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 카페/한 권의 책

이국종 <골든아워1.2>

by 북앤라떼 2020. 7. 27.

중증 외상 센터의 기록 < 골든아워 1.2>

이국종

나는 갈수록 보람보다 부담이 더 커져갔다. 외상외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목숨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모든 고통을 ‘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의 최종 희생자는 내 주위 사람들이다. .. 외상외과 의료진은 강도 높은 노동 현실에서 꺾이며 쓰러져나갔다.

골든아워 2-52쪽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중증외상 센터의 세계적인 표준을 한국에 심어보고 싶었다.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센터가 문을 닫고 한국의 중증외상 센터 사업이 종료되고 다음 세대 의사들 중 누군가가 다시 중증외상 센터를 만들어보려 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우리가 남겨놓은 진료 기록들이 화석같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2권 268쪽

이국종 그는 1969년 강서구에서 태어났다.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들은 '상이군인'이라 불렸지만 경멸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도 그런 상이군인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상이군인에게 나눠주는 배급 밀가루를 받으며 자랐다. 상이군인에게 주던 의료복지카드는 일반 환자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병원을 찾아 헤매야했다. 그때 자신에게 똑같이 대우를 해 준 병원과 의사를 기억한다. 외과의사 김학산 선생은 그에게 용돈까지 쥐어주었다. 그때 그는 의사 한 사람이 개인의 인생에 미칠 수 있는 무게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외과를 선택했다. 그는 천상 의사다. 삶은 평범하지 못했지만 수술이 좋았고 수술방에 감도는 서늘한 감촉이 좋았다.

이제 나는 외과 의사의 삶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뼛속 깊이 느낀다. 그 무게는 환자를 살리고 회복시켰을 때 느끼는 만족감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터진 장기를 꿰매어 다시 붙여놓아도 내가 생사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거기까지다...

1권 31쪽

 

 

골든아워1 생과사의 경계, 중증 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2012년 11월, 아주대학교병원이 중증 외상 센터 후보에서 탈락하였다. 아주대 병원의 탈락의 원인을 자신에게 둘 때 모든 것이 실무자의 책임으로 돌아올 때 허무함을 느꼈다. 그저 피고용인이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탈락의 주체를 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병원이 아닌 나로 여기며 안타까워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부터 석해균 프로젝트까지 자신을 칭찬하던 언론들도 하루아침에 가십 같은 기삿거리를 쓰고 코너에 몰리는 상황에서 그는 외상외과 전문의로서의 삶이 실제로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일인지를 생각했다.

그때 자신에게 외상외과 의사로서 겪은 일을 책으로 출간하자는 제안이 왔다. 살아있어도 산 것 같지 않은 일상에 그런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교수님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신다면, 그 헌신이 잊히지 않도록 뭐라도 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지금 아무리 소중해도 몇 년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잊힙니다. 그러나 활자로 남겨둔 기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요.”

그 말이 마음을 움직여서 틈틈이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 그런 기록들이 모여져서 2018년도에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실제 중증외상 환자들이 겪는 처참한 고통과 죽어가는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집중하는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등의 의료인들 및 소방대원들의 분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등뼈 삼아 글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김훈이 그린 이순신과 젊은 시절 해군에서 군 복무를 할 때 만난 이순신이 맞닿아 있었다. 모욕과 치욕을 감내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선생의 문장은 내 머릿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어 지우기가 쉽지 않다. 무의식중에도 그의 문장들이 고스란히 눈앞에서 되살아날 때, 나는 신기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

그랬다.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김훈 작가의 결이 느껴졌다.

차가운 바다 위에서 죽기를 각오했던 이순신 장군과 목숨을 걸고 헬기로 환자들을 이송하여 외상 센터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는 이국종 교수가 오버랩되었다. 이순신 주변에 임금, 백성, 군대라는 이해관계가 있었듯이 이국종 교수도 병원의 이해관계, 외상 센터로 실려오는 사람들, 의료계, 정치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들은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보다 우선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자신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을 것을 예상했던 이순신 장군처럼 그도 그의 죽음이 외상 센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과 대치하고 있는 적군보다 자신에게 칼끝을 겨누는 사람들 때문에 더 괴로웠던 이순신 장군의 외로운 죽음을 자꾸만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이국종 교수가 내뱉는 고통의 언어들이 그렇게 나에게 느껴져왔다.

