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김초엽 작가의 첫 소설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제43회 오늘의 작가 상, 한국 과학 문학상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였다. 김초엽 작가는 책을 집필하기까지 바이오센서를 만드는 과학도였다.
요즘 신인 작가들은 왜 이렇게 글들을 잘 쓸까?
이 책은 SF 소설이지만 기존장르의 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고 가독력도 높으면서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오묘한 색깔이 조합된 이야기였다. 우주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여전히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인간이 처음으로 달에 착륙하는 광경은 분명 경이로웠지만 그 경이로운 장면만 반복해서 할 수 없는것이 인간의 한계이고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이 달까지 가는 것만을 목표를 삼았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사람들은 지구 밖 다른 행성에서도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가?를 탐구하고 싶어한다. 그 단계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사실 더 이상의 감격은 없다.
김초엽은 그런 부분을 주목했다. 우주 탐사를 떠났다가 실종된 생물학자 희진이 40년만에 돌아온 이야기인 <스펙트럼>에서는 40여 년간 외계 행성에서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들은 상상했던 것처럼 이상하게 생긴 생명체가 아니었다. 그녀를 보호해 준 외계인은 루이였다. 루이는 인간보다 키는 훨씬 컸고 회색의 피부색을 가졌지만 이족보행을 하고 대신 수명은 2-3년에 불과하다. 루이는 그림을 그렸고 색채를 단위로 하는 언어체계로 소통했다. 루이의 영혼은 죽은 뒤 다시 다음 루이로 이어졌다. 루이들은 계속해서 희진의 생명이 유지되도록 보호해 주었지만 루이의 단명이 인간인 자신 때문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루이들을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루이들로부터 멀러지게 된다. 극적으로 셔틀 신호를 수신하여 40년 만에 지구로 돌아와 희진은 많은 질문을 받지만 스스로 루이가 존재했던 행성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속에서만 간직한다. 루이가 자신을 보호했던 것처럼 그녀도 그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이 소설에서는 2035년에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나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한 과학자 릴리의 이야기다. 그 시대는 '미니랩'의 보편화로 약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에 실험실을 차리고 유전자 조작 생물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느 날 릴리는 인간배아 실험에 성공하여 ‘디엔’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디자인했다.인공 자궁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기계와 로봇으로 신생아들을 양육했다.릴리에게는 유전에 의한 얼굴에 흉측한 상처로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그렇게 디자인한 사람들은 질병이 없고 수명이 긴 '신인류'였다.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증오했던 릴리는 결함이 있는 아이들만으로 마을을 구성하면 갈등 없는 유토피아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년이 되면 지구 순례를 떠나는 순례자들이 왜 유토피아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왜 그들은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일까? 모두 같은 기계 자궁에서 태어난 그들은 뭔가의 근원을 알고자했다. 사람은 의미를 찾는 존재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 끊임없이 존재의 근원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지구에 와서 올리브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많이 받았다. 그 시선들은 올리브를 경멸하거나 동정했다."
굳이 해설자의 눈을 빌려 이 부분을 장애자와 비장애자의 갈등의 세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인간에게 갈등이 전혀 없는 유토피아가 과연 있을 것인가 자문하게 된다. 갈등 없는 세상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갈등을 서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유토피아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공생 가설
모스크바의 한 보육원에서 자란 류드밀라 마르코프는 다섯 때부터 행성을 그리면서 사람들은 그 행성에 대해 궁금해진다. 어느 날 과학자들은 류드밀라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그린 행성과 비슷한 행성을 관측하게 된다. 뇌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수빈과 한나는 뉴런 분석으로 인간의 뇌 와 외계 생명체가 이미 오래전부터 공생하는 영역이 있다고 추정한다.희진이 루이와 조우하고 함께 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우주 생명체에도 인간과 공유하는 감정과 지성의 영역이 있다고 상상하며 쓴 이야기다. 공생관계의 생물은 서로에게 이득을 주기도 하지만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인간과 그들의 관계는 어느 쪽일까? 앞으로도 인간은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상상할 것이다. 우주 생명체와 소통하고 공생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
#감정의 물성
인간의 감정이 만지거나 부칠 수 있는 물성을 가진다면?
침착의 비누로 손을 씻고 설렘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안정의 패치를 부치고 잔다면 어떨까?
