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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by 북앤라떼 2021. 8. 19.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이미예

전에는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정해진 시간 속에서 줄일 수 있는 것이 잠밖에 없을 때는 하는 수없이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지금은 잠을 자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잠을 자면서 꿈을 많이 꾸는 편인데 기록을 할 정도로 내용이 있고 뚜렷하게 기억되는 일은 많지 않다. 어젯밤에도 같이 사는 사람 말에 의하면 내가 꿈속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깨워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데 나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꿈에 대한 해석을 풀어놓는 책들도 있지만 꿈의 영역은 여전히 신비롭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신비한 영역을 예쁘게 잘 풀어놨다는 생각을 했다.

“개꿈이네~”

“꿈자리가 사납네”

하고 마는 꿈의 영역을 기분 좋은 상상으로 채워 넣는 작업을 해 주었다.

잠들어야 입장할 수 있는 상점가 마을, 그리고 잠든 이들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장소들, 잠이 솔솔 오도록 도와주는 주전부리를 파는 푸드트럭,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자는 손님들에게 정신없이 가운을 입혀주는 투덜이 녹틸루카들, 후미진 골목 끝에서 악몽을 만드는 막심의 제작소, 만년 설산의 오두막에서 일하며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베일에 싸인 꿈 제작자, 태몽을 만드는 아가냅 코코, 하늘을 나는 꿈을 만드는 레프라혼 요정의 작업실까지. 그중에서도 잠든 손님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담았다

첫 장부터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는 수면 마을의 판타지가 시작된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면접을 앞둔 페니는 수면 마을 카페에 앉아서 오늘의 면접시험을 공부하고 있다. 테이블에 펼쳐놓은 문제지가 흥미롭다.

Q. 다음 중 1999년도 ‘올해의 꿈’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꿈과 그 제작자로 옳은 것을 고르시오

a. 킥 슬럼버-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범고래가 되는 꿈

b. 야스누즈 오트라-부모님으로 일주일간 살아보는 꿈

c. 와와 슬립랜드-우주를 유영하며 지구를 바라보는 꿈

d. 도제-역사 속 인물과 티타임을 가지는 꿈

e. 아가냅 코코-난임 부부의 세쌍둥이 태몽

시간의 신과 세 제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의 신의 첫 번째 제자는 미래를 다스리기로 선택했고 두 번째 제자는 과거를 다스리기로 했다. 세 번째 제자는 잠든 시간을 다스리기로 했다.

먼저 선택한 두 제자의 관심 밖의 영역인 잠든 시간의 영역을 왜 선택한 것일까?

잠든 시간은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인생에서 우리는 평균 3분의 1은 잠든 시간으로 보낸다. 사람은 왜 잠을 자고 꿈을 꾸는가?

첫 번째 제자처럼 앞만 보고 사는 사람이든, 두 번째 제자처럼 과거에만 연연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신은 세 번째 제자에게 잠든 시간을 맡겨서 그들을 돕게 한 거예요. 왜, 푹 자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든, 여기 이 백화점에서 파는 좋은 꿈을 꾸든, 저마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서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든 시간도 더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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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와의 인터뷰에 멋진 답을 내놓아 면접에 합격한 페니는 본격적으로 꿈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정말 ‘책 이게 뭐라고!’

내가 꿈을 만들어서 판다면 난 어떤 꿈을 제작할까?

내가 꿈을 살 수 있다면 오늘 밤 어떤 꿈을 사고 싶을까?

사춘기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매진된 척 데일의 ‘오감이 번쩍 야릇한 꿈’도 사고 싶긴 하다. 늘 매진되는 '하늘을 나는 꿈'은 그런 비슷한 꿈은 이미 많이 꾸어서 먼저 사고 싶은 꿈은 아니다. 하늘을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꿈에서 나는 높은 곳에 있고 떨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실제로 하늘에서 하강하는 꿈도 많이 꾸는데 그 느낌이 늘 안정감이 있다. 보통 나는 떨어지는 놀이기구도 무서워하는데 꿈에서는 두려움이 없다. 내 꿈을 사는 것도 흥미롭지만 타인에게 꿈을 제공할 수 있다는 부분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꿈을 파는 백화점이라는데 그렇다면 꿈의 가격은 어떻게 될까?

