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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내 방 여행하는 법

by 북앤라떼 2020. 8. 8.

내 방 여행하는 법

그자비에 드 메스트로 (Xavoer de Maistre 1763~1852)

1763년 샹베리(오늘날 이탈리아와 스위스에 인접한 프랑스 사부아 지방의 주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문학, 회화, 음악, 자연과학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18세에 평생 직업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몽골피에 형제가 발명한 열기구에 자원하여 올라가기도 하고 목숨을 건 결투도 서슴지 않고 했던 것을 보면 어린 시절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는 소개에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여러 성향을 가진 괴짜였나.

프랑스가 자신의 고향을 점령한 후로 귀향이 어려워진 그는 토리노에 머물던 1790년에 어떤 장교와의 결투를 벌였고 결투가 금지되었던 법을 어긴 그는 42일간 가택연금형을 받고 집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내 방 여행하는 법>이다. 책의 출간도 우연이었다. 형 조제프에게 원고를 보여준 것인데 형이 알아서 익명으로 책을 출간한 것이다. 작가가 이렇게 쉽게 우연히 탄생할 수 있는가! 작가의 <한밤중, 내 방 여행하는 법>, <아오스타의 나병 환자>, <시베리아 여인>,<킵카스의 죄소>와 같은 다른 책들도 있다. 책에는 그의 문학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책에 관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고, 특히 화가로도 활동할 정도로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그의 미술 이야기도 흥미를 더하는 요소였다. 그의 그림들은 현재 샹베리 보자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사보이아 지방은 15세기부터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였기에 이 책은 프랑스어로 쓰였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은 이탈리아에 두었다. 이 책을 어느 책에서의 소개로 나도 찾아서 보았지만(위화의 책이었을 것으로 기억됨) 이 100여 페이지의 짧은 책을 사랑했던 작가들은 많다. 벵자멩 콩스탕,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프리드리히 니체, 마샤두 데 아시르, 마르셀 프루스트, 알베르 카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수전 손택 등은 이 작품을 극찬하거나 자신의 작품에 직간접 반영했다.

18세기 말은 근대성(정확히 말하면 근대성의 여러 움직임) 이 시작된 시기다. 그 빛의 세기에 활동했던 천재 작가들은 우리는 스턴, 디드로, 루소 같은 이들을 꼽는데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만 아직도 미지의 작가로 남아있거나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내 방 여행하는 법>은 문학 사상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거침이 없는 자전적 산문이다

-수전 손택

 

내 방 여행하는 법 저자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출판유유발매2016.03.24.

 

 

1. 발견의 서 書

 

책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그대로 첫 페이지를 써서 같이 읽고자 한다.

새로운 일(글을 쓰는 일)을 시작한다는 건, 그리하여 순간 반짝하고 나타난 천공의 혜성처럼 발견의 서를 손에 들고 배웠다는 이들 앞에 나타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는 이 책을 내 안에만 품고 있지 않으련다. 그러니 그대들이여, 예 있으니 읽어주시기를! 나는 42일간의 내 방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참이다. 이 여행에서 나는 흥미로운 것을 보았고 여정 내내 즐거웠으니 책으로 엮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럴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서자 결심을 굳혔다. 불행한 이들의 근심 걱정을 날려 버리고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질 거리를 전할 수 있다 생각하니 나는 형언할 길 없이 벅차다. 자신의 방을 여행하며 거기서 얻는 기쁨이 사람들의 성가신 질시에 잡칠 일도 없으며 무슨 대단한 경비가 들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벗어나 은둔할 골방조차 없는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이라면 혹 모르겠으나 그런 골방만 있으면 우리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게 갖춰진 셈이니 말이다. 어떤 성격과 기질을 타고났든,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여행법에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구두쇠건 헤프쟁이건 부자건 나이가 적건 많건 열대지방 사람이건 극지방 사람이건 간에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내가 했던 것과 여행을 할 수 있다. 요컨대 이 땅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특히 방에 죽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소개하는 새로운 여행법을 거부할 이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

2. 내 방 여행의 좋은 점

무엇보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점을 이 여행의 미덕으로 꼽고 싶다. (...) 병약한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인 새로운 여행법이 아닐 수 없다. (...)

그러지 말고, 떠나자. 나와 함께 가자!

4. 의자

베카리아 신부의 척도 법에 따르면 내 방은 북위 45도에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다. 벽에 바짝 붙어서 걸으면 둘레가 서른여섯 걸음 나오는 장방향의 방이다. 하지만 내 방 여행은 이보다 더 긴 여정이 되리라. (..) 내 영혼은 온갖 생각과 취향과 감각에 완전히 열려 있으니 탐욕스러우리만치 있는 그대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삶이라는 고달픈 여정에 간간이 흩뿌려진 기쁨을 외면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작가는 방에서의 여행을 만끽한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 여행을 예찬하면서 말이다.

의자에서 침대로, 침대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형이상학적이고 상념에 빠져있는 영혼을 반대로 동물성이 하는 일을 주시하기도 한다.

나는 빵을 굽기 위해 화덕 위에 부집게를 올려놓았다. 잠시 뒤, 나의 영혼은 홀로 여행을 떠났고 그 틈에 나의 동물성은 달구어진 장작을 화덕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우둔하기 짝이 없는 나의 동물성은 손을 뻗어 뜨거운 부집게를 그냥 잡아 버렸고 결국 나는 손가락을 데었다.

 

9. 철학

세상 사람들은 예의상 서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각자 홀로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안을 배회하여도 사람들은 그대에게 영혼이 깃들어 있기나 한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타고난 작가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방 안에서 사색을 하며 이렇게 멋진 글을 쓰는 게 아닐까?

