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4쪽 들어가는 말,
저자
김상욱:
1970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 양자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후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알뜰신잡을 통해 더 많이 알려진 낯익은 물리학자.
사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였음을 고백한다. 필자는 물리를 배우면서 물리학자를 꿈꿨지만 난 물리 하면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만났던 지루한 물리시간에 정지되어 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러나 나를 이끈 것은 요즘 노력 중인 ‘편견 없는 독서’의 연장선이다. 일단 판단하지 말고 읽자이다. 첫 장을 넘기면서 받은 인문학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의 바람대로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인다. 혹시 그의 롤 모델이 세종? 완벽한 인문학자이자 완벽한 과학자.
김상욱에게 배웠다면 물리를 다정하게 대했을텐데
유시민
계약직 연구원으로 독일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만난 실내의 ‘빛’에서부터 어둠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부터 공감이 됐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한 친구도 나에게 가장 먼저 실토한 괴로움이 이 ‘빛과 어둠에 대한 적응’이다. 나 역시 지금은 적응됐지만 초창기에 형광등을 찾아 달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놀러 갔을 때 왜 한국을 “빛의 나라”라고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주는 어둠으로 충만하다. 빛은 우주가 탄생한 후 38만 년이 지나서야 처음 그 존재를 드러냈다. 우주는 38만 살 되던 해 자신의 모습을 빛에 남겨 놓은 것이다. 빛은 주파수에 따라 마이크로파, 전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 여러 종류로 나뉜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가시광선뿐이다. 그러니 세상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이 훨씬 많다. 우리는 불과 150년 전 빛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후 5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빛은 물리학을 근본부터 허물기 시작했다.
빅뱅이론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물리학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한다. 우주에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기독교의 창조론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뱅이론은 과학이다. 즉 물질적 증거가 있다는 말이다. 과거의 우주를 보면서 우주가 줄곧 팽창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빅뱅이론은 시공간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물리학자는 시간에 대한 방향을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루비 큐브로 설명한다. 큐브의 색이 맞아있는 상태(과거)와 큐브의 색이 흐트러진 상태(미래)인 큐브가 가질 수 있는 무작위의 수를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우주의 나이 100배쯤 긴 시간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간다는 것은 결국 상태를 이루는 경우의 수가 작은 상황에서 많은 상황으로 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경우의 수’에 ‘엔트로피’라는 이상한 이름을 주면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라는 멋진 문장으로 바뀐다.
S= k In W
양자 역학은 미시적인 물질세계를 설명하는 현대물리학의 기본 이론이다. 양자 역학 이전의 물리학을 이와 대비하여 고전 물리학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이제 양자역학, 파동역학, 행렬역학 그렇게 시작하더니 어라 ‘슈뢰딩거 방정식’까지 열거한다. 수포자 책을 덮으려는 순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친절한 상욱씨~
자동차가 움직이고 심장이 뛰고 스마트폰이 울리고 밥을 먹으면 힘이 난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런 모든 자연현상의 99%를 설명한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되고 있고 이 방정식은 원자를 설명한다
일상 언어에서 확률은 불확실한 느낌을 주지만 과학에서의 확률은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결정되는 실체라고 한다. 측정할 때마다 전자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결과를 모아보면 슈뢰딩거 방정식이 예측하는 확률분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고맙게도 닐스 보어(1922 노벨물리학상)는 이쯤에서 정신이 혼미해져야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위로를 던져준다.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라고 단언해 준 리처드 파이먼(1965년 노벨물리학상)의 위로까지 받으면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으리.
달에서는 푸른색의 지구가 보인다. 숨막히도록 아름답다고 한다. 그런데 달에서 보면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달은 자전주기와 지구 주위를 도는 공전주기가 같아서 지구에서는 달의 한쪽 면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달이 공전하면서 같은 속도로 자전을 하기 때문에 달에서 보는 지구는 정지위성과 같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와 사람과의 관계 법칙을 이야기한다. 살다 보면 남과 다툴 일이 있어서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지구에서 보는 우주만 옳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 위에 정지해 있는지도 모르니 다투기 전에 달에 한 번 갔다 오라고 조언한다.
맞다. 저자가 ‘본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나 역시도 ‘본다’는 것이 갖는 정확성과 동시에 비정확성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과신한다. 보지 않고 우기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고 때로는 본 것이 얼마나 정확할까에 대한 생각이다.
