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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한 권의 책

신영복의 세계기행: 더불어 숲

by 북앤라떼 2020. 7. 28.

더불어 숲

신영복

여행 책을 읽던 중에 작고하신 선생님의 유작 중에서 세계 기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읽게 됐다. 1998년도에 나온 책이다. 처음엔 상. 하 2권이었는데 여행자들이 두 권을 가지고 다니기 힘들다는 의견을 반영하여 2003년에 한 권으로 합본하였다. 조금은 가볍게 개정하였다고 한다. 세계를 기행 한 이야기를 한 권으로 담았기에 정말 엑키스가 남겼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의 정보 엑키스가 아닌 여행자의 사색 엑키스 편.

세계 여행을 하기도 힘들지만 선생님처럼 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는다. 선생님은 보통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도 가시지만 문화답사를 하듯 문화 유적들을 살피신다. 엘리트 선생님의 폭넓은 지식의 깊이에서도 놀라지마는 무엇보다 선생님의 시선에서 드러나는 마음 때문에 나도 그 시선의 언저리에 머무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인문학이란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공부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공부고 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공부입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진단하고 또 사회를 바꾸어나가려는 노력이 바로 인문학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문학과 공부란 같은 것입니다. 또 산다는 것 자체가 공부고, 공부가 곧 사는 것이죠.

지난 책 리뷰 <우리 시대 부모들을 위한 교양 강좌 > 에서 신영복 교수님

-공부란 무엇인가? 중에서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니며 그때부터 배우고 가르치시는 일로 민주화 운동을 하셨다. 꿈 많은 나이 스물여덟부터 마흔여덟까지 생애의 가장 젊은 시절을 모두 교도소에서 보내시고 광복절 특사로 나오신 다음 해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지난 삶을 이야기해 주셨다. 편지 쓰기를 즐겨 하셨던 선생님은 이 책에서도 친근한 ‘당신’이라는 이름에게 편지를 띄운다. 겸손과 절제를 위한 선생님의 장치가 아닌가도 싶다.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서 시작해서 중국의 태산에서 마지막 엽서를 띄우는 것으로 끝마쳤다. 매주 한 번씩 1년 동안 모두 47번 엽서를 띄웠다. 지구의 남단에서 북단까지 그리고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21세기를 앞두고 과거를 돌아보며 성찰하고 또 미래를 전망하는 시간을 통해 감옥 안에서도 한결같이 바른 마음과 정신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신 선생님의 정신세계를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이야기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한 그루의 나무로 평생을 푸르르게 사시며 그저 보이지도 않는 한 그루의 나무로 숲이 이루어지길 소망하신 선생님. 그 숲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숲이었다. 이 책을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이 음악을 들으실 때 나도 음악을 들으며 여행지의 사진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바야흐로 새해와 새로운 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오늘, 비록 우리들이 목마르게 기다렸던 새날들이 결국 갈증만을 더해 줄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러한 새날에 대한 소망이 부질없는 환상에 불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작게는 하루의 아침에, 1년의 첫날에, 그리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세기의 벽두에 스스로를 다짐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계기를 부단히 만들어 나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의 여정이 난감함과 착잡함의 연속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이 마지막 엽서에서만은 당신과 내가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이야기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p344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 전 지구 한 바퀴 세계 기행을 하며 받는 이의 주소도 없이 쓴 마지막 편지를 중국 태산에서 띄운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란 곤경을 당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다’는 공자의 말로서 오늘의 곤경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곤경을 당하면서도 끝내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에 있다는 생각으로 태산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일출을 기다리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곤경에서 배우고 어두운 밤을 지키며 새로운 태양을 띄워 올리는 일은 새로운 사람들의 몫이다.

 

더불어 숲 저자신영복출판돌베개발매2015.12.07.

 

 

여행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떠남과 만남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의 성城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며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성城의 의미가 비단 개인의 안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오랫동안 안거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떠나고 새롭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여행은 돌아옴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귀중한 공부였습니다.

