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독서
가시라기 히로키
늘 태평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의 밑바닥을 두드려보면
어디에선가 슬픈 소리가 난다.
나쓰메 소세키
“삶에 대한 절망이 없으면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고 했던 카뮈!
누구나 살면서 절망의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정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절망'의 특성은 작가 토마스 만이 "사자에게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은 더욱 무서운 괴물이 되었다"고 한 말처럼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 더 두려운 존재가 된다. 이런 절망!
그래도 누구나 터널안에 있기 보다는 터널을 빠져나오고 싶어한다. 어둠 속에서의 한 줄기 빛, 그 빛을 찾게 되는 이야기가 '절망독서'다.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위로나 격려의 말일까? 사람들은 절망을 빨리 극복해내려 하지만 저자는 쓰러져 있는 시기(절망의 기간)를 어떻게 보낼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은 쓰러져 있을 때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깊은 절망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무리하게 빨리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바다 깊이 잠수했다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수면 위로 갑자기 올라가면 잠수병에 걸리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 가시라기 히로키는 난치병으로 13년간의 긴 절망을 체험한 바 있다. 그때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한 책을 찾았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됐다. 지진이 일어난 후에 지진 대책 안내서를 읽기 시작하면 때가 늦듯이 독감도 예방 백신을 맞듯 절망도 그런 관점으로 미리 알아두라고 한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하여, 2부는 절망했을 때 다가와주었던 책, 영화, 드라마를 소개한다.
행복의 경험이 주관적이듯이 절망의 경험도 주관적이다. 어떤 특별한 정보나 재미를 주는 책은 아니지만 13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해 볼 때 몇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도록 귀를 허락하는 것은 그리 나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절망에 대한 ‘공감’이다. 나는 ‘절망’이라는 단어의 깊이가 너무나 크고 깊고 넓게 느껴진다. 내가 절망했던 순간의 기억을 금세 찾아낼 수 있지만 오래 절망의 늪에 빠졌던 기억이 있었던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사실은 이미 학자들이 밝힌 바이기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경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절망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키에르케고르다. 그의 책 ‘죽음에 이르는 병’을 보면 절망이 곧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병이다.
절망은 사람들이 절대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한 참된 출발점이다”
-쇠렌 키에르케고르
심리학에서 ‘외상후 성장’이라는 개념이 있듯 인생의 큰 사건이나 질병의 고통을 통해 사람이 성장할 수 있다.
7년간의 표류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는 배우 신동욱은 ‘추천의 글’에서 한 개인의 절망과 함께 했던 책에 공감한다. KBS 2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여<슬픔이여 안녕> <소울메이트> <쩐의 전쟁> <별을 따다줘> 등의 작품에 출연했던 그는 2011년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판정을 받은 뒤에 투병 생활을 하며 첫 장편소설 『우주일지』를 썼다.저자가 좋은 책을 만나서 고독과 절망을 견뎌냈듯 자신의 고통에 함께 했던 책도 함께 소개한다.
1부 절망의 시기,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는 카프카의 팬이다. 그래서 카프카의 말로 시작한다.
삶이란 끊임없이 옆길로 새는 것이다.
원래 어디로 향하려 했는지
돌아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
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가? 자네 말처럼 행복해지기 위해서? 맙소사, 책이 없어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네. 들어보게,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고통스러운 불행처럼, 자신보다 더 사랑한 사람의 죽음처럼, 모든 이들로부터 떨어져 숲으로 추방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라네. 책이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해.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내는 편지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시작했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말처럼 어쩌면 행복 저편의 불행과 절망의 늪에서는 제각각의 모습을 안고 있겠다고 나도 생각한다. 결혼식이나 축하하는 자리엔 혹 못 가면 부조만 보내더라도 장례식은 꼭 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사람은 행복한 순간에는 미처 받지 못한 축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아픔의 순간에 위로받지 못한 아픔은 두고 두고 서운한 법이다. 그러나 사실 고통 가운데 사람의 말로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책은 긴 고통의 터널을 함께 보낸 ‘책’ ‘독서’에 대한 이야기다.
책이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하란 법이 있는가?
그는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등장하는 지능지수가 60이하여서 열쇠로 문조차 열지 못했던 19살 소녀 리베카를 만난다. 어느날 색스가 벤치에 앉아있는 소녀를 보았는데 소녀의 얼굴은 평온했고 미소짓고 있었다. 기분 좋은 봄날 리베카는 벤치에서 자신이 읽었던 책 한 구절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할머니나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자주 졸라댔다. 할머니는 ‘이야기에 굶주려 있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이야기를 읽고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낭독해주어서 리베카는 거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도 읽어주었다. 그녀는 이야기에 굶주려 있었고 이야기를 필요로 했다. 이야기는 그녀에게 필요한 영양분이자 현실을 알려주는 길이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https://blog.naver.com/bookandlatte/221493336461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학교 앞에서 아이 기다리며 읽는 중에..아 참 좋았다~삽화가 참 예쁘기도 하고 말을 하기도 한다.올리버 ...
blog.naver.com
이야기는 작은 세계이며 현실 그 자체와는 다르더라도 현실을 알려주는 모형이나 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리베카처럼 현실을 다 파악하고 마주하기 힘들더라도 작은 이야기라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린 멍게는 평생의 거처로 삼을 만한 적당한 바위가 산호초를 찾아 바다를 떠돈다. 이 탐색을 위해 어린 멍게는 작은 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적당한 장소를 찾아 뿌리를 내리면 더 이상 뇌가 필요없어지므로, 멍게는 자신의 뇌를 먹어치운다
대니엣 데닛<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른도 끊임없이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이야기는 필요하다.
