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 카페/한 권의 책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by 북앤라떼 2021. 9. 3.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플라톤

소크라테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제자 플라톤이 쓴 이 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소개되는 소크라테스. 과연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이야기해 준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신성모독과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사실은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순교한 최초의 철학자다. 소크라테스가 봄에 처형되었을 당시 70세였으니 기원전 469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산파였다. 그도 젊을 때 석공으로 일했다고 하는데 전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에우폴리스(Eupolis)의 단편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저 찢어지게 가난한 수다쟁이 소크라테스를 혐오하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사색하지만 다음 끼니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인간이지

에우폴리스(Eupolis)

이 책을 저술한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성장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소크라테스는 젊은 시절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시민으로 참전했었다. 전투 중 부상당한 알키비아데스를 구해 준 소크라테스의 용맹에 대한 예찬이 책 속에 등장한다.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점에서는 그는 나보다 뛰어날 뿐 아니라, 군대 전체에서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가 포위당해서 식량 없이 지내게 되었을 때, 누구도 소크라테스만큼 잘 참지 못했습니다. 또한 보급이 충분할 때에는 소크라테스만큼 잘 먹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특히 술에서는, 그는 강권해서 어쩔 수 없을 때에만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가장 놀라운 일은 소크라테스가 술에 취한 것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추위를 이겨내는데도 비범했습니다. 그가 군에 복무하면서 ‘영웅이 보여준 또 하나의 공적’은 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목숨을 건진 것은 전적으로 소크라테스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내가 부상을 입었을 때 그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돌보아 주었고, 나와 나의 무기를 구해 주었습니다. ... 어떤 공격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멀리서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책 (위) 285쪽 /(아래) 286-287페이지

소크라테스는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몸소 체험했다. 그래서 그는 아네테의 사람들에게 철학적인 생각을 사유하고 사회를 바꿔가고자 한 것이다. 플라톤 역시 전쟁의 참상을 보았고 그 전쟁의 희생양으로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죽었을 때 그는 아테네를 떠났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실상을 비판했다. 사회는 철학적인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제대로 세워진다고 믿었다. 민주주의를 비판했던 철학자의 순교의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 이것을 역사의 역설로 해석했던 유시민의 책 구절이 생각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 시민들보다 얼마나 더 훌륭하고 국가와 정치에 대해서 얼마나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가? 나는 직접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비관론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잠재력과 한계를 모두 확인해 주었다. 아테네의 품에서 태어났으니 시대의 경계 너머로 나아갔던 그는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은 다수의 폭정에 빼앗겼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는 문명의 대세가 되었고 소크라테스도 인류의 스승으로 인정받는다. 역사의 역설이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74쪽

https://bookandlatte.tistory.com/entry/%EC%9C%A0%EB%9F%BD-%EB%8F%84%EC%8B%9C-%EA%B8%B0%ED%96%89

 

유럽 도시 기행

유럽 도시 기행 유시민 그들은 어떻게 더 자유롭고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답을 찾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 극적인 역사와 만났다. 스무 살 무렵부터 직접 가서 보

bookandlatte.tistory.com

스승이 독배를 마실 때 플라톤은 28세였다. 스승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는 정계의 뜻을 접고 아테네를 떠났고 이후 기원전 387년 아테네로 다시 돌아와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아’ 학원을 열어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여 28편의 저술을 남겼다. 그곳을 통해 많은 인재들이 나왔고 대표적인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다.

이 책을 사 놓은지가 꽤 됐는데 이 책도 지금 그 타이밍이 되었나 보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필독에 의해서 의무적으로 사 놨지만 생각 이상으로 훨씬 재밌고 유쾌하다.

독배를 마시면서 이렇게 유쾌한 이야기를 하고 간 사람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저자플라톤출판문예출판사발매1999.02.10.

 

 

소크라테스의 변명

내용은 법정에서 소크라테스가 하는 변명이다.

소크라테스의 악명이 높아진 이유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 신전의 무녀 ‘피티아’에게 운명을 점지 받았다. 무녀가 아폴로의 신들을 대신한다고 믿었다. 그의 벗이자 제자였던 카이레폰은 델포이로 가서 신탁을 알려달라고 했고 무녀는 소크라테스가 만인 가운데 가장 현명하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도 현명한 사람들을 찾았으나 대부분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니 그들은 현명한 것이 아니고 자신은 스스로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니 바로 그것이 현명하다고 변명한다. 당시에 지식인들이 그 말을 인정할 리가 없다. 그러니 그는 신성을 모독한 것이며 젊은이들까지 현혹한다는 죄명을 받고 법정에 서서 최후의 변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 404년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하였고 아테네에 예속 정부가 들어서 있던 시기였다. 패전의 음울한 기운은 아테네에 자욱했고 패전의 상처를 떠넘길 희생양이 필요했다. 새로운 집권자 아니토스의 반대파인 알키비아데스, 크리티아스를 제자로 둔 소크라테스가 적임자였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법정에 기소됐고 재판이 시작됐다.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 아니토스, 리콘을 고발자로 지목한다.

