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 카페/한 권의 책

지도 위에 그려진 인류 문명의 유쾌한 탐험 On the MAP

by 북앤라떼 2020. 10. 3.

지도 위의 인문학: On the Map

지도 위에 그려진 인류 문명의 유쾌한 탐험

사이먼 가필드

이 세상에 지도가 이렇게나 다양하게 존재했는지 몰랐다. 지도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긴 세계지도 한 장 방에 붙이고(지금이야 이것도 안하지만) 지구본은 인테리어 장식용으로 하나쯤 가져왔지만 일반적으로 나에게 지도는 여행을 갈 때 여행 가이드북 역할이었다. 그러다 GPS를 거쳐 이제는 핸드폰 안에서 언제든지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디지털 시대에 종이 지도는 사라져가는 아날로그 역사가 되고있다. 588쪽이나 되는 이 두꺼운 지도에 대한 이야기책은 실로 방대하다. 너무 방대하여 내가 길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나올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다. 하지만 지도에 대한 개념을 바꿀 수 있고 지도의 역사를 둘러보는 아주 재밌는 책이다.

© jvkedavies, 출처 Unsplash

구글은 전 세계 지도를 휴대 전화에 쏙 들어가도록 작게 만들었는데 처음 지도는 그 양과 사이즈가 정말 방대했다. 그것은 지도가 아니라 지도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책에서 다루는 지도는 최초의 지도 이야기부터 최신에 선거 투표 지도나 신종 전염병의 확산의 패턴까지 그 이야기는 정말 다양하다. 책을 읽는 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지도에 열광했던가를 느끼게 되는데 사실 그 열광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보여준 것이 구글 어스가 무료 서비스로 공개될 때 시스템 전체가 멎어버릴 뻔 한 사태가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도란 무엇일까? 지도에는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단서가 담겨 있다. 최근 스페인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1만 4천 년 전 돌에 새긴 지도 그림은 인류 최초의 지도로 상상한다. 지도는 사람들이 무엇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며 어떻게 현재까지 오게 되었는지 인류의 발전 역사를 보여주는 산 증거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지도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존재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방식은 아날로그의 출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중세에는 위험하거나 미답사한 지역을 지도에 표시할 때

“여기에는 용이 출몰하니 조심하시오”

라는 경고를 적어주었다.

‘그곳으로 가지 마시오’

어디선가 본듯한 경고 문구를 넣어주는 것이 지도의 큰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넣는 것도 자유지만 감추고 빼는 것도 제작자 마음대로였다. 다큐가 아닌 창작 소설에 가까운 영역.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 여행을 한 여행담이다. 그가 제노바 감옥에 갇혀있을 때 그가 이야기하고 감방 동료 '루스티켈로 다 피사'가 썼다고 전해진다. 폴로의 모험담이 어느 정도나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엄청난 영향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폴로의 아버지 니콜로와 숙부 마페오가 동쪽으로 여행을 갔다 서쪽으로 돌아와서 폴로도 나중에 함께 여행을 갔다가 온 것에 대한 내용이지만 실제로 책에 자세히 설명한 대목은 없으며 바다나 육지를 언급하지 않은 채 무역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 대목이 많다. 그 여정은 분명치 않으나 15세기 유럽인의 세계관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 책을 애지중지했던 콜럼버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서양의 지도는 착취의 전망 책과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최초의 중국 지도는 1137년의 것이다.

우리나라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 내가 첨부하면,1402년에 제작한 세계지도인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지도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까지 담겨 있는 우수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의 이 지도에서 몹시 놀라운 점은 북쪽이 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 지도처럼 보이는 최초의 지도가 1402년 한국에서 나왔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제리 브로톤, <열 두 지도로 본 세계사>)"

15세기 말까지 나온 서양의 어떤 지도보다 우월하다."

(<THE MONGOLS AND THE WEST 1221-1410>)

"콜럼버스가 가장 우수한 지도를 보려고 했다면 한국을 찾아갔어야 했다. 강리도에서 자신의 고향 제노아를 찾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레드야드 콜롬비아대 명예교수, <CIRCA 1492>)

마르텔루스 지도를 보면 포르투갈인이 아프리카를 정복하고 최초로 그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87년 전에 한국에서 아프리카를 그렸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나.역사는 아는 만큼 바뀐다. 가려진 진실들은 시간에 따라 밝혀지고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며칠 전 '콜럼버스의 날(10월 둘째 주를 미국에서는 1937년부터 지정하여 지키고 있다)'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그가 아님은 모두가 아는 진실이다.[게다가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누가 최초로 발견한 땅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것에 있다. 콜럼버스는 당시 탐험한 땅을 '인도'로 생각하여 인디언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인디언의 땅에서 그들을 몰라낸 사람인 것이다. 그것은 개척이 아니라 제노사이드인데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지킨다는 것은 후대에 반드시 비판을 받을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산 것이 아니라 백만이 넘는 인구를 500명이라는 숫자로 줄기까지 그들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니 어찌 이 사실을 아는 우리에게 콜럼버스가 영웅이라고 아이들에게 교육시킬 수 있는가. 지금이라도 원주민들을 향해 사죄의 무릎을 꿇어야 할 법]

