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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오래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by 북앤라떼 2020. 8. 15.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가늘고도 긴 길이었다. 보잘것없는 자의 푸념이며 하소연이고 고백이었다. 들어주신 당신, 선한 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

등단 50주년에 대한 소회

나태주는 몰라도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우리는 그 말을 사랑하고 많은 곳에 인용한다.

나도 시인의 다른 시들 보다도 그 시 때문에 시인의 이름 석자를 알았고 이번에 시집을 통해서 더 많은 시를 만날 수 있었다.

시인은 1973년 첫 시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1권의 창작시집들 외에도 10여권의 산문집, 동화집, 시화집을 펴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인에게도 '풀꽃' 연작시의 의미는 참 크다.

나를 시인으로 널리 알려준 시들이라 기억에 많이 남을 수밖에 없다.이 시를 통해 비로소 아름다운 모국어를 널리 알리는 시인 역할을 한 것 같다

인생은 귀한 것이고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란 걸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을 터,

하루하루를 이 세상 첫날처럼 맞이하고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정리하면서 살 일이다

부디 너희들도 아름다운 지구에서의 날들

잘 지내다 돌아가기를 바란다

이담에 다시 만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나태주의 '유언시' 아들에게 딸에게 중'

시집을 만나 뒤 책을 덮으며 다시 천천히 보아야지 생각했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그래서 20일동안 시집 중에서 마음에 남는 시들을 골라서 소개하며 하루에 한 편씩 천천히 다시 읽어 보았다.

나는 시인의 묘비명이 참 좋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나태주<묘비명>

시를 통해서 시인의 마음이 전달된다.

이 시를 읽고 내가 사물, 사람 그리고 인생을 풀꽃과 같은 마음으로 오래 사랑스럽게 보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나태주의 유언시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과 격려과 담겨 있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다가 언젠가 그와 비슷한 마음으로 나누었으면 참 좋겠다.

나이듦이 그렇게 근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아이들과 매일 운동하는 길인데 그냥 '꽃이다' 생각하며 걷다가 사진을 찍겠다고 멈춰서 렌즈를 통해 아주 조심조심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자니 들꽃 한송이조차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됐다. 누군가 꽃을 찍으면 카메라가 좋다고 또는 사진을 잘 찍는 기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더랬다. 그것도 맞겠지만 어쩌면 오래 보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사랑의 렌즈로 바라보는 세상. 그런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할까..그 사람을 자세히 바라보면 이해못할 사람도 없고 그제서야 예쁘다는 생각도 들 것인데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저자나태주출판알에이치코리아발매2015.12.15.

 

 

오늘의 약속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매미 소리가 하늘 소리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나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

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도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풀꽃과 놀다

그대 만약 스스로

조그만 사람 가난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풀밭에 나아가 풀꽃을 만나보시라

그대 만약 스스로

인생의 실패자, 낙오자라 여겨진다면

풀꽃과 눈을 포개보시라.

풀꽃이 그대를 향해 웃어줄 것이다.

조금씩 풀꽃의 웃음과

풀꽃의 생각이 그대 것으로 바뀔 것이다

그대 부디 지금, 인생한테

휴가를 얻어 들판에서 풀꽃과

즐겁게 놀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보시라

그대의 인생도 천천히

아름다운 인생 향기로운 인생으로

바뀌게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언젠가 때가 되면

죽은 듯 보이던 메마른 담쟁이덩굴에

연둣빛 어린 새 잎이 피어나고

길가 커다란 붉은 고무 통에도

이름 없는 풀들이 태어납니다.

숨 막히는 햇살과 사나운 칼바람을 건뎌낸 것이

큰 나무만의 이야기는 아닌가 봅니다.

작고 건조한 내 마음에도

희망의 잎 하나 피어납니다.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선물

나에게 이 세상은 하루 하루가 선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빛이며 새소리,

맑은 바람이 우선 선물입니다

문득 푸르른 산 하나 마주했다면 그것도 선물이고

서럽게 서럽게 뱀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강물을 보았다면 그 또한 선물입니다

한낮의 햇살 받아 손바닥 뒤집는

잎사귀 넓은 키 큰 나무들도 선물이고

길 가다 발밑에 깔린 이름 없어 가여운

풀꽃들 하나하나도 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지구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지구에 와서 만난 당신,

당신이 우선적으로 가장 좋으신 선물입니다

저녁 하늘에 붉은 노을이 번진다 해도 부디

마음 아파하거나 너무 섭하게 생각지 마셔요

나도 또한 이제는 당신에게

좋은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꽃이 되어 새가 되어

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맡기고

부리기도 버거운 아픔 있거든

새들에게 맡긴다

묘비명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몽당연필

아내도 나에겐 하나의 몽당연필이다

많이 닳아지고 망가졌지만

아직은 쓸모가 남아있는 몽당연필이다

아내 눈에 나도 하나의

몽당연필쯤으로 보여졌으면

싶은 날이 있다.

 

어버이날

고마워요 그냥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이

고마워요

고맙구나

그냥 네가 내 아들인 것이

고맙구나.

돌아오는 길

점심 모임을 갖고 돌아오면서

짬짬이 시간

돌아오는 길에 들러 본 집이 좋았고

만난 사람은 더 좋았다.

혼자서 오래 산 사람

오래 살았지만 외로움을 잘 챙겼고

그러므로 따뜻함을 잃지 않은 사람

마주 앉아 마신 향기로운 차가 좋았고

서로 웃으며 나눈 이야기는 더욱 좋았다.

우리네 일생도 그렇게

끝자락이 더 좋았다고 향기로웠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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