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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복수의 심리학:우리는 왜 복수에 열광하는가

by 북앤라떼 2020. 8. 11.

복수의 심리학

스티븐 파인먼, 이재경

“복수하면 인간은 적과 같은 수준이 된다.

하지만 무시하면 그는 적보다 우월해진다”

- 프랜시스 베이컨

“복수란 처음 생각에는 달콤하지만

얼마 안 가 자신에게로 쓰디쓰게 되돌아온다”

-존 밀턴

“사람은 냉혹하게도 때로 그걸 기대하기도 한다"

-니체

책 속에서

수는 개인 간 암투, 집단의 내분, 노사 분쟁, 내전과 국제전에 존재하는 암묵적 관습법이다. 자아와 공동체의 궁극적 자기 진술이다. 타인의 침범을 막는 방어 수단이자 경고 조치다. 날것 그대로의 정의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복수자(avenger)다. 복수는 소설가와 극작가와 영화감독의 뮤즈이고, 철학자와 사회과학자의 탐구 대상이다. 복수에 내재한 파괴 가능성은 복수를 정의의 주요 관심사로 만든다.

복수' 정의와 죄악' 그 두 얼굴을 만나다.

처음 이 책을 시작할 때 ‘복수’ 그것은 나와 먼 느낌의 것이었다. 책을 덮으면서 그것과 나는 너무나 친근하게 함께 살아왔음을 인정하게 된다. 지금도 소소한 복수는 끊임없이 알게 모르게 '복수라는 명명 없이도' 무의식중에도 일어나고 있다. 또 하나는 내가 직접 복수를 하지 않아도 나는 암묵적인 동조자, 방관자의 역할 때로는 청원자의 얼굴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얼마 전 ‘여성들의 성 착취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포토라인에 섰을 때 철저하게 응징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는 남편에게 “거기 가입하고 구경했던 놈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야. 다 처벌받아야 돼”라고 말했고 그 이후 N 번방의 40대 가입자와 제보자가 결국 자살을 택했다면서 그게 마땅하냐고 되묻는 남편에게 무언으로 대답했다. 그들의 죽음은 애도하지만 죄는 처벌받아야 한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유독 치를 떨며 분개하는 사건은 여성, 그리고 아동에 대한 폭력 사건들이다. 조두순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엄마의 심장으로 잔인한 형벌 (책에도 나오지만 거세 그보다 더 잔인한 것들도 등장한다)이 내려지길 바랐다. 그것을 복수의 이름이라 부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고통을 당한 사람을 생각한다면 그 고통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수없이 본능적인 대응을 갈등하지만 다행히도 대부분의 경우는 생각으로 그치거나 도덕과 이성으로 우회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종교 그리고 심리학에서도 복수보다는 용서를 이야기한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고통을 극복하는 힘이라는 이유다.

한 중년의 여성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남편에게 했던 복수는 ‘매일 아침 타주는 커피에 침을 뱉어서 내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속적인 복수였다. 그 복수가 나를 참 슬프게 만든다. 한 번의 칼로 찌르는 것이 아닌 날마다 칼을 가는 느낌이랄까. 매일 눈뜨며 맞이해야 하는 복수의 대상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그 고통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두 사람이 다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음식에 침을 뱉는 행위를 통해 기쁨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불특정 다수를 위해 그냥 하는 이런 복수는 귀엽게 봐 주기엔 너무 치졸하고 악의적이다. 자신의 감정 처리를 못할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한국에서‘부부의 세계’로 천만 영국인의 사랑을 받은 BBC One의 <닥터 포스터>에서도 남편의 외도에 복수하는 아내 젬마가 등장한다. 젬마의 복수가 짜릿한 장면도 없지 않지만 갈수록 남편 보다 더 어그러지는 젬마를 보게 된다. 짜릿한 마음은 어디가고 안타깝기도 하고 진정으로 성공한 복수가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복수는 결국 마음의 병을 앓게 한다. 박탈감, 불평등, 불공정, 배신감, 착취, 좌절, 수치심, 시기, 질투는 분노하게 만들고 ‘복수나 보복’이라는 용어 대신에 순화된 정의의 내 마음을 상대에게도 전달해 주는 충동을 느끼도록 한다.

‘복수’라는 한 단어로 이야기하기엔 그 다양한 상처와 아픔이 너무나 많기에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도 용서를 말하기 어렵다. 굳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정의라는 잣대를 대는 일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인가는 살면서 곱씹어야 할 영원한 숙제로 느끼며 책 속에서 밑줄 친 부분들을 나눈다.

