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지(知)의 최전선
우리 시대 최고의 석학, 이어령 교수님과 정형모 중앙일보 기자의 대담을 신문에 연재하고 펴낸 책이다. 기자는 매주 월요일 오후 2시 교수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받아 적고 타자로 치고 수정을 받아 고치는 작업을 반복했다. 일대일 특강을 받는 행운의 시간이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불리는 이어령 교수는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읽고 있는가?
87세로 암 투병 중인 이어령 교수. 나는 이어령 교수의 책을 만날 때마다 이것이 혹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노병이 아니다 여전히 '지(知)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야전 사령관이다. 나이와 암 투병도 무색하게 하는 노장의 열정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보고 통찰하도록 하는 이야기. 책의 출판도 5년이 흘렀다. 책에서 등장하는 메르스와의 전투를 보면서 지금의 코로나를 건넌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인것은 마찬가지다. 지금으로부터의 5년은 또 어떻게 흘러갈까. 이어령 교수는 어떤 이야기를 또 준비하고 계실까.
이어령 교수 서재에는 고양이 일곱 마리가 있다.
캣 CAT , Computer Aided Thinking 그래서 CAT이다. 왜 그렇게 많은 컴퓨터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윈도우 98, 윈도우 7, 윈도우8, 애플까지 할아버지, 아들, 손자, 증손의 고양이 가족처럼 그 CAT이 다 다른 이유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컴퓨터 6대는 서재에 노트북 하나는 침실에~
그는 88올림픽 대본을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문인 가운데 컴퓨터로 글을 쓴 1호다. 침실에서 노트북을 두고 잠들 때까지 작업을 할 정도로 컴퓨터와 동행 한다. 지의 최전선에서 이제는 더 배울 것이 없지 않을까 싶은데 여전히 TED 강연을 듣고 정리하며 글을 쓴다. 하나의 컴퓨터가 동영상으로 돌아갈 때 하나의 컴퓨터에선 열심히 글을 입력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노트에 메모한 글과 녹음된 말을 워드 프로세서로 옮기는 그의 전작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 ‘디지로그’ 방법으로 글을 쓴다. 실시간 전투가 벌어지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그는 최전선에서 전투 중이다. 지식의 향유를 위한 앎이 아니라 바로 오늘 사용하는 지식의 배에서 매일 전 세계의 지식을 낚는다.
앞으로 어떤 시장이 올까? 자본주의 경제가 아니라 생명 경제다.
아마존은 드론으로 배달을 한다지만 앞으로는 3D프린터로 찍어내는 시대가 온다. 빛의 제조업이 아닌 운송업이다.
이제 아날로그 공감도 디지털 공간도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거야. 우주의 벽이 사라지는 거지. 물건뿐이겠어? 모든 인터페이스가 바뀔 거야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지. 이게 바로 디지로그 세상이야
24쪽
매일 눈뜨면 달라지는 세상을 따라가는 것도 버거운데 아직 아무도 가 보지 못한 길, 디지로그 세상을 미리 생각하는 이어령 교수는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까?
문득 성경의 가나안 정탐꾼들이 생각난다. 새로운 땅을 정탐한 사람들은 대부분 악평을 했고 단 두 명만 호평을 했다. 그 땅은 비옥하고 충분히 정복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땅은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어떤 믿음으로 호평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노장의 배포가 아니라 든든한 지식의 창고를 가진 자의 믿음이자 기대다. 그런 기대 때문인가 그는 날마다 새로운 지식의 광활한 초원을 달린다.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이어령 교수는 3D 프린팅을 이용해 청주시를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살리는 문화 도시로 만드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 치매는 다른 것이 아니란다. 자신의 전통과 살아온 역사. 문화를 잊으면 그게 바로 치매라고 한다. 고층 빌딩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이미 백 년 전에 끝났다고 열변을 토한다. 3D로 가장 먼저 집을 지은 중국을 보라. 이제 서에서 동으로 문명의 축이 바뀐다. 새로운 기술이 몰고 온 그 세계에 우뚝 선 아시아를 상상하면 가슴이 설렌다. 옛날엔 낚시로 텍스트의 의미를 하나하나 낚았다면 요즘은 그물로 그물로 ‘의미의 고기 떼’를 잡아 올리는 하이퍼텍스트의 시대다.
응답하라!대한민국은 대륙국가인가 해양국가인가!
동서 냉전 때 전쟁은 어디서 일어났는가! 유일하게 한국에서 진행되었다. 왜 하필 한반도일까. 극동과 극서 두 나라의 섬을 이어주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반도를 복원하지 않으면 이 세계의 움직임은 대륙화와 해양화의 끝없는 양극화 전쟁을 일으킬 뿐이다. 중대한 짐이 한반도의 어깨에 올려져 있다. 중국을 비롯한 대륙 국가의 입김이 우리를 압박할수록 박쥐 신세가 되고 만다. 우리를 강점했던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보면 해양 국가가 아니라 대륙 국가의 편에 서 있었다. 대륙 지정학, 육군이 지배하는 제국주의 일본, 독일, 이태리의 대륙국가 편에서 해양 국가인 영국, 미국과 싸웠다.
고토 신페이가 정계에서 은퇴한 이토 히로부미를 설득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네트워크를 만들자고. 그는 러시아 재무 대신 코코체프와 회담하러 가는 하얼빈에서 안중근에게 저격을 당했다. 안중근은 민족의 영웅뿐 아니라 해양 세력의 영웅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반도의 회복 그것은 우리 민족의 서원이 다가 아니라 대륙, 해양이 패권 경쟁으로 또 다른 냉전시대의 지구 파멸 위기로부터 구하는 지구 시민의 꿈인 것이다.
