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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by 북앤라떼 2020. 8. 3.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장 지글러

방학 프로젝트로 집 안에서 방 교체를 하며 나온 쓰레기의 양이 실로 엄청나다. 아주 일부만 쓰고 버려지는 학교의 노트들과 책들이 몇 수레인지(매번 학기 초마다 노트와 학용품을 새것으로 가져오게 하는 시스템!). 그래서인지 방 이사를 하는 동안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다. 버려야 깨끗해지지만 문제는 소비의 패턴이고 그 소비를 조장하는 것이 내가 주체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런 어수선한 가운데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아마존 강 유역에 사라진 숲(프랑스 전체 면적)을 떠올렸다. 나는 방 하나를 비우면서 결국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책들도 쓰레기에 불과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할아버지 장 지글러(Jean Ziegler)가 손녀 조라(Zohra)와 쉽게 묻고 대답하며 자본주의를 설명하니까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희망은 서서히 변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알려진 스위스의 사회학자 장 지글러(Jean Ziegler)는 2000~2008년 유엔 인권위원회 최초 식량특별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의 기아의 실태를 파악하였고 특별히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와 빈곤에 대한 문제를 책으로 펴냈다.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저자장 지글러출판시공사발매2019.01.18.

 

 

인간의 노동과 재능, 천재성은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생산 방식은 무수히 많은 범죄를 낳았다. 날마다 수만 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의학이 벌써 오래전에 정복한 전염병들이 귀환하고, 환경 파괴, 토양과 해양 오염, 숲의 파괴 등이 그렇다.

현재 지구에 76억 명(2017년 12월 기준)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서 약 48억 명은 소위 ‘남반구’로 상징되는 가난한 나라들에 거주하고 있고 10억 명가량은(세계은행에서 지정한 ‘극빈자’)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다. 2차 세계대전이 야기한 사망자 수보다 많은 수이기 때문에 ‘3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란 경제 생산 방식이면서 동시에 사회를 조직하는 형태를 가리키기도 한다.‘자본주의 Capitalism’라는 용어는 라틴어에서 ‘머리’를 뜻하는 단어 ‘caput’에서 유래했다. 거기에서 파생된 ‘자본 capital’이라는 말은 12~13세기에 종잣돈의 의미로 처음 선보였는데 17세기부터 종잣돈을 생산 과정에 투자하는 자를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된다. 18세기부터는 자본주의자, 19세기 중반에는 ‘자본주의’ 경제적 사회적 체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유재산권의 역사는 1792년 프랑스로 가야 한다. 지독한 기근에 시달렸던 프랑스 시에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센 강변의 튈르리 궁에 먹을 것을 산처럼 쌓아 놓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궁을 습격한다. 그때 충성 서약을 한 스위스 용병대가 궁을 지키고 있었다. 파리 시의 혁명 업무를 맡았던 정부 파리 코뮌 돌격대는 민간인 시위자들 덕분에 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민간인 시위자들은 궁에서 어떤 먹을거리도 찾아내지 못했고 대신 각종 보석과 값비싼 가구나 물건들만 가지고 나왔다. 하지만 코뮌 돌격대 요원들은 이들을 약탈자로 체포해서 교수형에 처했다. 이렇게 해서 부르주아의 중심 가치인 사유재산권 신성불가침의 원칙은 확연하게 만천하에 확인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그 가치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1821년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과테말라엔 지금도 토지대장이 없다. 과테말라에서는 토지 소유주 1.86퍼센트에 해당하는 외국인 혹은 내국인이 정작 가능한 토지의 6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유니세프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과테말레에서 죽은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11만 2000명이다.

장 지글러는 휴대전화를 거부해왔다. 그 이유가 키부 Kivu 때문이다. 콩고 동쪽 키부에서는 광산지대에서 민간 기업들이 콜탄을 채취하는 곳이다. 콜탄이라는 광물은 비행기 동체와 휴대전화를 비롯해 선진국 국민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콜탄의 광맥은 주로 지하 10~20미터 정도에 있는데 갱도가 너무 좁아서 몸이 마른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고 낙석도 빈번해서 어린아이들이 산 채로 매장되어 질식사를 하는 사고도 일어나지만 광산 지옥에 가는 것만이 굶어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아이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시절에 비인간적으로 채굴된 광물의 이력 추적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안을 미국 의회에 제출했지만 안타깝게도 광산계의 거물들이 그 법률안이 폐기되도록 똘똘 뭉쳐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장 지글러의 표현대로라면 광산 거인들 앞에 납작 엎드려 그런 회사들을 귀찮게 하던 법을 없애버렸단다.

역시 자본주의 기업들의 힘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다.

양심도 없는 도적떼들이라며 화를 내는 조라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미워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조라야 현실을 똑똑히 이해해야 해”라고 말하며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강력하게 증오해야 한다.”

