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요리
루시드폴
<무국적 요리>는 1998년부터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루시드 폴이 쓴 첫 소설이다. 1975년생 루시드 폴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2008년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학업과 음악을 병행해 왔다. 이름도 낯설고 책의 제목도 특이해서 루시드폴에 대해 찾아보았는데 그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포르투갈어로 쓴 외국소설을 번역하다가 직접 소설을 써보고 싶어서라고 한다. 심지어 책 속에 8편의 작품이 들어있는데 두 달 동안 썼다고 하니 일주일에 1편씩 나온 셈이다. 음악을 들어본 기억이 없어서 찾아봤는데 인디밴드 미선이를 시작으로 ‘사람이었네’ ‘오, 사랑’등 노래가 있고 몇 편의 번역소설도 펴냈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 제 음악과 노래의 힘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마음속으로 누군가 내가 사는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knowing'이라고 대답하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알아가는 것, 깨달아가는 것, 무언가 수동적으로 배운다기보다는 자극에 반응하는 내 내부의 앎, 이것이 저를 밀어가는 힘이자 목표라고 여겼어요."
작가의 인터뷰
소설은 굉장히 특이하다. 제목을 보라. 탕, 똥, 기적의 물, 애기, 행성이다, 싫어, 추구, 독이다. 이렇듯 제목부터 비유와 은유 ‘이게 뭐지?’ ‘무엇을 뜻하지?’ 생각하도록 의미심장한 상징적 표현들이 많다. 제목도 특이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도 그래서 내용까지도 말 그대로 무국적이다. 우화가 있어 흥미로우면서도 책이 번잡스럽기도 하고 솔직히 추천할 정도의 재미나 매력이 있나 싶지만 그렇다고 읽기에 힘든 책은 아니다. 내가 이 사람을 모르기 때문에 순전히 궁금함으로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알아보기 위해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너무 따지지 마.
이거 소설이야 소설...
그것도 음악 하는 애가 쓰는 소설이라고,
뭘 그리 따지니?
책 96쪽
아 이렇게 자기변호를 이미 해 놓았네. 그래 따지지 말자. 그저 소설일진대.
# 탕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까지 목용탕집(봉래탕)을 운영하는 아들 마유가 고향을 떠나서 도시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는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서 도시를 헤매어 목욕탕을 찾는다. 목욕탕에서 이상한 노인을 만나서 대충 씻고 도망 나온 마유는 자신처럼 노인을 피해 나온 두 아저씨와 같이 술자리를 하면서 한 아저씨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며 드디어 낯선 곳에서 인연을 만나나 보다 생각하는 타이밍에 이 아저씨의 태도가 이상하다.
“자기야 인자 연애하러 가까?” p51
술이 확 깬 마유는 아저씨의 머리를 술병으로 내치리고 도망 나온다.
# 똥
주인공 요수는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와서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로 생활한다. 이 마을에는 동물들이 변소를 공유하는 독특한 변소 문화가 있다. 변비가 있는 요수는 변소에서 오랜 시간 일을 보는데 하루는 이장선거 재선이 유력한 후보 하요를 만난다. 요수는 진지하고 믿음직스럽고 겸손한 하요의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고자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하요. 난데없이 요수를 들어서 휴지처럼 자신의 항문을 닦고 던져버린다.
#기적의 물
주인공 목군은 집을 떠나온 뒤로는 어렸을 때 마셨던 물과 같은 달고 시원한 물을 마셔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그 옛날의 우물물을 그리워하며 정말 맛있는 물을 마시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다 집에 들여놓은 정수기에서 자신이 그리워했던 물을 마시게 된 목군은 너무 기뻐하여 여자친구 화영에게도 그 물을 마시게 하지만 여자친구는 물맛(?)의 차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급기야 이 둘은 물 때문에 싸우게 된다. 속상한 목군이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정수기가 말을 하네? 이 정수기는 27년 전 마시던 그 물이라는데? 심지어 물은 목군을 위로하기까지 하는데 이것이 꿈일까?
주인공 산이는 전당포를 운영하다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부모님 대신에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초등학생의 이야기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키가 줄어 산이의 무릎 정도밖에 되지 않아 산이가 할아버지의 보호자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혹시라도 빚쟁이들에게 발칵될까봐 할아버지의 존재조차 좋아하는 소훈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마음속에 큰 걱정이다. 애기는 할아버지~
주인공 안드레는 아버지의 유언으로 어머니가 최초의 여성 우주인으로 소행성 탐사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지금 행성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안드레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행성 탐사요원 시험에 응시하고 합격하여 행성에 도착하고 엄마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다음이다 편지의 발신지가 행성이 아니라 횡성이다.
이런 말장난을 하는 것이 루시드폴의 개성이려니~
“너무 따지지 마. 이거 소설이야 소설...그것도 음악하는 애가 쓰는 소설이라고, 뭘 그리 따지니?”p96
#싫어!
싫어로 시작하는 소설은 여섯 살 소년 문수와 가족들의 이야기다. 가족들은 온천을 싫어하는 문수를 데리고 온천을 떠나지만 다행히 온천은 내부 수리 중이고 결국 온천 대신 문수의 바램이었던 동네 목욕탕 봉래탕(앞에 나온 소설 마유네 부모님이 하시는 목욕탕일쎄)에 가게 되니 그때 문수의 반응이 바로 “좋아”다. 이 소설이 재밌는 것은 부산 사투리 억양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 억양으로 따라서 읽었다는 사실. 근데 억지로 하려니 와 이리 어렵노~
쌈 요리 경연을 하는 최종 후보 두 사람의 요리 대결 이야기. 그런데 요리 재료가 참 특이하다. 나노 기술을 비롯한 과학 실험과 같은 요리는 뭐며 게다가 나이트릴 보호 장갑과 분진 마스크를 끼고 일체형 보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요리작품을 노란 비닐봉투에 쓸어 넣고 사라지는 것도 황당하고.. 이쯤부터 이 소설을 빨리 읽고 치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편배달부 우미가 사는 마을은 한 달에 한 번 날을 정해서 몸 안에 쌓인 독을 배출한다. 그렇게 해독과정을 잘 끝내야 다음 달을 잘 살 수 있는 것인데 그런데 어느 날 이 독을 내뱉은 독이 사라져버려서 사람들은 독을 배출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주인공 우미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붉게 점점 더 피떡처럼 검붉게 변해버렸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리뷰를 쓰면서 그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다시금 살펴보니 연계성이 없지 않다. 집을 떠난 이의 고독감도 있고 그래서 늘 어렸을 때를 그리워하는 이의 마음도 있고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우화도 존재한다. ‘탕’ 도 ‘독 ’도 이중 의미를 담고 있고 말장난 같지만 ‘행성’과 ‘횡성’을 통해서도 깨달아지는 바가 있다. 평생을 찾아다닌 꿈의 행성이 횡성일 수 있다는 건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다. 리뷰하며 다시 되새김하니 황당함 이면에 의미도 있는 듯. 어쩌면 이런 음악과 소설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가 화학자 소설가 이 세 가지의 특징이 뭘까 생각해본다. 창의성! 어쨌든 개성도 많고 재주가 참 많은 사람임에도 분명하다. 책 읽기 보다 음악 듣기와 리뷰 쓰면서 나름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반가웠어 루시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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