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사상가이자 세계적인 작가 톨스토이의 고백록
톨스토이는 가문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나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16세 때 카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자퇴하고 돌아와서 1851년 군에 입대하고 복무 중 틈틈이 글을 쓰며 다수의 작품들을 집필했다. 이후 유럽을 여행하며 교육 이론을 연구하고 1862년 결혼하여 가정생활에만 전념하면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출간한다. 자신의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그 시기에 그는 삶의 목적에 관한 의문을 품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는데 그 후 자신이 찾은 해답과 확신 그리고 그 과정들을 담은 책이 <고백록>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명작 <안나 카레니나>를 두고 그는 “내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가증스러운 것”이라 칭했다. 톨스토이의 고백록은 그의 자서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뽑는다.
그는 정교회라는 기독교 신앙 속에서 세례를 받고 자랐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이던 18세부터 자신이 믿었던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어른들이 고백한 것들을 그저 따라갔던 신앙이었다고 느꼈다. 보통 주변을 따라서 인위적으로 세워진 신앙의 구조물은 지식과 삶의 빛 아래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가 유일하게 믿었던 것은 자신이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는데 무엇이 완전하게 되는 것이고 완전하게 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며 찾고자 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예술인이자 시인이라 여겼지만 자신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글을 쓰고 가르치고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것은 악덕이었다. 급기야 그는 영혼의 병에 걸리고야 말았다.
“인생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라는 의문은 날마다 그를 괴롭혔다. 그에게 이제 죽음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킬까 계획을 세우고자 할 때도 어김없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불쑥 올라왔다. 도저히 그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나의 삶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잠잘 수는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한, 그런 것들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게 삶은 없었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꼭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원하는 어떤 것이 있어도 내가 그것을 이루든 못 이루든 그 결과는 무의미할 것임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p34
그는 학문을 샅샅이 뒤져서 찾고 밤낮으로 끈질기고 집요하게 고통스러운 탐색을 했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삶의 무의미함뿐이었다. 오십의 나이에 자살 직전까지 몰고 간 의문은 그를 인간의 지식이라는 숲속을 헤매고 찾게 만들었다. 인생에 대한 네 가지 접근 방법을 발견하였다.
1. 무지: 삶이 악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삶
2. 쾌락주의: 삶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애써 외면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는 삶
3. 힘: 삶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인위적인 힘으로 삶을 없애는 방법. 자살
4. 약함: 삶이 악하고 허무하다는 것은 알지만 스스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런 삶에 매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을 끌며 기다리는 방법
그러나 그는 자신과 같은 삶의 무게를 똑같이 짊어지고 살다가 죽거나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네 가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샅샅이 뒤진 학문의 지식인들과 현자들은 삶의 의미를 부정했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삶에 의미는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지식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성에 기초하지 않는 지식은 그가 거부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고 그것이 신앙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지만 바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에게 이성을 부정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삶을 부정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모순에 빠졌고 모순의 출구는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스스로 이성이라 불러왔던 것이 자신이 믿는 것만큼 이성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이 비이성적이라 생각한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는 신앙이 제시하는 비이성적인 답 속에서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의 유일한 답을 찾게 된다.
“나의 이성적 지식은 나를 이끌어서 삶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었습니다. 나의 삶은 정지해 버렸고 나는 자살하고자 했습니다. (...) 유한한 것의 허구성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유한한 것을 믿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한한 것의 허구성을 깨달은 사람은 무한한 것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은 신앙이 없이는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p91
그는 인간의 가장 심오한 지혜는 신앙에 의해 주어진 대답들 속에 보존되어 있고 오직 그 대답들만이 삶의 의문에 대답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교육. 지위는 달랐지만 평범한 사람들 때로는 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고 고통과 역경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죽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의 30년을 기생충과 같은 삶이라 고백한다. 삶의 의미를 모르고 살았던 시간은 악하고 무의미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앙
그래서 그는 불교와 회교, 기독교 모든 책들을 연구하고 여러 가지 자료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연구하였다. 그는 허심탄회하게 묻고 대답하는 토론을 하고 어떤 신앙이 답을 줄 것인지 깊이 연구하였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찾아 헤맸고 칸트와 쇼펜하우어, 헤겔과 같은 주요 사상가들의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저작을 읽고 연구하며 그들의 논리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반박하는 작업을 통해 삶의 수수께끼를 푸는 작업을 계속했다.
