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JTBC 10주년 특별기획 '인간실격' 포스터를 보았다. 포스터 속에서 복잡한 감정을 연출하는 류준열과 전도연 그 표정만으로도 이미 어떤(?) 감이 오는것 같다. 공개된 내용으로는 인생의 중턱에서 문득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길을 잃은 여자 부정과 아무것도 못될 것 같은 자신이 두려워진 청춘 끝자락의 남자 강재, 격렬한 어둠 앞에서 마주한 두 남녀가 그리는 치유와 공감의 이야기가 기대가 된다.
인간실격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떠올리지 않을까
이 책은 리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책장에 감추어 두었던 책이었다.
작년의 독서를 돌아보면 하나의 흐름이 있었는데 그 흐름의 축이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그 축을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축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이것은 따로 있지 않고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있는 것이고 두 축이 인생의 그래프를 함께 그린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역시 그 이야기를 포함할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근원적인 문제다. 나 자신을 찾는 것
책 이야기를 하자면 다자이 오사무는 40년도 채 살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본의 소설가다. 그는 그 짧은 생에서도 다섯 번의 자살 기도를 했고 다섯 번째 시도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처음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아무리 일본 교과서에 실리고 인정을 받는 작가라 하더라도 그의 삶에 짙게 드리웠던 잔인한 우울감이 싫었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는 인생의 두 가지의 측면을 모두 실패한 사람이었다. 일본 작가의 책에 대한 반감이 좀 큰 편인데 일본 작가에게 드리워진 자기 환멸적인 요소나 자살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또 그런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작품에 대해서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예찬은 많고 누군가는 다자이 오사무를 자신의 인생 작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 그럼 나의 삐딱한 시선을 옆으로 놓고 봐 볼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 책의 앞날개의 작가 소개를 매치해 보면 실제 작가의 이야기인가 싶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자이 오사무는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가네기 시에서 가네기 은행 소유주이자 대지주 쓰시마 겐에몬의 11남매 중 6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가 가진 자로서 가졌던 못 가진 자에 대한 죄의식이 많이 드러난다. 그의 동네는 먹고살기도 힘든 가난한 동네였고 어디를 가든 아버지의 덕으로 특권을 누리는 것에 불편함을 안고 살았다. 그는 초등학교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반장을 도맡았고 중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그러다 문학에 빠지고 여자 친구와 교제를 하면서 성적은 떨어지게 된다. 그 시절 자신이 흠모하던 아쿠타가와 뉴노스케의 자살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자이는 이미 중학교 때 교우회지에,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문학 간행지에 소설과 에세이를 실을 정도로 왕성한 문학활동을 했다. 고교 2학년 때 잡지 <세포 문예>를 창간하여 문학활동을 하였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을 보면 쓰시마 가문을 멸망해야 할 부르주아로 규정하고 있어서 그의 첫 번째 자살 시도는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에 의한 것으로 추측한다. 이후 다자이는 도쿄 대학 불문과에 입학해서 마르크스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의 셋째 형은 폐결핵으로 요절했고, 큰형은 정계 진출에 마르크스주의를 가진 동생이 자신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기녀 하쓰요와 결혼을 성사시켜주는 모종의 거래를 했다. 가족들에게 망나니로 전락하게 됐을 때의 심경은 그의 작품에 잘 묘사되어 있다. 하쓰요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이후 카페에서 만난 여자와 칼모틴을 먹고 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여자만 죽고 다자이는 자살 방조죄로 구류되어 본가의 도움으로 기소유예된다. 이후 경제적으로 집안에 도움을 받는 처지인 다자이는 세 번째도 그의 집안의 도움을 받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35년 4월 맹장염 수술 후 복막염으로 중태에 빠진 다자이는 진통제로 사용한 파비날에 중독되어 정신 병원에 수용된다. 한 달간의 짧은 입원 기간이었지만 아내가 자신을 속인 채 창살이 있는 정신 병원에 가뒀고 이때의 경험으로 탄생한 책이 인간 실격이다. 네 번째 자살시도는 아내 하쓰요가 자신의 가까운 지인과 불륜을 저지른 것을 알고 둘이 음독자살 시도를 했는데 아내만 죽고 다자이는 살아남는다. 이후 그는 기독교와 성경을 탐구했다고 한다.
마지막 자살시도는 1948년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강에 투신하는데 성공하여서 더 이상의 자살시도는 없이 생이 끝난다. 사람들이 다자이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패전 후의 일본을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실격 책으로 들어가 보자
인간실격은 화자인 주인공 요조가 쓴 세 수기로 되어있다.
