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읽고 쓰는 것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장강명의 책은 <댓글 부대>,<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다리의 가격>으로 만났고 이번에 네 번째 책으로 동명의 독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와 같다. 2년여간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다. 장강명의 진솔한 토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에세이도 좋아할 것이다. 책에는 작가의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고 전업 작가로서의 현실적인 고민과 미래를 향한 작가의 계획까지 담겨있다. 장강명 작가는 책을 언제 어디서 읽느냐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마치 그 질문이 물을 언제 어디서 마시느냐는 질문처럼 들린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든 마시는 물처럼 그에게 책도 그렇다. 언제 어디서든 읽는다. 출연 전에도 짬짬이 읽고 기차 열차 안에서 심지어 장례식장에서도 틈틈이 책을 읽는다.
장강명 같이 나름 많이 알려진 작가도 고정 수입 때문에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작가는 이슬만 먹고 작품 이야기만 할 것 같지만 사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가장 급한 문제다. 쓰고 싶어서도 써야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도 써야 한다. 이미 무너져버린 한국 독서 생태계에 대한 솔직한 진단도 한다. 얼굴 잘생긴 작가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장강명은???)
장강명이 말하는 두 종류의 세계가 있다. ‘읽고 쓰는 세계’와 ‘말하고 듣는 세계’
장강명은 읽기와 쓰기를 더 좋아하고 잘 한다. 그렇다고 읽기와 쓰기가 말하기와 듣기와 비교해서 더 우월하거나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팟캐스트 MC가 되고서 자신이 대화에 얼마나 서툰 사람인지를 알았다. 비언어적 신호와 맥락 소통에 무지했다. 그래서 지난 회 녹음 내용을 다시 들으면서 팟캐스트 팀원의 특별 과외를 받았고 이후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고 고백한다.
#장강명의 인생의 책
그의 인생의 책 1호는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다. 군 복무 시절에 읽었던 이 소설을 읽고 문자 그대로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연쇄 자살에 대한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했다. 21세기 대한민국 ‘악령’버전이라 생각하며 썼다.
또 하나의 책은 이미 여러 번 추천한 바 있는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다. 이 책은 그의 장편소설 작법 교과서이자 이루고 싶은 목표다.
소설가로서의 롤 모델은 조지 오웰이다. 그는 쉽고 명료한 문장을 고집했고 당대 사회 현실에 늘 관심을 가졌고 당당히 발언했다. 현장에서는 발로 뛰는 저널리스트였고 뛰어난 논픽션, 에세이, SF도 썼다. 조지 오웰의 책 <나는 왜 쓰는가>, 제임스 M.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까지 5권을 인생의 책으로 추천한다.
고대 사상가들 중에서는 사유와 성찰의 영역에서도 말하기-듣기가 읽기-쓰기 보다 더 뛰어난 도구라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다. 예수는 오로지 말로써 제자들을 가르쳤고 소크라테스는 책과 독서에 반대했다.
#장강명은 진지하다
현대사회는 진지한 인간들을 싫어한다. 의미가 아니라 느낌을 추구하고 ‘왜’같은 질문에 긴 답을 하는 사람들을 떨떠름히 여기고 진지층이라고 놀린다.
#아주 특별한 책방
영화 <비포 선셋>에 나오는 서점은 파리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헌책방이다. 이 책방은 다양한 서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저자와의 만남 행사나 독서 토론이 자주 열린다. 특이한 점은 책장 옆에 작은 침대가 있어서 공짜로 숙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숙박비도 공짜고 숙박 기간도 제한이 없지만 조건이라면 서점에 머무는 기간 동안 매일 책을 한 권씩 읽고 몇 시간은 서점 일을 돕고 나가기 전에는 자소서를 한 장 써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주제로 하는 토론
책은 우리가 진지한 화제로 말하고 들을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책 토론의 자리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뒷담화로 마냥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 책이 있고 그 책 역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고집스럽게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한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책이 묻는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책은 우리의 대화가 뒷담화로 번지지 않게 하는 무게중심이 되어준다. 장강명이 꿈꾸는 독서 공동체는 나이나 재산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같은 동네 이웃이라는 이유로 한 달에 한두 번 모여 책을 놓고 자기 생각과 경험을 말하고 듣는 공간, 토론하는 자리가 있는 공간이다. 그런 세상을 꿈꾼다.
이런 세상이 과연 있을까?
아이슬란드에서는 TV 독서 프로그램이 황금 시간대에 편성되며 1년 내내 책 관련 페스티벌이 열린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책을 선물하는 전통이 있어서 시즌마다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크리스마스 책 홍수라는 뜻의 ‘욜라보카플로드’라고 부른다. 이 나라의 이야기야말로 내가 꿈꾸는 판타지 세계구나.
