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정혜신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이 공급이 끊기면 심리적 생명도 서서히 꺼져간다.
‘나’의 이야기에 정확하게 두 손을 대고 있는 ‘한 사람’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심리적 CPR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사람이다. 두 손을 그의 ‘나’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한 존재와 이어진 것이다. 존재와 존재의 연결이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한다.
심리적 CPR 이란 그의 ‘나’가 위치한 바로 그곳을 정확히 찾아서 그 위에 장대비처럼 ‘공감’을 퍼붓는 일이다. 사람을 구하는 힘의 근원은 ’정확한 공감’이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처방받았던 중 2 아들이 이후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에 자연스럽게 치료가 된 사례를 들으며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부모는 아이들이 아프면 온전히 그것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짓궂게도 그 부모의 ‘나만 봐’가 너무 좋은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그런 마음으로 아팠을 때 황홀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 형제랑 사랑을 나눠갖지 않고 오로지 나 혼자 차지할 때의 느낌이 얼마나 좋던지. 부모가 되고 세 아이를 키우다 보면 똑같이 아이들이 ‘엄마 나 아파’할 때가 있다. 또 아픈 형제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로 아픈척한다고 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땐 모르는 것이지만 부모는 아픈 아이 때문에 힘든 것보다 정말로 아픈 아이가 걱정이 돼서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 알리 없다. 부모가 되어야만 아는 마음이다.
아이가 그럴 땐 그 아이도 옳은 것이다. 아프고 싶은 아이도 옳고 아픈 아이 옆에서 엄마의 사랑을 빼앗기기 싫은 아이의 마음도 옳은 것이다.
충저평판 절대 금지
친정엄마와 불화하는 중년의 여성 이야기가 나온다. 엄마와 딸 그 어긋남의 시작이 열 살 때 피아노를 치다 그만둔 이후로 엄마가 언제나 ‘네가 먼저 하겠다고 해놓고 금방 그만뒀다’라는 예언으로 평생을 엄마의 저주성 예언의 올가미에서 살았다는 사연이었다.
옆에서 누가 채근하지 않아도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나칠 만큼 하는 것이 사람이다.
221쪽
창가에서 전자책을 읽으며.. 태블릿에 비친 자연을 감상하며..
아이들에게 무수히 쏟아낸 말들이 머릿속을 한참 헤매는 느낌이었다. 가슴에 그렇게 박힌 것들이 얼마나 될까..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지. 다짐하며..
한 엄마는 자신을 다잡기 위한 다짐 같은 말을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폭력적인 말로 아이에게 내뱉었다는 고백을 하며 눈물을 쏟기도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을까
그건 우리 자신이 내가 아는 상처 또 알지도 못하고 때론 인정하지 않는 상처들이 어디선가 난데없이 입으로 폭력으로 쏟아지는 것이리라. 쓴 뿌리인 상처 난 마음을 돌아봐주지 않으면 어디선가는 계속 썩어서 악취를 낼 수밖에 없다.
정혜신 박사의 말대로 공감을 받지 못하고 넘어간 상처는 일반적 계몽과 충고의 형태로 상대방의 마음에 칼로 꽂히기 쉽다.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못한다.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며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자기를 구한다.
공감이 그렇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것처럼 수 막히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공감이 몸에 배인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없는것 같던 공간이 순식간에 눈 앞에 펼쳐진다. 사람은 그렇게해서 사지를 빠져나올 수 있다. 공감의 힘이다.
이론적으로 너무 잘 아는 이야기다. 요즘 좋은 강연을 비롯하여 이런 책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도 문제는 안다고 느끼지만 그렇게 하느냐? 이것이 참 잘 안 되는 것 같다. 우리 아이가 엄마 말을 끝까지 듣기 싫을 땐 언제나 말 허리를 자르고 ‘I know’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분명 모르는데 안다고 한다. 말은 안다고 하지만 행동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이랑 나도 어쩜 똑같이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분명 이론적으로 다 아는데 행동은.. 우리 가정 안에서부터 그렇게 ‘당신이 옳다’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가 옳다’로 말하고 행동할 때가 더 많다.
그녀가 소개하는 사연들을 만나면서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 아픈 사연들도 있고 그러면서도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를’ 우리 집은 아니라고 생각하게도 된다. 그런데 멀리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 것 같다. 문제는 멀리서 잘 보인다.
공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슬픈 사람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것 어렵지 않다. 블로그 안에서 혹은 잘 모르는 sns 공간 안에서도 우리는 참 공감을 잘 한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심리상담사처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듣을 수 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거나 나와 엮여있는 관계의 문제에서는 그런 위치로 공감하는 게 참 어렵다. 듣고 끄덕끄덕만 하면 된다는데도 꼭 해답을 주거나 옳은 말을 해 주고 싶어 하는 기질에 지배당한다.
솔직히 최근에 주변에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유형의 사람들이 팝업처럼 등장하면서 저런 부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 근데 여전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싫어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나에게 줄 수 있는 변명 구제의 이유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다 좋아하고 그 행동까지 지지해 줄 순 ... 여전히 없겠지만 그냥 그 자체 마음만은 인정해 주어야지 마음은 가져본다. 상처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은 없다.
충조평판 절대금지~
심리적으로 위태위태한 소멸돼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그 심리적 CPR 심폐 소생술
나와 너의 마음 들여다보기~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기
참 쉬운 말이지만 어렵다.
“네 마음이 어떠니?”
물어봐야겠다.
나에게 또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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