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19세기를 장식한 위대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로 일컬어진다. 그의 사상은 생철학과 실존주의, 분석철학, 구조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1844년 독일 라이프치히 작은 마을 뢰켄(Röcken)에서 루터교회 목사 카를 루트비히 니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도 루터 교회 목사의 딸이었다. 그의 이름은 국왕이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서 따온 이름인데 니체는 후에 그 이름에서 “빌헬름’을 빼 버린다.
니체의 아버지는 니체가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고 이후 어머니, 이모들, 할머니, 여동생 그렇게 살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김나지움 슐포르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신학과 고전 어문학 공부를 계속한다. 1865년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던 중 천재성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스위스 바젤 대학 문헌학 교수로 초빙된다. 그러다 1871년부터 건강이 나빠져서 편두통과 눈병, 소화불량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그 시기에 많은 저서를 집필했고 독창적인 철학을 개척했다.
처음에는 비판당하고 무시당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 그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고 1900년 쉰여섯의 나이로 바이마르의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마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저서들 중 가장 많이 거론되고 읽히는 대표 작품이다. 니체 스스로도 이 작품을 현존하는 가장 심오하고 고귀한 책이라 소개했다.
<차라투스트라>는 문학적 비유로 풀어낸 시적인 작품으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떠올리게도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누구인가!
차라투스트라는 기원전 1500년경에 살았던 고대 페르시아인의 예언자이며 페르시아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 ‘조로아스터교’ 창시자다. 지금도 이란에 50만 정도의 신도가 있다. 조로아스터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서로 영원히 적대적인 관계인 투쟁 관계로 인간과 역사를 해석했다. 조로아스터는 인간이 선의 편에서 악을 물리쳐야 한다는 도덕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인류의 모든 도덕을 거부하고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역설한 니체의 사상과 배치된다. 그러나 니체는 조로아스터의 예언자적인 어투를 빌어 자신의 철학 사상을 시적으로 풀어냈다.
…그대들이 모두 나를 부인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나는 다시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진실로, 나의 형제들이여,
그러면 나는 다른 눈으로 나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을 것이다.
다른 사랑으로 그대들을 사랑할 것이다
<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중>
모든 사람을 위하면서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니체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과 1부 방랑자 차라투스트라의 출발, 2부 미래의 인간인 '초인'을 찾아가는 여정, 3부 '영원회귀'의 오솔길을 거리는 차라투스트라의 고난, 4부 걷고 뛰고 춤추는 독자 이렇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말은 산속의 고독한 은둔자로서 명상과 고행으로 10년을 보낸 차라투스트라의 마음이 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은둔 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깨달음과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인간 세계로 내려온다. 그는 이제 신은 죽었으며 인간이 초인이 되어 스스로를 극복하라고 말한다.
2부에서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가르치는 내용이고 3부는 제자들과 헤어져서 혼자 항해를 떠나고 이후 다시 돌아와 동굴에서 영원 회귀를 열망하는 내용이다.
4부는 예언자, 왕, 마술사, 교황,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 추악한 인간, 비렁뱅이가 은둔 생활을 하는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온다. 니체는 그들을 ‘더 높은 인간’이라 부르며 초인이 되기 위한 길을 가르친다. 그들에 대한 동정심은 차라투스트라가 극복해야 할 최후의 시련이다. 그가 이것을 극복하고 동굴을 떠나는 것으로 작품은 끝난다.
그대들은 높이 있고 싶으면 위를 올려다본다.
나는 이미 높이 있기 때문에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대들 가운데 누가 웃으면서 높이 있을 수 있는가?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자는 모든 비극적인 유희와
비극적인 진지함을 비웃는다.
<1부 글 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신은 죽었다(Gott ist tot)!"
기독교 집안에서 신학을 공부했던 니체는 기독교를 토대로 한 유럽 문명사회의 몰락을 보며 신은 죽었다고 비판했다. 사람들은 그를 ‘무신론자’로 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존재했지만 신은 죽었다고 보았다. 죽었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비판한 것으로 생각한다. 효용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선하게 여겨왔던 도덕적 가치들의 존재도 비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오롯이 ‘허무주의’다. 신도 죽었고 인간의 가치도 죽었고 인간이 생각하던 오랜 전통의 가치도 죽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읽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했던 그는 여기서 기독교와 성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비아냥하고 조롱한다.
