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
유현준
최재천 교수(전 국립생태원장)는 2020년의 코로나 사태를 지구 온난화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한다. 박쥐는 몸 안에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를 품고 살아간다. 인간은 온대 지방에서 살고 박쥐는 주로 기온이 높은 지방에서 서식했기 때문에 둘의 서식지는 겹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열대 기후에 살던 박쥐들이 기온이 오른 인간의 생활 공간으로 점점 이동해 오게 되면서 인간과 박쥐가 만날 가능성이 늘어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는 한 또 다른 전염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지구 온난화는 시베리아 동토를 녹이고 과거에 활동했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세상에 나올 가능성도 높인다. 시베리아 동토에 얼어서 갇혀 있던 메탄가스도 대량으로 공기 중에 분출되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기후 변화와 전염병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들어가는 글
건축과 도시를 바꾸는 가장 큰 요소는 기후 변화와 전염병이다. 예수 탄생 이전을 뜻하는 기원전 BC(Before Christ)와 예수 탄생 이후를 뜻하는 기원후 AD( After Domini)는 이제 비포 코로나(Before Corona)의 BC와 애프터 코로나(After Corona)의 AC로 써야 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19 전염병은 우리 삶의 공간을 바꾸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간격을 바꾸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재택근무, 원격 수업 등이 많아지면서 혼자만의 공간을 추구하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코로나는 전 세계 지구촌이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지구 사회를 지탱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것도 증명하고 있다. 건축가의 표현대로 몸집이 커지면 새로운 재료의 뼈대가 필요하다. 재료를 바꾸는 ‘사고의 혁명’이 필요하다. 지금이 변화와 개혁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의 시기다.
그렇다면 전염병은 도시를 해체시킬까?
집, 회사, 학교, 상업 시설, 공원 등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은 미래에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전염병이 사회를 바꾸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건축물은 공간 구조를 만들고 그 공간 구조는 사람들 간의 간격, 밀집도, 규모, 방향성 등을 규정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간격, 밀집도, 규모, 방향성은 특정한 권력 구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전염병은 모이는 사람들 간의 간격은 멀리 떨어뜨려야 하고, 밀집도는 낮추어야 하고, 규모는 줄여야 하고, 방향성은 흐트러뜨리는 식으로 기존 진화 방식과 반대로 가는 방향을 가져온다. 이는 자연스럽게 권력 구조와 공동체 구조를 변형시킨다.
책< 공간의 미래>
종교만큼 공간과 권력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는 분야도 없다. 유현준은 현대의 종교의 공간을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해리포터 테마파크로 설명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공간 체험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종교계에서도 큰 타격을 받았다.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전쟁 때도 갈 수 있었던 예배당을 가지 못하게 됐다고 울먹였다. 종교 단체의 권력과 공동체의 구성은 전염병으로 인해서 약해질 것으로 본다. 실제로 크리스천인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종교가 무엇인가?',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와 같은 좀 더 본질적인 질문에 도전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교회가 대형화되어 왔다는데 100% 동의한다. 도시건축가의 의견처럼 이런 거대함에는 건물이 큰 역할을 해 왔다. 코로나를 계기로 교회가 1970년대의 ‘상가교회’처럼 세상에 더 가까운 교회로 좀 더 본질적인 모습을 회복하고 다시 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곳은 학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학교가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아이들의 학업에 큰 지장을 주지나 않을까 많은 학부모들이 걱정을 했다. 그러나 사실은 학업 성적 이상의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학교는 지식 전달의 기능도 하지만 또래들 간 사회 공동체 경험의 장이고 낮 시간에 아이들을 돌봐 주는 탁아소의 기능도 있다. 코로나 이후로 학교는 이 세 가지의 기능 중에서 지식 전달의 기능만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식을 전달받는 곳은 학교뿐 아니라 이미 많은 곳에서 해 오던 방식이다. 그러니까 학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선생님은 20세기에 생존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유튜브로 정보를 검색해서 얻는 지식 전달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떤 선생님이 필요할까? 앞으로 온라인 수업의 비중이 높아질 때 학생들에게 어떻게 대면 대인 관계와 공동체 훈련의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뿐 아니라 학교도 더 작은 규모가 되어야 한다. 미래에는 더 이상 한 장소의 캠퍼스에 국한되어 학업을 할 필요가 없다. 일례로 ‘미네르바 스쿨’은 이미 전 세계의 도시 곳곳의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학교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회사 출근은 계속할 것인가?
