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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by 북앤라떼 2020. 11. 5.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정혜진

‘장발장법’ 위헌 결정을 받아낸 국선전담 변호사의 기록

영화 <재심>의 익산 택시 기사 살인사건으로 정의를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는 일명 ‘태완이법’을 만들어냈다. 사람을 살해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다. 익산 택시 기사 살인사건의 사건 공소시효 10일 앞두고 발효됐다. 가짜 범인을 재심에서 무죄를 받게 하고 진범을 15년이 지나서 법의 심판대에 세운 사건이다.

형사 재판에서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 피고인이 변호인을 스스로 구하지 못하거나 않을 때 법원에서 피고인에게 붙여주는 변호인을 ‘국선 변호인’이라 한다. 국선전담 변호사는 국선 사건만 하도록 법원장이 위촉한 변호사다. 이 직업은 2004년에 생겼고 2006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었고 그녀는 2014년에 국선 전담 변호사가 되었다.

마음에 큰 병이 있는데도 수십 년 방치되고 치료를 받지 못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들, 폭력이 일상인 환경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폭력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미워했으면서도 어느새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발견하는 한때의 피재자였던 지금의 가해자들, 돈이 너무 궁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대출이나 취업의 미끼를 물었다가 부지불식간에 엄청난 범죄 조식의 하수인이 된 이들, 절대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를 지지해 줄 사회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 순간의 유혹 앞에서 번번이 무너져버리는 무력한 이들, 어리숙하고 모자란 탓에 ‘진짜 나쁜 놈들’에게 이름을 빌려줬다가 범죄자가 되고 자신도 모르는 빚까지 떠안는 이들, 제도권 주변에는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이 책에는 가득 널려있다.

애써 외면하면 되는 일을 맡아 그들의 변호사가 되어 스스로 그들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국선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기구한 사연들을 듣고 있자니 먹먹한 마음 때문에 한참 동안 허공을 응시하기를 몇 번 그랬다. 가난 때문에 생계형 절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람을 보면 내가 가진 것들이 미안해지고 부모를 잘못 만나서 폭력에 방치되어 범죄로 발전하는 것을 볼 때면 그 책임을 도대체 누구한테 물어야 할까를 생각하며 이유 없이 화가 나기도 했다. 이 안에 담긴 이야기는 시작일 뿐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그래도 우리 사회에 최근에 국선 변호사들이 더 많이 생기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보며 이런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며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빙산의 일각에서 본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고 누군가가 들려줄 또 다른 이야기의 재료가 되길 희망한다. 국선 변호 제도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구조적으로 ‘악’한 제도들이 개선되고 범죄에 취약한 계층이 해소되는 사회에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저자정혜진출판미래의창발매2019.12.06.

 

과자를 뺏어 먹으려다 죽은 정신 병동에서 일어난 사건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안타깝다. 피해자는 보호자도 없었다. 직계 존속 부모는 모두 사망, 형도 사망, 형의 인 아들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무연고자 시신 절차에 따라 화장했다.

가해자의 부모는 변호사님께 감사하다며 비닐봉지에 바나나 한 송이와 오렌지 몇 개를 가져왔다. 단 돈 만 원의 여유를 부리기 힘든 사정을 아는 변호사는 그 봉지를 받고 코끝이 아렸다고 했다. 더운 여름에 폭 익은 바나나와 오렌지를 바라보며 과일은 어떻게든 얼려서 갈아서 먹을 수 있지만 사건의 시간은 되돌릴 방법이 없음이 그저 안타까웠다.

부모 중 한쪽 혹은 부모가 싸움이 나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는 경우 아이들은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다. 2017년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수용자 자녀 인권 상황 실태조사를 했다. 1년에 평균 5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부모의 수감을 마주한다. 이들은 부모의 수감으로 가족관계 해체와 빈곤, 정신적 트라우마 등 다층적 위기에 봉착한다. 게다가 가장 무서운 것은 ‘범죄자의 자녀’로의 편견과 낙인을 감당하는 일이다. 범죄의 대물림이 된다.

그런 중에 변호사를 찾아와 아버지의 형량이 되도록 감옥에 오래 있게 나오길 바라는 자녀도 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병역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다. 종교적 양심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을 UN에서는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1939년부터 병역 거부에 대한 처벌이 있었다. 2004년부터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가 생겼다. 아버지, 형, 동생에 이어 온 가족이 같은 재판을 받는 경우들이 많다. 4주만 훈련받으면 남들보다 편하게 군 생활할 수 있는 카이스트 출신 박사 출신 병역 특례자들, 사법 연수원을 수료하고 공익법무관으로 소집 통치 받은 백종건 변호사도 똑같이 전과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변호사에게뿐만 아니라 교도관들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환영받는 사람들이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교육수준도 높아서 교도관을 돕는 한 축을 맡는다고 한다. 일손이 부족하면 “너네 형제 언제 또 들어오냐"라고 할 정도다.

무기력한 술의 노예로 술값 때문에 전과 30범이 된 사람도 있다. 행패를 부리거나 소란을 피운 적도 없다. 술값과 밥값을 받지 못한 식당에서 경찰을 불러 체포된 경우다. 감옥에 다녀오면 며칠은 조심했지만 돈이 없고 그렇게 식당에 가면 다시 체포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소용없는 처벌에 서글프고 힘이 빠졌다. 존경받는 원로 정신과 전문의 이호영 선생은 알코올 의존을 사랑의 병이라고 불렀다. 병이 깊어질수록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따뜻한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성장해서도 정서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친밀한 관계를 경험한 적이 없었던 그에게 왜 술을 끊지 못하냐고 비난하며 더 엄격하게 처벌한들 술을 부르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한 재범을 막을 수 없다 상처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범죄가 해결될 수 없는 사람을 두고도 우린 범죄만 보고 있다.

