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1915~1980): 프랑스의 기호학자이자 사상가로 현대 비평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비평가이자 뛰어난 에세이스트인 롤랑 바르트는 1915년 프랑스 북부 셰르부르에서 태어나서 일찍이 전쟁으로 해군 장교인 아버지를 잃고 평생을 어머니와 하께 살았다. 청년 시절 폐결핵으로 고등사범학교 진학과 교수 자격시험을 포기하고 고전문학을 전공한 후 루마니아와 이집트의 대학에서 프랑스어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7년 10월 25일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Henriette Binger 가 돌아가신 다음날부터 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반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주로 잉크로, 때로는 연필로 일기를 써 나갔다. 책상 위에는 이 쪽지들을 담은 케이스가 항상 놓여 있었다. 일기를 써나가는 동안에 바르트는 1978년 2월에서 6월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중립> 강의를 했고 12월에 강연도 했다. 신문과 잡지에도 많은 글을 발표했고 몇 가지 작품도 집필했다. 이 모든 내용은 어머니의 죽음을 기호로 한 것이었고 그 가운데 <애도 일기> 쪽지가 존재한다. 원래 현대 저작물 기록 보존소(IMEC)에 간직되어 있던 <애도 일기>의 원고는 쪽지의 원본 그대로 편집되었다. 그런 이유로 매우 짧기도 하고 때로는 길게 앞뒤로 이어지기도 한다.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는 스무 살 때 루이 바르트 Louis Barthes와 결혼해서 스물두 살 때 바르트를 낳았고 스물세 살 때 전쟁미망인이 되었다. 그리고 여든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에 혼자돼서 아이를 키웠을 여인의 삶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르트의 어머니에 대한 애착은 매우 특별했다. 그는 어머니와 평생을 함께 살았다. 그가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할 때 어머니를 맨 앞자리에 모시고 취임 강연을 한 일화를 보면 어머니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의 삶과 작품 활동은 어머니의 죽음 전후로 분명하게 나뉜다. 짧은 쪽지들이 이루어진 책을 읽는 동안에 애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지만 그 깊은 슬픔에 대한 마음이 공감이 되고 나도 그런 종류의 일기를 쓰게 될 날이 올까 그런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일기는 1979년 9월 19일로 끝난다. 1980년 2월 25일 바르트는 작은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고 입원했지만 치료를 거부했고 한 달 뒤 사망했다. 그래서 사고사 혹은 자살로도 본다.
1977년 10월 27일
그러나 별로 반갑지 않은 위안들. 애도는, 우울은, 병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나를 무엇으로부터 낫게 하려는 걸까? 어떤 상태로, 어떤 삶으로 나를 다시 데려가려는 걸까? 애도가 하나의 작업이라면, 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속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다. 시스템에 통합된 그런 존재가 더는 아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빈소를 찾아온 너무 많은 사람들. 그럴수록 커지기만 하는 피할 수 없는 공허. 사람들 곁에서 혼자 누워 있는 어머니 생각. 한꺼번에 허물어지는 것들.
거대하고 긴 슬픔의 성대한 시작인 이 모든 것들.
이틀 만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 아무런 거부감 없이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다.
10.29
애도의 한도에 대하여.
(라루스 백과사전, 메멘토):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18개월이 넘으면 안 된다.
10.31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11.4
어젯밤 처음으로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그녀는 위니프리의 장미빛 잠옷을 입고 길게 누워 있었다. 하지만 결코 아픈 모습이 아니었다.
11.5
울적한 오후. 잠깐 장을 보러 가다. 제과점에서 (별 생각도 없이) 피낭시에 하나를 산다. 작은 여 점원이 손님을 도와주다가 말한다: 부알라(Voila). 마망을 돌볼 때 그녀에게 필요한 걸 가져다줄 때면 내가 늘 말했던 단어. 여 점원이 무심코 흘린 이 단어가 결국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운다(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와서).
