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로맹 가리, 본명은 로만 카체프(Roman Kacew),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이 위대한 문학적 천재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유대계 프랑스인으로 태어났다. 열세 살에 프랑스에 가서 생활하며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공군으로 참전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받고 종전 후에는 퇴역하여 외교관으로서 미국의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9개국에서 1961년까지 근무하였다. 이러한 그의 다채로운 인생 경험은 그의 소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5년에 발표한 <유럽의 교육>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하였고, 1956년에 발표한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로맹 가리는 프랑스 문학계의 스타가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이후 발표한 작품들마다 평론가들의 극심한 비판을 받아 심적 고통을 많이 받았다.
로맹 가리는 보그 편집장이었던 일곱 살 연상의 여인 레슬리 블랜치와 결혼했고 이혼 후 24살 연하의 미국 배우 진 세버그(Jean Seberg)와 첫 눈에 반해 재혼을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어서 진 세버그의 요청으로 그들은 이혼했고 이후 1979년 진 세버그는 약물 투여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로맹 가리는 레일라 첼라비라는 40세의 이혼녀와 사랑에 빠져 함께 지냈지만, 1년 뒤인 1980년 12월 2일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죽기 전에 유서를 남겨두었는데, 이 유서는 로맹 가리 사후 6개월 뒤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의 소책자로 발간되었고, 여기서 에밀 아자르의 정체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밝히게 된다. 이 책에서 로맹은 평론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프랑스 문학계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진 세버그와의 결혼 불화, 갓 태어난 딸의 죽음 등 항간에 떠드는 소문들은 그의 작품 세계가 끝이 났다고 했고 그런 이유로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를 창조했다.
한물 간 작가와 자유로운 영혼의 신인 이라는 평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얼마나 통쾌하고 또 씁쓸했을까!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 불꽃같이 살다 삶의 무대에서 스스로 퇴장하여 영원한 자유인으로 사람들 가슴에 묻혔다. 새들이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하여 페루의 한 바다에서 죽듯이 그도 그렇게 자신의 생을 마쳤다.
프랑스 평론가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던 천재 작가 로맹 가리.
한 번도 아닌 다른 이름으로 두 번이나 공쿠르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유서로 그 비밀을 세상에 공개한 로맹 가리는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그렇게 두 이름은 모두 한 사람이었다.
작품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두 삶을 살지 않았을까?
열여섯 편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은 ‘상처’로 관통하는데 로맹 가리의 역사와 시대적 역사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단편마다 가지고 있는 배경과 의미들을 생각하며 읽게 된다. 결말을 예측하기도 어렵고 반전까지 있어서 그런 것을 다 덮어두고 읽는다 해도 매우 재밌고 흥미롭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12쪽
자크 레니에는 페루 라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해안으로 찾아와 죽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다.
레니에는 스페인 내전,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서, 쿠바에서 전투를 치른 다음 페루 해변으로 피하여 마흔일곱의 나이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그곳에 와서 죽는 새들처럼 자신도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그곳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해안에서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물이 허리까지 차고 물살로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가는 여자를 본 남자는 서둘러 나가서 그녀를 구해 카페로 데리고 왔다.
여자도 남자에게 묻는다. “이 새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건가요?”
레니에는 모든 것을 잃는 결정적인 체념의 순간에 찾아오는 희망을 상상한다. 여자는 거리의 사육제 인파 속에 있다가 어떤 사내들에게 이끌려 해변으로 왔고 자신의 몸이 혐오스러워 바다로 뛰어들으려 했다는 것을 보면 강간을 당한 것 같다.
레니에는 그녀에게 키스하며 사랑을 느끼지만 곧 다시 찾아오는 고독과 허무를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의 남편이 카페로 찾아와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녀의 생활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흐릿한 이야기를 남긴다.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레니에에게 모두 똑같은 것을 묻는다.
"왜 새들이 어디로부터 와서 죽는 것일까?"
영국인과 그의 비서가 아내를 다시 데리고 나가고 카페는 다시 고요해졌다.
짧은 단편을 보면서 한 편의 영화처럼 바다, 죽어있는 새들, 카페의 테라스, 남자 그리고 여자가 그려졌다.