내가 보는 것만이 다 옳은 것도 맞는 것도 아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는데 날개가 없어도 추락한다.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낙하한다. 달도 낙하하고 있다. 과학을 알면 알수록 정확한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은 것은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머리에 쥐가 나는 이론들은 내 입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자의 태도다.
과학이란 논리라기 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과학은 이론의 옳고 그름을 물질적 증거에 의존하여 결정한다. 과학에서는 증거가 부족하면 "모른다"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은 무지를 인정하는 학문이다. 우주는 빅뱅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모른다. 138억 년 전에 일어난 일을 본 사람이 없다.
그가 과학자로 훈련을 받는 동안 뼈에 사무치게 배운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다. 내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 정확히 물질적 증거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과학적 태도다.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다. 종교나 철학에서도 모르는 부분까지도 다 안다고 하는 부분이 아쉽다고 하는 생각에 나도 동의한다. 과학조차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모른다고 하는 것을 오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오류가 아닌 인간의 영역이고 한계가 아닐까
과학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과학을 알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세 가지 장면을 이야기한다.
1970년생 벨 연구소의 젊은 과학자’쇤’은 2년여 동안 15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그는 나노과학 시대의 스타였고 노벨상 수상도 문제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실험은 재현되지 않았다. 쇤의 조작 사건, 황우석 사건, 오보카타 하루코의 만능세포 조작 사건 모두 과학계의 어두운 면이지만 모두 동료 과학자들의 의심과 검증으로 밝혀진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잘못 자체가 아니라 잘못이 밝혀지고 고쳐지는 과정이다. 과학자들이 항상 의심하고 깨어있어야 과학이 제대로 작동한다.
1957년 독일에서 판매된 수면제 ‘탈리도마이드’가 임산부 입덧 완화에 효과가 있었다. 인체에 무해하다고 했지만 이 약으로 약 2천 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5년여 만에 판매가 금지되고 2012년에야 회사는 최초의 공식 사과를 한다.
한국에서 옥시(가습기 살균제)의 사건을 모두 기억한다. 20년 동안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당사가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6년이 걸렸다. 제소사 인사들은 발뺌과 모르쇠로 일관했다. 당시 옥시의 과학자들도 제품의 유해성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과학자가 자신의 하는 일의 사회적 결과에 대해 과학적 의심을 하지 않을 때 과학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최근의 뜨는 과학자들이 꽤 있다. 방송에서도 가깝게 접한다. 과학이 이렇게 재밌는 학문이었던가.
게다가 이과와 문과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는 과학의 언어라니. 김상욱의 물리 언어도 그렇다. 언어가 굉장히 부드러워서 양자역학이니 원자과 전자 엔트로피.. 이런 외계의 언어들이 술술 읽힌다. 물리라는 언어를 다시 배우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만났다.
아주 작은 단위의 ‘원자’에서부터 우주의 커다란 세계까지 물리학자와 떠나는 여행에서는 빛, 시공간, 카오스, 엔트로피, 양자역학, 단진동 물리의 핵심 개념들을 통해 우리 존재 자체가 과학이라는 것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김상욱 물리학자에게 물리란 무엇인가.
물리는 한마디로 우주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루가 24시간인 것도 1년이 365일인 것도 우연이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우리의 탐험이 끝나는 때는 우리가 시작한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순간이다”
-T.S 엘리엇
“만약 우리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 물음의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스티븐 호킹<시간의 역사> 마지막 문장
-뇌터는 당시에 여성 과학자로서 수많은 차별을 받아야 했다. 1915년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강의를 맡으려 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의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그녀를 지지한 다비드 힐베르트 교수가 자기 이름을 빌려 강의를 개설해 준다. 힐베르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이다. 뇌터가 교수자격 논문 심사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반대에 직면했다. 결국 힐베르트는 “여기는 대학이지 대중목욕탕이 아니다”라고 말한 일화가 있다.
당시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들이 현대에 와서는 계속 황당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1985년 11월 2일 <중앙일보>에는 “과학고, 여학생은 왜 안 받나”란 기사가 실렸다. 당시 과학고에는 여학생이 없었다. 지금은 놀랍지만 인류가 성차별을 극복한 일이 불과 100년부터 시작되었고 아직도 이루어지는 중이다.
여성 과학자의 역사가 짧은 이유가 여성 유전자의 문제인지 사회적 환경의 문제인지는 앞으로의 역사가 증명해 보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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