스위스의 시민단체 ‘퍼블릭 아이 Public Eye’의 추적에 따르면 스펙트럼-스웨터라는 상표의 청바지 1벌은 제네바에서 54유로에 판매되는데 그 옷을 만든 봉제공에게 돌아가는 돈은 0.25유로다.( 2016년 방글라데시의 법적 최저임금은 1달에 51유로, 노동자 연맹 Asia Floor’에 따르면 4인 가족의 최저 생활비로 적어도 272유로는 보장이 되어야 한다. ) 2013년에 다카에 위치한 낡은 공장이 무너져 1,138명이 건물 더미에 깔렸지만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낮은 임금으로 부자 나라들의 시장을 선점해서 싼값으로 최대한 물건을 많이 파는 것이 자본주의자들의 꿈이다.

네가 이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 자라나건, 스위스의 슐렉스가 되었건 방글레데시가 되었건, 군도의 부유한 섬이건 낙후한 섬이건 상관없이 자본주의 체제가 너의 실존을 결정짓는 거야. 자본주의 체제란 독성이 강해. 자연에게도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정도로 위험하다고. p107

2017년 가장 힘센 민간 거대 다국적 기업 500개가 세계 총생산의 52.8 퍼센트를 장악했다. 이들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은 어떤 형태의 통제에도 벗어나 있다. 오직 하나의 전략, 가장 짧은 기간에, 인간의 희생을 불사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다. 그들은 모든 분야에 어떤 황제도, 교황도, 왕도 누려보지 못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2017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진 85명의 부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35억 명이 소유한 것을 모두 합친 것의 부를 소유했다.

버스 1대에 다 태울 수 있는 숫자가 인류의 가장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만큼의 부를 차지했다

빚더미 위의 검은 아프리카

오늘날 부자 국가들이 가난한 나라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돈을 빌려주고 받아내는 이자다. 그들은 인도주의적 지원금, 발전 기금의 형태로 돈을 보내지만 훨씬 더 많은 돈을 돌려받는다. 이 빚이야말로 세상의 식인 체제와 소수 금융 자본자들의 세력을 공고히 해 주는 무기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접하는 게 어려울까? 2001년 9.11 테러로 2,977명이 희생된 일은 매년 집단의식으로 기억하는 일이지만 그해 10세 미만 어린이 3만 오천 명이 기근으로 목숨을 잃은 뉴스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소수의 억만장자들은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구조 속에서 1명의 시민이 무슨 일을 한다는 말인가! 오바마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도 하지 못한 일인데 말이다

가장 탄탄한 벽도 자그마한 균열로 무너진다

체 게바라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로 강제 이송되고, 어리석은 참호 속에서 산화하고, 네이팜탄에 타죽고, 자본주의를 지키는 개들이 만들어놓은 감옥에서 고문 받다 죽고, 파리 코뮌 참가자의 벽앞과 푸르미와 세티프에서 총살당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수십만 명씩 대량학살 당하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디언들처럼 아예 전멸당하기도 하고, 중국에서 마약의 자유로운 유통을 위하여 대대적으로 살해당한 이름 없는 군중들이여...이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자들의 손은 존엄성을 부인당한 인간의 항거라는 횃불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영양실조로 하루에도 수만명씩 목숨을 잃는 제 3세계 아들딸들의 손은 곧 힘이 빠질 것이고, 그 손은 꼭두각시에 불과한 지도자들이 빚으로 끌어와서 빼돌린 자본의 이자를 갚느라 뼈만 남게 될 것이며 풍요의 계단에서 올라가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수많은 소외된 이들의 손은 점점 더 힘이 빠져 떨리기만 할 것이다. (...) 비극적인 허약함으로 갈팡질팡하는 손은 현재로는 따로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손들은 언젠가 한데 모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 손에 들린 횃불이 이 세상을 활활 태울 것이다.

<자본주의 흑서>질 페로 Gilles Perrault

의식 있는 개개인의 믿음과 확신의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 지글러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들려주며 말을 마친다.

꽃들을 모조리 잘라버릴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한들

절대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진실을 마주할 때의 첫 감정은 분노와 울분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감정은 무력감으로 오는 좌절감이다. 때론 값싼 감정이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장 지글러도 손녀에게 “미워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현실을 똑똑히 이해해야 해”라는 말을 한다. 특별히 큰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지구 밖의 이야기로만 들리진 않을까 암담한 마음도 들고, 차라리 모르는 게 편한 진실이 주는 불편함을 아이에게 일부러 알려주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도 된다. 아는 것의 힘이 있는가?

그러나 지금 미국을 가득 채우고 있는 BLM(Black Lives Matter) 시위 퍼레이드만 봐도 움직이는 시민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낡은 것이 가고 새것이 오려면 혼란이 오기 마련이라는 말을 되새김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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