“원인은 공간이나 시간과 동일한 사고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하고 그 원인은 모든 원인들의 원인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자신 안에서 생명이 살아났고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삶의 기쁨을 느꼈다.
살아가야 할 빛과 힘.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삶의 초기부터 함께 존재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배움이 없는 농부를 부러워한 적이 많았다. 교리, 종파, 이단, 박해.. 여러 신자들과 교회의 태도에 경악할 때마다 모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러시아 전쟁 중이었고 러시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빙자해서 동포들을 죽이고 있었는데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들과 반대되는 일임에도 교회는 군대의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렸고 종교 지도자들은 그런 살인행위를 신앙에서 나온 행위로 인정했다. 전쟁뿐만이 아니었다. 수없이 힘없는 사람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살해되고 묵인하는 것을 목격했다.
진리와 신앙에 확신하고 다음 단계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톨스토이는 귀족으로서 많은 유산을 받고 태어났다. 그는 모스크바의 사교생활, 사치스러운 생활, 성공, 재산, 욕망 그 모든 것을 마치 사도바울이 배설물로 여기듯 여기며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를 보면 그가 귀족의 삶을 버리고 귀농을 한 레닌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 나타나있다. 그래서 1860년대에 농민학교를 열고 구제활동을 하며 박해받는 종교 분파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신앙인으로서 살다가 폐렴으로 사망한다.
그의 회심 이후의 작품으로는 “톨스토이의 불온한 사상”으로 낙인찍혀 출판이 금지되었고 조소와 비판을 받았으며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처벌을 받았다. 국제적인 이목을 고려하여 정부는 그를 투옥시키지는 못했는데 대신에 그의 추종자들을 탄압하여 톨스토이에게 부담과 상처를 주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그는 끝까지 경찰의 감시와 사찰을 받았다.
회심 후 쓴 소설 "부활"을 통해 그는 제정 러시아 사회를 전면 비판하였고, 제정 러시아는 결국 오래가지 않아 사회주의 혁명(1905년)에 의해 무너졌다. 토지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그의 생각대로 소련은 토지의 사유제도를 폐지했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새로운 러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톨스토이는 개인들 각자의 갱생을 통해 제도적 모순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소설 말미에 네흘류도프가 신약성서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듯이 톨스토이는 복음서에서 자기 삶의 지표를 찾았고 무저항과 비폭력을 신조로 삼았다.
나는 근래 들은 어떤 설교 어떤 신앙 서적보다 이 톨스토이의 고백록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가 참 신앙을 고백하는 과정 그 자체가 복음전도였다. 한국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간증과 비슷했다. 최고의 지성인으로 무신론자로 살다가 하나님을 받아들인 과정은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많은 경우 무조건 주여 주여 하거나 그냥 믿다보면 믿음이 생긴다고 권한다. 내가 정말 믿고 고백하는가에 때로는 너무나 무관심한 종교생활을 영위하며 구원받았으니 내 삶은 내맘대로~또 이젠 성경 외에 세상의 학문을 다 멀리해야 한다고 그것이 영적이라 말한다. 세상의 학문과 가까이하거나 철학을 공부하면 무신론자가 될 것이라 두려워한다. 그러나 모두가 톨스토이처럼 될 순 없어도 그런 고민은 해야하지 않을까. 만약 실제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학문 가운데 만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이 바로 이성의 빛이기 때문이다. 이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를 읽을 때의 감동이 다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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