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 카페/한 권의 책

후불제 민주주의

by 북앤라떼 2021. 8. 17.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이 책은 정치인 유시민에서 작가 유시민으로 돌아온 뒤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해 직접 경험하고 고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헌법의 조문들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서 그 헌법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본다.

헌법 하면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 왠지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만 알아도 될 것 같지만 국민이 헌법을 바로 알아야 인간으로서 또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마땅히 추구하고 누려야 할 권리를 찾을 수 있고 또 사회적 인간으로서 준수해야 할 법과 규범을 알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만 읽어도 가슴이 설렌다. 나에게 이런 존엄과 가치가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니. 나의 성별, 재능, 권력 그 어떤 것에도 차별받지 않고 국가는 나의 이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법에 보장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후불제 민주주의인가!

대한민국의 헌법은 그에 맞는 값을 지불하지 않고 만든 후불제 헌법이었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 값을 치르는 후불제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선언한 대로 대한민국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통성 있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제헌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 지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었고,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였다

19쪽 중에서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이 민주공화국에 들어가는 비용을 후불했다. 저자가 이런 책을 쓰게 된 배경은 이명박 정부의 ‘문명 역주행’이라는 헌법 파괴 행위를 바탕으로 한다.

유시민이 대한민국 헌법을 읽은 것은 1972년 10월 유신 쿠데타로 만든 ‘유신 헌법’이었다. 장갑차가 정부청사와 방송사를 점령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야당 지도자를 잡아 가두는 공포 속에서 탄생한 헌법이었다. 단일 후보의 투표에 참여한 의원 2,577명 100% 찬성으로(1표는 무효)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유신헌법 제53조에는 대통령 긴급조치권에 의해서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중지할 수 있었다. 그 헌법에 근거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처벌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다. 과거 지구 행성에 살았거나 지금 살고 있는 인간 일반의 관점에서 보면, 노력에 비해 너무나 큰 것을 받았다. 50년 전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반도 국가 대한민국의 남쪽에서 태어난 것이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다. (...) 그런데 이 행운이 그저 우연히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 대부분이 내가 아는 또는 알지 못하는, 동서고금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선한 뜻을 실현하려고 분투한 덕분에 마치 우연인 양 내게 찾아왔다. 자유를 위해 투쟁한 동서고금의 선지자와 투사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이 있었다.

16쪽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과 교양이 부족한 지도자는 언제든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고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애국을 명분으로 평화롭게 1인 시위를 하는 여성을 폭행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기소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을 주도한 인터넷 카페 운영자는 구속됐고 이 문제와 관련해 정부를 편드는 ‘조. 중. 동’ 보수 신문에 광고를 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한 네티즌도 구속하였으며 정부 비판의 글을 게시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삭제하도록 압박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가 통하는 사회에서는 준법정신이 설 땅을 잃는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연쇄살인범도 아닌 개인 블로거일 뿐”

이 말은 인터넷 경제논객 박 모 씨가 포승줄과 수갑을 차고 무거운 심정을 토로한 말이었다. 2009년 1월 검찰은 미네르바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 30대 남자 박 아무개 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정체가 아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판사가 영장을 발부했다는 데 있다.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

헌법 제27조

헌법에 따르면 죄인이 아닌 사람을 구속하여 포승줄로 묶이고 수갑을 찬 것이다. 그가 오류를 말했다고 해도 국민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그 자유에는 오류를 말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된다. 명백한 위법이다.

체벌에 대한 경험담도 이야기한다. 인간 만든다는 이유로 체벌이 허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것 같지만 군대나 조직 안에서는 여전히 폭력이 묵인되기도 한다.

이번 여름 LA K-POP 스토어에서 딸아이와 음반을 사러 갔을 때 한국인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시며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너 공부 잘하니? 공부 잘해야 한다. 예전에 우리 때는 선생님이 때려도 다 맞았다. 부모님이 죽지만 않을 정도로 때려도 된다는 각서도 써서 갖다 줬다. 그렇게 해서 이렇게 다들 잘 되고 그랬지. 너도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그때 그런 시절을 지냈던 분이시다. 지나고 보면 다 추억으로 미화되기도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대한민국은 성숙한 민주공화국으로 진화하는 중에 있다. 이 진화를 추동하는 힘은 헌법 조문 자체가 아니라 헌법에 쓰인 대로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의 생각과 행동이다.