재택이 현실화되었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남편의 회사 같은 경우도 1년 반 이상을 재택으로 운영하고 있다. 남편은 재택을 너무나 선호하는데 재택이 편한 부분이 분명 있다. 교통체증 문제를 비롯하여 출퇴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장기간이 되니까 사람들이 괴로운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회사 밥을 먹게 해 달라~ "그런데 직원들이 내 눈앞에서 일하지 않아도 업무 수행과 실적이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한(오히려 작년 결산 보고 성과가 더 좋았다고 함) 회사 측은 재택의 장점을 알아버렸고 굳이 회사에서 방역하면서 직원들이 모두 모여서 일해야 할 필요성을 잃어버렸다. 오히려 복지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필요한 업무 미팅은 화상회의로 진행된다. 개인적으로 나도 화상 미팅을 선호한다. 편하니까~
화상 미팅의 최대 장점은 자리 배치 공간 구조가 만들어주는 권력이 없다는 점이다.
7장에서 남북통일을 위한 엣지시티를 건설하자는 이야기는 .. 현실과 어느 정도의 괴리감이 있는지 몰라도 상상만으로도 설레었다. 걸어서 DMZ를 간다?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역시 미래는 꿈꾸는 자들이 만든다. 정말로 남과 북의 청춘 남녀가 걸어서 만나서 교제하고 연애하는 그런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의 획일화된 아파트에 발코니 공간만 만들어도 뭔가 확 트인 안구 정화 느낌이 든다. 한국의 조카가 미국에 와서 사촌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한국은 아파트야~". 아파트 자체가 현금이라는데 획일화된 아파트가가 다른 디자인으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면 다양한 도시와 다양한 주거가 가능하다. 9장의 주택 정책에 대한 부분은 단순히 건축가의 시선으로만 읽을 수는 없고 건축과 경제학 그리고 정치 문제까지 생각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건축가의 특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읽는 독자도 마음껏 상상하고 꿈꿀 수 있기를.
19세기에 석탄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을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석유와 수소, 그 당시의 기술적 완성도는 석유와 수소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석유가 수소보다 생산 단가가 아주 조금 싸다는 이유로 석유를 선택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환경 위기의 세상이다. 만약에 그 당시 사람들이 현명하게 수소를 택했다면 지금은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 역사 중에 어느 시대의 선택이 이후 수백 년의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금이 그런 시대다. 기후 변화와 전염병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백 년 후의 인류 역사를 결정하는 거룩한 책임을 짊어진 세대다.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오늘의 선택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닫는 글
정혜윤의 <앞으로 올 사랑, 디스토피아 시대의 열 가지 사랑 이야기>를 리뷰하면서 우리 시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것뿐이라는 말을 했다. 유현준의 책 마지막 문구를 곱씹으면서 지금 우리가 그런 역사적 선택의 중요한 변곡점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연결되어 있는 이 땅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했다. 건축, 재개발, 신축.. 다 좋지만 자연도, 땅도 쉼이 필요하다. 용산 미군 기지가 사라지고 그 넓은 땅에 생태공원이 지어지면 서울이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DMZ에 남과 북을 연결하는 도로가 생기고 주변에 함께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생겨서 이 두 다리로 걸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꿈같을까.
내 앞마당도 좋지만 이웃들과 함께 공유하는 공동마당도 좋다. 우리가 한강을 좋아하는 것은 물(강)이 있어서도 그렇지만 함께하는 공간과 추억이 있어서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융합하고 함께 하는 공간의 미래를 꿈꾸는 시간이었다.
