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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철학의 위안

by 북앤라떼 2020. 10. 10.

철학의 위안

보에티우스(475~525)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로 불리는 보에티우스의 원명은 ‘만리우스 오르콰투스 세베리누스 보에티우스’이다. 그는 475년경 로마의 유수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고 490년경 집정관이던 아버지가 죽고 로마에서 가장 존경받던 귀족 심마쿠스의 양자가 되었다. 후에 그의 딸과 결혼하였다. 보에티우스는 문학, 철학, 산술학, 음악, 천문학 등 다방면의 학문에 능통하였고 학식을 인정받아 510년에 집정관이 되었고 522년에는 오늘날로 하면 왕의 비서실장의 자리에 앉는다. 그의 두 아들도 10대에 집정관으로 임명된다.

523년에 동로마 황제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반역죄로 고발된 알비누스(전 집정관)를 변호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둘 다 체포되고 투옥되는데 알비누스는 즉석 처형되었고 그는 유배 보내져서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에 <철학의 위안>을 집필하였는데 이후 525년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저서는 이 책 외에도 <신학논고집>, <4학과 입문>등이 있다.

승승장구의 삶을 살았던 보에티우스! 정치라는 특성을 이해하면 보에티우스처럼 살다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것은 유배 중에 쓴 책 때문이다. 재판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그가 다시 복권되는 실날같은 희망을 그라고 왜 갖지 않았을까.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하루 아침에 떨어진 그 순간에 '철학'을 위안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예전에 내가 인식했던 '철학'에 대한 느낌은 세상과도 삶과도 동떨어진 세계의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삶에 '철학'이 빠질 수 없다는 것으로 재인식 되고 재발견되어 가까이 하게 된다. 지난 리뷰에서 신영복 교수가 사형의 집행을 기다리며 쓴 글과 그의 심정을 접했다. 둘 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를 당한 것도 억울함고 비슷하겠지만 보에티우스의 경우는 그가 누렸던 권세를 생각할 때에 그 추락의 깊이가 더 깊다고 하겠다. 그런 상황에서 쓴 '철학의 위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역사적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

로마 최후의 철학자가 쓴 3대 옥중 문학

보에티우스는 475년과 477년 사이에 귀족 가문 아니키우스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니키우스 가문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지만 로마 제국의 전통을 지켜나갔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로마 제국에 복속되어 있던 게르만족을 이끌던 오도아케르가 476년에 반란을 일으켜서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킨 무렵이었다.479년에 동고트족의 왕 테오도리쿠스는 동로마의 황제였던 제논의 후원 하에 서로마를 정복하고 장악한다. 사실상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대우받게 된다. 그들 사이에는 서방의 교황과 동방의 교회들 간의 신앙의 갈등이 있었고 보에티우스가 처형당하는 데 불씨가 된다.

그의 또다른 몰락에는 그가 궁정 관리들과 원로들의 미움을 산 것과 자신의 직위를 독단적으로 행사해서 다른 고관대작들을 왕으로부터 소외시킨것도 원인으로 본다. 이 책은 제목은 딱딱하게 보이나 어려운 논문이 아닌 대화체와 시,재미있는 이야기로 되어 있어서 읽기 쉽고 모든 일을 주관하는 신 안에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통찰해 가는 종교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단테의 신곡에 큰 영향을 끼친 세계의 명작

책은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 보에티우스와 철학의 여신

책은 극적인 만남으로 시작된다. 감옥에 갇힌 보에티우스는 음악과 시의 여신들로부터 위안을 받으며 원통함을 달랜다. 철학은 자신이 좋은 의사로서 그의 병을 치료할 것인데 처음엔 “순하고 약한 치료약”을 사용하고 후에는 “다소 강한 치료약”을 사용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철학은 그가 과거에 누렸던 행복을 보여주며 사람들이 추구하는 거짓 선을 버리고 참된 행복해 도달하도록 돕는다.철학의 위안, 철학은 죄 없는 자가 홀로 외롭게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둔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에 나의 모든 수고가 찬란하게 빛나던 때에는 기쁜 노래들을 읊었건만

지금은 눈물 속에서

슬픈 시들을 지을 수 밖에 없게 되었구나.

눈물에 찢긴 시의 여신들만이

나의 펜을 움직이고

처량한 비가들이 내 뺨을 적시는구나.

하지만 그 어떤 위협도

시의 여신들이 나의 길에

동행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리라.

시의 여신들은 나의 지난날의 찬란했던 삶의 자랑이었고,

나의 처량한 말년에 내 운명의 위로일지니.

이제 불행의 재촉을 받고

아무런 경고 없이 늙음이 나를 찾아왔고,

슬픔은 비탄의 노년을 내 안에 새겨 놓아서,

내 머리 위에는 때 이른 백발이 뿌려졌고

나의 축 처진 사지에는 피부가 늘어져 있구나.