그는 은은한 온기가 도는 침대에서 사색하는 것을 유독 좋아하며 화사한 침대 색상은 거기에 적잖은 기쁨을 얹어 준다고 한다. 그는 하인 조아네티 이야기도 자주 언급한다. “조아네티는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며 나와 같은 여행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다 그는 내 영혼의 잦은 출타에도 익숙하고 타자가 부리는 변덕을 비웃지도 않는다. “

그는 여행용 외투에 대한 예찬도 한다. 여행에는 무엇보다 여행용 외투가 중요한데 그가 말하는 여행용 외투란 실내용 가운을 의미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미 해는 중천이어서 내 방 안에서 여행을 한 발자국만 더 했다간 저녁이 다 돼서야 점심을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의자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친 뒤 벽난로 선반 위에 두 발을 올려놓았다. 그 상태로 식사가 차려지기를 기다렸다. 참으로 아늑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긴 여행길에서 어쩔 수 없이 한곳에 머물러야 할 때 이보다 더 유용하고 편한 자세가 있을까."

애견 로진의 이야기도 종종 한다. 시시콜콜하다고 불평하지 말아달라고 입막음까지 미리 해 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같이 지낸 햇수로 6년이나 되었는데 언제나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투닥거릴 때에도 언제나 마음 넓은 쪽이 로진이었다고 자랑한다.

그의 방에는 판화( 대표적:귀스타브 도레의 판화 )와 그림(알프스의 양치기 처녀 그림과 라파엘로 산치오 & 라 포르나리나 초상화)이 많이 걸려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의 미술에 대한 조예가 글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또 먼저 죽은 벗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는 제니 양( 프랑스 소설가 마리 잔느 리코보니의 주인공이다)에 대한 이야기.

걸작 중의 걸작으로 ‘거울’을 소개한다. 거울은 매끈한 표면에서 자연의 모든 것을 반사시키는 빛의 신비로운 현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자연과학자의 희열. 거울은 붙박이 여행자에게 흥미로운 사색과 관찰을 수없이 제공한다.

“언제가 공정하고 올바른 거울은 자신을 비춘 자에게 그것이 청춘의 홍조가 되었든 노년의 주름이 되었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준다. 왜곡하거나 알랑거리는 법이 없다..(..)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추려 할 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상 사이에 놓여있는 왜곡의 프리즘에 자기애가 스며들고 결국 우리 눈앞에 제시되는 건 성스러운 그 무엇이 된다. 위대한 뉴턴이 처음 만든 이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프리즘만큼 강한 굴절력을 지닌 데다 매력적이고 생기발랄한 색채를 발산하는 프리즘도 없을 것이다. “

32번 인간혐오자라는 글에는 프랑스 혁명의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루이 16세 단두대 처형 사건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도 나온다. 그는 유럽 전체를 격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프랑스 혁명 시대를 관통했다. 사보이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을 불온하게 보았고 그 토대가 된 계몽주의 사상도 혐오하였다. 그런 태도가 책 속에도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는 프랑스 혁명군이 사보이아에 쳐들어 왔을 때 왕국 군대 장교로 혁명에 맞서 전투에 참여했었다.

그는 서가를 여행하면서 수천 가닥의 신비한 사건들을 보았고 그것을 글로 다 옮기려면 끝을 보기 힘들 것이라 말한다. 그는 여행 중에 영혼이 격정에 휩싸이거나 절망에 빠질 때마다 아버지(사보이아 의회 의장이셨다)의 흉상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그런 영혼의 불협화음을 조화해 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다행인지 아버지는 1789년 1월 16일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 사보이아가 프랑스에 병합되었으니 조국의 불운은 보지 않아도 되었지만 자식들은 조국에서 쫓겨난 사실을 아버지의 흉상에 고한다.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것은 아니지만 고향을 빼앗긴 저자의 안타까움이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이 끓는 동안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앞서 독자 여러분에게 말한 바 있지만 나는 이렇게 선잠 들 때의 아늑한 기분이 참 좋다. 조아네티가 커피 주전자를 화로의 쇠받침 위에 올려놓았을 때 나는 소리도 참 듣기 좋아서 그 소리의 나의 뇌리와 나의 모든 신경도 공명한다. 그것은 마치 하프의 현 한 줄을 튕겼는데, 8도 음정의 소리가 한꺼번에 울리는 것과 같다.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눈을 뜨니 조아네티가 서 있다. 음, 이 커피 향! 자연이 준 멋진 선물이다. 커피와 크림 그리고 토스트 한 조각. 친애하는 독자여, 이리 와서 아침을 같이 합시다.

그의 글에는 누구든 똑같이 맞이하는 집에서의 평범한 일상에서 커피 한 잔을 끓이고 거울을 보고 햇살 아래에서 독서를 하며 명상을 하는 그런 소소한 일상의 시간에서 삶을 즐기고 자연 속에서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는 작가를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그 사소한 일상이 참 다채롭게 느껴지고 개성이 느껴진다. 나는 왜 그런 일상을 기록하지 않지?

정신에서 빚어지신 인식. 마음에서 빚어지는 감각 그리고 오감에서 빚어지는 추억은 그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사색의 샘이다. 하인 조아네티가 주는 커피 한 잔의 시간에도 생생한 인상을 받고 글로 표현해 내는 타고난 작가이기도 하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고 첫 장을 읽을 땐 그저 궁금함에 시작했는데 읽는 내내 나는 환한 미소를 머금게 되었고 타인의 방을 마음껏 도화지에 그려보게 되었다. 코로나 이 팬데믹에서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이 계속되고 있는데 작가의 시선으로 방에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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