콜럼버스는 왜 서쪽으로 갔는가

우엘바 항구의 산타마리아호에서 새해 첫 여행을 시작한다. 새해는 새롭게 다시 채울 여백으로 가벼운 법인데 그는 과거의 무게가 아닌 다가오는 미래의 속도 때문에 이 여백이 매우 좁게 느껴진 채로 새해 여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멀리 이베리아반도 끝에 있는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서 이 엽서를 띄웁니다. 당신에게 띄우는 첫 번째 엽서입니다. 첫 번째 엽서일 뿐 아니라 나의 첫 번째 해외 출국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 그리고 20년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던 나라를 처음으로 벗어나는 감회가 남다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감회에 한동안 젖어 있다가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비행기는 어느덧 우랄산맥을 넘고 있었습니다. 1만 m의 고공에서 시속 800km로 우랄산맥을 넘을 때 문득 “20세기는 내게 잔인한 세월이었다”던 당신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20세기가 내게는 어떠한 것이었던가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설렘과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는 법인데 20년을 감옥에 갇아 두었던 나라를 처음으로 벗어나는 심정이 정말 어떠했을까. 내가 이렇게 울컥하는 멀미가 나는데 말이다. 사람은 100년을 살기가 힘드니 한 세기가 아닌 두 세기를 경험하고 가는 삶도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 나는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너무 흐릿하다. 젊음을 그저 즐기기에 바쁜 시절이었다. 나는 선생님과 같은 민주화 운동 세대에 빚을 진 세대다. 고뇌와 아픔 없이 자랄 수 있었다.

콜럼버스의 출항은 본격적인 식민주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식민지에서 빼앗은 부로 이룩한 산업혁명의 신화가 현대사의 신념체계라면 콜럼버스는 아직도 살아있다. p18

콜럼버스는 왜 서쪽으로 갔는가?

이 물음은 한 마디로 답변하기 어려운 역사의 덩어리다. ‘신대륙 발견 500주년’ 가상 재판에서 콜럼버스는 유괴와 살인을 저지른 침략자로 단죄되고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을 폐기하고 ‘도착’이라고 정정하였다.

산타마리아호 선상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지금도 세계의 여러 곳에서 신대륙을 찾아 비행기로 이륙하고 있는 수많은 콜럼버스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

거리로는 로마나 파리보다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의식 속에는 훨씬 더 먼 곳에 있었던 이유는 중국의 벽과 유럽의 벽 때문이다. 돌궐과 흉노는 중화라는 벽을 넘지 않고는 결코 온당한 실상을 만날 수 없으며 유럽이라는 벽을 넘지 않고는 이슬람과 비잔틴의 역사를 대면할 수 없습니다. 만리장성보다 완고하고 알프스보다 더 높은 장벽이 우리의 생각을 가로막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P42

성당을 그대로 보존하며 벽만 칠해서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한 것에서 비잔틴 문명에 대한 오스만 튀르크의 관대함이자 이교도에 대한 관대함으로 보았다. 이슬람의 전통에서 오늘날의 이스탄불을 공존과 대화의 도시로 만들었다. 터키의 역사에서는 이단에 대한 박해보다 다른 종교에 대해 보여 준 관대함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인도의 마음, 갠지스 강

문화라는 이름의 가공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정서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당혹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외부 세계와 인간 존재가 직선으로 대면했을 때 돌출하는 충격, ‘세계는 저기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저것과 나의 대면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하는 싱싱한 의문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당혹감과 충격은 현장을 떠나서는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 사유화하려는 욕심은 우리들의 정신을 박제화하는 상투적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P50

델리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인도의 간디 기념관이다. 조국의 분리 독립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고 독립과 함께 곧바로 단식에 들어갔으며 최후까지 통일 인도를 호소하다 총판에 쓰러진 간디가 지금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는 간다의 제단이다. 네루 기념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딸 인디라 간디의 방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감옥에서 읽었던 ‘옥중서간집’은 네루가 딸의 열세 번째 생일에 쓴 편지로 시작한다. 아버지를 이은 총리 간디 여사의 정치적 성공과 실패 그리고 아들인 라지브 간디 총리의 피살을 생각하며 인도가 헤쳐 나온 험난한 현대사의 길을 곱씹었다.