#독서 허영심
가끔 책을 몇 만권 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본다. 장강명은 솔직히 그게 가능한 일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다고 쳐도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니 독서가 마치 칭찬받는 일처럼 되어 숙제하듯 하고 뽐낼 거리가 된 것이 안타깝다. 그렇게 독서량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독서의 질에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마치 이성 교제의 횟수를 자랑하는 고등학생처럼 말이다. 그럼 사람에게는 한 번 스치는 만난 인연도 데이트로 간주될지 모르나 정말 중요한 것이 횟수나 수량일까? 자신은 1년에 150여권 읽는다고 말한다. 처음 말했듯이 물 마시듯 언제 어디서든 책을 꾸준히 읽지만 자신의 머리로 소화하는 데 그 이상의 속도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20대 중반부터 읽은 책들은 다 기록하고 있고 현재까지 1500권 조금 넘게 읽었다고 한다. 100살로 가정하면 만 권은 100살까지 꾸준히 읽어야 채울 수 있다고. 하지만 많은 양의 책보다는 머리를 흔들고 마음을 휘어잡는 책들이 더 많기를 바란다.
#종이책 VS 전자책
그는 전자책을 선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은연중에 진지한 독서가는 종이책을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손끝에 닿는 책장의 느낌, 종이 냄새를 예찬하는데 장강명에게 책은 그냥 책이다. 전자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보기 편하게 글자 크기와 줄 간격 조절 기능을 할 수 있으니 더 빨리 읽을 수 있어서다. 서점이나 도서관을 오가는 데 드는 시간도 절약된다. 언제든 가볍게 많은 책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종이책의 물성이 아니라 책이라는 오래된 매체와
그 매체를 제대로 소화하는 단 한 가지 방식인 독서라는 행위다
책 96쪽
#책 선물
도올 김용옥이 이름을 써서 홍준표 전 대표에게 보낸 책이 헌책방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안대희 당시 대법관에게 보낸 자서전도 헌책방에 나와서 화제가 되었었다. 선물이라는 것이 일단 주고 나면 소유한 사람의 권리에 있는 것이지만 선물에 담긴 사람의 마음 때문에 책에는 복잡한 물성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장강명은 글이 아닌 책에는 애정을 의도적으로 줄이기로 했단다.
나도 책에 있는 특별한 물성을 인정한다. 책을 선물하는 것도 받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었던 편이다. 받은 책 선물들은 책 취향과 상관없이 잘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책을 가까이할수록 책 선물이 어렵다고 느껴져서 책 선물에 망설이게 된다. 나는 베스트셀러를 선호하지 않지만 선물은 안전하게 베스트셀러에서 고르는데 혹시 읽지 않았을까 염려도 된다. 시댁 가족 중 언니 처럼 친하게 지내는 형님이 계시는데 결혼 첫 해 부터 지금까지 생신 때 마다 책선물을 했다. 멀리서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책 선물 뿐이라 책 포장과 메시지까지 전달해 줘서 매년 이용하고 있다. 올해는 우리 부부가 전자책을 같이 보고 있어서 책 선물은 큰 의미가 없지만 남편에게도 책 선물을 자주 했다. 결혼기념일날 책 교환을 한 경우도 있었다. 책을 선물하면 책 날개에 싸인을 하는 재미가 또 책선물의 맛이 아니던가. 선물 받았을 때 책 날개에 이름이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 이렇듯 여전히 나는 책 선물에 대한 추억과 로망이 있지만 주변에 책 선물에 대한 부정적인 리뷰도 많고 장강명 작가의 말처럼 책을 좋아하지 않는 흐름도 있어서 최근에는 책 선물은 거의 안하는 편이다.
#책과 사람
책을 읽으면 좋은 사람이 될까?
히틀러는 1945년 세상을 떠날 당시 1만 6000권의 책을 소장했던 장서가이자 책벌레였다. 스탈린도 독서광이자 시인이었고 마오쩌둥 또한 <마오의 독서생활>이라는 분석서까지 나올 정도였다. 책을 읽다 보면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그러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책을 읽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공항 서점에서 소설 코너만큼이나 넓은 논픽션 코너를 부러워한다는 말을 한다. 한국에서는 그 자리를 에세이가 차지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성적 분석보다는 감성적인 위로를 선호하는 정서 때문이라고 본다. 논픽션 장르는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배 이상 쓰기 어렵다. 경험상 에세이를 쓰면 치유되는 느낌이 있지만 세계에 맞선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국에도 논픽션 장르가 더 관심받고 우대받기를 그는 기대한다.
#온라인 서점 독자투표
온라인 서점에서 실시하는 독자투표에 쓴소리를 한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포인트 적립이라는 유혹에 이끌려 투표를 하니 결과물이 작가 인지도나 이미지 호감도 조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고료를 주고 유명 작가들의 추천사를 받아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OOO 추천’이 사실상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은 매끈하고 날씬한 책을 선호하는 추세다. 긴 글을 읽기 버거워하는 독자들과 긴 글을 쓰기 어려워하는 작가들 모두가 윈윈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씁쓸하다.
