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뇌과학
알베르트 코스타(Albert Costa)
바르셀로나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를 마치고 하버드대학교와 MIT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뒤 이탈리아의 국제 고등 연구소(Scuola Internazionale Superiore di Studi Avanzati)를 거쳐 바르셀로나대학교로 돌아와 교수로 일했다. “이중언어 사용이 뇌 모양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주제로 저명한 국제 과학 저널에 150편 이상의 글을 기고했고 20개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었으며, 저명한 국제 학술지인 『신경언어학 저널』(Journal of Neurolinguistics), 『인지』(Cognition) 그리고『신경과학』(Neuroscience)의 편집인을 지내기도 했다. 폼페우 파브라대학교(UPF)의 인지 및 뇌 센터(Cognition and Brain Center)에서 ICREA 연구 교수로 “말의 생산성과 이중언어 사용”이라는 연구 그룹을 이끌다가 2018년 12월, 48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지금까지 출간된 ‘언어 습득의 뇌과학’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이다. 언어를 학습하는 동안 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특히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장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과학서다. 어떻게 여러 언어 중추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훌륭하게 학습이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된다
정재승 추천사 중에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추천"이라는 문구만 들어도 신뢰가 간다. 이중언어를 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또 '다음 세대를 위해 언어 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읽어야 할 지침서'라는 소개 문구에 이 책을 바로 펼치게 되었다.
남편의 회사 친구는 한국인,그의 아내는 일본인,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주 사용 언어가 당연히 영어지만 아빠는 집에서라도 한국어를 사용하고 싶어하고 엄마는 일본어를 가르쳐주고 싶어 하면서 아이들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세 언어를 다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가정 뿐 아니라 주변에서는 이렇듯 부모의 언어와 태어난 언어, 세 개의 언어 노출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이 꽤 된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렇게 이중, 다중 언어를 습득하다 보면 언어 체계에서 혼란함을 겪지 않을지 언어를 학습하는 뇌 발달 체계에 대해 관심이 높다. 한글학교에서도 이런 이유로 부모들이 '영어 우선' 학습을 고집하다가 모국어 학습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한국 역시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은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다국어 사용자의 뇌연구를 통한 언어활동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겠다.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제1장에서는 어린아이가 두 언어를 동시에 학습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살핀다. 제2장에서는 성인 이중언어자의 뇌에서 두 언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루고 제3장에서는 일반적인 언어 처리 과정에서 이중언어 학습 및 사용 결과를 분석한다. 제4장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다른 인지 능력, 특히 주의 체계 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그리고 제5장에서는 제2언어(외국어) 사용이 의사 결정 과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다룬다.
아이들이 소리(음절) 사슬에서 어떤 규칙성을 찾아내고 반응한다는 것은 여전히 놀랍고 경이롭다. 마르셀라 페냐 박사와 동료들은 신생아가 언어 신호에 노출될 때 생기는 뇌의 활성화를 연구했다. 성인에게 나타나는 좌뇌의 언어 처리 선호도가 신생아들에게는 어느 정도 있는지를 알고자 했다. 이 실험을 위해서 2~5일 된 아기들이 자는 동안 서로 다른 자극을 주고 뇌 활동을 측정했다. 실험에서 첫 번째 자극은 정상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고 두 번째 자극은 끝에서부터 거꾸로 청각 신호를 주는 것이었다. 태어난 지 이틀 된 아기의 뇌는 이 두 언어 자극을 확실히 구분했다. 두뇌의 산소 소비를 통해 측정한 뇌 활동은 정상적인 언어로 이야기를 읽어줄 때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컸다. 생후 2~5일 된 신생아들도 정상적인 언어와 비정상적인 소음을 확실히 구분한다는 놀라운 실험이다. 이 결과를 보면 우리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방법으로 언어 신호를 해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엄마가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두 언어를 이야기해도 아이는 두 언어를 구분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엄마 뱃속에서의 이중언어 경험은 아기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이중언어를 경험한 아기들은 일찍부터 조음 운동에 관심을 갖는다. 4개월 된 아기 이중언어자는 아기 단일언어자보다 말하는 사람의 입을 더 많이 쳐다본다. 아기들은 자연언어(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에서 나오는 음운 목록을 얻어내는 능력을 타고났다. 아기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와 익숙한 소리를 구분한다. 그러나 아기들의 음운 대조 인식 능력은 자연스럽게 노출되지 않으면 아주 일찍 사라진다. 이 현상을 지각 좁히기(perceptual narrowing) 또는 지각 순응(perceptual adaptation)이라고 한다.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동안 음운 요소를 구별하는 능력은 향상되지만 새로운 언어의 음운 요소를 처리하는 능력은 감소한다.