아이가 만든 슬라임이 옆에 있어서 한번 손안에서 움직여봤다. 만져지는 촉감이 좋아서 언젠가 한 번은 터질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한 적이 있다. 이게 은근 중독성이 있다.
감정이 이런 물성으로 된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저마다 하나씩 그것을 손에 넣었다 뺐다 한다고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내 감정이야 내 것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갖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듯 감정이라는 물질도 그렇게 소유하고 소비한다고 치지만 그런 개인이 모여지는 사회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오래 상상할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공포 사회다. 지금도 통제되지 않는 개인의 감정으로 인해 피해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이런 감정의 물성으로 쉽게 감정은 소비할지 모르나 오래 그 소비패턴을 유지하고 행복을 유지할 존재로 보이지가 않는다.
#관내 분실
죽은 사람들의 정보를 데이터로 담아 운영하는 ‘마인드’ 도서관의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한정된 수명을 사는 인간들에게 망자의 세계는 우주의 세계만큼이나 무한한 탐사 영역이다.
마인드 도서관에서는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책을 대출하듯 접속을 통해 망자의 영혼과 조우한다.
엄마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지민은 임신 8주 차로 아이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면서 마인드 도서관을 찾게 된다. 그러다 엄마의 마인드 데이터가 관내에서 분실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에도 엄마의 정보에 관심이 없던 지민은 이제 와서 엄마의 행적을 찾아 나서지만 자신에게도, 또 다른 형제들에게도 엄마에 대한 기억도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지민을 낳고 산후우울증으로 고생하다 죽은 엄마. 이제서야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여성들이 받고 있는 차별 특히 출산으로 인해 받는 차별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그 사람의 자리에 서 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맞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가? 김초엽 소설의 주연은 모두 여성과학자들이다.마지막 소설의 주인공도 동양인 여성 과학자, 비혼모 우주비행사 최재경이다. 최재경을 우주 영웅으로 생각하는 재경의 친구 딸인 비혼모 여성 우주비행사 가윤. 두 여성의 이야기다.
최재경은 다수의 백인 남성들 사이에 소수자로 선불 자체만으로도 논란의 중심이 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재경은 자신의 뛰어난 실력으로 그 모든 논란을 잠재우고 우주비행사 훈련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가윤은 언론의 발표처럼 재경이 우주비행을 하다가 폭발로 사망했다고 믿으면서 여성과학자로 성장했다. 그리고 자신의 영웅이 못 마친 인간 한계의 영역에 도전한다. 비록 재경이 우주비행이 아닌 바다로 몸을 던졌지만 재경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가윤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러니 모두가 쉬쉬하는 재경의 실패는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리는 성공과 실패라는 기준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제목이기도 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이야기는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운행하던 셔틀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안나의 이야기다. 그녀는 100년도 넘게 동결과 해동을 반복하며 150년 넘게 수명을 이어왔다. 그녀의 목적은 하나였다. 슬렌포니아로 출항하는 일.
이미 100년 전에 폐쇄된 정거장에서 오늘도 기다리는 안나.
물질이 빛의 속도로 갈 수 없기에 인간이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럼에도 안나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 항해를 위해 나 홀로의 긴 여행을 출발한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이 말이 내 마음에 남는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지된 것 같았던 2020년의 세계를 벗어난 셔틀이 2021년에는 사람들이 닿고 싶어 하는 정확한 목적지로 향했으면 좋겠다. 누구나 탐험하고 싶은 미지의 영역이 있다. 최재경이 우주 탐사를 떠나기 전 바다로 증발해 버린 것은 탐험하기 전 과정에서 이미 그녀의 꿈을 이루었기 때문은 아닐까. 정복보다 정복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는 삶을 생각한다.소설에서도 지구 밖의 영역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김초엽의 소설로 우주의 세계를 여행하고 착륙했을 때의 느낌은 “당신이 옳다”를 읽었을 때처럼 따뜻하고 위로가 가득하다.
과학은 발전했고 매년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결과물을 내어 놓는다.
첨단 세상에서 사는 우리는 전보다 얼마나 더 행복해졌을까?
누군가에게 2021년은 설렘과 기대보다는 조심스러움과 걱정이 더 많을 것이다.
코로나와 백신 그리고 또 다른 이름의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들이 크다. 그러나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완벽한 환경의 셋팅에서가 아니라 따뜻한 시선과 서로를 향한 마음이 맞닿아 있을 때라고 책은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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