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 오티움
문요한
나는 왜 이 책을 쓰게 되었을까? 2013년 가을, 어깨가 축 처진 남자가 상담실을 찾았다. 40대 중반의 그는 회사의 인원 감축 대상에 포함돼 계속 퇴직을 종용 받고 있었다. 그는 모멸감과 참담함을 가눌 수 없어 상담실을 찾았고 나에게 버티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해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예약을 취소한 후로 상담실을 찾지 않았다. 1년 뒤 어느 행사장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얼굴빛이 한결 좋아져 있었다.
“여전히 꾸역꾸역 그 회사에 나가고 있습니다. 변화가 있다면 주말마다 공방에 나가고 있는데요, 그게 힘이 된 것 같네요”
그는 상담을 그만두고 난 뒤 산책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좋아했던 목공을 다시 시작하게 됐고 그 시간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숨 쉴 틈을 주었다.
그는 나에게 치유란 고통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활기를 되찾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고 능동적 여가 활동은 그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책 <들어가며> 중에서
라틴어 “오티움”의 사전의 뜻은 ‘여가’, ‘은퇴 후 시간’, ‘학예활동’이다. 오티움은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의미한다. 일종의 ‘어른의 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롯이 자신을 만나고 일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오티움의 세계로의 초대.
대부분의 사람은 삶을 마치 경주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헉헉거리며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중에서
심리학자 데니얼 네틀(Daniel Nettle)은 사람의 10년 후 행복을 예측하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조사했고 ‘현재의 행복지수’가 미래의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행복한 사람이 미래에도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가 시간과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2014년도<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 학회지>에 발표된 <여가 시간이 증가하면 행복은?>이라는 연구 논문을 보면 여가 시간이 많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헝가리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샨도르 체렌치는 ‘일요 신경증’이라는 우리 귀에도 익숙한 주말병을 명명했다. 환자들이 유난히 일요일에 우울증 증세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여가 시간은 양보다 질이다.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렸다.
치유란 잘 놀지 못하는 상태를 잘 놀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라틴어에는 일을 뜻하는 고유의 단어가 없다고 한다. ‘오티움’이 여가 시간을 의미하고, '네고티움'은 여가 외 시간을 의미하는데 '네고티움'이 ‘일’의 의미를 대신한다. 즉 일은 ‘여가가 아닌 상태’다.
오티움에는 다섯 가지 기준이 있다.
자기 목적적이다.
일상적이다.
주도적이다
깊이가 있다
긍정적 연쇄효과가 있다.
오티움이 중독과 구분되는 부분이다. 오티움은 그 활동만 기쁜 게 아니라 활동으로 인한 기쁨이 삶에 확산되어 활기가 생겨난다.
오티움은 결과나 보상에 상관없이 그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자기 목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티움은 좋아서 하는 활동이다.
여가는 쉼과 함께 채움이 되어야 한다. 오티움 활동은 경험이 아니라 체험이다. 오티움 활동은 나의 세계를 축조하는 시간이다.
오티움의 테마는 운동, 음악, 춤과 연기, 창작, 음식, 게임, 공부, 자연, 감상, 영성, 봉사.. 다양하게 있다.
나의 오티움은 무엇일까?
남들에겐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나에겐 큰 기쁨이 되는 것들이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 일이 좋다. 블로그를 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책 리뷰하는 시간이면 책 한 권을 더 읽을 수 있겠지만 책 리뷰하는 이 시간이 나는 좋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하는 공간은 일종의 ‘취향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이야기뿐 아니라 이웃들의 다양한 오티움의 테마를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니 곧 ‘학습공동체’ 다. 이곳에서 다양한 공부가 이루어진다.
오티움의 세계는 “클래스가 다르다”.
마지막에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단편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셨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 나이 79세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평생 오티움 활동들로 기쁨을 누리셨다. 어머니의 삶의 태도가 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삶의 큰 자산이 되었다며 어머니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도 나의 모친을 생각했다. 엄마의 삶의 태도가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나도 그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는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오티움'의 시간이었다.
"그걸 해서 뭐 하게?"
남들의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만의 기쁨을 찾는 일이다. 나만의 오티움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자판을 두드린다.
여러분의 오티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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