서문에 '나'라는 화자가 요조의 사진을 이야기한다. 유년 시절의 요조 사진인데 사진 속 요조가 흉하게 웃고 있다고 한다. 볼수록 섬뜩하고 으스스한 사진. 두 번째 사진은 고교 시절이나 대학시절로 추정되는데 꽤 능란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듯한 느낌의 웃음이다. 이것 역시 섬뜩한 웃음이다. 세 번째의 사진은 가장 기괴한데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나이는 가늠할 수 없다. 아무 표정이 없고 쭈그리고 앉아 화로에 양손을 쪼이다가 그냥 그대로 죽어간 것 같은 기분 나쁘고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사진이다. 얼굴은 표정이 없을 뿐 아니라 인상 자체가 없다.
세 사진으로 기묘한 남자 요조를 생각하며 책장을 넘긴다.
첫 번째 수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책 15~16
그에게 인간은 공포였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도 잘 못하고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항변할 줄도 몰랐다. 하인에게 성추행을 당하며 어른들의 가증스러운 범죄도 말하지 못한 채 결국 그 공포를 조금이라도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은 익살이었다. 천진난만한 척하는 익살로 사람들을 속이고 우울함과 긴장감을 없앴다. 사람들에게 항변하지 못하는 착한 본성은 결국 마지막까지 여성들이 비밀을 지켜주는 남자로 이용하게 되는 운명이 된다.
저도 익살로 아침부터 밤까지 인간들을 속이고 있으니까요.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27쪽
일종의 처세술처럼 익살꾼을 자신의 이미지로 새기고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며 살아간다. 학교에서는 일부러 장난꾸러기처럼 행동하고 일부러 엉덩방아를 찧으며 우스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자신의 익살 뒤에 있는 저 깊은 음산함이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 학교나 기숙사는 비뚤어진 성욕의 쓰레기통일뿐 화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화방에서 만난 친구 호리키에게 술, 창녀, 전당포와 좌익사상을 터득하게 된다. 자신에 비해 사회생활을 꽤 잘하는 것 같은 호리키를 가까이 둘수록 그가 느끼는 것은 타산적 약삭빠름이다. 그는 호리키에게 돈을 내주며 기꺼이 이용당하기를 자처하며 일종의 비합법 놀이를 즐긴다. 요조는 호리키와 옆에 있을수록 오히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음지로 갈수록 편해지는 느낌이 든다. 세상에 사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겠지. 요조는 여자들을 만나고 하룻밤을 보내지만 자신의 감정에 사랑이라는 감정도 행복감도 느끼지 못한다. 쓰네코라는 여인에게 잠시 사랑 같은 일종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녀와 동반자살을 기도하고 자신만 살아남아 고통을 겪는다. 이 부분은 실제 다자이의 생과 비슷하다. 매번 집안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며 모멸감을 느끼는 것도 다자이의 이야기와 같다. 집나온 요조의 보호자를 맡아주는 넙치라는 사람도 사실은 인간성에 의거한 행동이라기보다는 모종의 거래가 있는 이해타산적 행동이다. 요조가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란 알코올 중독자처럼 술을 마시는 일 뿐이다. 한량처럼 행세하며 많은 여자를 만나지만 마음 둘 곳 한 곳 없이 헤매고 돈 때문에 예술이 아닌 외설을 그리며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리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93쪽
호리키는 요조에게 친구이자 은인임을 과시하지만 실제로 그가 빈털털이로 오갈 데 없이 절실한 순간에는 매정하게 돌아서는 세상 약삭빠른 인간이다. 그런줄 알면서도 요조는 그런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
호리키는 그에게 개인이자 한편 세상이었다. 끔찍함, 기괴함, 악랄함, 능청맞음, 요괴성..호리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서 한번도 뱉어내지 못하고 그저 식은땀만 흐르는 답답한 이 남자.
요조와 호리키 그리고 요조의 아내 요시코가 유의어와 반의어 말하기 놀이를 한다. 그때 죄의 반의어는 뭘까라는 질문에 호리키는 법이라고 말한다.
죄의 반의어가 법이라니!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하며 시치미를 떼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형사가 없는 곳에 죄가 꿈틀거린다지.
112
죄의 반의어는 무엇일까? 신?의?
요조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사가는 상인에게 아내 요시코가 겁탈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요조는 아내 요시코가 자신에게 보여준 무구한 신뢰심이 죄의 원천일까 생각한다. 무저항이 죄는 아닌가요?
그리고 이제는 술 대신 모르핀에 중독되고 결국 정신 병동에까지 광인으로 갇히게 된다.
인간실격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이 데려다준 어느 외딴 마을에서 예순의 식모에게 보호도 받고 겁탈도 당하면서 그렇게 세상에 순응한채 그렇게 살아간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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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생에 대한 거부로만 느껴졌으나 인간실격을 읽다 보면 거부하고 싶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배운 세상은 인간성이 철저하게 실격된 사회였던 것이다. 그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 남자가 철저하게 사회에서 실격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회에 제법 잘 적응하는 부류인 넙치와 호리키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마지막에 후기에는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다는 말로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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