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David Shields는 1956년 LA에서 태어났다. 브라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80년에 아이오와 대학 작가 워크숍에서 픽션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에 첫 소설 《영웅들》을 발표한 후 몇 편의 작품을 냈고 그의 전작《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찾는 중에 이 책이 있어서 먼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50대 후반에 이 책을 쓴 저자는 자신의 삶의 회고록을 쓰고 이 책의 제목을 친구에게 말해주었더니 친구는“문학은 누구의 삶도 구한 적이 없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데이비드 실즈는 완전히는 아니어도 ‘가까스로’ 라는 말을 마음속에 덧붙이며 회고록을 냈다.
문학이 어떻게 그의 삶을 구했나?
그는 말더듬증이라는 결함을 안고 태어났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편했고 그래서 그는 쓰게 됐다. 말 더듬는 소년에 관한 자전 소설<죽은 언어>를 쓰고 대학 농구팀에 대한 소설을 쓰고 아흔 살 넘었지만 여전히 초인적인 생명력을 가진 아버지의 이야기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를 쓰는 동안 문학은 그의 삶을 구했다. 그러나 항상 문학이 그의 삶을 구했던 것은 아니다. 몇 편의 소설을 쓰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중에 갑자기 그는 문학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전통적인 형식의 픽션이나 과거에 열광했던 걸작들에 시들해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소설을 쓰기 위해 수집한 자료 자체가 형식 없는 책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어떤 형식을 씌우지 않는 콜라주 형식의 논픽션 에세이로 탄생한 것이다.
내게 글쓰기는 말더듬증과 단단히 얽힌 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꿀 가능성을 대변했다.... (...)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글로 씀으로써, 음,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심리적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역시 말더듬증 때문에, 쓰기와 읽기를 작가와 독자 간의 핵심적인 소통 방식으로 귀하게 여긴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알아가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 p43
이 구절만 읽는다고 해도 이 책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좋은 언어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 다른 방식의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병(나만의 콤플렉스)을 글쓰기를 통해 구원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제 그는 전처럼 말을 더듬지 않는다.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하는 데 그보다 좋은 경험담이 없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완벽한 고립감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자 언어 문제가 나아졌고 그래서 오늘날처럼 엄청나게 사교적인 인간이 되었지”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여섯 살에 춤추는 핫도그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몇 편 썼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부모님이 진짜 책을 쓰는 작가들을 숭배하는 것을 보면서 그 또한 그런 책을 쓰고 싶고 숭배받고 싶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내 신문 편집자를 했고 대학시절에는 항상 도서관에서 보냈다. 조울증으로 정신병원을 오갔던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처럼 되는 것을 걱정하면 살았던 그는 소설로 그런 자신의 마음을 또는 아버지를 구원해 주었다.
'문학이 그의 삶을 구했다'에서 문학이 삶을 구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과정을 거쳐 현재는다시 문학이 자신의 삶을 구하기를 바라는 그의 자서전적 고백을 보면서 사랑의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은 내 삶의 전부로 느껴진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으며 마치 그 사랑이 나를 구원해 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떠한 사랑도 시들해지는 시기가 반드시 있다. 그 사랑이 더 이상은 나에게 어떤 영향력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 마음도 부인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기나 했던 것일까?’마치 문학이 내 삶을 정말 구했던 것인가를 묻는 데이비드 실즈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어떠한가 사람을 살게하는 것은 매 순간의 사랑이 아닌가. 그 사랑의 빛깔이, 대상이 조금 다를 뿐이지.
이 책의 독서 과정은 그와 문학의 관계처럼 독자인 나와도 비슷한 데가 있는것 같다. 처음엔 제목부터 그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읽었다. 그러다가 어느 쯔음엔 모르는 이야기 들을 때처럼 지루해지고 심드렁해지는 부분을 지나 그러다 마지막 쯔음 다시 이 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간 부분이 바로 그의 삶을 구원해 준 문학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담이 늘 흥미진진한 것은 아니다.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아니 읽어도) 전체의 흐름과 연계성을 알고 있는 작가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들은 안타깝지만 잘 와닿지 않는다. 어느 작가나 소유하고 있을 법한 방대한 서재의 공개 혹은 방대한 나열과도 같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책들이 ‘이런 책도 읽었지’하는 정도로 아주 짧은 언급으로 지나간다.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레나타 애들러의 <쾌속정>이고 작가는 커트 보네거트와 프루스트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생각했던 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다.
그 외에 55편의 작품, 산문 51편, 시집 등 책 창고 대방출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신없는 책은 읽을만하다. 말한 대로 앞의 저자의 스토리만도 읽을만하며( 뒤에는 더 감탄을 하고) 문학이 타인의 삶을 구하고 구했다는 것에서 큰 위안을 받는다.!
