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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

by 북앤라떼 2020. 10. 27.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

줄리 입 윌리엄스

트남 내전이 한창이던 1976년 3월 남베트남 땀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난 지 2개월이 됐을 때 선천성 백내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부모는 할머니의 안락사 명령대로 다낭에 있는 약초 재배꾼 노인에게 그녀를 데려갔다. 맹인으로 태어난 그녀는 할머니가 보기에 망가진 자손이었다. 가족에게 짐이자 수치고 할머니는 그것이 그녀의 비참한 인생을 해결해 주는 방책이자 자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심 있는 약장수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어 망설인 어머니가 그녀를 살렸다. 공산주의자들은 내전 중에 자신들과 맞섰던 이들에게 보복을 했고 사람들의 집과 재산을 빼앗아 귀속시키려 했다. 1979년 2월 베트남 정권은 중국계 베트남인들에게는 모든 재산을 국가에 넘기면 떠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었다. 일종의 인종청소였다. 그래서 그녀의 가족은 한밤중에 트럭을 타고 좁은 배에 300여 명이 빼곡히 앉아 홍콩까지 가는 배에 올랐다. 그리고 몇 달 뒤 미국의 어느 성당의 도움을 받아 그녀가 세 살이 되던 1979년 미국 이주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UCLA에서 수술을 받고 부분적으로 시력을 조금 되찾을 수 있었지만 특수 안경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을 당하고 부정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고 세계적 로펌회사에 입사했다. 변호사로 일하며 남편 조시를 만나 결혼해서 두 딸을 낳고 어느 가정들 못지않게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2013년 사촌의 결혼식 날 그녀는 결장암 4기, 6퍼센트 5년간의 생존 가능성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지난 운명을 생각하며 숫자를 믿지 않기로 했다. 그 뒤로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자 많은 수술과 항암치료를 했지만 처음 의사의 진단대로 살다가 떠났다.

 

얼마 전 읽은 폴 칼리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의 경우처럼 완벽하다 생각되는 삼십 대 인생의 최고 정점에서 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두 사람 다 그 질병에 맞서서 끝까지 싸우는동안 인생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기록을 남겼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인생은 시작부터 많은 난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암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자전적 스토리는 기적에 가깝다. 선천적 질병과 어려움 속에서도 찬란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간 그녀의 기록은 그녀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다. 그녀가 여행을 하며 한 줄기의 빛을 보았던 순간들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용감하고 아름다운지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암 환자로서의 삶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내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든 결코 혼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혼자가 아닐 것임을 깨닫길 바란다.

저자의 말

한때 그토록 찬란하던 빛이

끝내 사라진다 해도

초원의 빛나는 시간, 꽃의 영광스러운 시간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그 뒤에 남은 굳건함을 찾으리

영원히 존재해온

근원적인 연민 속에서

우리의 고통에서 비롯된

따뜻한 위로 속에서

죽음마저 꿰뚫는 믿음 속에서

지혜를 불러오는 세월 속에서 찾아내리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영혼 불멸에 부치는 송가>

그녀는 극심한 빈곤과 인종차별, 경제적 어려움에서 선천적 질병을 안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앞을 정확하게 보는 사람보다 밝았고 용감했다. 그녀는 서른한 살이 되기 전 세계 7대륙을 여행했다. 혼자만의 여행도 즐겼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한 남극 여행도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나 홀로 여행을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 여행을 즐겼다는 것 때문에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혼자 세 끼를 해결하고 세계 곳곳의 유적지를 돌아다니고 낯선 도시에서 숙소를 찾다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혼자 보트와 버스, 기차, 비행기로 이동하고 다음 순간 누구를 만나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나는 이런 여행을 하면서 더없는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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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발견된 이후로는 책의 대부분이 암 환자가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의 기복을 담고 있다. 살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은 그렇지 못한 몸 상태로 인해 분노와 절망으로 나타난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힘을 내지만 때로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힘겹게 느껴진다. 3년의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폐와 복부, 골반에 암은 퍼져있었고 난소와 나팔관까지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중에 의지할 수 있는 치료법은 그것이 의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도 다 해보려고 하는 마음도 많았다. 그걸 따랐다는 후회도 밀려왔다. 하지만 암 투병 여정에서 후회가 없을 수는 없다고 위로했다.