어떤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느냐는 늘 논쟁이 되는데 저자는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보수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불가피한 자연적 질서로 간주하고 그것을 지키려 한다. 어떤 질서든 상관없다. 전제군주제, 개발독재, 천황제, 심지어는 공산당 일당독재조차도 보수가 지키려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보수는 진보와 달리 경험주의적·실증 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철학과 견해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익이 일치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단결한다. 보수의 경쟁력은 가장 강력한 권력을 중심으로 단일한 위계질서를 수립하는 줄 서기 문화와 냉철한 이해타산 능력이다. 그래서 보수가 망할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부패로 망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보수의 힘은 일반적으로 진보를 능가한다. 보수의 무능과 부패와 나태함이 민중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때에만 진보가 승리를 거두며, 그 진보의 승리는 보통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65쪽

대중이 어떤 정치인을 선택하는 모습은 외국의 경우를 보면 마음에 더 와닿기도 한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들 중에는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부시 대통령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부시 대통령은 세계 곳곳을 전쟁의 불바다로 만들고 금융 공황을 일으켜 세계경제를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독선적이고 무서운 권력의 인격적 화신으로 통한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이 부시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그가 실제로 저질렀던 그 많은 끔찍한 일들은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민과 정치 그리고 권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현대는 권력자의 시대가 아니라 대중의 시대이다.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인은 많지만 대중을 비판하는 지식인은 드물다. 국민이 왕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왕권 국가 시대에 왕에게 아첨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언관들이 있었던 것처럼, 대중이 왕인 시대에는 대중에게 아첨하는 데 뛰어난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도처에 출몰한다. 그들은 국민의 냉정한 자기성찰을 방해한다. 현명한 국민들만이 아첨과 직언을 구별하고 직언하는 자에게 보상할 줄 안다. 결국 권력의 도덕과 능력은 장기적으로 대중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165쪽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최강 권력은 언론이다. 국민 대다수가 매일 구독하는 몇몇 신문의 지면 편성과 노조와 보도 내용을 지배하는 사주와 그 대리인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한다. 그들이 네모난 창을 만들면 국민은 네모난 하늘을 본다. 그들은 둥그런 창을 만들면 국민이 보는 하늘은 둥그렇게 된다. 그들은 국민의 눈과 귀, 국민의 입을 자처하지만 그 눈과 귀와 입은 사실 그들 자신의 것이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으며 신임을 묻는 일도 없다. 교체되지 않으며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그들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191쪽

그렇지만 나는 운이 좋아서 그런지 이런 정치보복의 광풍을 지금까지는 큰 탈 없이 견뎌냈다. 그러나 완벽하게 바른 삶은 몹시 드물다. 나도 끝까지 털어대면 먼지 나지 말란 보장이 없다. 환경운동연합 최열 대표처럼 20년 넘게 사재를 털어가면서 환경 보호에 헌신한 시민사회 지도자도 검찰의 먼지 털이식 조사에 걸려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았는가.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기는 했지만 그는 앞으로 기나긴 법정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검찰을 동원한 일종의 공안통치라고 할 수 있는데,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국회의원들까지 모든 정치세력을 심리적으로 압박해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를 낸다. ‘털어도 털어도 먼지 한 점 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만 덤벼!’ 이명박 정권은 지금 야당과 시민사회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다. 정작 자기네는 온몸 덕지덕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268쪽

비서가 승용차를 운전해 주고 전화를 대신 받아주는 서민을 본 적이 있는가? 냉난방이 잘 되는 사무실에서 1억 원 연봉을 받고 근무하면서 해마다 두세 차례 이상 공식·비공식 외국 여행을 다니는 공직자가 서민일 수 있을까? 회의 시간에 상임위원장실 소파에 앉아 여비서가 가져다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 주말 라운딩 때 날린 티샷 비거리를 자랑하는 사람도 서민인가? 대한민국 0.1%에 들어가고 남을 만한 부자 기업인들과 마주 앉아, 봉사료 포함해 1인당 10만 원이 넘는 일식 메뉴로 스코틀랜드산 몰트위스키를 곁들인 만찬을 즐기기도 하는 사람이, 자기가 밥값을 계산하지 않았다고 해서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너나없이 서민경제를 챙기노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사는 국회의원들이 서민일 수는 없다고 본다. 그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더 열심히,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자주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방문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보고서를 읽으며 공부하고 연구하고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300쪽

책 속에서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그 대통령이 이 책을 쓰던 순간의 민주주의의 후퇴의 불안함 정도가 아니라 여기에 이루 다 쓸 수 없는 죄명을 지고 옥살이 중이시다. 그때 이 책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언론이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시민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방법이 없고 .. 아마도 대한민국의 앞날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또 하나는 정치인으로서 또 전임 노 대통령을 옆에서 봐온 사람으로서 함께 겪은 억울함이 많아서다. 요즘도 그 얘기가 나오면 그 서러움이 보인다. 한이 맺힘이 느껴진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사람이 입만 열면 “나라가 세금 많이 걷어서 살기 힘들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묻고 따지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을 몸소 겪고 보면 거품을 물 수밖에 없다.

