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기는 애쓰기다
유영만
지식생태학자·한양대 교수. 낯선 곳에서 색다른 깨우침을 얻으며, 삶으로 앎을 증명하며 어제와 다르게 살아보려고 오늘도 안간힘을 쓰는 지식생태학자다. 책상머리에서 머리로 조립한 지식보다 격전의 현장에서 몸으로 깨달은 체험적 지혜를 사랑한다. 새로운 지식을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잉태하고 출산하도록 이끄는 ‘지식산부인과 의사’이자 즐거운 학습을 방해하는 각종 학습 질환을 진단하고 처방해서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는 ‘학습건강전문의사’이기도 하다. 인간 학습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가기 위해 오늘도 학문적 칸막이를 부수고 종횡무진 경계 넘나들기를 즐긴다. 책상에서 얻은 지식이 무력한 관념의 파편임을 뒤늦게 깨닫고, 책을 읽고 실천하고, 몸이 말하는 쓰기를 시작했다. 《책 쓰기는 애쓰기다》도 이런 와중에 태어난 삶의 부산물이다.지금까지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공부는 망치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곡선으로 승부하라》 《유영만의 청춘경영》 《브리꼴레르》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체인지(體仁智)》 등의 저서를 포함해 총 90여 권의 저·역서를 출간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이를 극복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사유 실험과 읽기와 쓰기, 그리고 강연을 하고 있다.
유영만의 You튜브 www.youtube.com/kecologist
브런치 Brunch.co.kr/@kecologist
작가는 책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살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수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며 써낸 책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삶에 담긴 사연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면 스토리가 된다. 그 스토리가 시간과 더불어 축적되면 그만의 히스토리가 되며 그 히스토리 속에서 나만의 방식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스토리는 지금 여기서 작가가 만나는 사람과 시간과 공간의 합작품이다. 스토리는 진공관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저마다의 스토리는 살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삶의 현장에서 태어난다.
42쪽
글 쓰기에 관한 책은 이미 많이 읽었다.
문제는 그 애쓰기(책 쓰기)가 아직도 안된다는 데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지금까지 읽은 글쓰기 관련 책 더미에 한 권을 더 추가하기 위함은 아니다.
1년 전 세바시에서 이 책 내용으로 작가의 강연을 들었는데 이번 리디북스 셀렉트 신간으로 올라온 책들 중에 이 책이 있어서 열어보게 됐다. 리뷰를 쓰기 전, 세바시 강연을 소개했던 블로그 글을 보니까 그 글을 그대로 리뷰로 써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책 내용의 핵심이 다 담겨있었다.
유영만 교수의 이야기처럼 요즘은 잡것들이 다 책을 내는 세상이다(저의 표현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히면서).
이 말은 분명 책을 많이 낸 작가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책의 홍수에서 즐겁지만 작가들은 그 작가들의 책풍년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영만 교수님은 지금까지 90권의 책을 내셨는데 도대체 1년에 몇권을 쓰신걸까??
내 블로그 이웃 중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이웃님의 말씀처럼 당신은 거기에 한 권 더 추가하고 싶지 않아서 책을 내지 않는다는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지금까지’보다 ‘지금부터’ 다르게 살아내려는 애쓰기가 책 쓰기의 재료가 되는 ‘살기’다.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다른 작가의 책과 접속하며, ‘읽기’와 ‘살기’와 병행해야 한다. ‘읽기’와 ‘살기’가 맞물려 돌아갈 때, 글짓기가 집 짓기처럼 내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는다. ‘쓰기’는 이렇게 ‘살기’와 ‘읽기’, 그리고 ‘짓기’가 몸부림치면서 남기는 얼룩과 무늬의 합작품이다. ‘쓰기= 살기+읽기+짓기’라는 4기가 어제와 다른 삶을 만든다.