특이한 점은 그가 ‘부시 대통령’이야기를 꽤 여러 번 한다는 점이다. 말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부시 전대통령 은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작가들도!)의 맹비난을 받았다. 말실수가 많았고 성적도 낮았고 신문은 기사 제목만 훑고 지나가고 키가 183cm에 못 미치면서도 꼭 183cm이라 주장하는 것들이 작가가 그 안에서 자신을 본 공통점이다. 그가 생각하는 부시도 언어장애가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스스로를 보면서 경멸하는 부분을 부시를 보면서 경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학 때 사귄 여자친구 레베카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를 좋아했는데 그녀가 일기를 쓴다는 것을 알고 몰래 일기를 읽고 나중에 그녀에게 그 사실을 자백한다. 그런데 그녀의 글을 더 이상 읽지 못하게 되자 예전만큼 그녀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비평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그의 책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길 바라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 문학은 이 사실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문학은 필요하다.
그는 이제 혹평을 듣고 아이크림 한 통을 들고 침대에 들어가는 일도 약물에 의지해서 낭독회를 해야 하지도 않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의무감에서 읽고 싶진 않다.
세계의 역사에는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책이 수백 권은 있다.
나는 그저 깨어있고 싶고 지루하지 않고 싶고 기계적이지 않고 싶다.
나는 내 삶을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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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증의 불행한 점은 그것 때문에 내가 사랑, 미움, 기쁨, 깊은 고통처럼 전통적이고 진정코 중요한 감정을 표현할 때조차 자의식을 완전히 떨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항상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먼저 인식하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더듬지 않고 표현할 최선의 방법부터 생각하다 보니 내게 감정이란 남들에게나 속하는 것, 세상의 행복한 소유물일 뿐 나로서는 솔직하지 않은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13쪽
-나는 말더듬이로서 브라운의 다른 영문학 전공자들보다 더 맹렬하게 문학(아름답게 문자화된 언어의 영광)에 헌신했고 비평가 풍의 수사를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할 줄 알았다. 61쪽
-로미오와 줄리엣이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열네 살이라는 무르익은 나이인 그들은 머지않아 누가 식기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낼 차례인지를 두고 입씨름을 벌였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남녀가 밤새 껴안고 있었다고 암시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몸을 떼고 돌아눕게 마련이다… 76쪽
-내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다. 나는 늘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성애화하기 때문이다 77쪽
-우리는 다들 너무도 두렵다.
우리는 다들 너무도 외롭다. 우리는 다들 외부에서 우리의 존재 가치를 장담해 주는 무언가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78쪽
-죽음의 컴컴한 밤에 직면하여, 내가 여전히 소포클레스를 읽는 게 무슨 위로가 될까? 마크슨이 암시하듯이 소포클레스에게는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내게는 어쩌면 약간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125쪽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작가가) 책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자신이 말하려는 바를 상당히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그 속에 만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면 그 책은 살아있는 것이 된다. 148쪽
-소설은 내면에 접근하기 위해서 발명된 형식이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소통한다. 내가 아는 서른 살 미만의 사람들은 다들 놀라울 정도로 프라이버시 개념이 없다. 소설은 공예품이다. 골동품 애호가들이 그토록 맹렬하게 소설에 집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예술은 과학처럼, 전진한다. 형식은 진화한다. 형식은 문화를 위해서 존재하고 형식이 죽을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는 소설이 음울한 것이 된 지 오래이므로…. 155쪽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겪는 일은 대부분 상당히 비슷하다. 출생, 사랑, 못생기게 찍힌 운전면허증 사진, 죽음.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가 각자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점이다. 159쪽
-책을 쓰기는 어렵다. 좋은 책을 쓰기는 무척 어렵다. 친한 사람들이 당신의 책을 어떻게 평가할지 걱정하면서 좋은 책을 쓰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일찌감치 깨달은 바, 당신이 자기 책을 가장 좋아해 줬으면 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162쪽
-나는 글이 잘 안 풀리면 문서를 닫고 그 내용을 가령 친구 마이클에게 보내는 이메일처럼 써 본다. 166쪽
-킹슬리 에이미스는 혹평으로 아침 식사를 망칠 순 있으나 점심까지 망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장 콕토는 “당신의 작품에 대한 첫 비평에 주의 깊게 귀 기울여라. 비평가들이 당신의 작품에서 싫어하는 점을 주의 깊게 기록했다가 그 점을 더욱 함양하라, 그것이 바로 당신의 작품에서 가장 개성적이고 유지할 가치가 있는 특징이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했다 현명한 조언이다 183쪽
-수많은 책을 그럭저럭 아는 것보다 십여 권을 아주 깊이 아는 것이 더 낫다-D.H 로렌스
-글을 쓰는 방법은 화살이 바닥났을 때 자기 몸을 과녁에 던지는 것이다-에머슨
-카프카가 무엇보다도 열심히 한 것이 바로 일기 쓰기였다
책 속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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