모두가 묻고 있지만 아무도 대답할 수가 없는 질문은 새들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재에 대한 의문이 아닐까.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서, 쿠바에서 전투를 치른 다음,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안데스산맥 발치의 페루 해변으로 몸을 피한다. 마흔일곱이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버린 나이.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니까. 자연은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다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할 뿐.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하지만 시도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단순한 생리적 분비 현상으로 연구되리라.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오직 바다만을 친구로 삼고, 페루 해변의 모래언덕 위에 있는 카페의 주인이 되는 데에도 설명이 있을 수 있다. 바다란 영생의 이미지, 궁극적인 위안과 내세의 약속이 아니던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12쪽
그가 대책 없는 어리석음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그 무엇에 다시 점령당하고 만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고, 자신의 손안에서 모든 것이 부서지는 걸 목격하는 일에 습관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이런 식이었으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체념을 거부하고 줄곧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 했다. 그는 삶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황혼의 순간 문득 다가와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줄 그런 행복의 가능성을 은근히 믿고 있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18쪽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있는 데에는”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이유가 있을 거요”
그들은 떠나갔다.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여자는 모래언덕 꼭대기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저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페는 비어있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31쪽
<류트>는 정략결혼으로 살아가는 외교관 부부의 이야기다. 외교관의 아내가 된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종착점이었기에 남편을 위해 매일 기도를 드리는 것뿐 아니라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내조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남편 백작이 류트를 사고 개인 레슨을 받는 젊은 청년과의 구설수를 덮어주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이 짧은 단편을 통해서 온갖 교양과 품위를 내세워 야망과 명예를 좇기 위해 바둥바둥 애쓰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남편을 위한 것인지 나의 욕망을 지키기 위함인지 알 수 없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은 <어떤 휴머니스트>는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독일에서 권력을 잡을 무렵 뮌헨에서 장난감 공장을 운영하는 칼 뢰비라는 사장 이야기다. 쾌활한 낙관주의였던 그는 히틀러의 유태인 배척 선언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함께 그곳을 떠나 이민을 가자는 친구의 충고에 웃음으로 대답하고 대신 나치를 피해 15년간 데리고 있던 하인의 도움으로 서재 지하에 은신처를 만들고 살게 된다. 슈츠 부부는 하루 두 차례 정성껏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로 칼을 섬기며 그런 시간을 계속 이어간다. 칼 덕분에 슈츠 부부는 사장의 가게를 대신 운영하여 재산을 늘려가고 편안하게 살고 있지만 주인에게 독일의 패망 소식은 전해주지 않는다.
칼은 초기에는 지하 은신처에서도 신문도 보고 라디오도 들었지만 점점 뉴스에 실망하고 세상이 타락했다 여겨지자 그것마저 치워버리고 현실과의 접촉을 끊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불굴의 낙관론을 꺾지 않은 채 삶을 살아간다.
인내심을 갖고 의심을 떨쳐야 한다. 본래의 관용과 이성과 정의가 곧 회복되리라. 무엇보다도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많이 꺾이긴 했지만 칼은 자신의 낙관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인간에 대한 믿음도 여전하다. 날마다 슈츠가 나쁜 소식을 가지고 지하실로 내려올 때마다 칼은 그를 격려하고 좋은 말로 위로한다. 벽을 덮은 책들을 가리키며 언제나 인간성은 결국 승리한다고, 그런 신념과 믿음 속에서 위대한 걸작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어떤 휴머니스트> 67쪽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는 사람으로서 이 단편은 참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낙관, 긍정, 인간에 대한 믿음.. 인간이 정말 믿을만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타락하게 되는가.
플라톤, 몽테뉴, 에라스무스, 데카르트, 하이네... 그런 고매한 선구자들의 책을 읽으면서도 세상에 대해서는 어두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칼도 슈츠도 모두 책을 즐기는 독서가였다. 히틀러도 굉장한 독서가로 알려져 있다. 책 자체가 좋은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편향된 책 읽기는 나의 잘못된 신념을 강화시키는데 악용될 수 있다. 위대한 책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책을 읽으면서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지 매일 고민하며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사회와 더불어 유익한 방향으로 살아갈 때 책이 영향력을 준다.
#가짜 이야기도 아주 재밌다.
예술품의 진품에 집착하는 S는 경매를 통해 세계의 유수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S는 자신의 경쟁자 바레타가 경매로 구입한 반 고흐의 그림이 가짜라는 것을 집요하게 밝혀내는데 성공한다. 이 일로 주먹을 불끈 쥔 바레타는 S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는 것으로 통쾌한 복수를 한다. 사진을 받은 S는 매부리코를 가진 사진 속 소녀를 보면서 이보다 더 흉한 코를 상상하기 어렵겠다 생각한다. 그러나 그 어린 소녀는 S의 아내가 다 감추지 못한 그녀의 성형 전 사진이다. S 보다 스물두 살 어린 아내야말로 S가 가장 완벽하다고 믿었던 진품이었는데 성형 수술로 만들어진 모조품이었다니! 인생을 통틀어 완벽하게 신뢰하는 유일한 관계라 믿었는데 내 아내가 바로 사기꾼들의 도구이자 공범자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진품만을 원하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내를 버리는 이 남자를 보면서 허영심과 허상으로 뒤덮인 삶을 생각하게 된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없는 사람은 모조품이든 진품이든 결코 소유가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은 늘 자신만은 완벽하고 완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자신하고 완벽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렇게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돌아보게 해 주는 글이었다.
당시 그녀는 열여덟 살이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말 그대로 ‘귀한’ 것이었다. 마치 자연이 자신의 전지전능한 권위를 과시하고, 인간의 손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그녀를 창조한 것 같았다…... 걸작, 그것이야말로 알피에라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
<가짜>105쪽
1932년 그가 태어난 모스크바에서는 새로운 시민인 비둘기 시민이 탄생하였다.