18쪽
1장 살기 : 삶은 앎이 자라는 터전이다
하루 10분, 내가 누구인지를 질문하라
하루 10분이라도 책을 읽으며 차이를 만들어라
하루 10분, 어제를 반성하면 놀라운 반전이 시작된다
10분 먼저 출근하면 10년 앞을 내다볼 수 있다
10분의 산책으로 놀라운 영감을 얻는다
하루 10분, 버킷 리스트를 기록하라
해마다 버킷리스트를 적어왔다.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할 때마다 버킷리스트와 계획표를 작성하는데 버킷리스트 목록을 보면 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부족해도 원하는 것을 쓰고 그에 비해 계획표는 지킬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작성한다.
그러다 보니 버킷리스트는 보기에는 근사한데 현실적이지 못하여 내 마음속의 숨겨둔 꿈이고 계획표는 소박한 내 스타일대로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다 보니 12월 31일에는 늘 잘 지켰다고 나를 칭찬하게 된다.
계획표대로라면 삶은 성실할지 몰라도 매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이 비슷한 삶이 이어지고 버킷리스트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인 현실이라서 나는 이 두 사이에 점을 찍는 것이 필요하다.
그 둘 사이에 있는 것이 사실 블로그다.
죽기 전에 책 한 권을 내고 싶다는 것이 버킷리스트에 있다면 매일 조금이라도 책을 읽는 것은 계획표에 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거나 나의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블로그 놀이다. 아무튼 나는 계속 쓰는 것이니까.
그렇게 중간 어디엔가 점을 찍다 보면 어느 날에는 그 점이 조금씩 버킷리스트를 향해 옮겨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중간쯤 찍고 있는 이 점도 나는 만족한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애쓰기(책 쓰기)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될까?
불량한 독자의 태도일 수도 있겠으나 이것도 사실은 책의 내용에 근거한 이야기다.
2장 읽기 : 읽기는 다른 세상과 만나는 접속이다
읽기는 살기와 개념적으로 구분했지만 실제로는 구분되지 않는 삶의 또 다른 부분이라고 말한다.
즉 살면서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 삶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읽어낸다. 그러나 읽기만 하면 읽는 바보가 된다. 나의 삶에 비추어 의미를 반추해보고 작용하는 과정에서 읽기는 비로소 완성된다. 읽고 실천하고 다시 읽는 선순환이 어제와 다른 삶을 맞이하는 흐름으로 연결된다.
읽기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오후 강행군을 마치고 그늘에서 마시는 차가운 샘물과 같은 것이다.
책이 그렇게 읽히는 것이라면 반복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사사키 아타루 <이 나날의 돌림노래>
8가지의 독서 방법을 이야기한다.
사사키 아타루가 말하는 여름날 폭염을 이겨낼 나만의 독서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1. 반복해서 읽는 ‘복독’
두 번 읽기를 시행해보면 그 효력은 한 번 읽기의 두 배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몇 배 더 큰 효력을 발휘한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한 열 배 정도의 효력이 있는 것 같다
- 롤프 도벨리 <불행 피하기 기술>
2. 밥 먹듯이 습관적으로 읽는 ‘습독’
3. 뜻을 새기며 읽는 ‘정독’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가 읽는 대목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단단하든 부드럽든 단어들의 껍질들을 깨고, 그 단어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폭발하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기술이란 인간의 정수를 알파벳 문자들에 압축해 넣는 마술,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독자의 기술은 그 마술적 장치들을 열고 그 속에 갇혀있는 뜨거운 불이나 부드러운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국 기행>
4.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체독’
5. 삶을 성찰하는 ‘찰독’
신영복 교수는 독서를 3독이라 했다. 텍스트를 읽고, 그것을 쓴 필자를 읽고 그 책을 읽는 나를 읽는 것이다.
6. 나에게 약이 되는 ‘고독’
책은 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자극제이기도 하지만 공감되지 않는 많은 불편한 생각을 품고 있는 창고이기도 하다. 공감되는 책만 계속 찾아 읽으면 마음은 편안해지지만 낯선 생각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든다.
7. 경계를 넘어 읽는 ‘월독’
월독은 경계를 넘어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독서다.