 

복수의 심리학 저자스티븐 파인먼출판반니발매2018.02.28.

 

 

 

1장 복수의 뿌리

침팬지와 마카크의 사회생활을 다룬 연구에 보면 상호주의가 지배적이다. 음식을 나눌 줄 알며 신세를 진 일에는 다음번에 음식을 나눠주고 규칙 위반자들에게는 응징으로 대갚음을 한다.

인간 영장류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선사시대의 수렵채집 집단들은 공동생활로 자원을 공유하며 위반자들은 추방하고 혹독한 심판으로 진화적 우위를 결정했다. 농경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더 복잡해지면서 개인의 복수를 국가가 대신하게 됐다. 자기도취, 나르시시즘 자기애는 한쪽에 건전한 자기애와 다른 쪽에 악질적 자기애를 갖는다. 악질적 나르시시스트가 막강한 권력을 가졌을 때 이들은 사이코패스가 되는데 저자는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마오쩌둥, 이디 아민, 김정일, 폴 포트, 사담 후세인, 무아마르 카다피 등을 예로 든다. 리더십의 역사는 악질적 자기애의 역설을 보여준다. 악질적 자기애는 추종자를 끌어모은다. 스탈린은 열등감과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고 불우한 성장 과정 속에서 감정적으로 철저하게 메마른 인간으로 성장했다. 그는 강도였고 폭력 조직 살인자로 권자에 오른 뒤 예전 조직원들을 처형하는 방법으로 과거를 세탁했다. 스탈린 1936년 소비에트에서 자행된 공포정치는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는 정규화된 무자비한 탄압이었다.

2장 신의 심판

신의 복수는 항상 순수한 동기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기독교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못했다. 기독교는 신앙을 빙자한 응징을 후원하거나 묵인해왔다. 십자군 전쟁, 종교 재판, 노예 제도 정당화, 사형 지지, 반유대주의 등 악명 높은 사례는 너무 많다.

이슬람교의 상법은 “눈은 눈으로”원칙을 ‘키사스’라는 응징 제도로 적용한다. 지하드는 종교적, 도덕적 원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뜻한다. 2001년 9.11테러 후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의 행동은 “알라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고 지하드의 신성한 열매를 위한 것’이라 했다.

힌두교의 기조 사상인 ‘아힘사’는 비폭력과 불살생을 표방하지만 복수와 자기방어를 구분한다. 자위적 전쟁이라면 물리력이 정당화된다.

불교에도 군국주의적 분파들이 있다 스리랑카에서 정부군과 타밀 반군 간의 26년에 걸친 잔혹한 내전은 최근에야 종식됐다. 평화협정은 보복성 습격으로 파괴되는 일은 허다하고 유엔에서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으로 규정한 미얀마 로힝야족 무슬림에서의 종교적 차별과 탄압은 극심하다. 그 선두에 불교 민족주의자들이 있다.

종교와 복수는 뒤얽혀 있다. 복수를 다스리려는 시도도 불가피하게 종교적 신념 및 교리와 교차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장 복수 문학

알베르 카뮈는 “소설은 진실을 말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독자는 피해자, 가해자, 중립적 방관자로 감정이입하여 전율을 느낀다.

복수는 수 세기 동안 소설의 주재료였다. 약 2000년 전 로마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세네카는 복수에 대한 혐오를 담아 그리스 신화를 희곡으로 각색했다.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소림 끼치는 복수자들이다. 복수하는 영웅은 영화에도 등장한다.

© tjohnfredrick, 출처 Unsplash

 

슈퍼히어로는 현대판 그리스 신들이다. 이들은 정의 구현에 실패하는 순간에 홀연히 나타나 ‘이상적 복수’로 선량한 시민을 지킨다. 그들에게는 악의한 찾아볼 수 없고 강직함을 연료 삼고 비상한 능력을 무기로 장착하고 역경에 맞선다.

2016년에 유엔이 원더우먼을 ‘여권 신장 명예대사’로 임명했다. 과거에도 곰돌이 푸와 팅커벨 등이 임명된 바 있다. ‘풍만한 가슴과 비현실적 비율을 자랑하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달리는 백인 여성’은 여권을 대변하기에 적절한 선택이 아니라는 반발이 있었다.