무려 500년 전에 고대 북유럽 탐험가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정착했다. <빈랜드 지도>를 보면 충격적인 사실이 증명된다. 하나는 이미 콜럼버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바이킹이 이 섬을 발견한 시점은 985년에서 1001년 사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감추어져 왔다. 아 지도를 숨기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의 암투가 눈에 지도처럼 그려진다. 누군가는 지도 때문에 목숨을 걸었을 것이고 실제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지도는 진실의 목소리이자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일자리를 잃고 1495년 남아메리카행 스페인 선박에 탑승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의 이름을 지금까지 부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것은 인쇄본으로 나돌았던 두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1507년 프랑스 북부에서 발견된 베스푸치의 편지에는 1501년 여름 남아메리카 해안을 항해한 이야기로 신세계가 담겨 있었다. ‘우리가 아는 어떤 지역보다도 온화하고 쾌적한 기후’를 묘사한 것이다. 그는 콜럼버스보다 1년 전에 항해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1년 뒤로 나온다. 어쨌든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시대에서 이 편지는 지금의 아메리카의 이름을 만들어냈으니 아마 그는 작가가 될 정도로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아메리카는 시작부터 잘못 그려졌다는 ㅋ

더 재밌는 이야기도 있다. 1519년 코르테스는 멕시코 상륙을 앞두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 약탈하려는 장소의 이름을 물었는데 한 사람이 “마 쿠바 단”이라고 한 것을 “유카탄”으로 알아듣고 지도에 썼다. 450년 뒤에 밝혀진 진실은 ‘마 쿠바 단’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 짓기가 쉬울 수가!

한때는 내가 있는 캘리포니아주가 섬으로 그려진 적이 있었단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그들은 캘리포니아를 한 바퀴 돌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당연하지!)

그렇게 본토를 떨어져서 200년이나 존재했던 캘리포니아. 내가 섬에 살뻔했네.

그러다 다시 본토에 붙게 된 것은 스페인의 페르난도 7세가 1747년에 내린 칙령 때문이라고 한다. ‘더 이상 캘리포니아를 섬으로 부르지 말라~~~’

비밀결사대를 만들어 지도의 진위를 파악하는 일을 수년간하기도 했다.

이 지도에 매료되지 않을 방법이 있는가. 이 이야기만 읽어도 흥분되는데 말이다.

한때는 지도를 계시처럼 여기기도 했다.

16세기 초에 천 점을 찍은 <발트제 뮐러 지도>는 지금 단 한 점이 남았다. 이 지도는 천만 달러로 역사상 최고 몸값으로 워싱턴 DC로 모셔왔다.

그 외에도 재밌는 지도들은 너무나 많다. 목에 걸 수 있도록 제작한 <순은 드레이크 항해 지도>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당부로 항로를 9년이나 숨기면서 특권층의 목에 걸도록 만든 장신구 역할만 하기도 했다. 그 장신구는 사실 세계 일주의 중요한 지리적 정보와 무자비한 해적질의 역사를 기록한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 뒤 사람들은 현대 지도의 아버지인 메르카토르가 1569년에 만든 고전 지도에 등장한 용어를 사용하여 ‘아틀라스(Atlas)’로 지도책을 부르기 시작했다. 책 속으로 세계가 들어간 것이다. 최초의 지도책은 1477년 블로냐에서 인쇄된 책으로 본다. 그 뒤 사람들은 자신만의 지도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독특하고 다양한 컬렉션은 마치 지도 아이팟과 같았다.

화려한 지도의 경우는 지금 시가로 한 권이 사만 달러인 것도 있었다. 1626년에 60길더를 내면 맨해튼 섬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격으로 지도 한 권을 산 셈이다. <지구 플래티넘 에디션>은 딱 31부만 찍었는데 그 지도책을 배달하는데 전용 비행기가 필요하고 운반은 여섯 명이 해야 했다. 이 지도책은 가장 비싸고 가장 크고 가장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은 지도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지도책을 구하지 못해 안달했던 것일까?

그들에게 지도가 곧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여행~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어디든 사진과 함께 볼 수 있지만 그땐 지도가 여행이었던 것.

그래서 <클랭크 지도책>처럼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큰 지도책도 있었다.

세계 백서 지도(국가 검열 현황 지도), 세계 전쟁 지도, 세계 식량 지도, 세계 물 지도, 세계 담배 지도, 정치 지도 등등 그리고 동물로 표현한 지도와 19세기 시골 선생이 그린 살인 지도까지 지도는 정말로 셀 수 없이 다양하고 많다.

최초의 여행 가이드북은 기원후 330년 어느 무명의 여행자가 쓴 <보르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노정>이다. 그 지도에는 자신이 묵은 곳과 가는 데 걸린 시간과 운송 수단까지 기록되었다.

