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유시민
경주시 북부동 계림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늘 무엇인가를 읽어야만 하는 습관은 아버지가 구독 신청을 해 주신 책을 보는 데서 시작됐다. 월간 잡지를 비롯하여 학교 도서관의 책을 다 대출해서 읽을 정도였다.
타고난 독서광 유시민
사회로 나가는 딸에게 헌정한 책 <청춘의 독서>을 읽었다.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사기>를 읽을 때 나는 2000년을 단숨에 건너뛰어 사마천의 숨결을 느낀다. <광장>을 읽는 동안 내 정신과 감각은 60년 전 해방 공간으로 시간 여행을 하고 4.19 혁명 직후 새 공화국을 보면서 최인훈 선생이 느꼈던 환희를 함께 맛본다. <대위의 딸>을 읽으면서는 시인 푸시킨의 자유를 향한 목마름을 나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일 수 있을까.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책보다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 달리 또 있을까.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그러한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위대한 지성이 인류에게 남겨준 유산을 함께 나누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 후기 중에서
1. 도스토옙스키-죄와 벌
책이 많았던 아버지의 서가에서 (요즘 아버지의 서재에서 자라난 인물들을 보게 된다. 방 이사를 하는 요즘 책과 이사는 정말 같이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암튼 유시민의 독서 편력도 그렇게 시작됐다.)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뽑아 읽곤 했다. 대입 예비 교사를 한 달 앞둔 1977년 가을 이 책을 읽었다.(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시민은 이 책을 만났으니 고전은 이래서 좋은 것이다. 나도 학창 시절 이 책을 언니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나는 죄와 벌을 읽으면서 가난의 책임이 가난한 사람 자신뿐 아니라 사회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악덕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회악은 도대체 왜 생겨났는가. <죄와 벌>은 내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떠난 독서와 사색, 행동과 성찰, 지금도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그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나에게 죄와 벌은 열병과 같은 정신적 흥분을 안겨준 ‘날카로운 첫 키스’였다. 32년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죄와 벌의 느낌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선한 목적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2.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이 책은 농촌 법학회 서클에서 제공한 필독서 목록 첫 번째 책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지식인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으로 사는지를 배웠다. 내 모교는 농촌 법학회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우리는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탐색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할 때 언제나 책이 함께 있었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3.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대학생활 첫해가 거의 저물어가던 1978년 가을 선배들이 형사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나에게 맡긴 책들은 당시 국가가 정한 ‘불온서적’이었다. 풀어보지 말라는 말은 더욱 유혹적이라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손바닥만 한 창문도 담요로 가린 채 책을 읽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목숨 걸고 읽었을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공산당 선언”을 치면 쉽게 읽을 수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낡은 유럽의 모든 권력들이,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하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비밀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한 신성동맹을 체결했다. 권력을 쥔 적대 세력에게 공산당 같다고 비난받지 않은 야당이 어디 있으며, 더 진보적인 야당과 반동적인 적에게 공산주의라는 비난의 화인을 되던지지 않는 야당이 어디 있는가?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
사상의 자유는 인류 문명이 최근에 이룩한 성취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사상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지금 두려움 없이 <공산당 선언>을 읽는 나는 행복하다. 거기서 진리를 찾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류를 담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금서를 그렇게 읽고서도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되지는 못했다.
그 책에서 나는 두 가지 모순을 보았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 내부에서 새로운 계급과 계급투쟁이 발생함으로써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과 마르크스는 인간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되는 연합체’를 만들 것이라 했지만 나는 인간이 과연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존재인지를 의심했다. 19세기 유럽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 대중이 처했던 극단적 빈곤과 전적인 무권리 상태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노에 공감하지만 그가 제안했던 ‘생산수단의 국유화”같은 제안들은 실현되지 않은 예언으로 남을 것이다. 비록 해법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라고 말한 것은 여전히 가치와 생명력을 유지한다.
