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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by 북앤라떼 2020. 11. 4.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주문을 틀려도 되는 요리점 ‘기획자 NHK 방송국 PD로 2013년 심실빈맥 발병으로 ‘방송국에 있으면서 TV 프로그램을 전혀 만들지 않는 특이한 PD’로 알려지기 시작하며 전담팀까지 생긴 뒤 우연한 취재 현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한 사례다.

2012년 기획’치매 환자 간병 업계의 이단아’ 와다 유키오 씨가 총괄하고 있는 시설을 취재갔다가 이 일련의 ‘실수’를 경험하게 된다. 와다 씨는 ‘마지막까지 나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믿으며 이에 바탕을 둔 간병 활동을 30년에 걸쳐 실천해 온 사람이다. 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분들은 치매를 앓고 있지만 장 보기, 요리, 청소, 세탁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은 스스로 하도록 한다. 취재에 갔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받았는데 예정된 메뉴는 햄버거 스테이크였는데 나온 것이 만두였다. 처음에 PD는 당황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햄버거 스테이크가 만두가 되었다고 해도 무슨 문제인가? 그 순간 이 요리점의 아이디가 떠올렸다.

실수를 받아들이고 실수를 즐길 수 있는 그런 가치관을 담은 식당이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준비 위원회 팀이 생기고 2017년 6월 3-4일에 도쿄 레스토랑을 빌려서 시험적으로 오픈을 해 보았다. 그날 방송국 멤버 중 한 명이 음식을 먹고 올린 페이스북의 글이 순삭 퍼지면서 재팬 검색 순위 1위가 되고 각종 방송국, 신문, 잡지사 등 취재 의뢰가 쇄도하는 사태가 생겼다.

치매 걸린 요시코 할머니는 주문을 받으러 왔다가도 ‘내가 여기 뭐 하러 왔지…’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때서야 손님이 “주문받으러 오신 거 아니세요?” 하니까 장난끼 가득한 웃음으로 호호호 웃으신다.

깜빡 잊어버렸지만,

틀렸지만

뭐 어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 그렇게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 그곳 분위기는 부드럽고 따스하게 변한다.

한마디로 뒤죽박죽이지만 이미 예상한 손님은 즐거울 수 있다.

할머니들의 예상 밖 실수를 위해서 간병 시설 매니저 7명이 상시 대기하며 함께 했다.

일본의 이 프로젝트는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주변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노력이 있다면, 치매 환자도 얼마든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치매 환자를 과소평가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이다

노르웨이 공중보건협회 사무국장

이 이야기는 국경을 넘어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치매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일을 그만두고 그룹 홈(사회생활 적응에 힘든 사람들이 공동생활하는 시설)이라는 틀 안에서 지내게 된 이후에도 요시코 할머니의 가슴 한 켠에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연신 넘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일할 수 있는데’ 그런 할머니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을 하면서 다시 채워진 것이 느껴졌다.

복지팀 서포터 38

현재 여든한 살인 미도리 할머니는 수려한 외모에 쾌활하고 사교적이어서 치매가 상당히 진행되어 어제 일도 기억하기 힘들지만 다시 한번 일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한다. 할머니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하고 활력을 되찾았지만 일한 사실도 이미 기억하진 못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할머니가 함박웃음으로 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복지팀 서포터 54

웃는 얼굴로 연신 일하던 에미코 할머니는 그만 울상이 되고 허둥지둥거리신다. 아차 할머니가 배가 고프시구나. 그제서야 피자를 급히 준비해 드렸더니 우걱우걱 아무 소리도 없이 드신다. 빈속이 채워지자 할머니는 다시 평온한 모습을 되찾았다. 이미 폐점 시간이 다가와 있었지만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

-복지팀 서포터 59

저희 홀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입니다.

가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식당 안에 걸린 패널

청년성 치매를 앓고 있는 후미이코 씨는 아직 예순두 살.

사이타마 집에서 홀연히 사라진 뒤 가쓰시카까지 걸어갈 만큼 기운이 넘치는 분인데 종종 경찰서 신세를 진다. 이곳에서 일을 하고 얼마 뒤 또 후미이코 씨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지만 당신은 좋은 구경 다녀오셨다고 하신다.

여든다섯의 고령의 데쓰 씨도 있다 하루 일한 사례금으로 3천 엔을 받고 아들에게 자랑하고 쇼핑을 했다고 하신다.

남편은 첼로를 아내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부부도 있다. 부인은 치매가 걸려서 지금은 피아노 연주에 서툴지만 예전에는 전문가의 실력이었다. 식당에서 두 부부가 연주를 한다.

‘제대로 하고 싶어’ 괜찮다고 해도 치매를 앓는 사람에게도 그 마음은 변함없다.

중간중간 틀리면 다시 남편이 피아노 건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을 몇 번 반복하며 우여곡절 끝에 <아베마리아> 연주를 끝냈을 때 손님들의 감동의 박수 세례를 받았다.

이제 일상생활에서 아내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예를 들면 옷을 거꾸로 입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어쩌다가 제대로 입기라도 하면 우리 두 사람은 펄쩍 뛸 정도로 좋아한다. 나는 ‘치매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다. ‘치매에 걸린 사람도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보여주고 싶다. 아내 인생에 피아노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카오 가즈오 103

스물한 살의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은 네 살 아이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사람들을 싫어해서 외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한번 다녀온 뒤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우면서도 따뜻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눈살을 찌푸리며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쿠치 씨 112

나는 4기 암을 앓고 있다. 오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나의 병과 치매라는 병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을 바로 ‘앓는 것’.암을 앓게 되면서 여러 가지 선택,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등의 ‘잃는’경험을 했다.

-아카지마 나오 씨 116

제목때문에 호기심으로 열어 본 책이지만 읽는 중에 치매가 있으셨던 증조할머니 그리고 할머니가 머물던 요양병원이 생각났다. 요양병원에서 한 필리핀 할머니는 손목에 채워져있는 팔찌가 출입문 근처에 가도 알람이 울리는 것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매번 밖으로 나가시려는 시도를 일상처럼 반복하셨다. 나와 할머니는 늘 그 할머니의 시도를 멀찍이서 안타깝게 지켜보곤 했다. 유키오 씨 역시도 주변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치매 걸린 노인들의 안전 이상으로 존중하고 싶은 그들이 행복할 권리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면 그렇게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안전에 대한 문제에만 유독 치우쳤던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역시도 할머니의 안전을 가장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치매가 아니어도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실수해도 괜찮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언제부터 우리는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 내는 것을 성공의 미덕으로 여겼는지.

할머니들의 미소가 다 아름다웠지만 특별히 첼로와 피아노를 연주하신 부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부부가 함께 연주를 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부인의 실수를 넉넉하게 커버해 주는 남편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하실까.

그래서 다 살아지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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