소년이 해체되기 전까지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오래된 도시, 북방의 베니스

~상트페테르부르크

푸시킨의 유년학교였던 넓은 호수와 아름다운 정원이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 mobinovyc, 출처 Pixabay

폴란드 오지에 있는 아이슈비츠는 독일 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 코스다. 그러나 독일과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청산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이며 책임짐으로써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엽서를 쓰며 독일의 통일을 보며 21세기에 이루어야 할 과제인 한국의 통일을 생각한다.

© clarencealford, 출처 Pixabay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는 마음은 새장을 벗어난 새의 깃털처럼 가벼워야 하지만 그의 마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거대한 콜로세움 앞에 줄 이은 관광객들의 로마의 유적에 대한 찬탄에 오히려 마음이 어두웠다. 폐허가 된 콜로세움에서 혈투를 벌이다 죽어 간 사람들의 환영을 떠올렸고 제국의 건설 과정을 무시한 채 로마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문명관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토목공사와 전쟁으로 뿔뿔이 찢어져야 했던 이산의 아픔을 절절히 느꼈듯이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거대한 성채와 신전들을 만날 때마다 그 밑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과 노력을 생각했다.

이집트의 유적을 찾아다니는 동안 가장 많이 만난 것은 람세스 2세 석상이다. 이집트에서 사라진 것은 영혼에 대한 믿음뿐만이 아니다. 이집트 문명 자체가 이미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 이슬람, 프랑스,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겪는 동안 이집트 문명은 이미 혼혈을 거듭한 인종처럼 바다로 들어간 나일강처럼 자취가 없어지고 33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리는 람세스 2세의 메마른 모습만 남아있는 쓸쓸한 모습이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해안을 끼고 달리는 길은 생각과는 달리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삭막한 길입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이 하얗게 뻗어 있는 500km 길을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나는 이 세상의 공간이 아닌 4차원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듭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에 걸쳐 있는 긴 시간의 띠 위를 달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 지극히 비현실적인 길 끝에 신기루와 같은 나스카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나스카에 이르는 나의 여정은 이처럼 공간 여행이 완벽하게 배제된 환상의 시간 여행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스카는 당신도 알고 있듯 수수께끼의 지상 그림이 그려진 넓은 사막입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하필 이곳에다 화산 활동으로 생긴 검은 돌들을 수천 톤씩이나 들어내면서 이러한 그림을 그렸을까.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 앞에서 느끼는 망연함이 내게는 매우 역설적인 희열로 다가옵니다.(..) 나는 광막한 나스카의 사막 위를 날고 있는 동안 문명이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습니다….나스카의 그림은 분명 우리들에게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는 우리들을 돌이켜 보게 하는 영원한 메시지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p193~196

© monikawl999, 출처 Pixabay

미국의 얼굴

미국 여행은 어디를 다녀오셨을까? 무슨 말씀을 하실까?

그러나 미국 여행은 허무 편이라고 해야 하나

진짜 미국을 찾아 서부에 갔고 동부에 갔지만 미국을 찾지 못하셨다.

“미국적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고민입니다”

미국이 있다 없다. 수수께끼 스무 고개 같은 이야기 속에서 결국 미국은 뉴잉글랜드, 모자이크, 샐러드 볼…?

미국은 역사도 짧고 무인지경에다 관념적인 것을 거침없이 심어 나가는 무모함의 극치. 알맹이는 없고 외피만으로 겹겹이 포장된 구적이 꿈의 실체.