4. 토머스 맬서스 -인구론
누구나 그 내용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읽는 이가 거의 없는 위대한 고전 가운데 하나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맬서스는 대중의 빈곤을 구제하려는 모든 노력을 비판하기 위해 인구론을 집필했다. 맬서스에 의하면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은 인구법칙이라는 자연법칙의 필연적 결과다. 따라서 하층민의 고통은 스스로의 책임이며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자연의 질서를 거역하는 것이다. 그는 굶어죽는 사태를 예배하려면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그는 전염병 퇴치를 비판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보면 맬서스가 그토록 원하는 전염병 창궐이 일어나 세계적으로 인구 조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맬서스에게 자선은 사회 악으로 보며 영국의 ‘구빈법’을 비판했다. 심지어는 개인적인 자선도 단호하게 비판했다.
인구론을 읽었을 때, 나는 맬서스를 미워하고 저주했다. 내가 책과 현실에서 만난 어느 누구도 맬서스처럼 뻔뻔하고 냉정한 어조로 가난한 사람들을 모욕하고 부자를 편들지는 않았다. 인구론은 빗나간 화살이었다. 맬서스는 천재였지만 또한 ‘편견 덩어리’였다.
76쪽
우리 모두는 갖가지 편견과 고정관념을 지니고 산다. 나는 맬서스와 얼마나 다른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 신념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통념들 가운데 그릇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을 것인가?
5. 알렉산드르 푸시킨-대위의 딸
대위의 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읽었던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한 후였다.“나는 이 소설 하나를 읽고 열렬한 푸시킨 추종자가 되었고 러시아문학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대위의 딸>은 재밌는 연애소설 같지만 연애소설로 위장한 역사소설이자 정치소설이다. 푸가초프 반란과 참혹했던 내전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농노 제도와 차르의 전제정치를 통렬하게 비판한 혁명적인 소설이다.
푸시킨은 러시아의 ‘뼈대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프랑스 출신 가정교사에게 프랑스 말로 교육을 받았으며 황제가 만든 특별한 귀족학교에 다니면서 일찍부터 문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은 전도 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는 19세기 제정러시아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진보적 견해를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노출시켰다. 푸시킨의 육신은 러시아의 피를 받았지만 정신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의 세례를 받았다. 1826년 9월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추방당하고 6년째 변방을 떠돌던 푸스킨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직접 옆에 두고 검열하겠노라 선언했다. 이후 10년 넘게 황제의 검열 아래서 살다가 1837년 1월 서른여덟 살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대위의 딸>은 죽기 전까지 3년에 걸쳐 쓴 작품이다. 푸시킨의 죽음과 함께 기억될 세 명의 이름. 열여섯 푸시킨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 나탈리아 곤차로바. 그녀는 남편 푸시킨에게 심각한 재정적 곤경과 불명예를 안겨주었고 네덜란드 공사의 양자였던 프랑스 남자 단테스와의 불륜은 결국 결투라는 음모로 푸시킨이 생을 마감하게 했다. 그리고 차르 니콜라이 1세는 푸시킨울 불러들여 옆에 두고 아내 나탈리아에게 치근대기도 하고 또 그를 시종보로 임명해 황제가 보는 앞에서 황제의 아내 시중을 드는 모욕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그의 시신을 비밀리에 매장하고 푸시킨의 서재를 수색해 그가 남긴 모든 기록과 원고를 파기해 버렸다. 푸시킨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세 사람은 편안한 삶을 살았는지 몰라도 인류 문명이 계속 지속되는 한 그의 시는 읽히고 또 읽힐 것이며 오욕으로 얼룩진 그들의 이름 또한 잊히지 않을 것이다.
푸시킨은 200년 전 전제정치와 농노제도가 실시되던 러시아에서 인간의 자유를 노래했다. 그는 인류가 오늘날까지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한 휴머니즘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문학으로 꽃피웠다.
6. 맹자-맹자
맹자를 만난 것은 초. 중등 학생 시절 문교부가 주최하는 책 읽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했을 때다. ‘자유교양 도서 목록’에 있는 책들을 그때 다 만났다.