그러나 지도는 관광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사람들을 안내했다. 관광을 뜻하는 투어(tour)는 그리스어로 원형 운동을 뜻하는 ‘토르노스(tornos)’에서 비롯되었는데 후에 확장되어 떠났다가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여행이라는 의미가 된 것이다.

헤리퍼드 <마파문디: 중세의 세계 지도를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는 순례자들에게 지리적 관광 겸 영적인 관광으로서 기능했는데 그 안에는 야만의 세계와 기독교 교리의 메시지가 담겼다. 12세기에서 15세기의 <마파문디>는 중세 세계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물이다. 그것은 여행용이 아니었고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관심사를 진술하는 책에 가까웠다.

<엡슈토르프 지도>에는 문구가 빼곡히 적혀있다. 이 지도는 여행자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도중에 만날 즐거운 눈요깃거리도 알려주길 바란다고 적혀있다. 이 원본은 1943년 연합군 폭격으로 소실되어서 이젠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엡슈도르프지도(책 속에서)

 

존 오길비의 <거리지도>는 17세기 영국의 여행자들에게 몇 마일마다 여관이 있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지도는 단순한 동판화로 시작해서 색깔이 입혀졌고 최초의 채색 지도는 예루살렘 지도였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세계 최초의 대학이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와 시인 아폴로니우스를 비롯한 학자들이 그곳에서 토론을 하고 최초의 완전한 세계 지도를 그리는 일을 했다. 그러나 도서관이 세워지기 150년 전에 쓰여진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보면 그 역시 지도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지구를 동그랗게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구본은 1492년에 상인이었던 베하임이 만든 것으로 ‘에르트아펠(Erdapfel)’ 지구사과라 불렀다.

처칠은 가장 큰 지구본을 가지고 있었고 지도실까지 작전실로 활용하고 있을 만큼 전쟁이 지도의 역할을 컸다. 처칠은 침실에도 커다란 지도를 걸어놨다. 이동식 지도가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처칠은 1941년에서 1945년까지 바다에서 792시간, 하늘에서 339시간을 보냈다. 여행거리만 17만 9천 킬로미터였다. 전쟁이 끝난 뒤 영국 지리학자 프랭크 A. 드 바인 헌트는 이 처칠의 19회 여정을 지도로 작성했다.

지도를 소유하는 것은 가장 큰 부와 권력을 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 지도 판매자 또한 많은 부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지도를 만들기도 했지만 평가 절하된 지도를 사들여 열배 넘는 값을 부를 수 있었다. 그런 지도의 인기는 지도의 절도범까지 생기게 했다. 1006년 9월 에드워드 포브스 스마알리 3세라는 쉰 살의 남자는 42개월 징역형과 200만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버드, 예일, 영국 도서관 등의 기관에서 97점의 지도를 훔친 죄목이었다.

지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길 안내다. 잘못된 지도에 의지하여 길을 가다 낯선 길로 갔던 황당한 사례들은 너무 많았는데 이유는 그 지도라는 것이 엉터리인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이 흔하게 갈 수 없는 다른 우주 행성에 대한 지도는 얼마나 엉터리로 만들었을까? 상상의 지도를 그리다 1979년에 매리너9호가 보내온 영상을 통해서 NASA는 공식적인 ‘화성 지도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또한 영구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화, 책, 게임을 통해 나타난다. 그 옛날에 지도를 가진 자가 곧 정복자였다면 지금은 전원을 켜면 누구나 세계정복 전쟁에 나설 수가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지도 탐사를 하고 싶은 것은 우주뿐 아니라 인간의 뇌 영역도 포함된다. 뇌 신경과학자들은 여전히 뇌 지도화 작업을 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흥미로운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인간의 지도가 점점 더 발전해 가도록 인도했던 뇌 지도가 어떻게 다음 시대의 지도를 만들어갈지. 그래서 저자는 마무리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맺어야 하리라라고 끝맺고 있다.

 

On the Map 저자Simon Garfield출판ProfileBooks발매2013.09.05.

 

 

흥미로운 지도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길을 잃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다. 한 번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면 때로는 위험한 순간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겪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일까 길을 잃어본 경험이 없는 세대들은 실제로 인생의 길을 잃어버리곤 하는 것 같다. 늘 어딘가로 가라는 지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지도 밖의 일은 익숙하지 않다. 마치 프로그래밍이 안된 로봇처럼.

구글맵은 매달 친절하게 내가 한 달 동안 다닌 거리를 측정해서 지도를 만들어준다. 그러고 보니 지도의 원래 목적대로 내 존재 자체가 기록인 것이다. 오늘도 움직일 때마다 지도상의 한 점을 찍고 있는 것이구나. 갑자기 나도 다양한 지도를 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한 곳에서 모은 마그넷으로, 읽은 책의 작가들의 도시로의 여행 지도, 블로그 이웃들과의 거리 지도 등 생각지도 못한 지도가 나올 수도 있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둘 중 하나다. 생각하고 그려내는 사람과 생각하고도 그려내지 않는 사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