139쪽

중독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중독은 너무 멀쩡함과 결코 멀쩡하지 않음의 완벽한 공존이다.

한 40대 중반의 남자는 부탄가스 동종 전과 14범이다. 그 사람을 만나고 변호사는 도서관에서 중독 관련 책을 찾아 공부했다. 그러나 그녀가 만난 중독 범죄자들의 삶을 책처럼 중독의 실체와 극복 방법이 명료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오늘은 J가 저녁에 PC방을 안 가고 집에서 “엄마 배고파 밥 줘”하는데 갑자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이게 삶인가 싶다가도 따뜻한 밥 한 끼 아들에게 먹일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샘 깨닫게 돼

J는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 먹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어.

또 게임할 게 뻔하지만 그래도 같이 저녁 먹은 행복감에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악몽 같은 날들도 언젠가 지나가겠지.

늘 고맙다.

164쪽

변호사의 친구가 보낸 메시지만으로 친구 모녀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매일 오손도손 사는 사람도 있지만 이게 사는 건가 싶다가도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보면 사는 것 같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그래도 품어줄 엄마와 쉴 수 있는 안락처가 있으니 언젠가 치유될 것이라 생각된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런 가족이 없어서 범죄로 자꾸 내몰리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공연 음란 처벌도 있다. 여학교만 다닌 나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이들 얘기로 ‘바바리맨’출연담을 듣곤 했다. 이것 또한 중독 범죄다. 노출 행위로 얻는 성적 쾌감이 얼마나 큰지 모르지만 그런 일 한 번 하고 2년 반을 교도소에 갈 정도로 큰 것일까 도무지 일반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중독 범위다.

교도소에 치료감호소가 있는데 의사 한 명당 환자가 136명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치료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공연 음란 범죄자는 어렸을 때 받은 성적 학대가 성 도착증의 원인이 됐다. 어릴 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재혼을 했는데 계부가 늘 성기 부위를 겨냥해 폭력을 휘두르고 학대해서 동네 사람들이 신고를 해서 결국 아동 보육 시설에 보내졌는데 거기서 성적 학대를 당한 케이스였다.

국선 변호사로 그녀는 교과서와 판례집에서 공부하지 못한 것들의 부족함을 느꼈다. ‘절벽에 선 사람들과의 대화하는 법’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이라고.

피고인과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서 ‘좋은 국선’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국선’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핵심은 의사소통이다.

가끔 변호사가 봐도 황당한 무죄도 있고 수행비서까지 거느린 건물주 아저씨라든가 의사 사모님, 대학교수의 케이스가처럼 국선 변호사가 필요 없는데도 굳이 국변을 쓰는 경우들도 있다. 형사법에는 변호사를 살 능력이 없는 경우뿐 아니라 ‘빈곤 그 밖의 이유”인 경우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선 변호는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비용이다. 형편이 되는데도 변호인을 굳이 선임하지 않는 이들에게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는 건 공동의 비용을 늘리는 일인 만큼 법원에서 ‘빈곤 기타 사유’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뉴스에서 주로 다양한 범죄 소식을 듣는다. 보통 누군가 저지른 "범죄"만 보인다.

그러나 그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드 보면 범죄가 아닌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보이는것 같다. 신영복 교수의 책 속에도 20년간 교도소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만나보면 이해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 그러나 다시 그들이 교도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범죄까지도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회에서 줄일 수 있는 범죄가 있는것도 사실인것 같다.

-내가 했다고 할 때까지 계속 조사할 거라고 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계속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뭐 힘이 있나요? 했다고 할 때까지 잡아놓고 집에 안 보내준대요. 조사받다 보니 배도 고파지고 집에 가야 하니까 할 수 없이 했다고 했지요. 우리 같은 사람이 뭔 힘이 있나요 35

-사건의 인연은 때로 이렇게 신비롭다. 본인이 억울하다고 다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고(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도 법정에서는 모른다) 변호사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고 (못 배운 10대의 억울함에 가슴이 뜨거웠던 박 변호사님이 얼마나 열심히 했겠는가) 증거가 충분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2003년에 이미 진범의 자백과 객관적 증거가 다 일치하는 수사가 이루어졌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재심을 준비할 당시 태완이 사건이 이 사건을 구하게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06

-정의를 찾지 말고 판례를 찾아라. 그래야 이 땅에서 법조인이 될 수 있다. 270

-독일 학자는 결론이 정의의 관점에서 수긍할 만한 것인지를 검토할 때 “우리 할머니는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 뭐하고 하실까?”라고 묻는다고 했다. 할머니로 대표되는 법률 문외한(하지만 건전한 상식을 가진 분)이 그 결론에 대해 “그건 옳다고 할 수 없어”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법적 사고 과정에서 무엇인가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개념에만 너무 집착하여 포섭이 실질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행해지는 경우에 그러한 일이 생긴다 271

-그녀에게 과연 국가란 무엇이었을까. 정책을 잘못 입안해 시위하게 마들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무차별적으로 시위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무수한 SNS와 대조하여 단순 시위 참가자를 찾아내 기소하고, 한편으로는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면서 방어하게 하고, 대법원에서 새 법리가 나왔으니 무죄라고 하고, 채증이 위헌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반대 의견으로 당신 말도 일리가 있다며 위로하는 이 모든 순간이 가능한 존재. 그게 바로 국가였다.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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