세계문학전집의 작품 목록에 있는 작가들은 당시 세상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보바리 부인>과 <채털리 부인의 연인>,<롤리타>는 금지됐었고 톨스토이와 스타인벡도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동물농장> 원고는 출판사 네 곳에서 거부당했고 쿤데라, 솔레니친, 오르한 파묵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게츠비>같이 사망한 뒤에 명작으로 인정받은 책들도 상당하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에도 지금 시대에 맞서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책들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는 소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렇다고 세계문학전집에 뽑힌 책을 꼭 좋아하고 존경할 필요는 없다. 그 명단 역시 어디선가 타협했을 수 있는 목록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왜 이 작품이 여기에 있는 거야’하고 의문을 가지고 분개하는 것이 독자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조건 깎아내리기가 아니라 깊이 읽어낸 결과여야 한다. 그것이 곧 문학비평이다.
내게 독서는 호흡이다.
나는 이미 읽고 쓰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경고한 그 세계다.
나는 길고 복잡한 언어가 지배하는 세상이 두렵지 않다. 나는 그 세상에서 육신을 벗고 언어의 일부가 되고 싶다.
(.....)
왁자지껄한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홍대 밤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블루스 음악을 듣는다. 취한 상태에서 걸으면서 책을 읽지는 못한다. 그것이 책의 몇 안 되는 단점이다.
나는 오늘의 독서를 미룬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준비한 문장으로 이 책을 마친다.
책, 이게 뭐라고.
책, 이게 뭐라고의 마지막 장
2020년이 며칠도 남지 않았다니.
2020년 12월의 끝자락이 가까이 올수록 마음이 자꾸 분주해짐을 느꼈다.
연초에 계획했던 독서 계획에 한참 다가서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적어도 읽다 만 책들은 리뷰 정리를 하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여러 가지로 바쁜 12월이라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주 3일간 아이들이 전자기기를 모두 사용하지 않는 체험3일 기간이라 나는 아이들이 자는 동안에만 컴퓨터를 사용해야 돼서 기상시간은 더 앞당겨야 했다.
그러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책, 이게 뭐라고?'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걸까.
그래도 책 안에 답이 있었다. 내 안에 답이 있었다. 올 해 마무리도 이 말로 대신하고 싶다.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작가도 물처럼 마셔도 150권 읽는다는데 나도 괜찮지 않을까 살며시 어깨의 짐을 내려 놓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쉽게 책의 권수로 목표를 세워봤지만 그것이 단순히 권수를 늘리고 책을 많이 읽고 싶다는 허영심에서 세운 목표는 아니었다. 나에게 독서는 리뷰를 의미한다.한 해 동안 읽고 리뷰 정리까지 마친 책이 100권정도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활자 중독자로 칭하는 김민식 PD가 매년 200권을 읽는다는 이야기에 슬쩍 '그럼 나도 200권에 도전해볼까?' 생각한 게 전부였다.
그러나 장강명의 말처럼 그게 개인적인 의미이지 다른 어떤 의미가 더 있는 것은 아니다. 늘어나는 뱃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매일 윗몸일으키기 100개 목표를 세우는 것 보다 더 거룩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서야 말로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다. 몸무게가 10kg감량된 것은 눈에 확 띄겠지만 늘어난 독서량이 눈에 띄겠는가.누가 알아주겠는가. 어차피 자기만족으로 사는 인생인것을.
개인의 취향이기에 나 개인의 관심이었고 내 가족들조차 별 관심없는 목표였지만 나 나름으로는 마지막 며칠의 시간을 쪼개는 계산을 해서라도 목표량에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 뿐이다.
책, 이게 뭐라고?!
이 제목이 심쿵했다. 그래 이게 뭐라고 그렇게 좋을까 말이다.
나는 여전히 책이 좋다. 올 해 나의 독서 특징은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갈아탔다는 것이다.(사실 잠시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싶었으나 나 역시 이제 전자책 마니아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래서인지 유난히도 이 책 저 책 욕심껏 다운로드 받아놓고 부자가 된 것 처럼 혼자 좋아라했다.
글쎄 그게 뭐라고 말이다. 리뷰하지 않은 책들은 그냥 다 흘러간 책들로 간주하지만 그런 수량으로 계산하자면 200권은 훨씬 넘었다.
누군가 내게 책 이야기 들려주는 것에 목 마름이 있었고 그래서 이 책 이야기에 '맞아 맞아' 맞장구 치며 좋아하며 읽었다. 나의 올 해 블로그 책 리뷰 마지막 멘트도 이걸로 하고 싶다.
'책 이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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