목차
여는 글: 전염병은 공간을 바꾸고, 공간은 사회를 바꾼다
거짓 선지자들의 시대 / 마스크가 만드는 관계와 공간 / 전염병, 인류, 도시 / 공간의 해체와 재구성, 권력의 해체와 재구성
1장.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중산층 집이 ‘방 세 개 아파트’인 이유 / 155퍼센트 늘어난 집의 의무 / 4도3촌과 가구의 재구성 / 부엌의 새로운 위치 / 사적인 외부 공간의 필요 / 나무를 심는 발코니 / 벽식 구조에서 기둥식 구조로 / 목구조 고층 건물의 시대 / 최고의 친환경 건축 / 포스트코로나 아파트의 5원칙
2장. 종교의 위기와 기회
종교와 공간 / 벽과 계단의 발명 / 제사장과 아이돌 / 신전과 고깃집 / 예배당의 의자가 가로로 긴 이유 / 스님 vs 목사님 / 시공간 공유가 만드는 공동체 의식 / 이슬람교가 기도를 하루에 다섯 번 드리게 하는 이유 / 전염병이 만드는 종교 권력의 해체와 재구성
3장. 천 명의 학생 천 개의 교육 과정
교실 수업과 온라인 수업의 차이 / 화가와 선생님 / 페이스북과 온라인 수업 / 교우 관계의 부재 / 종이 책, 오디오북, 동영상 수업 / 전교 일등이 없는 학교 / 미래 학교 시나리오 / 교육 큐레이터 선생님 / 교육이란 무엇인가
4장. 출근은 계속할 것인가
일자리의 55퍼센트 / 우리나라 직장에 회식이 많은 이유 / 재택근무와 일자리의 미래 / 거점 위성 오피스 / 내 자리는 필요하다 / 마스크가 바꾸는 인간관계 / 평등한 화상회의 / 슈렉 vs 라이온 킹 / 대형 조직의 관리와 기업 철학
5장. 전염병은 도시를 해체시킬까
전염병과 도시의 역사 / 얀 겔의 실험 / 인구 2배, 경쟁력 2.15배 / 시냅스 총량 증가의 법칙 /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인간
6장. 지상에 공원을 만들어 줄 자율 주행 지하 물류 터널
공통의 추억 / 소셜 믹스와 재건축 / 소셜 믹스의 첫 단추, 발코니 / 정사각형 공원보다 선형의 공원 / 자율 주행 전용 지하 물류 터널 / 가까운 미래의 상상
7장. 그린벨트 보존과 남북통일을 위한 엣지시티
그린벨트의 역사 / LA vs 뉴욕 / 반도체 회로 같은 도시 패턴 / LH의 새로운 임무 / 엣지시티: 도시와 접한 그린벨트의 경계만 개발하라 / 남북한 융합을 위한 DMZ 평화 엣지시티 / 농사꾼의 도시와 장사꾼의 도시 / 소규모 재개발의 장점
8장. 상업 시설의 위기와 진화
디즈니의 위기 / 상업의 진화는 공간의 진화 /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공간 /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 오프라인 상업 공간의 진화와 축소 / 새로운 빌딩 양식의 발명 / 두 가지 갈림길 / 전염병이 만드는 공간 양극화 / 공간 소비 vs 물건 소비 / 맛집 앞에 줄을 서는 이유 / 줄어드는 오피스 공간 / 폭이 넓은 상업, 폭이 좁은 주거
9장. 청년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홍길동 vs 세종대왕 / 21세기 소작농: 월세 / 플랫폼 비즈니스 같은 부동산 / 정부와 대자본가만 지주가 되는 세상 / 악당과 위선자의 시대 / 경계부를 점차 내려야 한다 / 인구수보다는 세대수 / 프루이트 아이고 vs 강남 / 칠레의 저소득층 주택 정책
10장. 국토 균형 발전을 만드는 방법
화폐가 된 아파트 / 서울 한강 전망 vs 뉴욕 허드슨강 전망 / 짝퉁 도시의 양산 / 다양성을 죽이는 심의와 사라져야 할 자문 / 21세기형 스마트 타운 / 소제동 하드웨어 + 대덕연구단지 소프트웨어 / 대전 속 피렌체 / 여주가 사는 길 / 여주에서의 3일 / 라이프 스타일 만들기
11장. 공간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하기
나를 안아 주는 교회 / 건물 안의 사람이 도시 풍경이 되는 건물 / 뒷골목의 사람도 바다를 볼 수 있게
닫는 글: 기후 변화와 전염병- 새로운 시대를 만들 기회
기준이 바뀌는 세상 / 코로나 블루와 공간 / 고래가 코끼리보다 큰 이유 / 기술 발달과 저출산의 시대 / 새로운 뼈대가 필요한 시대 / 조선의 르네상스를 만든 영조의 청계천 준설 작업 /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될 새로운 공간 /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
저자의 다른 책→
책 <어디서 살 것인가> 리뷰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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