한 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봤거나 직접 해 봤을 것이다. 듣기만 해도 귀가 트인다!!! 잠잘 때 공부할 내용을 틀어놓으면 머릿속에 쌓인다는 소문이다. 나도 영어나 강의 방송 들으면서 자봤는데 효과가 전혀 없었다.( 일부러 잘 때 틀어놓은 것은 아니고...듣다 보면 잠이 와서...Zzzzzz) 외국어라고 하면 그냥 지갑을 여는 심리를 이용해서 아이에게 언어를 노출만 시켜줘도 공부가 된다고 과대 홍보하는 문구도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수동적인 노출은 별 효과가 없다고 하는 실험 결과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고 가기를 바란다.
만일 자녀가 외국어를 배우길 바란다면, 동영상이 그 일을 대신해줄 거로 너무 기대하지 말고 그 언어를 사용해서 아이와 놀아주길 바란다.
즉, 고통 없이는 얻는 게 없다.
책 58쪽 중에서
아이들은 피부색이 같지만 영어를 할 때 외국인 억양이 있는 아이보다는 피부색이 달라도 모국어처럼 영어를 하는 아이들과 더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친구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는 피부색보다 말하는 방식이라는 연구 결과도 쉽게 흥미롭다.
영국 작가인 더글러스 애덤스의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작고 노랗고 거머리같이 생긴 물고기 바벨 피시(babel fish)는 자신의 숙주가 아니라 주변 대상들에서 나온 뇌파 에너지를 먹고산다. 이 뇌파 에너지에서 나오는 모든 무의식적 정신 주파수를 흡수해 거기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두뇌의 언어 영역에서 포착한 의식적 사고 주파수와 신경계 신호를 혼합해 만든 텔레파시 세포간질을 숙주의 정신 속에 배설한다. 그래서 귀에 바벨 피시를 집어넣으면 어떤 언어로 이야기한 것이라도 즉시 이해하게 된다.
아 이런 바벨 피시가 존재한다면 새해가 될 때마다 “올해는 정말 영어공부를 할 거야” 하고 작심하고 다시 연말을 맞이하며 후회하는 일은 없을 텐데.
관심 있게 새겨둘 요점만을 이야기한다면,
제2언어를 하게 되면 주의력이 높아진다.
제2언어를 배운 나이가 습득 능력보다 더 중요했다.
저자는 이중언어자를 "저글링 하는 곡예사"로 표현한다. 한 언어에 집중하면서 다른 언어와 섞이는 것을 통제하며 두 언어를 매우 정교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치 전구 스위치처럼 하나의 언어를 끄고 다른 언어를 켜고 하는 식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험에서 보여준다.
스페인 내전으로 어릴 때 멕시코로 이민 간 카탈루냐어 사용자들은 멕시코 리듬으로 카탈루냐어를 사용했다. 이렇듯 이미 알고 있는 언어 바탕 위에 또 다른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뇌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잘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뇌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간직한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 때에도.
한때는 이중언어 사용이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질환을 초래한다고 생각하는 사상가도 있었다. 지금도 이중언어 사용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특정 인지 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녀의 어휘 발전에 관심 있는 부모라면 더 도전적이고 풍부한 언어 자극을 줄 수 있는 환경에 노출시키면 좋을 것이다.
이중언어 환경 속에서 자란 아동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일찍 발달하고 자기 관점을 상대방의 관점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을 시사하는 실험 결과도 흥미롭다. 두 언어에 노출된 아동이 단일 언어만 사용하는 아동보다 더 일찍 마음 이론을 발달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있다. 사실 이 실험 결과는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결론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과의 분리와 구별이다. 이는 두 언어를 분리하여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두 언어의 학습과 사용은 뇌 기능뿐 아니라 뇌 구조에도 영향을 준다.