작가는 문학을 복수로 활용해왔다. 프랑스 시인 루이즈 콜레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불륜이었고 적개심에 불타 헤어진 후 <보바리 부인>을 썼다. 콜레 역시 주체할 수 없는 화로 자신의 작품 역대급 증오의 책으로 반격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소설 속에 자신의 부인들을 캐릭터로 활용하여 분풀이를 했다. 누군가는 문학과 작가적 재능의 행위로만 보지만 문학이 영원한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작가의 악의는 비난받을 수 있다.

4장 눈에는 눈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법으로 유명하다. 이 법은 복수를 정의 구현을 위한 국가의 전유물로 책정한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회 계급 속에서 공평하지 않은 복수법이었다. 같은 계급의 시민의 눈을 상하게 했다면 자신의 눈을 내어놓아야 했지만 피해자가 평민이라면 벌금형이었다.

중세에 이르러 육체적 형벌은 제도로 자리 잡았다. 처참한 전쟁, 전염병, 기근에 시달렸던 그들에게 ‘신성 재판(불, 물, 결투)’도 추가됐다. 너무나 잔혹하여 글로 옮기기 싫은 형벌들이었다.

독일에서는 원수 사이가 된 부부가 물리적 싸움을 통해 결혼 관계를 청산하는 법이 있었다. 당연히 신체적인 능력의 차이를 배려한 싸움이었다. 만약 이 싸움에서 패자가 목숨을 부지하면 남자는 참수형, 여자는 오른손 절단형을 받았다.

중세는 잔학한 육체적 형벌의 시대였다.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로 간주됐기에 구타해도 무방했다. 강간 법이 재밌는데 임신을 하지 않았을 경우 강간범이 태형, 거세 처형을 당하고 만약 피해자인 여성이 강간으로 임신을 하면 여자가 강간으로 성적 만족을 얻었다고 가정하여 강간으로 보지 않았다고 하니 ‘성범죄는 피해자가 자초한 일’이라는 개소리 중세 버전이란다.

1547년 영국에서는 부랑자 단속 법으로 신체 튼튼한 남자가 4일 동안 일자리 없이 지내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때리고 출생지로 쫓아버렸다.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데 채찍질이라니.. 이건이 그들이 세운 정의의 법이었고 정의 구현이었다.

대역 죄의 응징은 더욱 잔인했다. 그들은 교수된 죄인의 창자와 내장을 꺼내 불태우고 역모를 꾸몄을 머리를 자르고 사지를 찢어 만인이 보도록 걸어놓고 가금의 먹이로 주었다. 사람들은 이 극형은 구경했다. 역모를 꿈꾸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

현대는 어떤가? 2016년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사범에 대한 즉결 처형을 허가하여 세계는 경악했다. 이 조치로 수천 건의 거리 처형이 이어졌다. 사법 정의라는 문명화의 얼굴 아래에는 복수가 끓고 있고 언제든 야만의 뿌리를 드러낼 수 있다.

5장 핏빛 명예

“명예는 개인의 긍지이고 영광이고 찬사다. 물이나 음식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명예 없이는 살 수 없다”

명예살인 복역자의 말

종족 복수는 흔히 불문율이나 묵계로 규정한다. 명예 살인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명예살인의 희생자는 대부분 가부장적인 가족에 속한 여성들이다.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매년 약 5천 명의 명예살인 희생자가 발생한다.

집안의 ‘명예’를 지킨다는 미명 아래 여자와 소녀를 총으로 쏴 죽이고 돌로 쳐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생매장하고 목 졸라 죽이고 질식시켜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는 일이 몸 소리 쳐지는 빈도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나비 필레이

명예 복수의 중추에는 체면이 있다.

16~18세기 유럽 상류층은 여성에 대한 정중함, 용맹, 예의 바름 같은 덕목들을 찬미하는 기사도를 추종했다. 결투는 상류계층의 전유물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결투장은 법정으로 무대를 전환했다. 그러나 여전히 치안의 사각지대에서 명예 복수는 자행되고 있다.

6장 사적 원한의 끝

심리학에서 말하는 ‘원한’은 과거의 모욕이나 피해에서 기인한 악의나 적개심이 집요하게 지속되는 감정 상태다. 부당 해고, 사기나 갈취, 누명, 굴욕 등 우리의 자존감을 후벼파는 사건들을 우리는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여성 혐오 풍조는 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다. 2014년 OECD에서 지목한 6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여성은 여성차별 법으로 학대받고 있다.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 한 남자가 자기 아내를 프라이팬으로 죽인 사건이다. 음식에 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살해 이유였다

최근에는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가 사이버 스토킹의 주된 수단으로 부상했다 학교 안에서의 폭력으로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만 90여 건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2014년 미국에서 총으로 죽은 사람의 수가 3만 3천 명이 넘지만 미국의 총기 소지 권한법은 요동하지 않는다.

