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사람들은 건축물을 물질로 생각하지만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건축과 사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의미를 규정한다. 그렇다면 건축은 무엇인가?
건축가의 시선을 따라 가 보는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생각해보는 건축 여행~
1994년에 발견된 괴베클리 테페는 터기 남동부 샤늘르우르파 외렌직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이다. 탄소 측정에 따르면 기 건축물은 1만 ~8천 년경에 축조되었다고 추정한다. 구석기 시대를 기원전 1만 1천 년으로 보니 이 건축물은 구석기 때 인류가 동굴 밖에 나오면서 짓기 시작한 최초의 것이다. 돌 하나의 무게가 15톤이라면 당시에 바퀴도 도구도 없었는데 어떻게 옮길 수 있었을까?
이 건축물은 농업혁명 이전에 지어졌다. 사람들은 농업이 시작되면서 한곳에 모여서 살았다고 추정하는데 이 건축물을 지으려면 오랜 시간 함께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해석하면 농업으로 건축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건축이 농업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인간은 사후세계를 믿기 시작하면서 괴베클리같은 신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농업보다 본능적 행위로 해석한다.
건축은 거울이다. 정확히 알 수 없는 인류의 역사를 알려주는 인간 본질을 반영하는 행위이자 결과물이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성향을 띠는 데는 학교 건축이 큰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은 학교와 교도소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식판에 배급받는 곳도 교도소와 학교 그리고 군대다. 그래서 필자는 학교 건축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고 분절되어야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밖에 나와서 자연을 접할 수 있다.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현대인들이 tv를 많이 보는 이유가 마당이 없어서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애플과 구글 건축의 예를 든다. 캘리포니아는 지진 때문에 고층건물이 없다. 건물이 저층으로 만들어지면 친구는 세 배 많아지고 생각의 시너지 효과가 세배나 나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왜 창의적 천재들이 나오지 않을까?
실험에 의하면 3미터 이상의 높은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 키보다 위로 기능 없이 비어 있는 공간이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차고가 없었다면 애플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는 물음표를 던진다. 정말 잡스는 차고가 없었다면 애플을 만들지 못했을까? 그보다 다양성의 환경과 개인의 창의력, 천재성이 가져온 시너지 효과였지 않았을까. 같은 캘리포니아 땅, 우리 집 차고는 그저 차고일 뿐이다.)
술래잡기는 창의적으로 공간을 찾는 기가 막힌 놀이다. 술래잡기를 하면서 아이들은 문 뒤쪽이나 장롱과 벽 사이 등 자기 몸의 크기와 모양을 상상하며 공간을 찾는다. 아이들은 ‘시간’만 있으면 ‘공간’을 찾아서 ‘장소’로 만든다. 아이들은 천재 건축가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자.
57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기업 애플, 페이스북, 구글의 사옥은 모두 저층형이다. 지진과 사막지대 그리고 젊은 벤처기업이라는 문화가 만든 수평형 사옥들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4층 높이 애플 사옥은 동그란 도넛 모양으로 중앙에 거대한 숲이 조성되어 있다. 막다른 벽이 없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무한한 공간처럼 느낄 수 있는 구조다.
이런 탈중심의 시대적인 흐름은 최신 건축에 나타난다. ‘리좀’은 골목길 망처럼 여러 갈래로 엮여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유영만 교수가 미래에 전문가들을 연결하는 소통전문가를 이야기할 때 이야기한 ‘리좀’이다. 줄기와 뿌리와 계획할 수도 없는 새로운 것의 힘.)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부동산이 가장 비싼 곳은 뉴욕이다. 그런데 가장 작은 집에 사는 뉴요커들이 불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집 크기는 몇 평 안되지만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각종 공원을 오가며 도시 시설을 즐기도록 만든 건축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것에 맞는 건축과 시민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해져야 한다.
힙합 가수들이 후드티를 입는 이유를 ‘시선을 차단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려는 노력’으로 보았다. 자신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가장 저렴한 방식이다.
비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미국에서 후드티는 그냥 일상복이다. 남편의 옷장에 후디가 반이다. 운동복을 어디든 입고 갈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학교에서는 학교 티, 뮤직 티셔츠, 클럽 티셔츠를 저렴하게 판매하고 자주 입도록 권장하는 분위기다. 일주일에 한 번은 ‘SPIRIT DAY’로 옷을 입는다. 어제 고1 딸은 잠옷을 입었다. 파자마 데이를 ZOOM school에서도 한다. 일어나서 그냥 책상에 앉으면 되는 날.남편 회사도 로고가 적힌 티셔츠를 자주 나눠준다. 예전에 강연에서 나온 사람 말이 재밌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티셔츠를 나눠주는것 뿐 아니라 진짜 매니저급들도 입고 다니고 한국에서는 집에서만 입어야 하는 옷이라는 것이다. 그냥 이런 면 티에 후드티를 걸친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유는 날씨와 분위기인데 하루에 4계절이 다 있는 캘리포니아 날씨에 쉽게 착용하기 좋고 허리에 묶거나 가방에 쑤셔 넣어도 구김 없는 옷으로 후디가 제격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모자까지 달려있으니.