현대에도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는 것은 ‘앎과 삶’의 차이다. 사람들은 입으로 말하지만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인정한 유일한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었다. 교회의 타락을 비판했고 행함이 없는 믿음을 비판했다. 기독교인들은 그의 비판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것인 ‘초인’이다. 초인은 어떤 진리도 도덕도 믿지 않지만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사랑하고 개척한다. 초인은 창조하고 수확한다. 존재의 수레바퀴가 영원히 돌듯이 초인도 영원회귀하며 현재의 삶을 영원히 반복해서 산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나 그는 초인이 되지 못했다. 천재성을 인정받았고 스스로를 ‘망치 든 철학자’라고 말하며 자신의 철학론을 만들었지만 그 철학으로도 스스로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만약 그가 큰 깨달음을 얻었고 참 진리를 얻었다면 그 진리 안에서 분명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육체의 질병과 고통으로 괴로웠고 많은 책은 썼지만 10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살다 죽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질병과 고통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것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 신을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니체뿐 아니라 많은 이들은 자신의 고통 가운데 신은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신이 있는가 신이 있다면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방치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정말 니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니체만이 안다. 니체는 신학을 공부했지만 그것은 학문에 머물러 있었다. 니체가 허구적인 종교행위를 비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신 뿐 아니라 인간과 근본에 대한 허무주의와 그 바탕으로 쏟아낸 무수한 말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책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은 문학으로 동의하지만 그러나 그의 책을 읽어보기도 전에 “신은 죽었다”만으로 그의 사상을 다 이해하는척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덮어놓고 이 책과 그의 사상을 그저 위대한 것으로 여기는 것도 물론이다. 니체의 초인 사상을 나치 인종주의자들이 오용한 것처럼 그의 정신과 사상이 오용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정말 부인하고 싶었던 것,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철학을 좋아하고 인간이 철학적인 사유를 해야 한다고 믿지만 그때의 철학은 사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철학자들은 철학을 통해 ‘정치’를 꿈꾸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니체는 내가 만난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허무한 삶을 살다간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철학의 정점에 이르는 대표작이라 평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철학이 무엇인가를 고심하게 만든다.
-책 속으로
나의 형제여, 그대의 생각과 감정의 배후에는 막강한 명령권자, 미지의 현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자기이다. 자기는 그대의 육체 안에 살고 있고, 자기는 곧 그대의 육체이다. 그대의 가장 뛰어난 지혜보다 그대의 육체 안에 더 많은 이성이 깃들어있다. 42
나는 글로 쓰인 모든 것들 가운데서 오로지 피로 쓰인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인 것을 알게 되니라. 타인의 피를 이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빈둥거리며 책을 읽는 자들을 증오한다. 독자를 잘 아는 자는 독자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판치는 또 한 세기가 온다면 정신 자체가 악취를 풍길 것이다. 누구나 글 읽는 것을 배우게 된다면 글 쓰는 것만이 아니라 사고하는 것까지 영구히 타락할 것이다. 정신은 한때 신이었고 그러다 인간이 되었고 지금은 아예 천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50
삶에 대한 그대들의 사랑은 최고의 희망에 대한 사랑이어야 하고, 그대들의 최고의 희망은 삶에 대한 최고의 사상이어야 한다. 61
나는 선량한 자든 고약한 자든 모두 독을 마시게 되는 곳을 국가라 부른다. 선량한 자든 고약한 자든 모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곳, 모든 이들이 서서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삶>이라 부르는 곳! 이 쓸모없는 인간들을 보라! 그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자들의 업적과 현자들의 보물을 훔친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도둑질을 교양이라 부른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질병이 되고 재앙이 된다! 이 쓸모없는 인간들을 보라! 그들은 늘 병에 시달리며 쓸개즙을 토해 내고는 그것을 신문이라 부른다. 그들은 서로를 게걸스럽게 삼키면서 제대로 소화조차 하지 못한다. 64
<너>라는 말이 <나>라는 말보다 먼저 생겨났다. <너>는 성스러운 것으로 여기지만, <나>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웃에게로 몰려간다. 79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어긋나는 말을 하는 사람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는 척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자는 자신을 찾기 위해 이웃에게로 달려가고, 또 어떤 자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어 이웃에게로 달려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잘못된 사랑은 외로움을 감옥으로 만든다. 80