7장 보복과 전쟁

‘정의의 복수’는 참전의 강력한 명분이고 자기 강화 구호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충격받은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날을 오명으로 남을 날”로 선포하고 도쿄에 대한 보복 공습을 지시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드는 순간이었다. 2001년 알카에다의 세계무역센터 파괴에 대하여 조지 W.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적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리겠다고 했다.

극단주의 수니파 ISIS는 강제 점거한 지역들에서 “이슬람의 적들”에 대한 고문, 참수, 십자가 처형, 노예화를 자행하고 있다. 전쟁과 인정은 물과 기름이다. 전쟁이 나면 인정이 가장 먼저 총에 맞아 죽는다.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는 포로에 대한 고문과 즉결 처형, 고의적 민간인 공격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난징 대학살은 전시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행된 대량 학살 중에서도 최악의 야만적 범죄로 꼽힌다.

8장 일과 원한

1986년 오클라호마주 우체국 소속 집배원이던 셰릴은 총기를 난사해 동료 집배원 14명을 죽이고 6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징계에 대한 앙심으로 보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go postal 격분하다’는 표현까지 생겨났다.

한 텍사스주의 자동차 영업소에서 해고된 사원은 앙갚음으로 프로그램 해킹으로 자동차 100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임대차 계약 건들의 지불금을 죽은 랩 가수의 계좌로 이체했다.

우체국 보복에 비하면 귀여운 보복에 해당하는가?

많은 경우 직장 내 복수는 미묘하게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그때의 복수는 경쟁과 보이지 않게 버무려진다. 근로자 사보타주는 노동자가 여러 방법으로 작업 능률을 떨어뜨리는 것을 말하는데 19세기 프랑스 공장 노동자들이 신던 나막신 ‘사보 sabots’에서 유래한 용어다.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신고 있던 사보를 벗어 기계 속에 던져 넣었다는 설이다. 또한 사보는 파업 파괴 strike-break 용 인력을 부르는 은어였다는 설도 있다. 이런 이유로 ‘사보떼 saboter’는 ‘일을 엉망으로 하다’, ‘사보타주 sabotage’는 망친 제품의 의미다. 사보타주는 악감정에 따른 고의적 파손 행위를 뜻하게 되었다. 1800년대 초 영구 노팅엄의 방직공들이 새로운 직조 기계를 파괴한 사건이 대표적으로 ‘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의 시초가 되었다. 가벼운 사보타주 행동은 본질적 소외감이나 단조로운 업무로 고통받는 근로자들에게 작은 도피처를 제공하기도 하니 아주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때론 울분과 불의에 대한 해독 효과를 낸다고 볼 수도 있다.

9장 정치 보복

미국에서 정치 보복은 ‘애플파이만큼이나 미국적인’것으로 통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첨예하게 양극화된 오늘날의 역사는 초대 재무 장관 해밀턴과 토머스 제퍼슨의 부통령이던 애런 버의 사건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해밀턴은 버를 ‘절조 없는 불한당이자 모사꾼’이라는 견해를 표출했고 버는 해밀턴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두 사람은 1804년 7월 11일 새벽 뉴저지 주에서 만나 서로 권총을 겨눴고 해밀턴이 사망했다.

미국 국내 정치에서 복수는 은밀한 따위와 거리가 멀다. 복수극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건은 닉슨 대통령의 복수다.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에서는 ‘닉슨의 정적 명단’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반정권 인사들을 관리하는 모든 수간들 결집하고 사찰, 탄압하는데 인정사정 두지 않았다.

주먹에서 주먹이 오가는 경우는 물론이고 민주당의 로저 앳킨슨 프라이어는 권총과 지팡이로 달려들기도 했다. 인신공격 역시 미국이 선두다. 언론의 보복이 민주주의의 투사들과 맞짱 뜬 역사는 지금까지도 자행된다. 소수 유력 소유주들에 의해 집중된 언론 매체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기대하긴 어렵다.

정치보복 최후의 장은 회고록이다. 그들은 대필 작가들의 힘을 빌려 ‘본인 위주의 주관적 기억들로 자만심과 허영심으로 버물린 대중에게 잊히지 않는’ 회고록을 남긴다. 잘하면 대중의 관심도 받고 회고록을 통해 묵은 원한을 갚기도 하며 응징도 하고 잔고까지 불려주는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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