요즘 시대는 한 공간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원스톱 쇼핑을 원한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도 비 한 방울 안 맞고 지내고 더운 여름에도 땀 흘리지 않고 추운 겨울에도 코트 없이 지낼 수 있는 편리한 도시 공간을 추구한다. 이렇게 인공적으로 조절되는 공간은 자연으로 격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히려 다시 땀을 흘리려고 사우나를 찾고 골목길 상권을 찾아다니며 추억을 찾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로마제국은 천 년 넘게 지속된 반면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은 150년 만에 멸망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찾은 이유는 몽골제국에 건축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물은 제국이 정복 지를 통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집트는 피라미드, 로마는 콜로세움, 중국은 만리장성 그런데 몽골인은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이었기에 건축물을 짓지 않았다. 빠른 이동과 전쟁에는 능했지만 남기는데 실패했고 신화적 존재로만 남았다.
건축물은 과시의 상징이다. 이런 과시는 사실 두려움에서 나온다. 피라미드를 지은 이집트의 파라오는 근방의 메소포타미아 제국을 두려워했고 만리장성을 지은 진시황제는 자신을 오랑캐라고 폄하하는 북방 민족들을 두려워했다. 이런 특성은 상층부를 더 크게 만드는 가분수 건축으로 과시를 하기도 한다. 건축뿐이겠는가 사람의 헤어스타일도 신체의 가장 높은 부분을 통해 볼륨감을 키웠다. 왕관, 금관, 상투, 갓, 영국 모자와 같은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새로운 발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이들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했다. 밴더빌트가 깐 기찻길 위로 기차를 타고 록펠러가 공급하는 등유로 램프를 켜던 사람들은 포드가 만든 자동차에 록펠러가 만든 휘발유를 넣어 달리고 카네기가 만든 고층 건물에서 일하고 퇴근 후 저녁에는 모건이 만든 발전소 전기를 이용해 에디슨이 만든 전구를 켜고 지내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수메르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이다. 두 문명은 모두 건조기후대에 속한다. 문명이 발달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교류가 필요하기 때문에 도시 형성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인구가 밀접한 도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전염병이었고 전염병이 돌지 않는 데는 습한 기후보다는 건조한 기후가 유리했다. 또 하나는 물이 풍부한 지역인 것도 유리했다. 관개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며 큰 도시를 형성하여 최초의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기후가 바뀌면 건축과 도시와 사회가 바뀐다. 처마의 모양이 지역마다 다른 것도 위도에 따라서 나온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보다 위도가 낮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처마는 더 급하게 올라가고 북쪽으로 갈수록 곡선은 낮아진다. 이렇듯 도시와 건축의 진화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문제 해결을 하는 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에 강남 르네상스 호텔과 한전 사옥이 철거되었다. 기껏해야 30년의 역사도 안된 건물들이 철거되는 것은 마치 삼십대에 주름을 펴겠다고 억지로 성형시술을 받은 것처럼 어색하다. 서울이 6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것치고는 너무 어려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건축은 해외 사레를 보고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 맞는 창의적인 건축과 또 보존이 맞물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의 아들 이야기를 하며 세대 간의 공간과 미디어 대결을 이야기한다. 공간 중심의 가치관에서 미디어 중심으로 이전하는 시대. 기성세대에게 행복이 집, 자동차, 여행 이런 실제 공간적인 것이었다면 지금 세대에게 행복은 가상공간의 소비에 가깝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우리의 도시와 건축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어제 뉴스에 무인자동차에 탄 젊은이들이 음주를 하며 즐기는 위험한 질주 영상이 나왔다. 실제로 요즘 젊은이들이 운전하기를 꺼려 하는데 이유가 운전 중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라고 한다. 테슬라의 창업자는 곧 다가올 미래에는 인간이 운전하는 것이 불법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자신의 ‘눈’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고 시대를 분석한다.
특별히 유현준 건축가의 눈으로 보는 해석도 건축을 잘 모르는 나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라는 말은 우리가 한 가지에는 전문가 즉 달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길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해석할 우를 범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고 어느 관점에도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 필요하다. 책은 가장 좋은 통로다.
유현준 건축가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근대화를 늦게 이룬 것이 ‘온돌’ 난방 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했듯 도시밀집화가 근대화를 이루는데 우리는 온돌 시스템으로 단층 주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진 때문에 온돌 대신에 다다미방에 ‘화로’를 놓는 시스템을 사용하였고 그래서 이 층짜리 주거형식을 일찍 시작하였다. 고밀화된 도시 덕분에 상인 계층이 생겨나고 빠른 개항으로 수출을 하였다. 건축과 사회는 생명체와 같이 연동되고 공진화한다.
세상의 갈등이 줄어들기 바라는 마음에서 더 화목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건축을 한다는 건축가. 제대로 설계된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화목할 수 있는 건축을 꿈꾼다. 필자는 책의 5분의 1을 두바이에서 한국까지 20시간의 비행기 안에서 썼다고 한다. 지루한 공간,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자면서 지루함을 견디는 공간에서 창조적인 시간으로 쓰는 작가의 열정을 보면 창조성도 성공도 운이 좋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나는 요즘 ‘어떻게 살 것인가’의 화두로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 ‘어디서 살 것인가?’는 신선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어디서’는 장소이자 공간이다. 그 공간은 물질이기도 하고 관계이기도 하다. 나는 건축물을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행복한 공간은 만들 수 있다.
'북 카페 > 한 권의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어령의 지(知)의 최전선 (0) | 2020.10.01 |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시집 (0) | 2020.09.24 |
김훈 <공터에서> (0) | 2020.09.22 |
출판하는 마음 (2) | 2020.09.18 |
글쓰기의 최전선 (2) | 2020.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