맹자는 나이 50에 세상으로 나갔다. 살아서는 뜻을 이루지 못했고 죽어서도 크게 추앙받지 못했다. 그가 위대한 사상가로 대접받게 되기까지 150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그래도 그의 제자들이 남긴 책 <맹자>가 있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록으로 역사에 승리했다.
“군주가 잘못이 있으면 간언하고, 반복하여 간언해도 듣지 않으면 자신이 떠납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다.”
보수가 이념이 아니라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맹자는 정말 멋진 보수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보수가 물질적 이익과 세속적 출세를 탐낸다고 하지만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다른 누군가와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체성의 닻을 내린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맹자는 진정한 보수주의자였다. 나는 그것을 알고 나서야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귀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귀함을 지니고 있건만 생각하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남이 귀하게 해준 것은 진정 귀한 것이 아니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둘 모두를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삶보다 더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맹자
7. 최인훈-광장
최인훈 선생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주인공 이명준과는 반대로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북에서 남으로 왔다. 그는 소년 군대가 점령한 삼팔선 이북 지역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김일성 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였다. 최인훈 선생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체제가 실패로 끝날 것임을 분명하게 예견했다.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면서 사회적 사명감으로 사람을 강제하는 체제, 개인의 자발성과 신명을 말살해 버리는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진단이었다. 그때는 유신시대였다. 어떤 국민의 뜻도 대의하지 않는 ‘통일주체 국민회’ 대의원들이 서울 장충동 체육관에 모여 단일 후보로 나선 현직 대통령을 만장일치로 새 대통령으로 선출한 때였다.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했고, 정부와 정치인들이 돈과 권력으로 국민을 매수하고 협박하던 시대였다. 1978년에도 본질적으로 같은 정치 현실이 지속되고 있었다.
1960년에 발표한 작품을 1978년에 읽었을 때 <광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광장>은 수준이 매우 높은 지식인 소설이었고 본질적으로 최인훈 선생인 경험한 북을 체험한 적이었어서였다.
<광장>은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압축한 소설이며 동시에 전쟁의 포연 속에서 피어난 남녀의 사랑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그려낸 아름다운 소설이다.
8. 사마천-사기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역사서를 한 권만 뽑는다면 <사기>가 가장 강력한 후보가 되는 게 마땅하다. 인류 역사에서 혼자 힘으로 그런 작업을 해낸 역사가는 오로지 그 한 사람뿐이었다.
유시민< 역사의 역사> 76쪽
역사의 역사
역사의 역사유시민 역사는 늘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는 생각이 있고 실제로 역사 책은 많이 읽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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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인간의 비극적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에게서 받은 옛 역사 문헌 목록을 정리하기 위해 썼다. 공자와 달리 역사를 사실에 입각해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고 서술 형식도 입체적인 기전체를 창안했다. 쓰는 중에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을 선고받지만 끝까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 궁형이라는 거세형을 택했다.<사기>를 보면서 한신과 한고조가 겪었던 인간적 고통과 비극적 죽음에 대해, 이 미돈 것들을 기록해 인류에게 선사한 역사가 사마천의 삶에 대해 깊은 존경과 높은 찬사를 바친다.
9.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영등포 구치소 0.7평짜리 독방에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다.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1962년 11월 소련 문학잡지에 게재된 소설이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던 나는 이것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마지막 단락에 인용했다. 수용소의 풍경과 죄수들의 일상을 찍은 동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의 책을 구치소 독방에서 읽었을 때의 느낌이 어땠을까?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들이라면 모두 ‘병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용소를 경험한다. 국 두 그릇을 해치우는 슈호프의 모습을 보면서 군대에서 푸짐한 식판을 받았을 때의 기쁨을 생각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슬픔과 노여움으로 쓴 소설이다. 시인이자 <노브이 미르> 편집장 트바르돕스키가 아니었다면 위대한 작품과 작가는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편집장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을 하고 공산당의 검열을 받고 게재를 했고 후에 결국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솔제니친은 1970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소련 정부의 반대로 인해 수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1974년에는 체포되어 조국에서 추방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후 1994년에야 20년의 망명생활을 접고 조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으며 90세의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10. 찰스 다윈-종의 기원
다윈은 초등학교 시절엔 암기식 수업에 적응하지 못해서 교사에게 욕을 먹고 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를 보고 의대를 중퇴할 정도로 동정심 많은 천재였다. 대학 졸업 후 영국 군함을 타고 세계를 여행했는데 그때 다윈의 <종의 기원>이 잉태되었다고 한다.
