은 아들이 오면 운다는 것이다. 치매의 진행과 상관없이 거의 모든 할머니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 시절은 아들 낳아야 대접받는 시대였으니 어르신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자주 오는 딸이 낫지 어쩌다 한번 오는 무뚝뚝한 아들들이 뭐가 좋다고 하시는 건지.
외국 요양원 상황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한 명당 보살펴야 할 노인의 숫자가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요양원으로 부모님을 모시면서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도 많다. 우리의 경우도 그랬다. 상황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괴로움이 가족들에게 있었던 것을 안다. 시어머니는 매일 따뜻한 밥을 싸서 찾아뵈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을 놓치 못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요양원에 대한 인식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요양원에 맡겨놓고 찾아가지 않는다면 문제다. 영국에서 권하는대로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 따뜻한 음식을 해서 가져갈 수 있는 거리의 요양원에 모시고 같이 돌본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다. 요양원을 결정할 때도 요양보호사 1명이 돌보는 어르신의 숫자를 살펴보고 개인 옷을 입을 수 있는지, 잠자리와 환기 시설, 냉난방, 물리치료와 의료 치료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지, 무료한 시간을 보낼 프로그램 등을 꼼꼼하게 살피라고 권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집과의 거리다.
할머니는 종종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벌을 받을까?” 그런 질문을 하시곤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그 소리는 하나님께만 하는 신앙고백은 아니었나 보다. 할머니들이 보통 자신이 죄를 지은 잘못으로 치매가 오고 요양 시설에 갇혔다는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다.
치매 환자 수는 2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계속 늘어가지만 아직까지 치매의 약은 없다. 무섭고 힘든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병이 치매다.
누가 치매에 걸릴까? 그가 지켜본 바로는 남녀, 빈부, 학력, 성격 상관없이 누구든 걸릴 수 있는 것이 치매다. 그러니 치매가 걸린 사람도 그것을 돌보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흔한 감기처럼 생각하며 그 상태로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걸리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몹쓸 병으로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이야기들은 많이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책들이 더 많이 팔리고 읽혀서 세상에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이 꽃피우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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