11.6
(어제) 내가 분명히 깨달은 것: 그사이 내가 했던 일들은 다 쓸데없는 짓들이다. (집 정리하기, 그 안에서 편안해하기. 친구들과 잡담하기, 그 와중에 때로 함께 웃기. 이런저런 계획 만들기 등) 내 슬픔은 삶을 새로 꾸미지 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내 슬픔은 사랑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사랑의 단어들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아주 자명해진 내 슬픔의 이유…
11.9
허우적거리면서 나는 겨우겨우 슬픔을 건너가는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11.21
글쓰기의 강렬한 순간 속에 있을 때조차도 우스꽝스럽기만 한 글쓰기. 그러니까 이런 헤어날 길 없는 슬픔 속에서는 글쓰기에도 더는 매달릴 수가 없다는 사실, 나의 우울은 거기에서 오는 것이다.
11.28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11.30
애도에 대해서 말하지 말자. 그건 너무 정신 분석학적이다. 나는 슬픔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슬퍼하는 것이다.
12.8
애도: 그건(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1978.4,12일경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1978.6.13
애도의 슬픔을(비참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려 하지 말 것(가장 어리석은 건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다), 그것들을 바꾸고 변형시킬 것, 즉 그것들을 정지 상태(정체, 막힘, 똑같은 것의 반복적인 회귀)에서 유동적인 상태로 유도해서 옮겨갈 것.
1978.6.24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8.8.1
나를 늘 놀라게 하는 일(아픔과 더불어서). 그건 내가- 마침내- 무거운 마음과 손을 잡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다시 말해 나의 무거운 마음이 견딜 수 있는 것이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견딜 수 있는 건, 그 무거운 마음을 어느 정도는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닌 채로) 입으로 발설하고, 문장들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악귀를 추방하는 능력, 이 통합의 힘을 내게 부여하는 건 그동안 내가 쌓아 온 교양, 글쓰기에 대한 나의 즐거움이다: 나는 통합한다,-언어를 수행하면서.
나의 무거운 마음은 표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 있다: 나의 언술이 ‘견딜 수 없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즉각적으로 무거운 마음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문학, 그것은 내게 이런 것이다: 프루스트가 병에 대해서, 용기에 대해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자기의 무거운 마음에 대해서 또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 쓴 글들, 그리고 고통이 없이는, 진실에 숨이 막히지 않고는, 그 글들을 읽어낼 수 없다는 것.
1978.10.6
두려움: 내 마음의 중심에는 두려움이 있다고, 나는 늘 말하고 써 왔었다. 마망이 죽기 전에 이 두려움은 그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잃어버린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여전히 두려워한다. 그것도 전보다 더 많이. 그러니까 두려움에 대해서 나는 전보다 더 면역력이 약해졌다.
1978.10.8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1978.11.4
이 애도의 메모들을 기록하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의 텅 빈 바다 위에 떠 있다.
1979.3.15
1년 반 동안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잘 아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그동안 나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임무들을 미루기만 하면서, 꼼짝도 않고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은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슬픔의 자기 순환적인 길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한 권의 책을 씀으로써 하나의 작별을 마무리 짓곤 했었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었다.-집요함, 은밀함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우리가 갖고 태어난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두해 전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최근에 겪은 애도의 시간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던 만큼 그 슬픔은 누군가 측량하고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 애도의 시기를 정하고 나를 압박하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위로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마음이 상했다. 애도는 기다림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기다림. 할머니를 잃은 슬픔이 이 정도였는데 부모님의 경우는 어떠할까.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바르트의 슬픔이 이해가 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슬픔의 크기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종종 프루스트 이야기를 했다. 프루스트는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문학에 담았는데 이 부분이 공감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 고통이 아무리 가혹하다고 해도 온 힘을 다해서 거기에 매달린다. 고통의 못이 아무리 아픈 것이라고 해도 차라리 그 못이 더 아프게 내 마음에 박히기만을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통은 할머니에 대한 생생한 기억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나는 오로지 그 고통을 통해서만 기억의 생생함을 간직하고 그 안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걸
프루스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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