편하게 잠을 잘 형편도 안되는 중증 외상 센터의 의사가 그 시간마저 쪼개서 기록했을 노트를 생각하면 이런 기록의 소중함은 너무 크다. 게다가 의사가 쓴 글인데 어떻게 이렇게 작가처럼 잘 쓸까. 이 책은 정말 꼭 읽고 싶던 책이라 4월에 리디북스를 신청하면서 바로 담아두고 읽기시작했는데 읽는 것이 쉽지 않아서 여러 번에 걸쳐서 힘들게 읽었다. 외과의사의 생생한 수술담은 책을 읽는 내내 인상이 찌푸려져서 그 책을 덮고 다른 책으로 한 눈 팔도록 했다. 왜 그렇게 칼에 찔리는 사고는 또 많은건지. 칼의 종류도 다양했고 생생한 묘사 덕에 영화 속 장면처럼 머릿속에서 그의 묘사가 그려지곤 했다. 칼에 찔린 사람들은 거의 목숨이 붙어 있다는 표현 그대로인 경우가 많았다. 잘린 목 기관지에 달라붙은 구더기들을 떼내고, 붓고 썩어져 나간 조직을 살려내고 인공호흡기 없이 자발적 호흡이 가능하기까지 20일이 걸린 환자 이야기는 그야말로 사투였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타인의 목숨을 살려내야 하는 외과의사의 처절하고 외로운 사투. 짓이겨진 살과 부서진 뼈와 장기들, 끊어진 신경과 어긋난 조직, 솟구치는 핏물 속에서 일상을 살아갔다. 핏덩이 같은 환자들은 거의 매일같이 실려왔다. 이제 나는 외과의사의 삶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뼛속 깊이 느낀다.

비가 내렸다. 하늘에서 물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의대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어둠과 겨울비 속에서 더 옅어졌다. 조금 열어둔 창틈 사이로 빗물이 날아들었다. 헬기장의 붉은 점멸등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다시 기상이 호전되어 헬리콥터가 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유비무환이라고 했다.

1-317쪽

외상 센터는 원래 사지나 마찬가지야. 어차피 환자가 응급실에서 수술도 못 받고 죽느니 수술방에서 하는 데까지 해보다가 죽는 게 낫다

1-326쪽

힘내세요.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힘들겠지만 견뎌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을 겁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의 삶이 그러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지리멸렬한 내 인생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 없이 버텨가는 나는 환자의 삶에 희망을 바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p334

한국에서의 외상외과 중증외상 의료체계는 모든 개별 의사들이 가진 제각기 다른 생각들이 산발적으로 뻗어나가는, 생각의 집합체 같은 성격을 띠었다. 어떤 전문가의 실체도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부분도 의료계의 중지를 모으기는 불가능했다. 한국에서 중증외상 센터란 그 본질은 별 의미가 없고 정부의 ‘현금 지원 사업’으로서의 의미만이 커 보인다. p335

335쪽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윤한덕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내용에서 나는 지난 뉴스를 생각했다. 이국종 교수는 윤한덕 교수의 사망에 팔 하나를 잃었다고 이야기했었다. 책은 더 앞선 기록이라 윤교수가 살아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지만 조만간 떠나실것을 생각하니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윤한덕 응급의료 센터장의 죽음

윤한덕 센터장의 죽음… 의사도 휴식이 필요하다아침에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은 뉴스 중에서 가장 마...

blog.naver.com

군인들이 작전 훈련 중 많은 사고가 있다는 것을 책을 읽다가 다시 상기하게 됐다. 이런 사고들은 군대 기밀처럼 뉴스에서 잘 보지 못하는 것이라 훈련 중 사고가 없을 수 없음에도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최전방에 배치되어 있었음이 비로소 인식되는 순간이다. 그들의 희생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의 안녕이 있는 거구나.

사람들이 이국종 교수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사건은 아덴만 여명 작전(2011년 1월 15일 소말리아의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에 한국의 주도 아래 진행된 미국, 오만, 파키스탄 해군의 연합작전이다. 납치 6일째 해적 8명 사살 및 생포와 인질 전원을 구출한 작전이다)으로 구출한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일화다. 당시 석 선장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뛰어드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로 병원과 주변에서 모두 이 교수를 만류했으나 그는 1초를 다투는 긴급한 상황에서 그를 실어 올 스위스 에어 앰뷸런스 회사에 직접 지급 보증 사인을 하고 이송에 성공해서 석 선장을 살려냈다.

석선장이 있는 곳은 멀었다. 우리는 두바이로, 두바이에서 오만의 무스카트로, 무스카트에서 살랄라로 수차례 비행기를 갈아타며 간신히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1권 198쪽