마흔 살 어린 두 딸을 둔 엄마이기에 앞으로 아이들과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지 생각하면 독자의 마음으로도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염려가 생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단단한 계획이 필요했다. 엄마의 머릿속에 가득한 목록을 기록으로 남기고 마지막으로 유산과 서류를 작성한다. 그리고 마지막 추억을 쌓고 작별 인사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할 마지막 말을 글로 남긴다.

인생에서 그 마지막에 그리워질 삶의 요소는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특히 그렇게 젊은 엄마에겐. 아이들과 침대에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웃는 일, 아이들 학교를 데려다주는 일,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는 일 하다못해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빼는 단순한 일까지도.

그녀가 그리워할 일들이 지금 내 삶을 꽉 채우고 있는 반복된 일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을 떠나기까지는 그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이 삶이었음을 잘 깨닫지 못한다.

이제 미아는 초등학교 3학년 벨은 1학년, 8살 6살이었다.

남은 시간들은 부모님과 오빠, 언니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두 딸을 가진 엄마로 아픈 딸을 보여주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럼에도 함께 마지막을 보내는 게 낫다고 결정했다.

할머니는 그녀가 앞을 보지 못해서 영원히 잠재울 약을 찾았지만 양심적인 약초 전문가와 “태어난 대로 어떻게든 살아질 거”라고 하신 증조할머니 덕분에 그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덤으로 얻은 인생이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수술로 일부 시력을 찾았을 때 두 번째 얻은 구원이었다. 생각해보니 덤으로 얻은 인생이었다.

삶의 기적은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난다.

나는 내 삶이라는 기적이 어떻게 끝날지 알게 되어 고통스러울 뿐이다.

(...)

죽음도 일종의 기적이다.

죽음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는 어렵지만 나는 계속 배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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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2018년 3월 19일 그 방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눈을 감았다. 남편 조시는 줄리의 부탁으로 에필로그로 글의 마무리를 한다. 줄리가 죽음을 맞이한 방에서, 줄리가 꿈 꿔왔던 그 아파트에서.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줄리가 암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리가 본인의 운명에 어떻게 맞섰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줄리는 시력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병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고도 회피하거나 숨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진솔하고 열정적으로, 충실하게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딸들에게

-나는 엄마 없이 자라지는 않았지만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고 너희보다 더 어린 나이에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걸 이미 깨달았어. 나는 운전을 하고 테니스를 치는 아이들, 나처럼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쓰지 않고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몹시 괴로워했어. 22

-인생에는 고통 없는 안도감, 두려움 없는 용기, 절망 없는 희망, 고생 없는 지혜, 결핍 없는 감사는 있을 수 없어. 인생에는 이런 역설이 넘쳐난단다. 온갖 역설 속에서도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야. 비록 앞을 보진 못했지만 이 불행한 현실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어. 나는 자기 연민에 허우적대기 보다 한층 야심 있는 사람으로 자랐어 23

-너희는 이제 엄마 없이 자라게 될 거야. 마음 같아선 너희가 고통을 겪지 않게 보호해 주고 싶지만 그래도 엄마로서 한편으로는 너희가 고통을 겪더라도 잘 버티고 살아내어 교훈을 얻기를 바라. …. 어린 나에게 엄마를 잃은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인생의 불안정함과 소중함에 감사하기를. 이게 너희에게 주는 숙제야. 24