카프카에게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느날 카프카가 연인 도라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던 중 울고 있는 한 소녀를 보았다. 자신의 소중한 인형을 잃어버린 소녀에게 카프카는 “인형은 잠깐 여행을 떠났을 뿐이란다”라고 위로해 준다. 다음날 부터 카프카는 인형이 여행지에서 보내는 편지 형태의 글을 써서 매일 소녀에게 건냈다. 당시 카프카는 결핵 증세가 심각해져서 남은 인생이 일 년도 채 되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도라의 말에 따르면 카프카는 소설을 쓰는 것처럼 진지하게 그 편지를 썼다고 한다. 편지는 3주간 이어졌고 카프카는 어떤 결말을 맺을지 상당히 고민했다. 그가 완성한 이야기 속에서는 인형은 성장했고 여러 사람들과 만났으며 마침내 머나먼 나라에서 행복하게 결혼도 한다. 소녀는 이제 인형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작가는 정말 카프카를 사랑했구나. 하긴 나도 카프카의 이런 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싶다. 인형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랑한 에드워드 튤레인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 안에서 살아간다. 인생 이야기의 각본을 고쳐써야 할 시기에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는 더욱 필요하다.그것이 카프카와 저자가 이야기하는 절망에 책이 필요한 이유다.
어느날 의사로부터 “평생 낫지 않는 병입니다”라는 선고를 듣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사람들이 찾아와 문병 선물로 책을 주기도 했는데 그때의 책들은 기운을 북돋아주는 책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배려가 정말 역효과였다고. 그런 격려의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마음이 가라앉았다. 오히려 절망적인 책에서 공감의 마음을 느꼈고 위로가 되었다. 작은 공감이 큰 구원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느끼는 기분과 같은 음악을 듣는 것이 마음을 치유한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질효과’라고 부른다. 반면 피타고라스는 "마음이 괴로울 때 슬픔을 없애줄 밝은 노래를 듣는 편이 좋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피타고라스의 이질 효과’다. 현대의 음악요법에서도 ‘이질에의 전도’라 불리는 중요한 이론이다. 개인적으로 언제나 이론보다 당기는걸로!
슬프면 슬픈 음악을, 그 다음엔 또 즐거운 음악을!
일부러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이란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쓰인 것은 아니지만 신기할 정도로 ‘이건 내 얘기를 쓴 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또한 책은 어떠한 절망의 순간에서도 우리에게서 멀어지지 않습니다. 극복의 단계에 들어설 때까지 내내 곁에 있어줍니다.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책은 늘 함께 있어줍니다.
64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깊은 절망의 순간에 책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것 같은데..특히 책이라는 것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말이야..
나치스의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는 것은 그야말로 절망의 극치중 하나다. 그런 상황에서도 책이 구원이 되어준 기록이 남아 있다.
니코 로스트가 쓴 <다하우 수용소의 괴테>의 저자는 나치스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 수용소에서 가능하면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수감자 동료들이 죽어가고, 기아에 시달리고, 전염병이 발생하고, 주위에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와 동료들은 독서를 계속했다. 수감자가 가지고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지만 자신의 기억하는 책과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책을 ‘두뇌도서관’이라 부르며 그는 “적십자의 소포보다 고전문학이다! 고전문학은 우리를 구원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까지 했다.
그 뿐 아니라 책 <생존의 문제>속에서도 일본의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가 2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괴테와의 대화>만은 꼭 지니고 있었던 일화처럼 절망 가운데서 문학이 힘이 되어준 사례는 많다.
2부 다양한 절망과 마주하기
의사라면 완벽하게 건강한 인간은 한 명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진실로 알고 있는 자라면
조금이라도 절망하지 않는 인간은
틀림없이 단 하나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쇠렌 키에르케고르
중학교 때 처음 만난 절망의 책-다자이 오사무의 <기다리다>
카프카와 함께 ‘쓰러진 채로 머물기”카프카 전집
도스토예프스키와 ‘고뇌속에 틀어박히기’ -죄와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을 당할뻔 했고 지병인 간질로 평생 고통을 받았고, 연애 문제로도 고뇌했으며 도박 중독으로도 고생했다. 시베리아 감옥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자신뿐 아니라 수형자들의 고뇌를 접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이 된다.
가네코 미스즈와 함께 외로움을 홀로 견디기
-나의 작은 새와 바울과
가쓰라 메이초와 함께 ‘지옥을 돌아다니기’-라쿠고 대전집
바야우마상과 빅마우스와 함께 꿈을 포기하기
매컬러스와 함께 쓸쓸한 마음 느끼기-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무코다 구니코와 함께 가족에 대한 절망 맛보기-가족열, 수달
야마다 다이치와 함께 삶이라는 슬픔과 마주하기-강변의 앨범, 오래 살면, 살아가는 슬픔
번외편: 절망할 때 읽으면 안되는 책
디오 부차티 <7층>
'북 카페 > 한 권의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피책: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0) | 2020.08.12 |
---|---|
세상을 바꾸는 언어: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 (0) | 2020.08.12 |
복수의 심리학:우리는 왜 복수에 열광하는가 (0) | 2020.08.11 |
타고난 거짓말쟁이들: 누가 왜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가 (0) | 2020.08.10 |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0) | 2020.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