2017년 11월 13일 북한 오청성 병사가 판문점을 넘어 귀순하다 5발의 총상을 당한 채로 한국의 육군에 구조된 사건은 모두의 기억 속에 뚜렷하다. 살아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장 위험했던 탈북 사례로 뽑을 정도다.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선택한 그의 생명을 놓지 않았던 이국종 교수의 긴급했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한번 그때 상황을 기억하게 됐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의 생명이 그의 손에 있을 때 그가 가질 부담을 생각하게 된다. 특히 석 선장이나 탈북 병사같이 모든 언론과 국민들이 주목하는 상황에서의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가 받는 스포트 라잇에 ‘쇼’라는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국민들 그리고 독자들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세계의 뛰어난 에어 앰뷸런스 파일럿들은 대부분 환자 상태를 살피며 비행한다. 급박한 경우에 환자 치료는 이송하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빠른 이송이 전제되어야 환자가 살 가능성이 커지므로 파일럿의 담대함과 뛰어난 조종술은 필수다. 중증외상 환자 항공 이송 체계는 항공대원들과 의료진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세워지고 그 체계가 얼마나 공고히 정립되는가에 따라 환자의 생존율이 결정된다. 나와 내 사람들이 죽음에 가까이 갈 때 환자는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는 이 아이러니를 나는 어찌하지 못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타인을 살리고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걸어야 했으나 세속적 가치는 없었다.

342쪽

경기 소방항공대의 제1,2 비행 대장인 이세형과 이성호는 24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며 하늘을 지켰다. 그들의 조종술에 많은 이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하는 그들의 처우는 형편없었다. 결국 경기 소방항공대 역시 개인들을 희생하며 굴러가고 있었다. 그들은 악조건에서 일하고 있으나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처우를 개선해도 인재 확보가 어려운 상황인데 이런 처우와 악조건 속에서 미래가 있을까.

심각한 문제는 암덩어리처럼 단번에 조직을 죽이지 않는다. 그것은 천천히 악화되어 조직 전체에 깊숙이 파고들어 마비를 부르고 마비는 조직을 사망으로 이끈다. 헬리콥터의 소음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조금만 생각을 달리할 순 없을까. 그 헬리콥터에 자신이 혹은 자신의 가족들이 타고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할까

사람들은 선진국형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에 큰 관심이 없었다. 외상 센터 사업이 풍기는 돈 냄새만 중요했다. 한국 사회의 모든 면이 늘 그러했다. ... 왜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갈등이 생기고 조직에서 힘들어지는 것인지, 우리는 서로 한탄했다. p350

의사들의 노력으로 더 많은 생명을 건진다고 해도 결국은 다 죽는다. 단지 연장할 뿐이다. 의사가 사그라드는 생을 애써 붙잡아 일으켜 세울 수는 있어도 죽음을 원초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나는 때때로 한없이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p354-서른여섯의 나이에 소천한 신경과 용석우 교수의 영안실에서

늘 함께 했던 동료들이 하나 둘 쓰려져 나갈 때의 심정이 어떠할까

자신의 주변이 온통 죽음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엄마에게 배를 밟혀서 췌장이 부서진 채 실려온 여섯 살 아이, 자동차 사고로 내장이 파열되고 머리가 부서진 아이.. 봄 같은 아이들이 생에서 멀어져 갈 때 깊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0년 가까이 외상외과 의사로서 떠나보낸 환자의 수가 100을 넘겼을 때부터는 그 수를 세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의 많은 병원들은 내실을 다지기보다는 화려한 회장과 외래 공간에 공을 들인다. 보이지 않는 부분은 중진국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그 수준을 좇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환자들은 그것을 알 길이 없으므로 번쩍이는 외관과 맛있는 지하 식당, 편리한 에스컬레이터 같은 것들에 쉽게 홀렸다. 병원들의 행태가 과대 포장한 불량식품 같았다. (2권 12쪽)

우리나라는 병원에서도 직급, 직함, 나이에 민감했다. 그가 런던에서 근무할 때는 나이에 따른 직급의 수직 서열화를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한국은 매우 민감했다.

석해균 선장을 비롯하여 중국에서 긴급한 환자가 있어서 이송해야 할 때 에어 앰뷸런스가 필요한 상황이 많았다. 나라의 도움은 받지 못했다. 석해균 선장이나 북한군 병사 등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경우가 생기면 번개탄처럼 논의가 되었다가도 추가 논의 없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한국 사회의 시스템의 발전은 최소한의 권력이라도 쥔 자가 추락한 남자 같은 상황에 처하거나 언론이 주목해야 그나마 진일보를 보인다. 그러나 힘 있는 자들의 문제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해결될 여지가 많고 힘도 돈도 없는 자들의 문제에 있어서 언론의 지속적 관심은 기대하기 어렵다. p26

죽음이란 누구에게든 동일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오지는 않는다. 나는 버려진 죽음을 수없이 보아왔다. 가족이 없고 돈이 없어서 쓸쓸하게 허물어져 가는 목숨들이 너무 많았다.