8. 여럿이 함께 읽는 ‘협독’
협독은 혼자 읽기 보다 여럿이 함께 읽고 토론하는 독서다.
90권의 책을 낸 책 부자 유 교수는 독서를 하면서 늘 밑줄을 긋고 분류해서 컴퓨터에 저장하고 또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손글씨로 노트에 메모를 한다. 진짜 부자는 ‘문장 부자’라고 하는데 문장 부자라는 말에 솔깃한다.
책들이 바로 경험이다. 그것은 사랑이 주는 위안, 가족의 성취, 전쟁의 고통, 기억의 지혜를 입증하는 저자들의 말이다. 기쁨과 눈물, 즐거움과 고통, 모든 것이 보랏빛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내게 왔다. 나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그토록 많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
책에 대한 수많은 찬사들 속에서 실제로 책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만나는 책은 더 신비롭다.
공고 졸업 후 평택화력발전소로 발령을 받아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 책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라는 수기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공고생의 수기를 발견하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고 한다.
오르한 파묵이 <새로운 인생>에서 말한 대로 어느 날 읽은 책 한 권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마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사람과의 사랑만 그런게 아니다. 책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눈이 맞는 것뿐 아니라 책과도 눈이 맞는다. 책이랑 바람나는 상상을 해 보자.
3장 짓기 : 글은 삶이 남긴 얼룩과 무늬다
글짓기는 집을 짓는 과정과 유사하다. 집을 지을 때 벽돌과 나무, 모래와 시멘트 등 각종 건축자재가 필요하듯, 글짓기에도 짓기에 사용되는 글감이 필요하다.
나의 삶을 나만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글짓기다.
내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글은 쓸 수 없다.
나의 글은 내가 살아온 길이다.
쓰지 않으면 영원히 쓸 수 없다
영감이 오면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영감이 달려온다.
읽은 후에 쓰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 쓴다
뼈대를 잡고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구조를 잡아간다.
알아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공감한 것만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공감하게 된다
쓰지 않으면 영원히 못 쓰고 쓰면 쓸 수 있다
쓴 대로 살아가며 또 쓴다
글짓기는 정신노동이 아니다. 오히려 삶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육체노동이다. 다르게 살아내기 위한 사생결단이며 분투노력이다. 몸으로 쓴 글만이 삶과 맞닿아 있고, 독자의 몸을 관통하는 글이 된다. 마찬가지로 글은 눈으로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몸으로 읽는 것이다.
161쪽
예전에 존경하는 분이 말씀하시길 선행이 근육이라고 하셨다. 선행이 마음이 아니고 근육이라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줄까 말까를 고민하기 전에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근육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마음 보다 몸의 근육에 따라서 살게 된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다. 우리의 마음과 결심은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근육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한 번도 몸의 근육을 만들어보지 못한 사람인지라 근육 이야기를 하기는 쑥스럽지만 근육을 키우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살은 오늘 한끼로도 바로 + -가 가능하지만 근육은 오늘 바로 늘리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요령을 피울 수 없고 꾸준히 땀 흘리며 노력해야지 근육이 붙는다. 그리고 또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는 글쓰기도 글짓기 근육을 길러야 된다고 말한다. 어떤 이론이나 방법이 아니라 하루 원고지 5장을 채우는 김훈 작가처럼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4장 쓰기 : 책 쓰기는 삶을 담아내는 애쓰기다
책 쓰기는 애쓰기이자 필살기다
책 쓰기는 고된 노동의 여정이다. 기술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온전히 내가 부담해야 되는 정신노동이자 육체노동이다. 내 몸으로 살아온 삶을 내가 갖고 있는 언어로 녹여내는 그야말로 고된 작업이 책 쓰기다.
책 쓰기는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기의 문제다.
글쓰기는 단어를 하나씩 하나씩 배열하여 벽돌처럼 쌓아 올리는 수공업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고생스럽게 땀을 흘려야 하는 노동이다
안정효 <안정효의 글쓰기>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 과정을 한 생명이 잉태되어 출산되는 과정에 따라서 설명한다.