그러나 낙관할 수 없는 한국이 당면한 다섯 가지 위협 요소가 있다.
*북한 변수
*저출산에 의한 잠재 성장률 저하
*구조적인 내수 취약성
*비정규 고용 증가 등 분배 상의 양극화 현상 확대
*소득 불안정에 의한 가계부채 증가
아시아란 말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럽 땅을 제외한 지역을 두루뭉수리로 싸잡아 확대 재생산한 말이다. 그러나 아시아는 유럽인의 머리에 있지만 아시아인의 심장에는 없는 말이다. 한국에서 보면 동남아가 서남쪽에 있지만 동남아로 부르는 이유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땅도 우리 중심으로 생각하며 지내온 적이 없다. 그러니 아시안 게임을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그 이름의 어원부터 의심을 품고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룩 Look! 아시아!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정신의 높이뛰기, 기술의 빨리 뛰기, 부정의 장애물 넘기 ….. 그런데 조건이 있지. 이 경기에서 이기려면 한국,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독수리의 눈과 개미의 눈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해ㅣ. 우리가 무심히 쓰고 있는 작은 단어 하나에도 앞으로 우리의 운명이 걸릴 수 있거든
100쪽
독수리의 눈은 지구를 보는 글로벌 아이고 개미의 눈은 고향 땅을 보는 로컬 아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차이를 통해서만 사물을 식별할 수 있는 의미 체계, 그 속에 숨어 있는 인권 문제입니다. 이항 대립 구조의 문화 속에서 침해당하고 있으면서도 침해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는 우리의 행동 말입니다.
모든 것을 오른쪽, 왼쪽으로 가르고 그 차이와 대립 관계로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이항 대립의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와 다른 인간을 차별하고 억압하고 배제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오른손 잡이를 표준으로 삼는 경우, 그것은 곧 왼손잡이를 억압 또는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니 오른쪽이 곧 권리가 되는 human rights의 용어 속에는 이미 비인권적인 편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270쪽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요즘은 일상 가운데 '당연한 것들'에 대한 것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 많다. 엄밀히 말하면 '당연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다. 나는 오른손잡이고 우리 가족 중에도 왼손잡이가 없다. 내가자랐을 때도 아이들을 키울 때도 그러하니 나의 생활은 모든 것이 당연히 오른손 잡이 중심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왼손잡이였다면 당연하지 않았을 일이다.
human right이 있다면 human left가 있는 것이고 공존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중요한 것은 오른손이냐 왼손이냐가 아니다. 우리의 중심에 이항 대립의 구조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도 웬만한 것은 손해 보고 따지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던 때가 있었다. 가까운 사람 사이에는 한 푼 두 푼 따지지 않았다. 그게 가족이다. “우리가 남이가” 의 이 사이비 가족주의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
모든 것이 숫자화되고 금액으로 표시되는 백화점에서도 “양말 몇 컬레만 주세요”, “대충 한 두어서너 개만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컴퓨터라면 에러나 날 테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열 길 물속이 아니라 한 길 사람 속을 재는 한국식 상거래다. 심지어 정확한 도량형 기기를 만들어줘도, 한국 상인들은 부정확하게 잰다. 소위 하늘 밑에 둘도 없는 기상천외한 고봉 문화다. ….(....)쌀집 주인은 쌀이 흘러내리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계속 손을 올려 고봉을 만든다. 이러한 몸짓 속에서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 냉정한 숫자를 따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인정의 인터페이스가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처럼, 친구처럼…..사고파는 것이지만 하나라도 더 주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시장이 성립된다.
이어령 <지의 최전선> 책 293쪽
한국 문화 이것이 약일까 독일까?
조선왕조 때도 이런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왜관에서 일본과 한국 사이에 곡물이 거래될 때, 일본은 깍아 되고, 우리는 고봉으로 담아 문제가 되었다.
서양식이야 동양식이냐의 문제인가?
물질이 사람의 속을 잴 수 있는것인가?
요즘 같은 때에 정확한 수치를 재는 것이 무엇이 문제겠냐만은 잴수 없는 것이 있으니 사람의 마음, 인격, 생각이다.
이것은 한국문화에만 있는 '정'이라는 것처럼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가 남이가"가 결국 '정'을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어령 교수에게 도대체 이런 자료는 다 어디서 얻는냐고 묻는다.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유효한 것을 끌어내려면 항상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빅 데이터 연구에 인문학이 중요하다. 관심이 많고 잡담, 잡학을 해야 한다고 답한다.
대담 시기에 삼성과 애플의 소송이 뜨거웠다. 초원은 열렸다 그가 말하는 초원은 그런 지식 게임의 씨름판이다. 특허 싸움이다. 미국은 이미 1787년 헌법을 기초할 당시에 특허법을 명시했다. 링컨은 특허 시스템은 천재라는 불꽃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세계 지도를 펼쳐라. 어디가 동이고 어디가 서인가? 어디가 중심이란 말인가? 중근 지구본을 보라.
평면 지도를 찢고 지구본으로 세상을 보자고. 동도 서도 없고 위도 아래도 없어. 오랫동안 오랑캐 땅에서 살아온 한국, 중국, 일본만 있던 아시아는 이제 가라. 서양의 원근법은 항상 그림을 그리는 자의 시점에서 풍경을 보지. 하지만 겸제의 금강산 그림은 어때? 여기저기 헬리콥터를 타고 그린 것처럼 다(多)시점으로 되어 있잖아. 가까운 것이 작고 먼 데 있는 것을 크게 그린 역원근법의 세계. 그래서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온통 항아리처럼 둥글게 둥글게 그려진 그 전체의 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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