37쪽

“그렇게 괴로우신데 도대체 이 일을 왜 하시나요?” 나는 그에게 바보같이 묻고 싶었다. 전담 간호사 70%가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곳에서 그는 비루한 현실을 감내한다. 그것이 외상외과 의사의 숙명이라는 듯.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듣고 그들은 바로 헬기를 타고 진도로 향했다. 그러나 상황탑과 관제탑에서 영공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때 배가 다 가라앉지 않았던 때 대부분의 헬리콥터들이 지상에서 준비하고 있었고 미 해군까지 동원된 구조팀들도 현장에 들어가는 허가를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넘쳐났지만 일할 것이 없었다. 팽목항으로 갔지만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만 하루 종일 들었다. 현장에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책임자라고 나서는 자도 없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고 나서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이것이 한국 사회 기본 체력이라 말한다.

이런 대형 사고가 아니어도 한국 사회는 중증 외상 시스템으로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어나가지만 이슈가 되지 못한다. 사람이든 국가든 진정한 내공은 위기 때 발휘되기 마련이다. 한국은 갈 길이 멀어 보였고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방자치에서 1,800억 원을 들여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짓지만 같은 비용의 중증외상 센터나 소방항공대 창설은 하지 않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외상 센터 운영은 두발자전거를 타는 것 같다. 기댈 수 있는 축도 없고 페달 밟기를 멈추면 단숨에 쓰러진다. 외상 센터는 1년 365일 24시간 틈 없이 돌아가야 한다. 사람 하나의 공백은 남은 사람의 업무 증가를 의미하기에 이 교수는 왼쪽 눈이 실명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쉴 수 없었다. 그것도 유전인가. 아버지도 왼쪽 눈이 실명이셨다. 육군 이등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하셨고 최전선 야전 근무로 북한과의 교전 중 폭발에 의한 파편으로 왼쪽 시력을 잃었다. 아버지는 평생 좌측 시력 없이 사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실명의 유전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숙명을 받아들이는 타협하지 않는 절개의 유전이다.

그는 자신이 어디까지 해나가야 할지를 생각한다. 묻고 또 묻는다. 답이 없는 물음 끝에 자신을 이을 누군가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하는 데까지 한다는 말을 한다. 그것이 자신의 종착지라는 말로 2권을 마친다.

고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겐 보상이다.

해군 잠수함 함장인 친구 조현철이 핸드폰 메신저 창에 써 놓은 글귀

그의 곁에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은 정경원이다. 첫 페이지는 <정경원에게>로 써 있다.정경원, 권준식,김지영, 조재호...

그들은 일상을 버티는데 힘이 되어주는 동료들이다.

그 외에도 2권의 100페이지 가량을 채우고 있는 이름들이 나온다.

100파운드가 되는 장비를 메고 헬리콥터에 뛰어오르는 간호사들의 부상, 그들 중에는 임신한 간호사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런 이유로 유산은 숙명처럼 따라다녔다. 남의 생명을 구하려고 자신의 가족의 병마와 자신의 부상은 뒤로하는 소방대원들, 수개월씩 바다에 떠 있는 해군들, 목숨 걸고 의료진을 실어 나르는 헬기 조종사들은 자식의 출생을 보지 못하고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묵묵히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헌신으로 돌아가지만 사람들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일반 사람들에게 명절은 가족이 함께 하고 쉼을 얻는 시간이지만 그들은 그런 때 늘어나는 사고에 대비해서 외롭게 사고의 환자들을 받았다. 그러다가 외롭게 떠나기도 했다. 내가 만약 그들의 가족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수고와 헌신이 기쁘기만 했을까? 목숨 걸고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지만 돌아오는 것은 소음에 대한 민원 신고와 병원 안팎으로 비난과 폄하의 말만 들어왔다. 그들의 상황과 수고를 하는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헬리콥터 활주로 당직 사관이 내민 검은 봉지 안에 든 두유가 따뜻한 온기로 몸을 데워 주었고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보람보다는 부담이 더 커져갔다. 분명히 그들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지난 1월에 의료 원장이 이국종 교수에게 욕설을 하는 음성파일이 알려지면서 시끄러웠고 뉴스 인터뷰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고 하면서 외상센터장을 사직했던 일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중에 이 교수가 다시 외상 연구소장으로 돌아온다는 뉴스를 들었다. 현재 이 교수는 안식년으로 진료는 하지 않고 연구활동 중이었다고 한다. 국가 재난 안전 플랫폼 구축을 꿈으로 가지고 있는 이 교수의 바람대로 시설, 장비, 인력을 모두 갖춘 어느 선진국 부럽지 않도록 잘 구축되었으면 한다. 정치권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에 민감하기 때문에 선전용이 아닌 진짜 제도가 현실로 구축되기 위한 국민들의 관심은 계속 필요한 것 같다.

반응형

'북 카페 > 한 권의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지금 사랑하러 갑니다  (0) 2020.07.27
올리버쌤의 영어 꿀팁  (0) 2020.07.27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0) 2020.07.27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0) 2020.07.27
언씽킹:Unthinking  (0) 2020.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