나는 젊은 시절에 다윈을 읽지 않았다. 다윈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으면 다른 책부터 읽는 게 좋다. <이기적 유전자>, <진화하는 진화론>, <HOW TO READ 다윈>과 같은 책을 먼저 읽고 관찰로 얻은 개별적 사실에서 일반적 명제로 끌어내는 논증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이 좋겠다. 자연은 생존에 유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를 선택하며 그렇게 생존한 개체의 변이가 보존되고 유전되고 확산되면서 생물의 진화가 일어나고 종 다양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11. 소스타인 베블런-유한계급론
괴짜 경제학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국의 마르크스’라는 악명 때문이다. 미국에 그런 학자가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유한계급론>을 읽었다. 베블런에 따르면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돈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는 경쟁심 때문이다.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해 소비함으로써 만족을 얻는데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돈을 버는 목적이다. 돈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유한계급은 생활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부를 만인의 눈앞에서 입증하는 수단으로 소비를 선택한다. <유한계급론>은 호모사피엔스의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며 조롱이다.
12. 헨리조지-진보와 빈곤
1980년대 말 노태우 대통령 재임 초기 집값 땅값이 폭등하는 난리 통의 나는 서울 신림동에서 1300만 원 전세를 얻어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 무렵 이 책을 읽었다.<진보와 빈곤>은 20대에 마지막으로 읽은 고전이다. 조지는 특이한 경제학자다. 1839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출판업을 하신 아버지 덕에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그는 열네 살에 학교를 스스로 그만두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보냈지만 독서 외에는 꾸준히 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중에 “사회가 눈부시게 진보하는데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소명을 받게 된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경제학을 공부해 당대 최고의 경제 이론가 반열에 올랐다. 조지는 경제 중심지의 토지를 보유한 지주들이 진보의 과실을 지대 형식으로 독점하기 때문에 대중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토지소유권을 근거로 지주가 취득하는 지대를 공동체의 것으로 만들자고 했다. 그는 1886년 뉴욕시장 선거와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리고 뉴욕시 노동조합들의 간청 끝에 1897년 뉴욕 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했는데 선거 유세 중에 과로로 57세의 삶을 마감한다. 아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며 다 소진하고 갔구나. 사람들을 빈곤에 구하기 위한 몸부림. 열정은 위대하다. 진리보다 사람들은 이익이 우선한다. 그래서 그것은 이루지 못할 아름다운 꿈이다.
13. 하인리히 뵐-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이 책은 군에서 막 제대한 1983년에 읽었다. 정보의 바다에서 사는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정보를 숨 쉬고 왜곡과 거짓을 마시며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을 읽었을 때 숨이 막혔다. <차이퉁>이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를 짓밟은 방식이 너무나도 ‘리얼’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현실에서 보고 경험했던 그리고 오늘 현재에도 목격할 수 있는 언론의 행태와 정말로 똑같았다. 이 소설은 뚜렷한 진보 성향을 지닌 지식인 뵐과 극우 황색신문<빌트>를 향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폭탄을 던졌다. 뵐은 191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뵐은 1939년 징집되어 전쟁터로 나가야 했고 미군 포로가 되었다. 히틀러의 독재와 전쟁범죄, 유대인 대학살 시대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51년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젊은 작가들의 모임인 ‘47그룹’을 만들어서 활동했다. 뵐은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적극 참여했다. 1956년 소련의 헝가리 민중 봉기 무력 진압을 규탄하고 수에즈운하 개방에 반대해 이집트를 공격한 프랑스와 영국을 비판했다. 유렵 68혁명에서는 시위대 앞에 연설했고 1974년 소련에서 추방당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자기 집으로 피신시켰으며 1978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김지하 시인의 석방을 청원했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이 글 초고를 쓰고 나서 한 달이 되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잃어버린 것은 전직 대통령의 명예만이 아니었다. 그는 ‘피의자’의 권리 시민의 권리도 빼앗겼다. 그는 해가 떠오르는 시각에 앞으 보며 서른 길 높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택한 길은 말 못 할 정도로 억울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대는 신문 헤드라인을 진실이라고 믿습니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이 책은 정말 진작부터 구매 리스트에 있었지만.. 늘 급하게 보고 싶은 신간들 사이에서 다음으로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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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대학 신입생 시절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불후의 명저를 읽었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의 권유로 랑케의 <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를 읽었다는 부분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딸을 생각한다. 나는 어떤 책을 권해줘야 할까. 권해주고 싶은 책이 많아서 이번에 10권 정도만 추렸는데 잘 씹어 먹어줄지 모르겠다. 맛도 모르고 싫고 뱉고 싶어도 삼켜만 주면 좋으련만.