죽음이 달콤하고 즐거운 시절에는 물러서 있다가

비탄에 잠겨 시도 때도 없이 울부짖는 자에게만 찾아와 준다면

정말 다행이려만,

불행에 절어 있는 자로부터는

매정하게도 귀를 막고 돌아서 버리고

야속하게도 애곡하는 눈을 감겨 주려 하지 않는구나.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이 미소를 짓고 내게 다가와

거짓된 행복의 삶을 주었을 때부터

슬픔과 비탄의 시간은 이미 내게 준비되어 있었도다.

이제 암운이 찾아와

행복을 탈을 벗겨놓으니

나의 삶에는 고달프고 지친 나날들만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구나.

오, 나의 친구들이여

어찌하여 너희는 시도 때도 없이,

나는 좋은 운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말하여

나를 속이기를 그치지 않았던가.

지금 불행 속으로 내던져진 나는

분명 운을 타고난 사람이 아님이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2권 운명의 여신과 참된 행복

보에티우스의 병에 대한 진단을 끝낸 철학은 그가 아직도 과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며 그것이 운명의 속성임을 기억하지 못했다며 질책한다. 그러자 그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도 가족들로 인한 위안을 누리고 있음을 인정한다. 철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줄 거라고 믿는 부, 권력, 명성등을 단죄하고 인간이 이 땅에서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을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영원하고 변함없는 것은 없고 오직 잠시 왔다가 가버리는 덧없는 것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지금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떠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먼저 깨달았다고 불행할 필요가 있는가.

네가 너의 행복이라고 여긴 이 모든 것들 가운데서 너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렇게 네가 아름답고 귀하다고 여기는 것들 중에서 네게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더해 주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것들을 잃어버렸다고 슬퍼할 이유가 어디 있으며 누린다고 즐거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113쪽

저 이전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들녘으로 만족하며

사치와 게으름에 빠져 살지 않았고

배고플 때면 얼른 열매를 거두어

허기를 채우곤 했다네.

바쿠스가 준 선물에

꿀을 섞을 줄도 몰랐고

세레스 인들이 만든 윤기 나는 비단을

티로스의 자색 염료로

물들이는 법도 몰랐지.

푸른 숲이 건강한 잠을,

흐르는 시내는 마실 것을,

높은 나무는 그늘을 주었다네.

대양의 깊은 곳을 가르며 항해해 본 적도 없었고

물건들을 잔뜩 싣고서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하지도 않았으며

미지의 해변에 낯선 이방인이 되어 서 본 적도 없었지

그때에는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날카로운

전쟁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쓰디쓴 증오심 속에서 선혈이 뿌려져서

황량한 대지를 물들이지도 않았다네.

사람들은 싸워봐야 처참한 상처만을 남길 것이고

피 흘린 대가는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는데

그 시절에 잔혹한 적개심에 휩싸여

먼저 무기를 들고 적을 공격할 이유가 있었으랴.

우리 시대가 지금이라도

저 좋은 옛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하지만 불타는 물욕은

에트나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보다 더 강렬하다.

땅 속 깊이 감춰진 황금과

그토록 발견되지 않기를 원했던 보석들,

그 위험천만한 물건들을 처음으로 캐낸 자는

대체 누구였는가.

124쪽

3권 참된 행복과 최고선

철학은 참된 행복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며 유일한 길은 우리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논증한다. 이제는 참된 선을 찾아가는데 강한 치료약을 사용한다. 참된 행복은 완전한 선에 있고 그런 행복에 도달했을 때 “신”적인 존재에 이른다.

지친 마음에 최고의 위안인 철학이여 당신의 깊고 심오한 말과 즐거운 노래 덕에 내 마음이 다시 힘을 찾아 되살아나서, 이제는 더 이상 내 자신이 운명의 타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47쪽

부와 재물이 결핍을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결핍을 가져오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특성이 있다.

“오 영광이여, 영광이여,

너는 얼마나 무수히 많은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마치 위대한 삶을 산 것처럼 부풀려 왔던가. “

-그리스의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의 <안드로마케>를 인용한 것

애석하도다, 가련한 인생들이 무지로 인해

엉뚱한 길에서 길을 헤매고 있구나.

(.....)

선의 분명한 원천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땅의 무거운 사슬을 끊어버린 사람은

행복하도다.

220쪽

4권 신의 섭리와 운명

신이 참된 선이라면 신은 세계에서 정의를 제대로 베풀고 있는가. 이 세상의 선한 자들과 악인들에게 합당한 정의가 있는가를 논쟁한다. 선한 자들이 선에 도달함으로써 신적인 존재가 되고 악한 자들은 본성을 부정하고 욕망을 쫓다가 인간 이하의 존재로 전락하는 벌을 받는다고 논증한다. 신적인 섭리와 운명 그리고 통치의 질서를 신앙적으로 설명한다.정신이 건강한 것이 선함이고 정신이 병든 것이 곧 악함이다.