그런데 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변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이 여러분에게 보내준 선물인 나를 처벌함으로써 여러분이 신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여러분을 위해서 변명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사형에 처한다면, 여러분은 나와 같은 사람을 다시 쉽게 찾아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익살스러운 말로 말한다면, 신이 이 나라에 보낸 일종의 등에인 것입니다. 이 나라는 거대하고 기품 있는 군마와 같아서 바로 거대하기 때문에 운동이 둔하며 따라서 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신이 이 나라에 부착해 놓은 등에이며, 따라서 하루 종일 어디서나 한결같이 여러분을 붙잡고 여러분을 각성시키고 설득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나를 아끼라고 충고합니다.

책 36쪽

소크라테스의 이 자신감! 어떤 것에도 타협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 자신감을 보라. 그의 이 변명만 보아도 유쾌하고 익살스러움이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양심을 내세우며 초지일관 변함없는 논조로 사람들을 오히려 설득하고 있다. 그는 변명을 통해서 사형을 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아테네 시민들의 잠자는 양심과 의식을 일깨우고 회복시키고자 할 뿐이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크리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친구다. 크리톤은 감옥에 있는 소크라테스를 탈출 시킬 준비를 다 해 놓고 탈옥을 권유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크리톤을 나무라며 자신의 확고한 신념으로 설득을 시킨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작년에 소개했던 책 <세기의 재판>에서 조금 맛보기도 했다

https://bookandlatte.tistory.com/entry/%EC%84%B8%EA%B8%B0%EC%9D%98-%EC%9E%AC%ED%8C%90-%EC%9D%B4%EC%95%BC%EA%B8%B0-%EB%82%B4-%EB%AA%A9%EC%9D%80-%EB%A7%A4%EC%9A%B0-%EC%A7%A7%EC%9C%BC%EB%8B%88-%EC%A1%B0%EC%8B%AC%ED%95%B4%EC%84%9C-%EC%9E%90%EB%A5%B4%EA%B2%8C

 

세기의 재판 이야기: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세기의 재판 이야기 박원순 ​ 나는 지난 2001년 고대 병원에 8일 정도 입원을 했었다. 아무리 아파서 입원을 하였다해도 하루 종일 병원에서만 지내는 일은

bookandlatte.tistory.com

 

이때 리뷰를 쓰면서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잘못 알고 인용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나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인데 그가 철학을 포기하면 석방을 해 주겠다는 것도 거부하고 독배를 마신 이유가 시민으로서 법을 준수했다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독배를 마신 것은 자신의 철학적 소신을 꺾지 않았기 때문이고 죽음 뒤에도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는 그가 애써 죽음을 구걸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하나는 악처의 대명사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에 대한 것이다. 책에서도 그녀는 어린 두 아이와 장성한 아이를 데리고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우는 장면으로 몇 번 등장한다. 그녀는 귀족 출신이었다. 크산티페는 철학자라는 명목으로 밖으로만 맴도는 가장을 대신해서 가계를 꾸리고 아이들을 키웠다. 그녀가 소크라테스에게 고분고분한 부인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이런 상황에서 그녀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악처로 부르지 말자.

크리톤: 소트라테스, 우리와 자네를 위해서 얼마나 슬프고 믿을 수 없는 결과가 생겼는가. 이제 결심을 하게. 오늘 밤에 해야 하네. 만일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고 불가능하네. 그러니 소크라테스 나는 자네에게 내 말을 듣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간청하네

소크라테스: 친애하는 크리톤, 자네의 열성은 만일 옳은 것이라면 매우 귀중한 것이네. 그러나 만일 잘못된 것이라면 자네의 열성이 크면 클수록 위험도 더 커지네. 그러니 우리는 내가 자네가 말하는 대로 할 것인지 아닌지를 숙고해 봐야 하네. 왜냐하면 나는 반성을 통해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믿어지는 이유가 있을 때만 그 이유에 따라서 행동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고 과거에도 항상 그렇게 해 왔네. 지금 나에게 이러한 기회가 닥쳤다고 해서 내 말을 번복할 수 없네. 나는 아직도 내가 지금까지 옳다고 여기고 존중해오던 원칙을 옳다고 여기고 존중하고 있으며 따라서 더 좋은 다른 원칙을 당장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는 분명히 자네에게 동의하지 못할걸세.