랑케는 역사의 발전이나 진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변화할 따름으로 보았다. 다만 물질적 진보만 있고 정신은 진보하지 않는다. 나는 E.H 카를 읽고 난 다음 랑케와 작별했다.
카는 1961년 모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 이론을 주제로 연속 강연을 했는데 <역사란 무엇인가>는 이 강연을 정리한 책이다.
역사는 획득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다.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된 발전에 대한 믿음이다. 진보는 추상적인 말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 목표는 역사의 흐름에서 때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 밖에 있는 어떤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163쪽, 170쪽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내가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기였을 때 대통령이 되었던 그는 내가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 인생의 고비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이번이 여섯 번째인 것 같다. 다시 카를 읽으며 역사의 진보,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생각한다. 카의 말마따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시대의 역사는 현대사임에 분명하다.
50년을 살면서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 것이다. 그는 내게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인의 기적을 일으켰고 어느 정도 내 삶을 바꾸어놓았다.
이 책 중에서 읽은 책이 <죄와 벌>과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2권 밖에 없어서 절망했다. 사실은 그가 소개한 책들을 다 읽은 후에 이 <청춘의 독서>를 비교하며 리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재로는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 책들을 다 읽지 않았다 해도 이 책을 읽는데 아무 상관없으며 그 안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생각해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을 언제 읽었는지를 정확하게 추억과 시대를 소환해내는 것에 오히려 놀랐다. 나도 책을 언제 읽었나 기억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뭔가 활자를 읽고 싶어 하는 그는 닥치는 대로 무엇인가를 읽었고 그런 습관 그대로 지금까지 책이라는 것과 함께 살아온 지식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무릎을 친 부분은 마지막 작가의 후기다.
위대한 유산에 대한 감사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아버지의 아들'임을 새삼 깨달았다. 내 아버지 유태우 선생은 평생 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쳤다. 돌이켜보니 아버지가 권해서 읽은 책들이 무척 많았다. 13대조 할아버지의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진주 목걸이>,<세계사 편력>,< 제3의 물결> 등이 떠오른다. 내가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호롱불에 흔들리는 그림자다. 아버지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에에 어김없이 일어나셨다. .. 그리고는 호롱불을 켜고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메모하셨다.
아버지는 그의 독서 멘토였다. 유신시대에 불온서적으로 간주된 책을 목숨 걸고 몰래 읽었고 구치소에서도 책을 읽는 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아버지의 유산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딸에게 헌정하는 책을 보며 나는 어떤 책을 나의 인생의 책이라고 말하게 될까 또 추천하게 될까 생각했다.
자녀가 기억하는 부모의 모습을 생각한다. 새벽 4시에 호롱불에 흔들리는 책 읽는 그림자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도 어린 시절 내가 자기 전에도 또 잠을 자다 중간에 살포시 깬 새벽에 눈을 뜨면 열심히 화관(웨딩 코사지)을 만들던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독서가 아니면 어떠랴. 부모의 삶의 열정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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