누군가 당신에게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손으로는 왼쪽으로 돌아가는 표시를 한 적이 있는가? 자극이 응답하는 키 위치와 동일할 때와 다를 때 응답시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을 ‘시몬 효과( Simon effect)’라 부른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이중언어자는 단일언어자보다 시몬 효과를 더 적게 경험한다. 또 노인 중 이중언어자가 단일언어자보다 백색질 보전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것은 이중언어 사용이 인지 예비 용량에 확장을 돕고 뇌의 퇴화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중언어 사용이 치매 발생 가능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이중언어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배우는 것과 학습을 통해 새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언어는 사회적 사용과 관련이 있고 감정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뇌 손상 또는 실어증을 겪은 사람들의 언어 행동 연구를 통해 언어가 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여기서는 이중언어에 대한 책인 만큼 뇌 손상과 이중언어에 대한 관계를 살펴본다.
2015년 포뮬러원 세계선수권대회 시즌 전 훈련에서 페르난도 알론소가 카탈류냐의 몬트멜로 경기장의 회전 구간 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그 충격으로 몇주간 입원했었으나 잘 회복되어 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런데 사고의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고 이후 알론소가 아탈리아어만 사용하고 모국어인 스페인어나 팀원들과 자주 쓰던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루머가 돌았다. 물론 알론소가 이 루머를 다 부인했지만 이런 루머는 뇌 손상과 이중언어에 대한 호기심은 더 높아진다.
뇌손상은 이중언어자의 언어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저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 언어 모두 비슷한 정도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두 언어의 상태는 나란히 악화된다는 것이다.
신경 촬영을 통해 뇌 영역 간 중첩 부분이 많이 나타났다. 실어증 환자에 대한 연구가 아주 복잡하고 장애 전 환자의 언어 사용 수준과 제 2 언어 습득 나이와 숙련도에 따라서 언어 손상과 회복 형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인지 심리학 분야에서 지난 4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두 명을 꼽자면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하는 복잡한 상황을 마주할 때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화하고 경험적으로 알게 된 지름길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하버트 사이먼의 논문을 세상에 알렸다. 이것이 잘 알려진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이론과 같다. 인간은 인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어떤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다양한 의사결정 실험을 보면 문제를 제시한 언어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어 환경에서는 모국어 환경보다 더 일관성 있고 신중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외국어 환경에 있을 때 더 냉철하고 덜 감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고 즉 더 실용적이 된다는 의미다.
성경을 읽으면서 매우 흥미롭게 읽게 되는 부분은 사사기 12장에 등장하는 쉽볼렛(히브리어: שבולת Shibboleth )이라는 단어로 두 지파를 구분하는 내용이다. 두 지파는 첫 음절을 다르게 발음하는 것으로 구분됐다. 길르앗 병사들이 에브라임 사람을 구별하려고 쉽볼렛이란 발음을 시켰는데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렛이라고 발음해서 죽임을 당한다. 앞부분에서 아이들이 친구를 결정할 때 피부색과 생김과 같은 겉모습보다 억양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사람들은 외국인 억양을 가진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처리한다.
뇌에 대한 연구와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많은 연구 결과들을 통해서 우리 뇌가 얼마나 유연한지 언어 사용 활동이 어떻게 뇌의 조직과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았다.
책에서 나온 이야기는 저자가 20여 년간 동료와 학생들과 연구한 프로젝트의 결과다. 이 책의 가장 적절한 결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중언어 사용은 사회 경제적 및 교육 수준과 같은 다양한 변수와 상호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험 내용을 다 적을 수는 없고 간단하게 재미있는 포인트만 정리해봤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직접 찾아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실험이 그렇지만 실험에는 정 반대의 이론도 반드시 존재한다. 완벽하게 맞는 이론이라고 말하는 태도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서 말하는 것이라는 태도가 과학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책을 접하는 독자들도 이런 마음의 바탕으로 다양한 책들과 이론들을 접하는 것이 건강한 독서법이라고 생각된다.
과학이란 논리라기 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떨림과 울림> 김상욱
저자는 이 실험을 계속하다가 안타깝게도 40대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런 연구들은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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