-암과 싸우는 여정을 통해 얻게 될 기쁨은 내가 한때 세계 여행을 하며 느꼈던 기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71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열아홉 살 때 중국 간쑤성의 어느 외딴 산비탈에서 티벳 승려 세 사람과 나란히 앉아 저 아래 사원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염불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다. 그리고 2005년 추수감사절에 수백 마리의 야생 펭귄을 만나기 위해 청명한 하늘과 눈부신 태양 아래서 조디악 보트를 타고 흰색과 초록색, 파란색으로 물든 바다를 가로질러 남극대륙으로 향하던 때다. 또한 별빛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길을 밝히는 가운데 차가 들어가기에 좁은 방글라데시의 어느 길을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던 때였다. 104

-암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의 순간을 망가뜨리고 미래를 의심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에서 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벗겨내고 모든 것을 남극 하늘처럼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104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는 하느님의 손길 덕분에 로스앤젤레스에 왔으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마법 같은 사랑을 만났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랑은 삶이 위협받는 순간이 되어야 드러난다. 이런 사랑이 삶을 스치고 지나가면 아무리 냉소적인 사람이라도 강렬한 힘을 품은 채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나는 암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하지만, 내가 어쩌다 암에 걸리게 됐는지를 글로 풀어놓으며 매일 깨닫고 있다. 암은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하기만 하던 예전의 삶을 앗아갔지만 대신 가족과 이웃들의 사랑을 선물로 안겨주었다는 것을. 이 사랑은 이제 내 영혼의 일부가 되어 나를 영원히 버티게 해 줄 것이다. 175

-내게 결정권이 없긴 하지만 만약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물론 그 당시에는 그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겠지만 어쨌든 내 삶의 방향을 영원히 결정지을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내 삶이 대체 어떤 식으로 전개됐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193

-우리가 삶을 통제한다는 생각은 엉터리 같은 착각이자 잔인한 환상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제어하지 못한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상냥하게 대할지 정도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대할지, 삶에 어느 정도의 노력을 쏟아부을지, 불가능한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지도 219

-잠을 자는 동안에는 깨어 있을 때의 악몽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꿈에서는 암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224

-나는 추억과 과거, 역사를 좋아한다. 대학에서도 역사를 전공했고 미국, 중국, 유럽, 아프리카, 역사와 경제사, 정치사, 문화사를 공부했다. 350

-내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조시는 내 수술 및 병리 보고서를 백 번도 넘게 읽었다. 조시는 숫자와 이성을 중시하고 과학의 힘을 신뢰하지만 나는 나 자신과 보다 높은 힘,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형체 없는 힘을 믿었다. 352

-결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날이자 수술을 받기 위해 UCLA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날 새벽 네 시, 자다가 눈을 떴는데 이 상황이 악몽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달았을 때 두려움이 밀려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그때, 나는 초라한 병원의 어둠 속에서 홀로 펑펑 울었다. 긴지 짧은지 알 수 없는 미래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으나 내 안에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353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통해 힘을 발휘하고 믿음의 기초를 다친다. 중요한 것은 불쾌한 기억을 반추하면서도 본인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영혼의 여정이 품은 비밀을 발견할 수 있느냐이다. 355

-아이들 곁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그 순간에 우리 집이 가족과 친구들, 웃음, 눈물, 이야기, 음식 등 삶의 가장 좋은 요소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딸들이 내 죽음을 보면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일 뿐임을 깨닫길 바란다. 내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아가 자신들이 얼마나 안전하게 사랑받고 있는 존재인지 알기를 바란다. 활기차고 평화로운 분위기, 사랑으로 가득한 분위기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내가 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392

책 속에는 그녀의 솔직한 매일의 삶이 담겨있다. 반복되는 고통의 토로도 있지만 늘 그녀가 삶의 중심을 잡고 의지적으로 이끌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암을 통제할 순 없지만 마지막까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하루의 삶이다. 그런 그녀의 삶을 통해서 지금 주어지는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책을 읽는 독자로 유쾌한 책은 아니었지만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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