수정, 착상,입덧, 발달 과정, 작품의 숙성 과정을 거쳐 해산의 고통으로 출산하는 책은 작가의 위대한 성과물이다.
책을 쓰면 누구나 저자가 되지만 책을 쓴다고 누구나 작가가 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책을 쓰는 수많은 사람을 지칭하지만 작가는 자기만의 컬러와 스타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저자는 삶과 글과 자신이 다를 수 있지만 작가는 삶과 글과 자신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사람이다.
저자는 차고 넘치지만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책 272쪽 중에서
은유는 <다가오는 말들>에서 “삶이 고차 함수인데 글이 쉽게 써지면 반칙이다”라고 말했다.
맞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칙왕이 많은 것일까?
필경 그 사람도 남몰래 애썼을 것이다.
책쓰기는 애쓰기라지만 두렵지 않은 것은 이미 나의 삶이 책 한 권이기 때문이다.
삶으로 열심히 써 내려가고 있으므로 자책하지 말아야지. 독촉하지 말아야지.
-책 속에서
울림을 주는 글은 울림을 당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다. 흔들려본 사람만이 세상을 뒤흔드는 글을 쓴다. 울림은 나와 바깥의 자극이 만나 충돌하는 마찰음일 수도 있고, 도덕적 분노이거나 몰상식한 행동에 대한 나의 울음일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적 소용돌이일 수도 있고, 힘들지만 버텨내야 하는 당위론적 사명 앞에서 나약한 내가 토해내는 울부짖음일 수도 있다. p.14
나를 괴롭히는 상극의 힘과 맞서 싸워야 내 삶 역시 뜨거워진다. 수많은 불편함과 맞서 싸운 만큼 내 몸에도 사투의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그 흔적이 농축되고 숙성되면 심금을 울리는 글로 발현된다. 다시 말해 글은 삶에 저항한 만큼 농밀해진다. 밋밋한 삶은 밋밋한 글을 낳을 뿐이다. 나의 고단한 삶이 독자의 어두운 길을 비추는 빛으로 다가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가치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정말로 소중한 가치는 어둠으로 가려져 있거나 정면이 아닌 반대편에 숨어 있다. p.15
글 쓰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고민해야 할 질문은 지금 내가 쓰는 글에 나의 삶의 정수가 담겨 있는지다. 내 글이 처절한 삶이 던져주는 의미의 실체를 반추하며 녹여낸 사유의 산물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생각 위에 지어 올린 사상누각인지를 끊임없이 반문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와 내 생각인 양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p.16
오늘 나의 질문이 내일을 결정한다. 그러나 질문이 틀에 박히면 답도 틀에 박힐 수밖에 없다. 색다른 가능성이 잉태되지 않고 타성에 젖어 사는 이유는 틀을 깨는 질문이 없기 때문이다. 남이 던진 질문에 속박되어 살아서는 안 된다. 내 삶을 주도할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남이 정해놓은 답에 휘둘리며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루 10분 만이라도 10년 후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질문하고 사색한다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p.25
내 삶을 문장으로 만드는 작업은 참 매력적이다. 그래서 글짓기에 앞서 필요한 것이 살아가기다. 글짓기는 머릿속 생각을 언어로 번역하고 문장으로 건축하는 집 짓기와 같다. 하지만 그 집에 혼자 살기보다 독자를 초대해서 함께 음식을 나눠 먹고 따끈한 차를 나눠 마실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글짓기는 세상을 향한 것이다. 그만큼 진실해야 하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하루를 반성하고 스스로를 꾸짖기도 한다. 글짓기는 또한 내면의 아픔을 토해내는 울부짖기다. 울부짖는다고 아픔이 다 해소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픔을 감당하는 내공은 깊어진다. p.39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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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책 →https://bookandlatte.tistory.com/entry/이런-사람-만나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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