수많은 덧없는 어리석음, 그대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그대들의 결혼은 그 많은 덧없는 어리석음에 종지부를 찍는 기나긴 바보짓이다. 93
보라, 우리 주변이 얼마나 풍요로운가! 이 넘치는 풍성함 속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들은 일찍이 먼바다를 바라보면서 신을 입에 올렸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말하라고 가르쳤다. 신은 하나의 추측일 뿐이다. 나는 그대들의 추측이 그대들의 창조적인 의지를 앞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들이 신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112
최근에 나는 악마가 이런 말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신은 죽었다. 신은 인간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죽었다>.119
오, 성직자들이 지은 오두막들을 보라! 저들은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자신들의 동굴을 교회라 부른다. 오, 이 날조된 빛이여, 이 혼탁한 공기여! 영혼의 드높은 비상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여! 저들은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 말고는 달리 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122
지금까지 초인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가장 위대한 인간과 가장 초라한 인간, 이 둘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다. 123
영원히 변치않는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과 악은 자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그대 가치를 평가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의 선악에 대한 가치와 말로써 폭력을 행사한다. 최고의 현자들이여, 침묵을 지키는 것은 더욱 나쁘다. 모든 침묵된 진리는 독이 된다. 깨부술 수 있는 진리는 모조리 깨부숴야 한다! 156
시인들의 정신 자체가 공작 중의 공작이고 허영의 바다이다! 175
대지는 살갗으로 덮여 있고 그 살갗은 여러가지 병을 앓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예를 들어 그 병들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라 불린다. 177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아이와 자신의 과업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곳에서, 그 사랑은 잉태의 징후다. 나는 이것을 깨달았다. 218
그러나 기도하는 것은 오욕이다! 모든 자들에게는 아니지만, 그대와 나와 양심이 머릿속에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오욕이다. 그대들에게는 기도하는 것이 오욕이다! 그대도 그것은 잘 알고 있다. 두 손을 깍지 끼고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더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그대 안의 비겁한 악마. 이 비겁한 악마가 신은 존재한다고 그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246
네 이웃을 보살피지 말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다. 272
한 번도 춤추지 않은 날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번도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 진리를 모두 우리에게 거짓이라 불릴 것이다! 289
모든 것이 가고, 모든 것이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 모든 것이 죽고, 모든 것이 새롭게 피어난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흐른다. 300
인간에 대한 크나큰 권태 이것이 내 목을 조였고 내 목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모든 것은 똑같다. 보람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앎은 우리의 목을 조른다.
아, 인간은 영원히 회귀한다! 왜소한 인간은 영원히 회귀한다! 302
나는 나의 말을 했고 나의 말 때문에 파멸한다. 나의 영원한 운명이 그렇게 되길 원한다. 나는 예언자로서 몰락해 간다! 이제 몰락하는 자가 스스로를 축복할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끝이 난다. 305
어설프게 많은 것을 알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더 낫다! 다른 이들의 판단에 따르는 현자이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를 믿는 바보가 더 낫다! 나는 사물의 근본을 파고든다. 342
<나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렇게 물으면서 찾는다. 과거에도 찾았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오, 영원히 어디에나 있는 곳이여, 오, 영원히 어디에도 없는 곳이여, 오 영원한 헛일이여!
378
순종하기보다는 차라리 절망하라. 진실로 내가 그대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대들이 오늘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 더 높은 인간들이여! 다시 말해, 그대들이야말로 최고의 삶을 살고 있다! 397
불확실한 것,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향한 용기와 모험과 기쁨, 나는 용기야말로 인류의 지난 모든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419
동정심! 더 높은 인간들에 대한 동정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고 어두운 산속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불타는 모습으로 힘차게 자신의 동굴을 떠났다. 45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 중에서
'북 카페 > 한 권의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바마가 감명받은 신사의 품격,<모스크바의 신사> (0) | 2021.09.29 |
---|---|
<독서리뷰> 진보와 빈곤 (0) | 2021.09.28 |
책 리뷰 <개인주의자 선언> (1) | 2021.09.26 |
코로나 공간의 변화 " 공간의 미래" (0) | 2021.09.24 |
디스토피아 시대의 열 가지 사랑 이야기 <앞으로 올 사랑> (0) | 2021.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