(........)

소크라테스: 크리톤, 그렇다면 신의 뜻에 맡겨두고 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로 하세.

파이돈

파이돈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나오는 대표 작품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끼는 제자였던 파이돈이 스승이 독약을 마시던 날의 상황을 친구인 에케크라테스에게 들려주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집행 때까지 시미아스와 케베스라는 두 사람의 피타고라스 학도와 대화를 나누었고 태연하게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는 그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어요. 그는 조금도 두려운 빛을 나타내지 않고 죽었으며, 그의 말이나 태도는 고상하고 정중해서 나는 그가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신의 부름 없이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며, 저세상에 닿아서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그야말로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 친구여, 이것이 진리라면 내가 나의 여행을 마치고 지금 가려고 하는 곳에 다다르면 평생 동안 추구하던 것을 얻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네. 그러므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나의 길을 가려고 하며, 나만이 아니라 마음에 결심이 서 있고 순수한 태도를 가졌다고 믿는 모든 사람이 그럴 거야."

위 85쪽, 아래 101쪽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이면 그것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사랑하는 자이며 돈과 권력을 사랑하는 자일 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 모든 사물을 교환할 수 있는 참된 화폐가 지혜라고 한다. 지혜를 가져야만 용기든 정의든 뭐든 바꿀 수 있다. 파이돈은 마지막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에케크라테스, 나는 자주 소크라테스에게 경탄했습니다만 이때처럼 경탄한 적은 없습니다. 그가 답변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만 우선 젊은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온화하고 유쾌하고 긍정적인 태도가 나를 놀라게 했고 다음에는 지금까지의 논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이 상처를 쉽게 고쳐준 점 때문이에요. 그는 마치 패배해서 달아난 군대를 정돈시켜 그와 함께 논쟁의 전선으로 되돌아가도록 명령하는 장군과 같았습니다

140쪽

그때는 슬픔을 표현하는 것으로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내일이면 자신을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게 될 것이겠지만 자신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말해 온 이론이 죽는다면 그것을 위해 마땅히 머리카락을 잘라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진리만을 생각하고 소크라테스의 일은 생각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크리톤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크리톤이 눈물 흘릴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파이돈>의 마지막 장면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

잔을 입술에 대고 태연하게 즐거운 얼굴로 약을 마시고 누웠던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 얼굴을 덮었던 천을 벗고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닭 한 마리라니!

그러나 여기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빚졌다는 것은 세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는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헌납하라는 의미이고 둘째는 실제 인물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순전한 농담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이 가장 완벽한 죽음, 가장 철학적인 죽음이 아니었을까.

삶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이 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그렇게 죽었다.

흐느끼는 제자와 친구의 슬픔을 달래주며, 누구를 저주하는 말도 없이, 그렇게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 그는 죽음을 오래 연습한 사람이었다.

참으로 철학에 심취한 사람은 평생토록 오로지 죽음만을 추구하며 죽음을 연습하고 있다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일생 동안 죽음을 갈망해 온 사람이 어찌하여 그때가 왔을 때 그가 항상 추구하고 원했던 것을 마다했겠는가

향연

향연은 아테네의 비극 시인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잔치에 대한 이야기다. 이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아폴로도로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의 일일세. 아가톤이 그의 첫 번째 비극으로 상을 타던 해의 일이니까. 그의 극단원들이 그의 승리를 축하하는 감사의 제물을 바친 다음날에 그 잔치가 열렸네

책 195쪽

그런 이유로 아가톤의 집에 모인 아리스토데모스, 파이드로스(문필가), 아리스토파네스(희극시인) , 소크라테스, 알키비아데스, 파우사니아스(아가톤의 애인), 에리크시마코스(의사)가 '에로스'에 대하여 한 마디씩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술을 돌리며 거나하게 취해 ‘에로스(사랑)’에 대해 한 마디씩 자신의 생각을 연설하는 장면이란 가히 볼 만하겠지만 들을 만도 하다.

파이드로스부터 연설을 시작했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위대한 신이고 인간과 신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에로스는 가장 오래된 신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준다. 한 사람의 자신의 의견을 설파하면 다른 사람은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기도 하며 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식으로 에로스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아가톤과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주로 젊은이들에게 질문을 먼저 던지고 그 뒤에 자신이 이야기를 하면서 토론을 이어간다.