유시민은 추종자도 많아서 정계은퇴했다고 수십 번 말해도 소용이 없다. 이런 인물이니 견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가족뿐 아니라 10촌까지 털털 털어낼까 싶은데 뭐 하나 걸리는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이 있을 때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통령이 여당과 정치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명을 강행한 것에 대해서도 오만하고 독선적인 코드인사라고 비난했다. 보건 분야 시민단체들도 그를 시장주의로 규정해 장관 지명 반대 서명을 냈고 장관을 그만두던 날까지 마찰이 있었다. 지명 파동 후 이어진 인사청문회에서는 이사 때문에 고지서를 잃어버려 내지 못한 적십자회비 5천 원, 8년 전 국민연금 납부 공백, 딸의 외국어 고등학교 진학까지 먼지 털듯 비판과 인신공격을 했다. 스스로 자신은 그 당시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기 때문에 언행이 적합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지나간 일이지만 상처받았고 또 상처를 준 시간이었다. 아마도 정치 은퇴를 선언한 것도 이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2007년 5월 25일까지 1년 3개월가량의 역임 기간 동안 그가 추진한 국민연금법 개정과 기초노령연금법 도입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의 유시민의 가장 큰 성과이고 그 법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 초강수를 띄워 문책 경질을 자청해 사표를 썼고 수리되었다. 그렇게 하여 300만 명의 가난한 어르신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을 전적으로 노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청년 때부터 거리 시위와 집회를 여는 데 시간을 쓰고 밤과 낮으로 유인물을 쓰고 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기초 훈련도 받지 않고 전장에 투입된 소년병에 비유했다.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도 느끼지만 아쉬움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싶다는 유 작가를 보면 정말 지식 소매상답고 타고난 먹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지금 대학에 들어가는 청년이라면 무엇을 할까? 학문을 하는데 필요한 영어 실력을 기르고, 수학과 라틴어와 한문을 공부하고, 철학과 물리학 분야의 고전을 읽을 것이다. 우주와 세계의 질서, 국가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필요한 지식 탐구의 도구를 풍부하게 갖추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세계 시민과 소통할 정신적. 학술적. 문화적 능력이 있는 지식인.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293쪽

현대의 고전 <코스모스>를 집필한 칼 세이건은 동네 도서관에서 천문학 꿈을 키웠다. 우크라이나 출신 가난한 이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세이건은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성장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준 도서관 대출카드를 들고 도서관에 간 칼 세이건은 ‘스타들 stars’에 대한 책을 달라고 요청했고 비록 직원은 당대 유명한 배우 사진이 든 잡지를 주었지만 소년은 밤하늘의 별들에 대한 책을 보면서 천문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세이건은 여러 저서에서 도서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학자 와일스의 출생지도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디오판토스는 1,700여 년 전 세계 최고의 도서관이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대수학을 발전시켰다.

유시민은 우리나라에 도서관이 부족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동네마다 더 많은 도서관을 만드는 것을 꿈꾼다. 노벨상은 재능 있는 소수의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준다고 배출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책무는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며 국가 예산을 심의하고 법률을 만드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이러한 공적 서비스를 얼마나 열심히 잘하는지에 대하여는 별로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기의 일상적 생활공간에 자주 얼굴을 보이면서 인간적 교분을 쌓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 국회의사당에 떠도는 괴담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회의 참석률과 재선 성공률은 반비례한다’ 국회의원으로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떨어지지만 일은 하지 않고 동네 골목을 열심히 누빈 국회의원은 다시 당선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나는 지식 소매상이라는 직업에 대해 제법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유명한 ‘맛집’을 경영하는 식당 주인 겸 주방장이 느끼는 자부심과 닮았다. 좋은 야채와 육류를 생산하는 농민이나 생산기술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훌륭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좋은 재료를 가져다 멋진 요리를 만들어 수준 높은 단골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주방장도 나름 괜찮지 않은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기존의 메뉴를 혁신하고 남들이 다 쓰는 양념을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방법으로 배합하는 요리사의 능력은 다른 전문 직업인들의 고유한 능력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나는 믿는다. 맛있는 음식으로 많은 고객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데서 기쁨을 얻는 맛집 주인처럼, 나도 재미있거나 유용한 지식을 많은 독자들과 나누어 가지는 데서 행복을 얻는다.

359쪽

선의 연대와 민주주의

나치가 공산주의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시민주의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의 시로 알려진 시

악한 목표를 내걸고 악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대중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악한 시스템은 거의 언제나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방법을 정당화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악한 시스템을 만드는 권력자들은 ‘경제적 번영’,’자유주의 수호’,’법치주의 확립’, ‘국가의 정통성’과 같은 선한 목표를 내세우면서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불평등과 불공정을 조장한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내걸고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언론의 독립성을 목 조른다. 법률의 인권을 모욕하며, 국가 안보를 내세워 평화를 위협한다. 374

 

후불제 민주주의저자유시민출판돌베개발매2009.03.0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