손님들은 꿈을 꾸고 난 후에 느끼는 감정의 딱 절반을 요금으로 지불하게 된다. 그래서 감정이 풍부한 손님에게 팔아야 꿈값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꿈 값으로 ‘설렘’, ‘신기함’,’호기심’,’자부심’,’자신감,’해방감’’이 계좌에 들어온다.

이것이 일명 드림 페이 시스템즈다.

‘아쉬움’이나 ‘상실감’도 있는데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이윤 창출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일하는데 보람도 클 것 같다. 물건을 팔고 손님들이 어떻게 잘 사용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데 손님이 내가 판 상품을 잘 사용한 뒤 후불제로 값을 지불하는 시스템이니 효용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더 좋은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고 싶을 것 같다.

예지몽 이야기에서는 태몽이 나온다. 꿈의 범위에서도 태몽은 정말 신비로운 영역이다. 내가 태몽을 꾸기 전에는 사실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는데 내가 실제로 태몽을 꾸고 보니까 이건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꿈이다. 그 꿈을 꿔보지 못한 남편은 내 하얀색 호랑이가 고양이는 아니었냐고 반문하지만 "노우!"

엄청나게 큰 백호였다. 꿈을 영상처리 해 주는 기능은 언제나 가능할까? 보여줄 수 없음이 답답하다.

꿈 중에 예지몽도 있었다. 남편과 사귈 때의 꿈이었는데 하룻밤에 정확하게 똑같은 꿈을 두 번 반복해서 꾸었다.

그런 꿈은 전무후무했다. 같이 자던 고모가 그 꿈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신기해하셨고 돼지꿈을 연속 두 번 꾼 꿈이니까 복권을 사야 한다고 하셨다. 해 뜨자마자 운전하고 나가서 샀는데 모두 꽝이어서 고모가 많이 실망하셨고 혹 남편처럼 나의 꿈을 의심하셨을 수도 있지만 그 꿈은 여전히 최고의 예지몽으로 남아있다.

예지몽 꿈을 사지 않는 시나리오 작가의 말도 꽤 의미심장하다.

사람은 최종 목적지만 보고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 따위가 아니잖아요.

직접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고 브레이크를 걸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제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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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상품을 구입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손님들에겐 서비스로 숙면 캔디를 나눠주는 백화점. 운 좋으면 심신 안정 쿠키도 받을 수 있다. 상금으로 받는 ‘설렘’ 10병, ‘아늑함’ 5병 이런 것도 참 괜찮네.

요즘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어딜 가든 소독제를 칙칙 뿌리고 온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뿌리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것이 아닌 분무기에 담긴 ‘건강함’, ‘심신 안정감’을 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꿈도 기발한 아이디어다. 꿈에서라도 상대방이 되어본다면 현실에서의 타인에 대한 이해의 범위가 확장되지 않을까

마지막 챕터는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남자와 5살 난 딸을 보낸 부부가 꾼 ‘죽은 자가 나오는 꿈’의 이야기다.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잠에서 깨어서 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같이 마음이 먹먹해진다. 누구에게나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꿈은 가슴 아프면서도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일 것이다.

할머니의 꿈을 몇 번이나 꾸었던 나는 할머니와 커피를 마시는 남자를 보면서 참 행복하다고 느꼈던 그 꿈의 감정을 다시 소환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저자이미예출판팩토리나인발매2020. 07. 08.

 

읽는 내내 꿈 판타지에서 행복을 머금게 해 준 책이었다. ‘책, 이게 뭐라고’ 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책은 한 편의 꿈과 같은 것이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꿈이기도 하고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꿈이기도 하다. 앞뒤 내용이 안 맞고 깨고 나면 별로였다고 말하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다채롭고 행복하다.

누군가 나에게 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꿈을 꾸고 싶어서라고 말하겠다.

달러구트는 페니에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아무래도 삶에 만족할 수 없을 때는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둘째,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한다.

첫 번째 방법으로 삶을 바꾼 사람도 결국에 두 번째 방법까지 터득해야 비로소 평온해진다는 것.

올해의 최고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킥 슬럼버는 선천적으로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래가 없는 채로 태어났다. 자신의 신체적 부자유함으로 인해서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범고래가 되는 꿈을 만들게 되었다. 그 수상소감이 주옥같은 멘트다.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데만 집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 드는 날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이번 꿈을 완성하기 위해 천 번, 만 번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벽 아래를 보지 않고 절벽을 딛고 날아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완성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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