미국에서 소련을 방문한 두 사람은 그곳에서 무엇 하나 미국보다 더 괜찮은 것을 보지 못했는데 한 가지 미국에 없는 것을 경험하였다면 마차의 마부가 비둘기였라는 것이다. 비둘기는 말을 움직이는데 결함이 없었고 심지어 러시아어까지 하는데도 두 사람은 비둘기 마부가 영 불편하다. 이 비둘기 시민에 대한 논쟁을 들으면서 다른 나라에 갖는 문화적인 편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 나라에선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데 때로는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기조차 힘이 든다. 나와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 되어버리니까. 오죽하면 비둘기가 시민이 되었을까. 이제 시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을 하고 언어를 소통하는 수준 이상의 시민의식이 있어야 비둘기 시민들에 의해서 퇴출당하지 않을 것 같다.
여행객 동무들, 당신들은 지금 남의 나라에 와 있습니다. 당신네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대표하고 있는 셈인데, 단정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당신네 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주는 게 아니라 되레 길 한복판에서 짐승들처럼 술에 취해 있군요. 시민 동무들, 정말이지 역겹기 짝이 없군요!
<비둘기 시민>156쪽
어느 12월 마지막 날의 일이다. 의사는 목을 매어 자살한 스무 살 가량의 젊은 남학생의 시신을 확인하러 한 누추한 건물로 갔다. 그 방에서 의사는 청년이 신경질적인 글씨로 빼곡하게 적어둔 유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의 사연은 이랬다. 남자는 자신과 벽을 사이에 두고 사는 옆방의 여자를 마음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물론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안면도 없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천사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그 방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분명 남녀의 정사에서 나오는 소리로 상상했다. 천사 같은 옆방 처녀의 쾌락에 겨운 신음소리를 들은 남자는 낙담과 혐오감을 느껴 스스로 커튼 줄로 목을 매고 죽음을 선택했다. 의사는 여자의 방이 궁금하여 지나치지 못하고 두드렸다. 아직 남자와 같이 있는 것일까? 상상하며 문을 열었을 때 비소 중독으로 몸부림치다 결국 사망한 금발 머리 여인의 시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청년이 들었던 신음은 죽기 직전의 그러니까 어쩌면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몸부림이였던것이다.
<벽>이라는 제목에서 주는 느낌부터 벽을 사이에 두고 죽은 가엾은 두 청년을 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자신만의 벽을 세운 채 내 멋대로 마음대로 상대를 상상하고 규정하고 단정한다. 오해로 쌓아진 벽처럼 견고하고 뚫기 어려운 벽도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을 볼 때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사연을 모르면 오해할 수밖에 없다. 소통하지 못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사랑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사랑 한번 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분노에 세상을 추잡하다 비판하며 죽어간 남자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혀끝을 차게 된다. 나의 분노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면 그것이 죽음이어야 했을까?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문명과 거짓된 가치들에 환멸을 느껴 타이티 섬으로 은둔을 떠나온 남자가 있었다. 그에게 유일하고도 으뜸가는 자질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사무욕’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천박한 자본주의적 사고에 전혀 물들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을 만났다.
남자가 삼 개월 정도 섬에서 체류하고 있을 때 그곳에서 만난 50대 여인 타라통가가 그에게 직접 구운 호두과자를 선물로 보냈다. 그런데 그 호두과자를 싼 천이 폴 고갱의 그림이었다. 그는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 폴 고갱의 작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나면 언제나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죄어듦이 오른쪽 옆구리 간 언저리에서 느껴졌다. 이 이름 없는 작은 섬에서 고갱의 작품을 만나다니! 타라통가는 그것으로 과자를 싸 보내다니! 파리에서라면 500만 프랑은 족히 나갈 그림이 아닌가!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225쪽
세 번의 고갱 그림으로 포장된 과자를 받은 남자는 그녀를 찾아갔다. 이미 눈이 먼 남자는 그녀가 선심 쓰듯 다 주는 작품들을 챙기고 70만 프랑의 값을 치르고는 서둘러 프랑스행 배를 타야겠다는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호텔 주인을 통해서 그녀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고갱의 그림을 모사하여 하나당 2만 프랑씩 받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올라간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질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저항할 수 없는 깊은 혐오감에 사로잡혀 낙담한 채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세상은 다시 한번 나를 배신했다. 대도시에서든 태평양의 가장 작은 섬에서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계산이 인간의 영혼을 더럽히고 있다. 순수에 대한 끈질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정말이지 무인도로 들어가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인가.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230쪽
독일,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영국, 프랑스, 터키, 이태리.. 유럽 대륙 그리고 러시아, 미국, 중남미, 볼리비아, 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의 작은 섬 타라토라까지 순수함을 유지한 곳은 그 어디도 없다. 그렇게 지구를 돌아 새들은 페루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나 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아도 그들은 새들이 죽는 이유조차 답하지 못한다. 열여섯 편의 단편들마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통렬한 로맹 가리의 비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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