내가 비통함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만유를 다스리는 선한 통치자가 존재하는 데도 악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벌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28)

내게는 하늘 저 높은 곳으로 신속하게

날아오를 수 있게 해줄 날개가 있다네 (229)

5권 신의 섭리와 자유의지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섭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여기에 우연이란 어떻게 존재하는가. 철학은 우연이라는 것이 신의 섭리에 주도되고 운명에 의해 실행되는 여러 요인들의 예기치 않은 조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로 대답한다. 인식의 네 차원 감각, 상상, 추론, 직관으로 설명하며 자유의지와 신의 예지에 대한 양립을 설명한다. 신은 미래의 모든 일들을 항상 현재 속에서 본다는 것이다. 즉 무작위한 것 처럼 보이나 일정한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 그것이 질서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서로 얽히고 설킨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경사진 땅과 아래로 흐르는 물의 성질이

다스리고 있으니

제멋대로 떠도는 것 같은 우연도

누군가에게 고삐를 잡혀 흘러가고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네.

299쪽

5권으로 나뉜 전체 논증의 주제는 “최고선”이고 신을 아는 지식을 열망하고 지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보에티우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고 키케로를 롤모델로 삼았다.

“내가 비록 집정관직을 수행하느라고 이러한 저서들을 연구하는 데 몰두할 수는 없을지라도 밤을 새워 연구한 것들을 시민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집정관직을 수행하는 것만큼이나 국가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옛적에 덕 있는 분이 국가를 통치하는 일을 남에게 맡기고 옛 사람들의 지혜를 연구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듯이 내가 그리스의 지혜를 시민들에게 잘 가르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시민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리했다는 말을 듣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0쪽

책 속에서 →

-이 일과 관련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과 철학자들의 판단에 맡겨 두고, 나는 그저 이 사건과 관련된 진상을 후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기록해 둔 것일 뿐입니다.63쪽

-나는 원로원을 지나치게 편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형선고를 받고 가산을 몰수당한 것은 물론이고, 지금 이렇게 로마에서 800km나 떨어진 곳으로 유배를 와 있습니다. 65쪽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상아와 유리로 장식된 너의 서재라는 성채가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는 안식처이다. 거기에다 나는 책들을 잔뜩 쌓아둔 것이 아니라, 유형의 책들에 가치를 부여해 주는 무형의 사상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73쪽

-지금까지 네가 유배를 당하고 전 재산을 잃었다고 한탄하며 슬퍼해 온 것은 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79쪽

-네가 운명의 여신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식으로 행하며 과연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너는 그녀가 네게 찾아 왔을 때에도 진정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을 결코 얻은 것이 없었고 그녀가 네게서 떠나갔을 때에도 그런 것을 결코 잃은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85쪽

-이렇게 운명의 여신은 제멋대로 왔다가 제멋대로 가버리는 존재인데도 너는 여전히 그런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냐 89쪽

-사실 너는 고민하고 괴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모든 사람이 겪어 왔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일에 네게 일어난 것일 뿐이기 때문에, 너는 오직 너만이 운명의 여신에게서 벗어나서 살아갈 특권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96쪽

-인간에게 주어진 행복이라는 것은 완벽할 수도 없고 영원할 수도 없어서 언제나 근심과 염려가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108쪽

-재물은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제거할 수 없고 권력은 악한 욕망들로 칭칭 동매여져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없으며 악인들이 차지한 관직은 그들을 존귀한 자들로 만들어주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이 얼마나 추악한 자들임을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 129쪽

-영원이라는 끝없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너의 이름이 오랫동안 전해진다고 해서 그것을 기뻐할 이유가 과연 있겠느냐. 136쪽

-운명은 불운의 모습일 때가 행운의 모습일 때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유익이 된다는 것이다. (...) 운명은 행운으로 왔을 때에는 사람들을 속이지만, 불운으로 왔을 때에는 사람들의 덕을 세운다. 142쪽

-너의 풍채가 코끼리를, 너의 힘이 황소를, 너의 민첩함이 호랑이를 능가할 수 있겠느냐 네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우주의 광대함과 견고함과 민첩한 움직임을 바라보고서 하찮은 것을 보고 경탄하는 일을 이만 그쳐라 180쪽

-악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행할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룰수는 없다 240쪽

-오늘의 삶 속에서도 네가 향유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신속하게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뿐이다. 330쪽

-너는 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을 예지라고 하지만, 사실은 신의 예지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아는 것이 아니라 결코 지나가지 않는 현재 속에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그것은 미리 앞서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가장 높은 곳으로부터 모든 것들을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 것들까지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한 눈에 다 보는것이라고 해야한다.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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