할리우드 거리를 걸으며 보도에 도장되어 있는 스타들의 이름을 읽을 때마다 나는 스타의 꿈이 좌절된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븐일레븐’은 이곳에 햄버거를 사러 왔다가 우연히 영화감독 눈에 띄어 일약 스타가 된 어느 여배우의 신화가 남아 있는 가게입니다. ... 서부의 꿈도 비현실적인 환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부의 꿈은 꿈이 아니라 황금입니다. 그것이 황금 이상으로 미화되는 것은 그것을 꿈으로 미화하는 구조를 배후에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명과 야만, 카우보이와 인디언, 라이플과 도끼, 법과 무법, 여선생과 매춘부라는 서부극의 도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신대륙의 꿈은 더욱 명백합니다. 아메리카는 신대륙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발견’이란 가당치도 않은 단어입니다. p228

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엘 콘도르 피사>의 마지막 구절

“길보다는 숲이 되고 싶다.”어디론가 떠나는 길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는 숲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마추픽추의 마음.

해발 2400m의 마추픽추에 서면 어디론가 쫓겨 간 잉카인의 비장한 최후가 가슴에 젖는다. 이곳 마추픽추만큼 떠나는 것의 비극성이 사무치게 배어 있는 땅도 없다.

스웨덴은 나라 전체에서 느껴졌던 노년 특유의 피곤함, 사람이 정답게 느껴지지 않았고 영국 산업 혁명의 본고장이었던 맨체스터의 호텔에서도 양로원의 노인을 연상했다. 산업혁명의 고장이자 비틀즈의 고향인 리버풀은 열기도 사라지고 노래도 사라진 스산한 풍경만이 남았다. 파리는 가는 곳마다 예술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난 전시품들로 피곤한 도시로 느꼈으니 여행자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느끼게 해 주는 소감들이었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때문인가 가는 곳마다 인연 있는 노래를 생각하신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멀지 않은 곳 횔드리히스뮐레는 슈베르트가 4년 하숙하며 <겨울 나그네>를 작곡한 곳이다.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https://www.youtube.com/watch?v=v1vq0EaPRY8

 

나도 음악을 틀어놓고 서른 살 짧은 생애의 마지막 해를 보낸 거장 슈베르트도 피해 갈 수 없던 인생의 마지막과 고독한 모습을 떠올려 본다. 밤하늘의 별처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예술가의 경지.

인간은 모름지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아야 하듯이 비록 자기가 한없이 작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천재를 바라보고 신화를 읽어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픔을 달래 줄 위안을 구하는 것 못지않게 준열한 자기비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려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뼈 속을 비워야 합니다. 그 위에 다시 비상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클래식의 세계가 별을 바라보게 하고 스스로의 오만을 준열하게 꾸짖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지만 스스로를 작게 가지려는 겸손함이야말로 어떠한 시대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인간적 품성이라고 믿습니다. p318

“각자의 삶이 존중되어야 하듯, 다양한 문화가 응분의 대접을 받을 때 그 길이 아름다운 비단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p345

-실크로드 종착지인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당신이 인도를 찾아올 때는 많은 것을 벗어두고 올 것을 권합니다. 먼저 시계를 풀어 두고 오기 바랍니다. 그리고 옷을 벗어 두고 와야 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입혀놓은 보이지 않는 옷까지 벗어두고 와야 합니다.

-콜카타 호왈라 교에서

당신이 네팔에 오면 먼저 히말라야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등산 장비를 짊어지고 히말라야의 어느 정상에 오르거나 래프팅을 즐기기 위해 계곡의 급류를 찾아가기 전에 히말라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겸손히 귀 기울여야 합니다. 모험과 도전이라는 ‘서부행’에 나서기 전에 먼저 어둠과 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문명의 크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문화의 ‘모범’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의 문화가 문화의 속성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합니다. p389

© lutz6078,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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