이때 재밌는 것은 파이드로스의 발언이다.

여보게 아가톤, 소크라테스의 물음에 대답하지 말게. 그는 대화 상대가 있기만 하면 특히 그 상대가 잘생긴 사람이라면 우리들이 지금 하고 있던 일이 어떻게 되든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네.

236쪽

향연을 읽다 보면 누구 옆자리에 앉겠다는 묘한 자리싸움이라든가 애정 행각(?)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때 당시에는 젊은 소년과 나이 든 남자의 성애 관계가 있었다. 일종의 교육적인 관계였다. 파우사니아스도 이런 사랑의 형태를 이상적이라고 설파하기도 한다. 이것은 귀족 집단에서 중요시 여기던 당시의 성향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오래전 디오티마 부인과 나눈 대화를 들려주며 자신의 에로스론을 펼친다.

모든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생식의 충동이 있으며 그들이 성숙하면 아이를 낳고 싶다는 충동을 자연히 느낀다. 그러나 아름다움 속에서만 이 욕망은 이루어지고 추한 것 속에서는 이 욕망은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생식이란 성스러운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신적인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룬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낳고 싶어 하는 것이 에로스다. 육체적 아름다움에서 도덕적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마침내는 절대적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사랑의 신비에 접근하고 참여하는 일이다.

앞의 대화편의 이야기들의 주제도 지상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이데아에 대한 사랑이고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 그것은 보통 순수한 비성적(非性的)인 사랑을 의미할 때 사용한다. 진정한 플라토닉 러브는 마음과 영혼 정신에 집중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연설이 끝날 때 몹시 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한다. 그는 취해 아가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맙소사 소크라테스 선생님, 이번에도 나를 기다리면서 누워계시는 겁니까?

게다가 왜 여기에 앉아 있지요? 선생님은 이 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옆에 앉아 있군요

272쪽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가톤, 날 좀 도와주게. 이 사람의 사랑은 그동안에도 적지 않게 부담이 되어왔네. 처음 이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이 사람의 질투와 시기를 받지 않고서는 단 한 사람의 잘생긴 사람이나마 바라보지도 못했고 단 한마디라도 나누어보지 못했네. 내가 그러려고만하면 이 사람은 화가 나서 나에게 욕을 퍼붓고 실제로 사납게 손찌검까지 하네.

이후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와 함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씨름을 하며 함께 잠을 잔 이야기를 폭로한다.

불은 꺼지고 하인들은 물러갔다. 그는 슬쩍 소크라테스의 옆구리를 찌르며 자느냐고 묻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애인들 중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가장 합당한 애인이었다는 고백과 함께.

그러면서 그가 소크라테스와 자고 일어났을 때 우리들에게 있는 일이란 말하자면 아버지나 형제와 함께 잔 것과 다름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투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구해준 용맹스러운 모험담도 들려준다.

이때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와 떠들썩해지며 통음을 하고 몇은 돌아가거나 잠들고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갔는데 그 대화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이야기를 끝낸다.

<향연>은 분명 에로스에 대한 예찬으로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소크라테스를 예찬하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마지막에 알키비아데스가도 소크라테스가 내면이 건전하고 그의 말은 거의 신의 말과 같고 뛰어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의 말을 어디에나 적용시킬 수 있다고 예찬을 했다.

이 네 가지 이야기로 소크라테스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었다. 기원전의 인물과 그의 제자의 책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위대한 사상보다는 인간성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소박하고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소환하고 자주 이용한다.

얼마 전 어느 경찰청장이 검찰 소환 요구를 앞두고 "소크라테스의 심경으로 출석해 진실 규명에 협조하겠다"라는 말을 했다. 소크라테스의 심경으로 떳떳하게 소신을 밝히겠다는 것인지, 주는 독배를 마시겠다는 말인지는 모르나 여전히 소크라테스는 그 자체로도 발광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소크라테스를 사형 집행했던 당시 아테네는 직접민주주의로 의사결정을 내렸다. 의회·행정·사법의 3권이 모두 시민들의 아고라에 있었다. 그러나 모든 시민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진 않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어떤 시민이 되어야 할 것인가.

 

반응형

'북 카페 > 한 권의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릴지브란 <예언자>  (0) 2021.09.05
고전 읽기 <이반 일리치의 죽음>  (0) 2021.09.04
엄마의 20년  (2) 2021.09.02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0) 2021.09.01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  (0) 2021.08.31